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__ 경제지리학. 육지수. 미국 유학. 불광문고 수련점. 국민, 5·18에 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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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3__ 경제지리학- 육지수- 부러운 미국 유학- 불광문고 수련점- 일반 국민, 5·18에 죄의식 가질 필요 없어---122ok

뚱보강사 이기성

 

  1243__ 경제지리학. 육지수 교수. 부러운 미국 유학.

불광문고 수련점. 일반 국민, 5·18에 죄의식

 

송유면 페친 님이 페북에 질문을 올리셨습니다. “원장님! 지리학과에서는 주로 어떤 공부를 하셨나요? 지리학이 좀 생소한 것 같아서 여쭤봅니다.” “경제지리, 역사지리, 정치지리, 지형학, 지도학, 교통지리, 인문지리... 등입니다. 저는 economic geography 논문으로 졸업했습니다. 당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은 학부인데도 졸업논문 제출이 있었습니다.” . 원장님! 감사합니다. 지리학의 학문분야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단순하게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서와 같은 공간적 측면에서의 지리만 생각했었는데, 원장님의 말씀을 읽고 보니, 요즈음 AI가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모두 다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3월초에 제 여식이 과천 지식타운으로 분양받아 외손자랑 다 이사갑니다. 그때 직접 인사도 드리고 싶습니다...

[참고]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57605

 

 

지리학과 육지수 교수님

 

1961516일에 박정희 소장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육군장교들이 일으킨 군사 쿠데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제2공화국의 장면 내각은 출범 9개월 만에 무너졌고, 박정희를 수반으로 하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등장했습니다.

 

1964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 입학한 뚱보강사는 일본 최고의 대학 동경제대 출신 육지수 교수님, 미국유학 석사 김경성 교수님에게 지리학 오리엔테이션을 받았습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리학과 교수님들은 전원 박사 학위 소지자이셨는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는 지리학과가 생긴지 얼마 안 되어서,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는 육지수 교수님과 김경성 교수님 2분 뿐이었습니다. 동경제대(The University of Tokyo)는 일본 첫 번째 제국대학으로서 일본의 810여 개 대학 중 최고(最古) 대학이자, 세계 최초로 공대를 설립한 대학. 가장 많은 한국인 유학생이 박사 학위를 받은 해외 대학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학교에 현재 재직 중인 교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해외 대학교입니다. [참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B%8F%84%EC%BF%84%EB%8C%80%ED%95%99

 

서울대학교 육지수 교수님은 휴강 안 하시기로 유명했습니다. 수업시간도 100분이면 100분을 꽉 채우십니다. 중간에 화장실 가는 건 용납해주십니다. 오전 수업에 지각하는 학생이 있으면, 잠시 수업 진도를 멈추십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너희들이 지각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한국을 발전시켜야 한다. 일본,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 조상들이 어떻게 해서 찾은 나라인데... 미국을 가서 앞선 학문을 배워와야 한다. 나라의 장래는 머리 싸움에 달렸다. 다행히 우리 민족의 머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부지런히 공부만 하면 된다. 새로운 학문을 열심히 배워 와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또다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하도 들어서,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할 때보다는 맞아!”하고 느낄 때가 더 많았었다. “이거 뭐 경제지리학 수업이 잔소리 시간이냐고 투덜대는 복학생들도 있었지만, 뚱보강사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 고맙게 느껴졌었다.

 

, 어떤 날은 강의실을 옮겨서 수업하자고 하신다. 문리대 앞 자동차길을 건너서, 서울대 의대 입구에 위치한 교수회관으로 모이라고 하신다. 지금은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도 커피를 마시지만, 1964년에는 어른들이나 다방 가서 커피를 마시고, 대학생은 빵집이나 만두집에 가서 엽차나 먹을 때였다. 육지수 교수님이 비싼 커피를 사주신다니, 모두들 교수회관으로 간다.

