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7__ CIA 요원이 밝히는 5·18(뒤). 5·18조사위 ‘북한 개입설’ 은폐 급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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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7__CIA 요원이 밝히는 5·18()- 5·18조사위 북한 개입설은폐 급급- --14ok

 

    897__ CIA 요원이 밝히는 5·18(). 5·18조사위 북한 개입설은폐 급급

 

뚱보강사의 칼럼 ‘#830__ 배 열고 누운 환자 출혈 막고 수술 계획을 잡으려니. CIA 요원이 밝히는 5·18(앞부분)’의 내용은 마이클 이CIA 요원이 밝히는 5.18”18항목 중 앞 1번 항목에서 9-2번 항목까지 내용이었다.

1. 누가 그 방아쇠를 당겼느냐?

2. 최은희와 황장엽의 증언

3. 공작대원들의 산발적 침투

4. 현역 특수군이 아닌 민간인 특공대

5. 무등산의 진달래

6. 거사(擧事)인가, 거사(巨事)인가?

7. 폭동이냐, 민주화 투쟁이냐의 표준

8. 북한 대남공작에 도둑맞은 광주 명예

9-1. 5·18과 김대중 그리고 김영삼

9-2. 미국 국무부가 기밀 해제된 5.18 외교문서를 공개

 

5.18 문제를 놓고, 진짜와 가짜 '찬반양론'으로 오랫동안 혼란스러웠으나, 2020512일부로 결론이 내려졌다. 미국 국무부가 기밀 해제된 외교문서를 공개했는데, 5.18 광주사태는 북한 공작원들(North Korean Agents)과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이 합동하여서, 전문성 있게 (professionally), 다시 말하면, 치밀한 사전 준비를 하고 자행한, 폭동(riot)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북한공작원들이란 표현은, 북한의 현역 특수군이 아니고, 필자(‘마이클 이’)가 지적한 대로 '민간인 대남공작원'들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비정규전 대남 특공대다. 국무성 문서에는 단순히 폭동이라고 하였지만, 김대중이 자기 주도의 혁명정부 수립을 위한 내각을 구성하였다는 사실과, 수많은 탈북자의 진술에 의하면, 그 폭동은 대한민국의 전복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국무성 공개 내용은, 필자가 그동안 한국 언론에 발표한 내용과 100% 일치한다.

--- 뒷부분은 이번 #897 칼럼에 계속된다. CIA 요원이 밝히는 5·1810번 항목부터 18번 항목까지 내용이다.

 

10. 광주의 명예를 광주가 지켜라

11. 5·18조사위 개입설은폐 급급

12. 조사위 북 개입 없다결론 점쳐져

13. 1995년 검찰 보고서 계엄령 발령 근거는 징후

14. 민주화 운동이냐, 개입 폭동이냐진실 가려야

15. 개입 확인 땐 명분 잃어유공자 조사위 한계 노정

16. 북한 개입설에 관한 조사위의 부당한 처신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17. 신군부 시나리오설엔 적극적반쪽짜리 조사 논란

18. 9명 중 전남대 출신 63명은 전대 5·18연구소 전·현직

... CIA 요원이 밝히는 5·18()#897번 칼럼... 10번 항목부터 시작 ...

 

 

     10. 광주의 명예를 광주가 지켜라

 

광주의 명예를 지키려면, 광주가 앞장을 서야 한다. 그 일은 이런 순서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개입을 인정하라. 순수 민주화 열망과 북한의 대남공작에 동조한 세력을 구별하라. 광주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고, 그들에 대한 모든 혜택을 폐쇄하라. 그들이 받은 모든 보상을 회수하고, 자수하고 협조하는 사람들을 관대하게 처리하되,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법처리하라.

