550__스페인 미국 인디언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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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__스페인 성당 미국 인디언 죽이기-프랑스 영국 미국의 조선 침략--10ok

뚱보강사 이기성

 

 

     550__스페인   미국 인디언 죽이기

 

나이 70이 넘은 사람들 귀에 익은 노래... 명국환의 노래로 자주 듣던 아리조나 카우보이’... 1959년 김부해 작사, 전오승 작곡... 카우보이 아리조나 카우보이, 광야를 달려가는 아리조나 카우보이... 말 채찍을 말아 쥐고 역마차는 달려간다... 저 멀리 인디안의 북 소리 들려오면, 고개 너머 주막집에 아가씨가 그리워, 달려라 역마야 아리조나 카우보이...

 

애리조나 북부의 고원(Northen Arizona Plateau) 그랜드 캐년을 중심으로 사방 150여 마일을 인디언 컨트리라고 부른다. 애리조나의 별명 중 하나가 아파치 스테이트(Apache State)’인 것처럼 아파치를 위시한 인디언의 영토였던 이 지방에는 현재에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디언 유적지들이 남아 있다. 이곳은 미국 전역에서 가장 광대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광고에 많이 나오는 그랜드 캐년과 아울러 여러 가지 색깔이 나타나는 사막(Painted Desert), 하늘 높이 치솟는 선인장 등 볼 것이 많다. 인디언들의 생활터전이었던 카이밥 국유림(Kaibab National Forest), 스페인 개척자들이 황제의 도시로 착각했던 몬테주마 캐슬(Montezuma Castle), 단학선원의 분점이 있는 기()의 도시 세도나, 수백 년 전 인디언 집단 주거지(Pueblo)가 그대로 남아 있는 우팟키(Wupatki) 국정공원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런데 말입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우측 애리조나(Arizona)의 인디언은 왜 사라졌을까?... 유럽인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미국 남서부의 인디언 인구는 약 3천만 명. 유럽 백인들의 침략 1세기 이후 약 100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지금은 약 30만 명의 인디언이 보호구역에 살고 있다. 인디언 3천만 명의 자연 인구증가를 어림잡아 두 배만 따져 볼 때, 1세기에 약 6천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까 미국 백인들은 남서부 애리조나 주의 인디언 약 59백만 명을 학살한 셈이다. 멕시코 북쪽 미국 남서부에서만 5900만 명이니, 미국 전체로 보면 2억 명이상 인디언이 학살되었다는 소문이 틀리지 않는 것 같다. [페친] Artist이며 만능 스포츠 선수인 Jey Choi 님이 페북에 글을 올렸다(2018424).

 

뚱보강사 칼럼 ‘#532__ 인사청문회 콜럼버스 학살자에 보면 콜럼버스 아이티 인종을 몰살시키다가 나온다... 아이티 인종을 멸종시킨 학살자...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서인도제도 히스파니올라는 인종 멸종의 최초 사례로 기록되었다.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섬에 도착하여 스페인식 식민 통치를 해서, 원주민을 모두 죽여서 대를 끊고(절멸시키고), 대신에 흑인 노예를 수입해서 강제 노동을 시켰다. 콜럼버스 도착 전에는 인구가 30만 명이었으나, 2년 만에 주민의 1/310만 명이 죽었고, 나중에는 500명밖에 안 남았다가 결국 원주민인 타이노(Taíno)족은 전멸했다.

 

 

    배은망덕한  스페인 선교사

 