 

막상 교수회관에 가면, 책은 덮어놓고, 인생수업이나 예의범절 같은 말씀을 자주 해주신다. 개인적인 애로사항도 들어주시고... 교수님이 아니라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았다. 60년이 지난 지금, 강의실 수업은 다 까먹었어도, 교수회관에서 해주신 말씀은 더 많이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사범대학교가 아니고, 문리과대학에서도 교직과목을 들으면 교사자격증이 나왔다.

 

너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중고등학교 교사로 취업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와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교수로 들어오라고 말씀하셨다. 1964년인 그때는, 문리대에 지리학과가 생긴지 얼마 안 된 초창기라 교수T/O가 많이 있으니, 유학을 갔다 와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학문을 전파하라고 추천하셨다.

 

경제지리학을 전공하신 지리학과 학과장 육지수 교수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제개발계획 전문가여서, 19615.16 혁명정부에서 총리로 모시려했었다. 그런데, 본인이 고사하셨고, 대신에, 혁명 정부가 196321일에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개요)’을 확정하는데 중심 역할을 했다. 혁명정부가 1962년 경인공업지대 형성 등 이미 개발 계획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계획을 수정, 보완하여 5개년 계획을 확정시킨 것이었다. 당시에, 그런 군사혁명정부 핵심부에 접근하려는 여러 단체와, 정치세력들이 있어서, 순진한 육지수 교수는 모함도 많이 받았으나, 고지식한 경제지리학자 육지수 교수의 한국 경제개발정책 목표는 한결같이 우리나라 경제의 자립적 성장과 공업화 기반 조성에 있었습니다.

 

경제개발계획 작성의 기본 방침은 자유경제체제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강력한 계획성을 가미하고, 우리 경제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여 자립적 성장과 공업화 기반을 구축하며, 자연자원과 인적자원의 합리적 결합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강조하고 있다. 육지수 교수는 일부 정치세력들의 모함으로 서울대 교수직까지 해임될 번 했으나, 육영수 여사의 친오빠라는 인연으로, 겨우 모함 사실을 밝혀내서, 벗어날 수 있었고, 19632월에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확정시켰고, 나중에, 박정희 대통령은 1·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통해서, 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북한을 앞서게 되었다고 자평한 바 있다.

 

 

   한일회담 반대 시위와 6·3 시위

 

1964년에 종로5가 동숭동(현재 대학로) 거리에 있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 입학한 뚱보강사는,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면, 가끔 강의실은 비어 있고(휴강), 교문 앞은 데모하는 학생들과 이를 막고 있는 경찰들로 시끄러웠습니다. 그 유명한 한일 회담 반대 시위였습니다. 6·3사태는 1964년 박정희 정부의 한일 국교 정상화 추진에 반대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6·3항쟁 또는 6·3 시위로도 불립니다.

 

19643월에 혁명정부가 한일회담 재개를 결정하자, 야당과 사회단체는 '대일굴욕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대응했습니다. 반대 세력은 평화선 양보 불가와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화 반대 등을 주장했습니다. 5월 말 서울대 문리대생들의 단식농성을 계기로, 시위가 격화되었으며, 63일에는 서울에서 약 12~15천 명의 학생이 거리로 나와서, 정권 타도를 외치며 시위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1964년 박정희 정부의 대응과 결과

박정희 정부는 196463일 밤, 서울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군 병력을 투입하여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이후 729일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집회 금지, 언론 검열 등 조치가 이어졌습니다. 한일회담은 1965622일 조인되었으나, 이 협정은 이후에도 한일 간 과거사 문제와 해석 차이로 갈등을 남겼습니다.

 

지리학과는 학생 정원이 20, 그러나 입학하여 군대에 징집된 학생 몇 명을 빼면, 전공과목 수업시간은 보통 12~15명이 출석했습니다. 육지수 교수님은 강의실 빈자리 학생들을 직접 확인하셨습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하고 있는 학생들, 특히 2명의 여학생 출석을 더욱 신경쓰셨습니다. 데모를 하다가 경찰에 잡혀가면, 파출소 영창에 갇힙니다. 보통 잡힌 날 저녁 한 끼는 굶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데모 안 하겠다는 시말서를 쓰고, 훈방됩니다.