 

광주 시내에 건립 중인 김대중 치적 기념관을 용도 변경하라. 가장 열렬한 반공 애국 시민은 광주에 많이 살고 있다는 인식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하라. 광주가 이 일을 할 수 없다면, 광주의 불명예와 오명은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것이며, 대한민국 정부도 이 일을 바로 잡지 못하면, 국가 정체성이 파괴되고 중환자의 고통을 면하지 못하면서 반드시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출처] 5·18이 계획-지휘한 작전, 작성자 소나무.

 

 

     11. 5·18조사위 개입설은폐 급급

 

5·18 정체성 바꿀 중대 변수의도적 조사 회피 의혹... [스카이데일리] 허겸 기자가 보도했다(2023927). [단독: 5·18 진실 찾기] 5·18조사위 개입설은폐 급급... 정부 내내 전남대 운동권 출신들이 조사방향 좌지우지... 4년간 혈세 쓰면서도 불공정한 잣대법적 책임론 빗발’.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위원장 송선태)4년간 막대한 정부예산을 쓰고도, 북한군 개입설 조사를 고의로 축소·방치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5·18 직전 사전 무장봉기를 계획한 것으로 밝혀진 송선태 위원장(장관급)을 비롯해, 조사 방향의 열쇠를 쥔 키맨들의 상당수가 전남대 운동권 출신인 조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20211월 개정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13조의 9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조작 사건을 진상규명 조사 범위에 포함했다.

법 규정에 침투 의혹대신 침투 조작이라는 표현이 사용돼 결론을 미리 정하고, 예단하고 있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우선 지적된다. 그러나 이 점을 제외하더라도, 막대한 국민 혈세를 쓰는 조사위가, 법이 규정한 북한군 개입 문제를 성실하게 조사하고 국민적 의혹을 풀어야 할, 법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조사위 해단 이후 공직자로서 재직 시절의 책임 소재가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92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2월 활동 종료를 앞둔 조사위가 4년간 거액의 정부예산을 쓰고도, 북한군 개입 여부를 명백히 가려내기는커녕, 고의로 외면 또는 축소·방치해 온 단서들이 포착돼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군 개입설은 확인 여부에 따라, 5·18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뀌게 한다. 우리 군복을 입고 계엄군 행세를 한 북한 무장공비와, 고정간첩이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쏜 뒤, 계엄군의 잘못으로 덮어씌운 모략전술이 드러나면, 정부 폭력에 항거한다는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서 명분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기존 5·18유공자는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반면, 여전히 진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인 도청 앞 집단사격’(포 사격이 아니므로 집단발포라는 용어는 잘못) 의혹 등 그동안 사태 유발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혀 온 계엄군의 만행이 북한군 소행으로 책임이 전환되면 43년간 거듭돼 온 남남갈등과 반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실추된 군의 위상이 회복되는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 당시 계엄군과 시민이 진심으로 손을 맞잡고 화해할 해빙무드가 비로소 조성될 수 있어서다.


또한 호남과 선량한 광주시민에 대해 그간 사회에 만연해 온, 차별적 풍토가 일순간 개선될 가능성도 크다. 계엄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광주시민에서, 북한의 계략과 교묘한 선전선동에 휘말려 차별 피해를 당해 온, 호남 도민 전체로 피해 회복의 객체가 확대되는 관점에선 국가적 실익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인지, 북한군 또는 북한 인민군 소속이 아닌 민간 공작조가 개입한 폭동·반란인지, 성격을 재정립할 중요한 책무를 조사위가 고의로 외면한 것은, 간과해선 안 된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5·18이 특정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정파·정략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전락한 결과, 역설적으로 다수의 호남 도민을 현실 피해자로 양산한다는 근거에서다.