[페친] Jey Choi 님의 글... 아리조나 지역에 최초로 발을 디딘 스페인 선교사 탐험대가 기아로 죽어가는 것을 원주인 인디언이 극진한 간호와 음식을 먹여서 안내를 하고 돌려보냈다. 살아난 선교사는 감사하기는커녕, 본국 스페인으로 돌아가서 군대를 데려와서, 자신을 살려준 인디언들을 죽이고 마을을 몽땅 불사르고는, 그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 그것이 미국의 최초의 성당이라는 곳이다(1692년 예수회 신부에 의해 설립된 산자비에르 성당). 한국의 새, 제비보다 못한 스페인 선교사... 서양 침략자들의 교과서 제1장 첫 페이지엔 항상 가장 중요한 지침이 있다. “직접 싸우지 말고, 원주민을 분열시켜 원주민끼리 적대감을 갖게 할 것”... 그래서 종족 내, 민족내의 분쟁과 전쟁으로 인디언 스스로를 약화시킬 것"... 인디언은 자기들의 신세가 자기 땅에서 사냥당하는 입장임을 몰랐던 걸까? 인디언 부족들은 그 와중에 스페인 지지파, 영국 지지파, 프랑스 지지파, 새로 독립한 미국 지지파로 나뉜다. 물론 각 나라의 백인들은 감언이설로 인디언에게 작은 이익을 줄 것을 약속했다... 그래서 각각 스페인과 영국, 미국과 동맹을 맺고서 인디언 동족끼리 서로 싸우는 전쟁을 수도 없이 한다.

 

결과는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모든 인디언은 학살되었다. 전쟁에 이겨도 인디언은 손잡았던 백인에게 배신당하고, 좋은 목초지와 농지를 빼앗기고, 저 먼 사막의 황야(버려두어 거친 들판)로 내 쫓긴다. 물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고, 선인장만 가득한 물이 없는 사막은 인간이 살수 없는 곳이다. 백인들은 채 죽이지 못한, 나머지 인디언들을 사막으로 내쫒았다. 1863년 미국 키트 칼슨 대령(Col. Kit Carson)은 나바호인디언의 집과 농작물을 불태우고, 나바호인디언 부족을 뉴멕시코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다. 300마일의 긴 여정(롱워크, Long Walk)을 추운 겨울에 강행시켰고, 이로 인해 많은 인명 희생이 있었다. 4년간 신개척지에서도 기아와 질병으로 많은 희생이 있은 후에, 1868년 미국 연방정부는 강제 이주의 잘못을 인정했다.

 

    민족내 분쟁으로  스스로를 약화시킬 것

 

스페인, 프랑스 외에, 영국도 선교사를 앞세워 아프리카를 침략할 때, 13살 때 혼자서 사자를 잡아야 결혼을 할 수 있는 용맹한 마사이족과 키쿠유족이 사는 케냐 지역을 점령할 때, 흑인 원주민 부족끼리 이간질을 시켜 점령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다이아몬드와 황금이 풍부하게 매장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레소토를 공격할 때도,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국가를 건국했던 사나운 줄루족과 소토족을 이간질하고 형제, 친척을 쏘삭거려 싸움을 붙여서 백인 군대의 피해를 줄이고 손쉽게 점령하였다.

 

--- 서양 백인들의 식민지 점령 원칙... “직접 싸우지 말고, 상대방끼리 적대감을 갖게 할 것”... 그래서 종족 내, 민족 내의 분쟁과 전쟁으로 스스로를 약화시킬 것"... 내 조국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한국은 누가 갈라치기를 조장하나? Jey Choi 님의 글... 걸핏하면 시위에 미국의 성조기를 휘두르며 외국과의 동맹을 맹신하고, 제 민족을 죽이라는 자들을 생각해 본다... 한 민족 한 핏줄끼리 적대시 하지말자고 하면, 종북 세력 혹은 촌스러운 민족주의자로 내몬다. 진보세력 내에서도 서로 무슨파, 무슨파로 나뉘어 서로에게 삿대질 한다. 존경하는 페친 들께 묻고 싶다. 우리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말이 통하지만, 뜻이 안 통하는 같은 국민들일까? 아니면 이 땅의 허리를 반으로 잘라서, 남북으로 총칼을 들게 하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먼 나라 사람들인가?

 

 

    프랑스 영국 미국의  조선 침략

 

[페친] 한얼 최보식님이 2022427일에 프랑스 영국 미국의 조선 침략이란 제목으로 올렸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서서이 드러나는 숨겨진 참 역사’... 현재 일반 대중들이 알고 있는 우리 역사는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대부분 왜곡되고 변곡된 거짓이다. 이제 참역사를 알려드립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살펴보는 진실”...