 

그런데, 하루는 포항에서 올라온 여학생이 결석을 했습니다. 육지수 교수님이 화를 내십니다. “너희들은 학우가 잡혀갔는데, 걱정되지도 않느냐?” 몇 명이 여학생 하숙방에 가 보았더니, 어제 밤 하숙하는 집에도 안 들어왔고, 문리대앞 파출소에 가보아도 없고, 알고보니 경찰서 유치장으로 끌려갔다는 것입니다. 먼저번 데모할 때, 피출소에 잡혀가서 다음에는 데모 안 한다고 시말서를 쓰고 훈방되었는데, 또다시 파출소에 잡혀왔다고, 데모 상습범이라고 경찰서로 넘겼다는 겁니다. 경찰서 유치장에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남학생들이 경찰서에 여학생을 찾으러 갔더니, 여학생의 부모가 직접 와야 신원보증을 받고 내보내줄 수 있답니다. 여학생은 포항에 계신 자기 부모님께 전화를 안 한다고, 버팁니다.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한답니다. 부모님은 자기 딸이 서울 가서 공부 잘하고 있는 줄 아시는데... 파출소에서는 부모님의 보증이 없으면, 아무리 확실한 서울대학생이라도 훈방이 안 된답니다. 검찰로 송치하거나, 구치소나 교도소로 보낼 수 밖에 없답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학생들이 학과장 육지수 교수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경찰서 담당자가 전화를 바꾸더니, 학교 교수님이 신원보증을 서주시면 모를까, 그냥은 석방시킬 도리가 없답니다. 얼마 뒤, 육지수 교수님이 경찰서에 직접 오셨습니다. 여학생 신원을 보증한다는 육지수 교수님의 보증서를 받고서야, 여학생이 유치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경찰서가 난리가 났습니다. 경찰서에 VIP가 떴다는 겁니다. 그리고..., 왠일인가 했더니, 경찰서장이 육지수 교수님을 찾아오더니 거수경례를 합니다... 서서있는 학생들 전부에게도 커피를 내옵니다. VIP는 대통령을 말하는데?... 경찰서장은 육지수 교수님이 청와대 육영수 여사의 친오빠인 걸 알아낸 것입니다... 그런데, 여학생은 커피를 안 마시고 있었습니다. 경찰서장이 묻습니다. “?” “홍차로 줄까?” 여학생이 배를 잡으며 말합니다. 육지수 교수님을 쳐다봅니다. “교수님, 저 배고파요, 어제부터 굶었어요.”

 

경찰서장이 빨리 설렁탕을 주문하라고 합니다. 육지수 교수님이 말립니다. “내가 데리고 나가서, 밥을 사줄 겁니다


  
  미국 유학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제가 존경하는 서정선 박사 형님이 20254월에 올려주셨습니다.

[org] https://kg60.kr/cmnt/44668/boardInfo.do?bidx=989612

 

그대 일어나 가야지

우리가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을 아껴야 하지. 사랑을 아껴야 하지

흐드러진 꽃은 이미 꽃이 아니듯

우리의 사랑이 무르 익으면. 안 되는 거지

천천히 멀리 가야지

언 땅 뚫고 움 틔우고. 언 땅을 녹여 천리길 가야지

우리 사랑 꽃봉우리로 박제되어

그대 내 가슴에 꽂힐 때까지

 

이 노래는 황순애의 시를, 박대웅이 곡을 만들고, 맑고 순수한 얼굴을 가진 쏘프라노 이해원이 깨끗한 목소리로 부른, 정말이지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저는 부모님 덕분에 미국유학을 갔고, 또 텍사스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David Kendrick 교수님의 지도로, 미국에서 경제계획(Economic Planning)을 전공한 첫 번쩨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Kendrick 교수님은 저를 위하여 미국의 유수한 대학인 Stanford대학과 협의하여, 금방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로는 아주 이례적으로, 부교수 자리를 마련하여 주셨으나, 저는 그 좋은 직장 제안을 뿌리치고, 그보다 월급이 훨씬 높은 J.P. Morgan 은행에 취직하는, 그 후로 수십 년 동안이나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던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인종차별이 극심하고, 상당히 보수적이던 미국 유수의 은행에서, 외국인으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게 되니, 나의 그곳에서의 성장 한계가 눈에 뻔히 보였습니다.