광주 출신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 차원에서 5·18을 연구해 온, 김덕수 전 20사단 계엄군 중대장(대위)은 최근 본지와 만나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지는 순간, 가짜 유공자가 대거 탄로나겠지만, 어차피 그들은 본인이 가짜인 걸 알고도, 오랜 시간 달콤한 혜택을 누리며 위선적인 삶을 지내 온 것인 만큼, 그 죗값을 돌려받는 건 당연하다그보다는 호남 사람 전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염두에 두고, 5·18 북한 개입설에 접근하는 게 바람직한 자세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광주의 문화예술은 계엄군을 악마화하는 데 특화됐다고 할 정도로, 그간 사회 분위기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우리 군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데, 혈안이 됐던 게 사실이라며, “그래서 북한군 개입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조사가 중요했지만, 조사위 활동 마감을 앞둔 이제 와서 보면, 부질없이 헛된 기대였다는 걸 다시 느끼곤 한다고 지적했다.

 

     12. 조사위 북 개입 없다결론 점쳐져


조사위는 2020년 본격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해 12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올해 6월까지, 6차례 중간 보고서를 냈다. 1226일 활동을 종료하면, 내년 상반기 중으로 최종 보고서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6차 보고서는 북한 개입설에 대한 조사위의 조사 정도를 가늠하고, 최종 보고서를 예측케 하는 일종의 풍향계. 이의제기 기간 90일을 고려하면, 조사위의 본격 활동은 9월에 대부분 일단락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사위가 최초 사격명령 도청 앞 집단사격 헬기 기총사격 등 스스로 밝히겠다며, 직권으로 상정한 21개 안건 중 조사위 전원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을 통과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광주MBC 보도에 따르면, 유족이 조사를 요청한 132건 중 20여 건은 활동 종료가 임박한 최근에야 조사가 시작돼, 기한 안에 결론을 낼지 불투명하다. 조사위는 132건 모두 기한 내 매듭을 짓겠다는 입장을 방송에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는 북한군 개입설 진위 가리기는, 더 어려운 처지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사위는 최근 6월 보고서에서,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대부분 사실무근으로 결론냈고, 일부 조사하고 있다며 여지를 뒀다. 현 추세대로라면, 내년 최종 보고서에서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 결론을 내릴 공산이 크고, 국민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5·18연구가들은 지적한다.

올해 630일 발표한, 5·18진상조사위 보고서 244쪽은 간첩 사건, 북한특수군 투입설, 조작과 왜곡문제를 다뤘다. 조사위는 “1980524일 간첩 이창용을 광주 시위선동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던 사건은, 5·18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간첩 손성모 사건은 추가 행적 조사를 보완해, 5·18과의 관련성을 최종적으로 확인할 계획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일단 5·18과 무관하다고 결론을 짓진 않은 뉘앙스다.

보고서 245쪽은 지만원 (박사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시스템클럽에서, 5·18 당시 주요 인물들을 광수로 지목해, 북한과 연계시키는 등의 왜곡과 조작을 일삼아 온 노숙자 담요라는 필명을 사용해, 지만원 (박사) 본인이 3차례 글을 게시한 사실을 인정한 검찰 진술을 확보했다고 공표했다. 이에 대해 5·18연구가들은 조사위가 본질을 흐리고, 실체적 진실을 왜곡한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고서 246쪽은 북한특수군 침투 및 개입설 등의 왜곡과 조작이, 19805·18 등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의 발언에서 시작해, 군과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지속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고 적시했다. “확인해 가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13. 1995년 검찰 보고서 계엄령 발령 근거는 징후


6월 보고서에 대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고, 폭동과 무장반란의 성격이 있었다고 주장해 온 쪽에선,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제대로 된 조사가 선행되지 않은 채로, “북한군 개입은 없었다, 최종 보고서에서 성급히 결론 내릴 공산이 크다고 관측하는 이유이다.

5·18연구가들과 군·안보단체 관계자들은, 5·18을 전후한 북한의 동태가 예사롭지 않았는데도, 북한군 개입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은, 부실조사의 방증이라는 입장이다.

1995718일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검찰부가 공동 발표한 5·18 관련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29)“(1980) 510일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은 5월 중순 북괴가 남침할 가능성이 짙다는, 이른바 북괴남침설을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보고했고, 512일 임시국무회의가 긴급 소집돼, 중앙정보부 담당국장이 출석, 북괴남침설 분석 결과를 보고했으며, 군과 경찰에는 비상계엄체제 돌입령이 시달됐다고 적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의 징후를 계엄령 발령의 근거로 삼았다.