 

--- 이양행님의 글입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가 아니고, 해적이었다... <<헌종실록 7>>, 헌종 61230일 병술(1840, 청 도광 20). 비국(조선 왕조 때 군국의 사무를 처리하던 관아)에서 영국배 출현으로 제주 목사 구재룡의 파출(파면)과 나처(중죄인을 의금부로 잡아들여서 조치)를 청하다...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지금 전라 감사 이목연의 장계를 보았더니, 제주 목사 구재룡의 첩정(하급관아에서 상급관아로 올리는 공문서)에 이르기를, ‘대정현 모슬포 가파도에 영국(英吉利國)의 배 2척이 와서 정박하여, 감히 포를 쏘고 소를 겁탈하는 변까지 있다.’하고, 이어서 현감을

파면하는 동시에 관등을 폄하하고 의금부로 잡아들여서 조치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오랑캐의 배가 바다에 출몰하는 것은 본디 교활한 버릇이니, 오랫동안 해이해진 해졸(수병) 때문에 어모(외부로부터 당하는 모욕을 막아냄)를 튼튼히 하라고 책망하기 어렵다 하나, 온 섬의 포항(浦港)이 다 사변에 대비하는 매우 중요한 땅(重地)에 관계되므로, 경비하는 방도를 본디 충분히 규찰(적발하여 자세히 살핌)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저들(영국의 배 2)40여 인에 지나지 않는데, 어찌하여 우리의 해졸(수병)이 먼저 스스로 두려워하여 달아나기에 겨를이 없었습니까? 변정(국경 지방의 형편이나 사정)에 관계되는 일이므로 그대로 둘 수 없으니, 해당 목사 구재룡을 파출하고 나처하소서."하니, 왕이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4719B.

 

 

    영국 미국 프랑스 해적들의  깡패짓

 

고종실록 3, 고종 3115일 경신 3번째 기사, 1866년 청나라 동치(중국 청나라 제10대 황제 목종 동치제 자이슌; 재위 1861~1875 때의 연호. 1862년부터 1874년까지 13년 동안 사용) 5년 승문원에서 중국 예부의 공문을 보고하다... 영국 해적들의 깡패짓... 승문원(조선시대에 외교문서를 담당한 관청)에서 아뢰기를, "방금 중국 예부(禮部)에서 보내온 자문(咨文)을 보니, ‘동치(同治) 5(1866) 108일에 총리각국사무아문(청나라 말기에 외국교섭을 담당한 관청)에서 아뢴 것에 준거(準據)한 것이다. 신 등이 조선국에서 예부에 보내온 자문 원본을 보니, 대개 영국인 모리슨馬力勝등이 강제로 조선(해국)과 통상을 하려고, 중국에서 자문이 있었다고 빙자하고, 교민(敎民, 백성을 가르침)선교사들을 살해하고 예수교 배우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책망하였다고 한다.

 

--- 영국 해적... 또한 조선(해국)의 장병들은 영국 배에 포로로 잡히고, 영국 배가 포를 쏘아댔기 때문에, 조선 또한 포를 쏘아 반격을 가하여, 사람들과 배가 모두 불에 타고 물에 빠졌다고 한다. 그런데 배 안에 중국의 북경(北京), 성경(盛京), 광동(廣東), 하문(廈門) 등지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스스로 깊이 뉘우친다고 하였다. , 서양인들이 해마다 바다를 건너와서는 백성들을 살해하니, 잘 타일러서 물리쳐주며, 교역을 하자는 말도 막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 프랑스 해적... 신 등이 조사해 본 데 의하면, 지난해 프랑스의 사신(使臣) 박이덕밀拍爾德蜜이 조선(해국)의 선교사로서 조선에 가서 선교하려고 하여 미리 공문을 보내달라고 청하는 것을 신 등이 거절하고, 아울러 가지 말도록 권고하니 곧 의견을 철회하였다.

 

금년 여름에 영국 사신 아례국阿禮國이 화륜선 1척을 파견하여, 조선의 해변 일대에 이르러 계속 점령하고 있겠다고 공문을 보내왔으며, 프랑스 사신 백락내伯洛內도 조선이 자신들의 주교와 선교사들을 살해하였으니, 프랑스의 병선(소형 전투선)을 일제히 조선으로 집결시켜, 얼마동안 그 나라를 점령하고 있겠다는 조회를 보내왔다. 67일에 신의 아문(衙門, 관아)에서 두 나라에 회답 공문을 보내, 이해시키고 저지하였다.