 

마침 그때, 운이 좋게도, 우리 60회 동창 이동원이가, 대우그룹의 뉴욕 책임자로 있어서, 그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나를 한국에 돌아올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이동원이와, 또 대우 본사에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장병주의 나에게 해 준 큰 도움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이하 생략>

-- 서정선 2025423--

 

이기성 교수님: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KBS별관 앞에 빨갛게 피어 있는 영산홍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이제 환절기도 지났으니, 사모님과 산보도 자주하시고, 외식도 자주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이교수 님의 아름다운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부러운 미국 유학

          부러운 나의 영웅 = 서정선 박사

 

서정선 박사 형님: 저는 정선 형님이 몹시 부럽습니다.

저는 ROTC 장교로 유엔군사령부에서 통번역장교를 하면서(1968~1970), 미국 대학원 유학 준비를 마치고, 1970년에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Illinois State University)로 출발하려는데, 뜻하지 않게, 우리 아버님의 아주 강력한 반대로 유학을 못가고 말았습니다.

 

장남이 어딜 가느냐?”고 아버님한테 붙잡혀서, 국내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아버님 출판사인 도서출판 장왕사 편집부와 을지로와 서대문에 있는 인쇄공장에서 사진제판술, 활판인쇄 기술과 오프셋인쇄 기술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1970년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T/O가 남아 있었고, 한 분 계신 부교수님도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을 하시다가, 미국에서 석사학위만 받고 귀국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 문리과대학 지리학과에서도 제가 미국서 석사학위만이라도 받고 돌아오면, 조교수 자리를 보장해주겠다는 상태였는데, 아버님의 반대로 유학을 못 떠나니까, 뚱보강사의 가슴은 메어졌고,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가슴에 한이 맺혀 있고, 제가 못이룬 슬픈 꿈으로 남아 있습니다.

 

몇 년을 정성들여서, 신나게 준비했던, 미국 유학을 못 가게 되니, 세상 살기가 싫어지고, 25살의 뚱보강사는 자포자기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경제지리학 공부가 아니라서, 아버지 출판사의 일은 마지못해 억지로 배우고, 퇴근을 하고나면 집에서는 라디오를 만들고, 전축을 조립하고, 불법으로 송신기를 만들고, 무선마이크를 만들고, 진공관,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저항, 콘덴서의 납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세계 최초로 개발된 IC기판을 구입하여, 책상만한 크기의 진공관 스테레오 전축을 손바닥만한 크기로 만들었고, 진공관 라디오, 트랜지스터 라디오 회로를 설계하다가, 대형컴퓨터(IBM370)의 어셈블리어, 포트란, 코오볼 프로그램에 빠져들었습니다. 1980년 초반에, 개인용컴퓨터인 애플II+ 컴퓨터의 대만복제물이 청계천상가에 나타나자, 즉시 AppleII+로 프로그램을 하였습니다. 애플어셈블리어, 애플소프트베이식, CP/M MBASIC, 애플파스칼 프로그래밍에 빠졌습니다.

 

국내 최초로 IBM PC XT를 사용하여, 출판사 업무의 전산화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당시는 마이크로컴퓨터로 COBOL 언어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출판사업무를 했는데, 개인용컴퓨터(PC)인 애플II+ 컴퓨터와 IBM PC 컴퓨터에서 BASIC 언어, Apple PASCAL, dBASEII, dBASEIII 언어, VISI-CALC로 프로그램을 짜서, 장왕사 편집부 업무와, 전표입출력, 대차대조표, 합계잔액시산표 등, 회계업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비싼 마이크로컴퓨터와 COBOL, FORTRAN 언어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값싼 AppleII+ 컴퓨터와 IBM PC XT, AT 컴퓨터로 만든 프로그램이라, 가격 경쟁력이 있었고, 초보자도 사용하기 편해서 소규모 업체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참고 서적]