또한, “비상계엄의 확대 선포와 정치활동의 금지 조치는 북한 군사 동향과 국내 치안 상황을 보고받은 최규하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국가 기강과 사회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계엄사령관·국방부 장관·중앙정보부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통치권(統治權) 차원에서 단행한 비상조치라고 (중략) 밝히고 있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이 보고서는 군 관계자 269명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일일 최대 14시간씩 며칠간 조사받은 전체 분량은 10만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26 사태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북한의 동태가 안보에 위협을 주는 상황에서, 북한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고, 순수 민주화운동이라고 단정짓는 것엔 무리가 따른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같은 시각, 광주·전남 쪽 상황은 남달랐다. 보고서는 격렬한 시위를 마친 서울대 등 서울시내 23개 대학과 24개 지방대학 총학생회장들은 515일 일단 가두 시위를 중지하고, 정상 수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해 (중략) 수업이 이뤄졌으나, 전남대·조선대 등 광주시내 9개 대학 대학생 2만여 명은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국 성토대회를 가진 다음, 야간에는 횃불 시가 행진을 벌였다고 했다.

 

횃불은 이른바 ‘5.16 화형식을 일컫는다. 930분부터 전라남도 도청 앞에서 박정희·최규하 대통령을 화형하는 행사가 열렸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현수막이 등장했다. 이 무렵 실제 기록된대로, 현실화한 사전 무장봉기 계획이 담긴 자유노트 기록자 송선태 위원장과 전남대 상황은 긴급하게 돌아갔다. “횃불시위를 기획한 곳은 기획실이라고,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와 박관현(도서출판 선인)’ 103쪽은 기록하고 있다.

최정기·김형주·양라윤·유경남 씨가 ()관현장학재단 협조로 펴낸, 이 책 102쪽에는 총학생회의 양강섭·박용성, 서클연합회의 문석환, 학자추(학원자주화추진위원회)의 한상석·송선태, 복적생 노준현·박몽구·문승훈 등이 총학생회장실에서 만나, 비밀리에 총학생회의 그림자 조직인 기획실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림자 조직 기획실의 생성 배경은, 노준현추모문집발간위원회 남녘의 노둣돌 노준현(미디어민 ·2006)’ 190~191쪽에도 나와 있다.

 

   14. 민주화 운동이냐, 개입 폭동이냐진실 가려야


계엄군 만행으로 오도됐던 사건들 책임소재 명확하게 규명돼야 ... 소행 드러나면 43南南갈등 해소 실마리위상도 회복. 내년 최종보고서 개입 없다결론 가능성진실 묻혀선 안 돼

--- 전남대 운동권 출신 조사위 곳곳 포진, 균형 잃은 조사위 ...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와 박관현’ 87쪽에는 학술부는 최용주(사회학과 3)에게 부장을 맡기는 방향으로 집행위원회를 개편했다고 적시했다. 이어 최용주는 또 박관현 회장과 함께 사회조사연구회 구성원이라고 전했다.

최용주는 현재 정부 5·18조사위에서 조사1과장을 맡고 있다. 2020515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전화 출연한, 허연식 조사2과장은 조사1과 업무에 대해 집단발포(집단 사격), 그 다음에 헬기 사격, 그 다음에 사망자들을 비롯한 중대 인권침해 이런 내용들을 세세하게 확인할 것이라고 조사 범위를 밝힌 바 있다. 시민군 측의 집단발포 주장은 우파적 관점에서, 5·18을 연구하는 쪽에선 사실무근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는, 계엄군이 마주 보고 대치하던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했다면, 전일빌딩·YMCA 앞에서 대부분의 총상 사망자가 발생해야 했지만, 검시조서·검안서 재분석 결과, 도청 앞 분수대보다 다른 지역 사망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도청 앞 계엄군이 집단사격했는데, 길게는 1km 가까운 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산발적으로 쓰러진다는 것은, ·과학적 상식에 위배되는 것이다. 또한 당시 계엄군은 1만 명 안팎(시민군 추산)의 시위대에 포위돼 도청 앞 분수대에 고립돼 있었고, 시민군 측이 주장하는 집단 발포 추정 시점(오후 2)에는 개별 병사에게 실탄이 지급되지 않았다.