 

7월 이후에 영국 사람 모리슨馬力勝등이 번갈아 가면서 조선에 정박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통상을 하자는 의도로서 그런 모략을 꾸며온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신의 관아에서그때그때 저지하여, 실로 조선과 통상해도 좋다는 허가를 하지 않았다. 영국 사람이 중국의 자문이 곧 올 것이라고 한 말은 분명히 날조해 낸 것인 만큼, 조선(해국)의 왕은 염려할 것이 없다.

 

--- 미국 해적... 어제 미국 사신 윌리엄스(衛廉士: Williams, S.W.)의 편지에 의하면, 8월에 두 개의 돛을 단 1척의 배가 고려국에 갔다가 좌초되었는데, 고려국의 장선(將船, 장수가 타고 싸움을 지휘하는 배)들이 불사르고 선주와 선원 24인을 붙잡아갔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고려에서 혹시 그들을 중국으로 보내줄지 모르니, 봉천부(奉天府)의 관리에게 신칙하여(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하여) 잘 보살펴 달라고 청하였다. 지금 조선에서 배를 공격해 불태웠다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단지 한 가지 일로 풍문(風聞)을 판단할 길이 없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미국의 무장 상선 '제너럴 셔먼(SS General Sherman)'호가 1866725일 평안도 용강현 주영포 앞바다에 도착한 뒤, 대동강을 거슬러 평안도의 중심지인 평양부까지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며 대포를 쏘고 민간인을 살해하자, 95일 당시 평안 감사 박규수 휘하의 조선군 부대가 제너럴 셔먼호를 급습하여 불태우고, 무장 선원들을 살해한 사건이다. 5년 뒤인, 1871(고종 8)에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 아시아함대를 이끌고 강화도에 쳐들어왔다.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미국이 무력으로 조선을 침략한 사건을 신미양요(辛未洋擾)라고 한다.

 

--- 프랑스 해적... 프랑스가 군사를 일으켜 조선으로 나가려는 것을, 일찍이 영국과 미국 두 나라가 저지하였으나, 프랑스는 듣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에서도 분별 있게 처리해야 많은 적을 만드는 것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의 자문(조선 때 중국과 왕래하던 외교 문서, 咨文)에서 영국 배를 공격하여 죽인 20명 중에서, 중국 사람으로 이름이 불리는 사람이 13명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중국 백성은 사사로이 국경을 나가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극히 엄함에도 불구하고, 적의 배에 가 붙어서 속국을 위협하다가 창과 포에 맞아 죽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며, 조선에서는 잘못이 없으니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시끄럽게 되지 않도록 타일러 이해시켜 달라고 한 것은 프랑스가 군사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는 만큼, 신의 아문에서 그때그때 사건에 따라 힘을 다해 이해를 시켰다. 이 때문에 프랑스 사신이 조선의 바다를 막아버리겠다고 한 조회에 대해서도 갑자기 싸움을 벌이지 말아 두 나라의 백성들의 생명을 보호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가 군사 행동을 한 이후부터는, 전에 선교나 하겠다고 요구하던 분위기와는 같지 않을 것이며, 영국과 미국도 전번에는 권고하여 저지시켰지만, 지난번에 또 조선과 불화를 일으켰으니 통상을 하자는 말이 더욱더 강하게 나올 형편일 뿐만 아니라, 이미 군사 행동을 했으니, 화해를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배상금 문제가 나올 것이다.

 

흥선 대원군은 러시아의 남하를 프랑스를 이용하여 견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해서 천주교 선교를 하던 프랑스가 이를 거절하자, 조선 정부는 천주교 선교를 중지하고 신부(선교사)들을 프랑스로 돌아가라고 하였는데, 끝까지 귀국 명령을 거부한 프랑스 선교사(신부) 9명과 조선 정부의 명령을 거부한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은 처형당하였다. 프랑스 리델 신부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 중국 텐진에서 대기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에게 달려가 병인박해의 내용을 알리고, 1866년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군함이 강화도를 공격했으나 양헌수 장군에게 패했다. 패전한 프랑스 군인들은 도망가면서, 조선의 외규장각 도서들을 약탈해 갔다가 최근에야 임대 형식으로 반환했다.

