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 서정선
- 2025.04.23 06:18
- 조회 79
- 추천 1
그대 일어나 가야지
우리가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사랑을 아껴야 하지
사랑을 아껴야 하지
흐드러진 꽃은
이미 꽃이 아니듯
우리의 사랑이 무르 익으면
안되는 거지
천천히 멀리 가야지
언땅 뚫고 움 틔우고
언땅을 녺여 천리길
가야지
우리 사랑 꽃봉우리로
박제되어
그대 내 가슴에
꽃칠때 까지
이노래는 황순애의 詩를, 박대웅이 曲을 만들고, 맑고 순수한 얼굴을 가진 쏘프라노 이해원이 깨끗한 목소리로 부른, 정말이지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덕분에 미국유학을 갔고, 또 텍사스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세계적
으로 유명한 David Kendrick교수님의 지도로, 미국에서 경제계획(Economic Planning)을 전공한 첫번쩨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Kendrick교수님은 저를 위하여 미국의 유수한 대학인 Stanford대학와
협의하여, 금방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로는 아주 異例的으로, 부교수자리를 마련하여 주셨으나,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계속된 알바이트와, 妻가 생활비를 벌기위해 줄곳 해왔던 어린 애보기 (baby sitting)에 미안해왔던 저는 그 좋은 직장제안을 뿌리치고, 그 보다 월급이 훨씬 높은 J.P. Morgan은행에 취직하는, 그 후로 수십년동안이나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던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당시만해도 인종차별이 극심하고, 상당히 보수적이던 미국유수의 은행에서, 외국인으로, 어느 정도까지 올라가게 되니, 나의
그곳에서의 성장한계가 눈에 뻔히 보였습니다. 마침 그때, 운이 좋게도, 우리 60회 동창 이동원이가, 대우그룹의 뉴욕 책임자로 있어서, 그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나를 한국에 돌아올수 있게 큰 도움을 준 이동원이와, 또 대우본사에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장병주의 나에게 해준 큰 도움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그러나, 이러한 친구들의 깊은 도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전혀 능력도 않되는 내가, 겁없이 사업을 한다고 꺼떡대다가, 그야말로 요새 유행하는 말로 "폭삭 망해", 전 재산을 잃고, 그 후유증으로,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으며, 아무 죄도 없는 妻와 自息들에게도 엄청나게 고생을 시켰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나의 부족함과 무능으로 이루어 진 것이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참기 어려워, 몇번이고 죽으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자하신 하나님은 저에게 고통만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즉, 이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다 보니, 이제는 놀라웁게도, 여태까지 교만하기만 하던 저는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었고, 자기 자신도 어려운 형편에 있으면서도, 못난 아빠를 위해, 온 정성을 써주는 나의 딸이, 저에게 베풀어 주는,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나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하나님의 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뚱보강사
- 2025.04.23 18:25
- N
"저는 부모님의 덕분에 미국유학을 갔고, 또 텍사스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David Kendrick교수님의 지도로, 미국최초로 경제계획(Economic Planning)을 전공한 후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저는 ROTC 장교로 유엔군사령부에서 통번역장교를 하면서, 미국 유학 준비를 마치고, 1970년 미국으로 출국하려는데, 아버님의 강력한 반대로 유학을 못갔습니다. '장남이 어딜 가느냐?고' 아버님한테 잡혀서 아버님 출판사인 도서출판 장왕사 편집부에서 일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던 지리학 공부가 아니라서, 출판사 일은 뒷전이고, 퇴근하면 집에서 라디오 만들고, 전축 만들고, 송신기 만들고, 무선마이크 만들고, 진공관, 트랜지스터, 저항, 콘덴서의 납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 IC기판을 사용하여, 책상만한 크기의 전축을 손바닥만한 크기로 만들었고, 진공관 라디오, 트랜지스터 라디오 회로를 설계하다가 컴퓨터(IBM370) 프로그램에 빠졌습니다. 1980년 초반 개인용컴퓨터인 애플II+ 컴퓨터의 대만복제물이 청계천상가에 나타나자 즉시 AppleII+로 프로그램을 하였습니다. 애플어셈블리어, 애플소프트베이식, CP/M MBASIC, 애플파스칼
프로그래밍에 빠졌습니다.
국내 최초로 출판사 업무의 전산화 프로그램을 만들었죠. 당시는 마이크로컴퓨터로 COBOL 언어 프로그램으로 출판사업무를 했는데, 애플II+ 컴퓨터와 IBM PC에서 BASIC, dBASE언어, VISI-CALC로 프로그램을 짜서 장왕사 편집부 업무와, 회계업무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비싼 마이크로컴퓨터와 COBOL 언어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고, 상대적으로 값싼 AppleII+와 IBM PC XT, AT로 만든 프로그램이라 인기가 좋았습니다.
소문이 나서, EBS-TV 교육방송에서 강의 요청이 왔고, 영진출판사에서 BASIC, dBASE 언어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들자고 해서, 프로그램을 공개해주었죠. 1992년에는 가서원 출판사에서 주간조선에 4년간 연재한 '뚱보강사의 컴퓨터 이야기'칼럼을 책으로 내자고 찾아 왔습니다. "컴퓨터는 깡통이다'라는 이름으로 -1, -2 두 권을 출판했습니다.
출판계와 인쇄계에서도 업무전산화 책을 써달라고 해서, '전자출판'이라는 책을 세계 최초로 출판했습니다.
공부하고싶었던 지리학 대신에 출판학 특히 '전자출판학' 공부를 하게되었습니다...
정선 형님, 제가 제 하소연만 해서 죄송합니다.
미국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정선형이 무지하게 부럽습니다.
저는 한국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인쇄용 도활자(CERAMIC TYPE FONT)연구로 박사를 받았습니다.
세계 최초로 만든 세라믹활자는 국립한글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80이 되고보니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2025-4-23
정선이 형이 부러운
이기성 올림
교수님의 못난 저에 대한 격려의 말씀과, 더불어 교수님이 밝혀주신 교수님의 젊은 시절의
꾸준한 노력을 가감없이 써주신데에 대해, 매우 관심있게, 놀라가며, 읽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제가 10여년전부터 사업이 무너져,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자, 저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제게
닥친 경제적 불행에 대해, 좌절하고, 저를 학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저를 핍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에게 무한히 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교만하기만 하였던 저를 80가까이 되게 이미 늦었더라도,
고쳐주고자 하는 채찍질이었음"을 느끼게 해 주신 은혜임을 느끼게 하는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오늘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KBS별관 앞에 빨갛게 피어 있는 영산홍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읍니다. 이교수님: 이제 환절기도 지났으니, 사모님과 산보도 자주하시고, 외식도 자주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 이교수님의 아름다운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