이기성, 애플과 IBM의 통신, 장왕사, 1987

이기성, 알기쉬운 BASIC 프로그램 모음, 모음-2, 영진출판사-1987, 1990

이기성, dBASE III PLUS 실무강좌, 영진출판사, 1989

이기성, 전자출판, 영진출판사, 1988

이기성, 사진식자개론, 장왕사, 1990

이기성, 출판마케팅, 장왕사, 1990

이기성, 컴퓨터는 깡통이다, -2, 가서원, 1992, 1993

 

주간조선뚱보강사의 컴퓨터 이야기(1990~1994)’ 칼럼이 쉽고 재미있다고 소문이 나서, EBS-TV 교육방송의 윤문상 PD팀에서 김다혜 탈렌트와 함께 하는 ‘TV 컴퓨터 첫걸음’, ‘TV 컴퓨터는 내친구출연 강의 요청이 왔고(1993~1995), 영진출판사에서는 개인용컴퓨터용 BASIC, dBASE 언어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들자고 해서, 프로그램 소스를 공개해주었습니다. 1992년에는 가서원 출판사에서, 제가 주간조선에 4년간 매주 연재한 '뚱보강사의 컴퓨터 이야기'칼럼을 책으로 내자고 찾아 왔습니다. 컴퓨터는 깡통이다라는 이름으로 -1, -2두 권을 출판했습니다.

 

출판계와 인쇄계에서도 출판과 인쇄의 업무전산화를 책으로 써달라고 해서, 1988년에 전자출판이라는 책을 영진출판사에서, 세계 최초로 출판했습니다. 뚱보강사는 결국,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고싶었던 경제지리학대신에, 출판학 특히 '전자출판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선 형님, 제가 너무, 제 하소연만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서정선 형이 무지하게 부럽습니다.

저는 미국 유학을 못가고, 한국의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쇄용 도활자(CERAMIC TYPE FONT)연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는 컴퓨터정보처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단국대학교 컴퓨터정보처리 박사학위 과정은 지도교수와의 의견 차이로 학위를 못받고, 박사과정을 수료만 했습니다.

 

저는 단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주제를 컴퓨터에서는 반드시, 현대한글 음절 11172자가 100% 전부 다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 학위 논문을 제출했고, 단국대 박사논문심사 교수님들은 전두환 정권이 주장하는 미국 UNICODEISO국제규격에서 한국에 배당해준 대로, 한글 음절의 20%2350자만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주장을 UNICODE에 맞추어 한글을 20%2350자로 줄이는 코드의 논문으로 수정하라는 것을, 저는 반대로, 한글을 20%밖에 표시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의 2350KS 규격, UNICODE2350자 규격, ISO2350자 규격을 현대한글이 100% 표현되는 11172자 규격의 한글코드로, , 한국 5공 정부의 KS 규격과 UNICODE 규격, ISO 규격을 2350개 음절에서 11172개 음절로 확장해서, 3가지 모두 LEEKS_한글코드인 한글 음절 11172자의 규격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무려 5년간이나, 현대한글 11172자 표시의 LEEKS_한글코드와 현대한글 중 2350자만 표시 가능한 지도교수의 2350_한글코드 규격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동아일보에서도 4회에 걸쳐 지상 공개토론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당시 한국 대형 인쇄업체에서 인체에 해로운 납활자 조판 공해문제(납중독)가 계속 발생해서 납활자조판소가 문을 닫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10년째 계원예대와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학생들과 연구하여 오던, 유해한 중금속인 납으로 만든 금속활자를 인체에 무해한 도자기(ceramic) 활자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를, 재료공학으로 유명한 경기대학교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정식 입학해서, 세라믹 재료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해서, 세계 최초로 인체에 해롭지 않은 세라믹활자를 발명해낼 수 있었습니다. 2000년에 이 논문으로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만든 무공해 한글세라믹활자는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이제 뚱보강사도 나이 80이 되고보니,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 서정선 박사 형이 부러운 이기성 올림 --

 

 

   불광문고 수련점

 

불광문고가 5년 만에 돌아왔다... [시사인] 이은기 기자가 보도했습니다(2026814).