 

--- 당시 프랑스 공사가 조선 국왕에게 위협한 내용이다... 우리 프랑스 정부는 조선의 유혈의 폭행(1866년의 병인박해로 프랑스 신부 9명이 처형된 사건)을 용서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을 죽인 그 날이 바로 조선 국왕의 최후가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엄숙히 그가 최후를 맞게 되었음을 선포한다. 이제 수일 내로 우리 군대는 조선 정복을 위해 떠날 것이다. [참고] 프랑스 대리 공사 벨로네의 조선 원정 보고서.

 

--- 병인양요, 서양인의 대원군 아버지 무덤 도굴 사건... 흥선 대원군이 집권할 즈음 국내에는 상당수의 천주교 신자가 있었으며, 프랑스 선교사도 각지에서 비밀리에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흥선 대원군은 처음에는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편이었다. 그런데 1860년에 청나라의 베이징이 서양 세력에 의해 함락되고,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자, 조선에서는 서양 세력 및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흥선 대원군도 러시아에 위협을 느끼고, 국내에서 활동 중인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프랑스의 힘을 빌려, 러시아 세력을 막아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 선교사들이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프랑스와 외교적인 교섭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마침 국내에서 천주교를 반대하는 기운이 높아지자, 흥선 대원군은 그의 정치적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9명의 프랑스 선교사와 함께 수많은 천주교도가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프랑스는 선교사의 죽음을 구실로 삼아 조선과의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에 침입하여 강화 산성을 점령하였다. 이를 병인양요라 한다(1866). 이 때, 프랑스군은 강화도에 보관 중이던 조선의 국보급 각종 서적과 문화재를 약탈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집권 이래 군사 제도를 정비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해 왔던 조선 정부는 각지의 포수를 뽑아 한강 연안의 수비를 강화하였고, 조선의 양헌수 부대는 삼랑성(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 또한, 병인양요 후 오페르트를 비롯한 서양인들이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려다가 실패하고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에서는 왕릉과 조상의 산소를 도굴하는 야만적인 서양인들을 진심으로 배척하는 기운이 더욱 거세어졌다. [참고] ‘#129__ 병인양요와 무역개방 압력’, 뚱보강사, 2014-03-13.

 

--- 영국, 미국, 프랑스 해적과 도굴범... 세 나라가 점점 협력하려는 형세로서 반드시 통상과 선교 및 배상하는 일로 서로 따지고 들 것인데, 지금 조선에서는 통상과 선교(宣敎)를 전연 할 수 없는 것이지만, 배상 등의 절차에 미리 생각해두어 타결되도록 힘쓰고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해국)은 마음을 다해서 대책을 세워서, 분별 있게 처리하여 만전을 기하고, 조금도 허술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자문과는 다르니, 회답 자문(回答 咨文)을 지어 내어 파발 편으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참고] 미국자동차여행

http://usacartrip.com/xe/usa_board/10765

[참고] Jey Choi Artist, 2018424.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4954321382

[참고] ‘#532__ 인사청문회 콜럼버스 학살자’, 뚱보강사, 2022.06.11.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820457

[참고] 한얼 최보식, 2022427.

https://band.us/band/63626761/post/7321?fbclid=IwAR2J2OllxHYulPaH2QgaGAEdnQgYKW4GanuJEjE0uv7OBSSllywWsRo8bxU

https://band.us/band/63626761/post/7321

[참고] 태백산사고본4719B국편영인본48481.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42286174472

[참고] 원본7387A국편영인본. 1248,

분류외교-프랑스[] /외교-영국() /외교-미국() /외교-() /사상-서학(西學).

[참고] 우리 역사, 천주교 박해와 병인양요.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m71_0080_0010_0020_0010

[참고] ‘#129__ 병인양요와 무역개방 압력’, 뚱보강사, 2014.03.13.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138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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