 

아이들은 동네 서점에서 꿈을 키웠다. 어린이 코너 서가에 기대앉아 한참 책을 읽던 친구들이 어느 날 작가, 편집자가 되어 서점을 찾아왔다. 서울 은평구 불광문고에서 23년간 일한 장수련씨(50)책 한 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 경험이 나를 또 서점으로 향하게 했다라고 말했다.

2021, 적자 탓에 문을 닫은 불광문고가, 5년 만인 202673불광문고 수련점으로 돌아왔다. 760(230) 규모이던 서점은 절반도 안 되는 198(60)로 줄었다. 위치도 불광역에서 역말사거리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다. “매일 300~350종의 신간이 나온다. 날마다 책을 챙기고 관리해야 엑기스만 남겨, 손님들에게 한 권이라도 더 보여드릴 수 있다. 불광문고의 오래된 직원들이 그걸 계속 해냈다. 손님들이 여기는 진짜 필요한 책만 있네라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

 

1996년 문을 연 불광문고는 동네에 몇 없는 종합서점이었다. 장수련씨가 서점 일을 시작한 건 1999. 지금은 고인이 된 최낙범 당시 대표가 무역회사에 다니던 장씨를 영입했다. “무역회사에 다니기 전 서점 근처 우동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님이 거기 자주 오셔서, 좋은 책이 있으면 소개하고 또 빌려주셨다. 그때는 은평구에 도서관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사장님이랑 이야기가 잘 통했고, 책도 실컷 볼 수 있을 것 같아 서점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책 읽을 시간이 없더라(웃음).”

 

새로 서점을 준비하면서, 예산 부족으로 포기한 것이 많았지만, 타협할 수 없던 조건은 대로변이었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이상 광고를 많이 하는 큰 출판사 책이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책은 우연하게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서점도 그렇다. 2층에 터를 잡았지만 대로변만큼은 놓칠 수 없었다.”

 

불광문고 수련점에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없다. 대신 유한한 삶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일하는가’ ‘불평등의 시대같은 주제에 따라 책이 진열돼 있다. 서점의 안내도를 따라 각자가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지난 5년간, 누군가 근황을 물으면 장수련씨는 서점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2021년 불광문고가 문을 닫는 순간부터 그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불광문고를 둘러싼 환경은 5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프라인 지역 서점은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보다 책을 비싸게 공급받아 가격경쟁이 어렵다. 대형·온라인 서점은 할인이나 적립도 쉽다. 장씨는 책 정가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할인이나 마일리지 적립 등 추가 혜택을 전면 금지하는 완전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뾰족한 수가 있어서, 서점을 다시 시작한 게 아니다. 하지만 지역에 서점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텍스트 힙시대이고 국제도서전에는 사람이 붐빈다지만, 다들 거기 가서 그런지 동네 서점은 장사가 안 된다(웃음). 불광문고 수련점 말고도 동네 서점이 많다. ‘동네에 서점이 있어 참 좋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서점이 유지될 수 있게 책을 사주셨으면 좋겠다. 책을 사고파는 공간으로서 서점이 기능해야 문화 공간의 역할도 할 수 있다.”

 

 

   일반 국민, 5·18에 죄의식 가질 필요 없어

 

일반 국민, 5·18에 죄의식 가질 필요 없어”... ‘스타벅스 사태로 물러난 이병태의 말... [문화일보] 김무연 기자가 보도했습니다(2026815).

 

이병태 부위원장, 스타벅스 사태 때 “5·18 성역비판했다 물러나

 

이병태 전 대통령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5·18 민주화운동을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이나 의문 제기까지 막는 것은 비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이병태 전 부위원장은 815, 페이스북에 5·18 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광주의 비극은 내가 대학 1학년 때 일어난 일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 금지가 광주에서 거친 반발을 불러왔고, 그 충돌의 현장은 비극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이어 분명히 신군부의 군사 쿠데타 세력이 이 문제의 발단을 제공했다고 했다.

 

그는 5·18에 대한 사회적 평가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이 정치적 사건을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정리했다면서도, “그런데 이 민주화운동은 호남, 그리고 진보 진영의 독점적 정치 자산화가 진행돼 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정치적 자산화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 대해, 정치 자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처벌과 입막음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호남과 진보 진영은 다른 지역과 정치적 반대 세력들에게 끊임없이 죄의식을 요구하고, 정치적·경제적 보상을 요구하는 심리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태 전 대통령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일반 국민들이 5·18에 대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주장도 펼쳤다. 그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 사건에 죄의식을 가질 이유도 없을뿐더러, 당시 광주에서 생명을 내놓고 저항했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불행한 역사의 피해자들일 뿐이라고 했다.

 

역사에 대한 표현과 해석의 자유도 강조했다. 이 전 부위원장은 광주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부정한다면, 이는 비자유민주주의라며, “왜 역사적 사건의 진실과 해석을 다양하게 추구하는 행위가 이 운동을 부정하고 피해자·공헌자들에 대한 폄훼이고 모독이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다수 또는 권력이 역사와 문화에 대해 독점적 해석을 주장하면, 그것은 이미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 전 부위원장은 5·18 자체에 대해서는, 민주화운동이라는 평가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광주의 불행한 역사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저항이었다고 믿고 있다. 신군부의 초헌법적 정치 금지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후 5·18이 정치적으로 이용돼 왔다고 주장하며, “하지만, 이후 지역 갈등과 진영 정치의 무기로 이 역사적 사건을 악용해 오고 있다. 이 전체주의적이고, 비자유민주주의적인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글의 말미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것은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어떠한 이견이나 의문도 표출되지 않아야 하고, 그런 사람들은 처벌되고 사회에서 추방돼야 한다는 자들, 그들 자신이라고 적었다.

 

이 전 부위원장은 앞서 지난달에도, 5·18을 둘러싼 발언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스타벅스 구호논란으로 징계를 받은 배재고 야구부를 언급하며, “고등학교 야구 라이벌전에서 스타벅스 논란을 경쟁팀 조롱에 활용했다는 학생들의 일탈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며 이 땅에 5·18이 그런 성역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 이후,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이 이어졌고, 이 전 부위원장은 결국 대통령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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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정선, 2025.04.23. 06:18 조회 51.

[org] https://kg60.kr/cmnt/44668/boardInfo.do?bidx=989612

[‘참고] 789__상비약. 운동권 정치 청산. 민주당 노인비하. 국회에서 북한식 언어 사용 빨갱이 박홍근, 뚱보강사, 2024.01.27. 조회 221.

[참고]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57605

[참고] 정선 형님이 부럽습니다2025-4-243---1일부삭제2026-8-19--5

https://kg60.kr/cmnt/44668/boardInfo.do?bidx=989612

[참고] ‘#1023__ 12.3 계엄 이후 3. 대통령 탄핵, 구속의 지휘자들. 을사육적 탄핵안’, 뚱보강사, 2025.03.16., 조회 153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87198

[참고] ‘#477__소쿠리투표 플랫폼 '톡크'’ 뚱보강사,

2022.03.07., 조회 259.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810786

[참고] ‘#441__한글 고리짝 친구 250’, 뚱보강사

2022.01.27., 조회 312.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806981

[시사인] 이은기 기자 2026.08.14

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8288&fbclid=IwY2xjawTrg0xwZG9mBWV4dG4DYWVtAjExAHNydGMGYXBwX2lkEDIyMjAzOTE3ODgyMDA4OTIAAR7YSJLve8oCD9ImSjrmw7Ihvxr_acQUzUQ6EaUiYWqe0foKUt0bK_P8_Y177A_aem_PAqN_-JBzqJsrqwHFzb9tQ

[문화일보] 김무연 기자(2026815).

https://n.news.naver.com/article/021/0002811654?ntype=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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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성 교수님:
      기가 막히게도,  어느 것 한 가지도 뛰어난 점을 가지고 있지 못한 저를 100배 이상이나,
    높혀 평가해주신 교수님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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