본지는, 5·18기념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 돌판에 새겨진 5·18유공자 명단 중에서, ‘최용주라는 이름 두 명을 발견했다. 1941년생과 1958년생이다. 허 과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조사3과는 북한군 개입 여부 조사를 맡았다. 그는 지만원 (박사) 등이 주장하는,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조작설을 지금 계속해서 유포하고 있는데, 이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내는업무라고 3과의 조사 방향을 설명했다. 발포 무기의 습득 과정도 전수조사한다. 송 위원장 외에도 추모승화공간 돌판에 적힌 5·18유공자 명단 중에선 정부 진상조사위에서 활동 중인 이들과 같은 이름이 다수 확인된다.

일치되는 이름은 송선태·최용주·안길정·김성훈·김영관·김태종·신치호·이덕재·이상민·이영미·이태규·정경자가 있다. 이 가운데 송 위원장은 유공자 신분을 숨겨 온 것으로 드러나, 중립 의무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제척 사유에 해당돼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본지 82일자 [5·18 진실찾기] 5·18진상조사위원장은 무장봉기모의 주동자 보도 참조>

 

     15. 개입 확인 땐, 명분 잃어유공자 조사위 한계 노정


자유노트 기록자 송 위원장과 안길정은 함께 움직였다.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 박관현’ 102쪽은 기획실 책임자는 송선태가 맡았으며, 노준현·문승훈·박몽구·안길정 등이 구성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책은 이 기록을 최유정(2012년 간) 170-171쪽에서 발췌했다고 출처를 인용했다.

안길정은 현재 조사4과장으로 일한다. 5·18유공자 명단이 기입된 돌판에 동일한 이름이 있다. 조사위 보고서에 등재된 이름을 기준으로 6차례 보고서를 내는 동안, 조사에 참여한 구성원은 박진언·신승우·허나온·조환준·한기용·이영민·정문영·양재은·김남진·이춘희·양재은·허연식·박윤모·정호문·황준연·이관형·이춘희·신동일·한은영·김상욱 등 20명이다. 조사과장과 조사관 등 해당 보고서를 낼 때, 조사업무에 관여한 이들이다.

유공자 돌판에 이름이 있고, 3·4·5회 보고서에 참여한 김태종 조사관은 5·18 당시 궐기대회에서 사회를 봤다. 처음 보고서에 등재된 건, 20211231일이다. 2차 보고서가 나온 같은 해 630일 이후 1231일 이전에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16. 북한 개입설에 관한 조사위의 부당한 처신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무장 괴한이 북한군이라고 직감하고, 다양한 첩보를 상부에 보고했던 5·18 당시 광주 보병학교 교관 홍순영 예비역 소령은 전북 고창에서 조사위 관계자들을 만났다가, 낭패를 본 경험담을 토로했다. 홍 예비역 소령은 최근 본지와 만나 북한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갑자기 조사를 중단하고, 자리를 떴다북한군에 관한 내용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고 밝혔다.


5·18 당시 남파됐던 한 탈북군인의 5·18체험담을 기록한 실화 소설 보랏빛 호수의 저자인, 탈북작가 이주성 씨를 무례하게 대하며, 폭언한 사실이 녹취가 공개되면서 확인된 바 있다. 최근에는 스카이데일리가 주도하는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민진사)의 고문을 맡고 있는, 김태산 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가 조사에 출석했다. 체코주재조선무역 대표를 지낸, 김 고문과 함께 사진을 식별하던 조사위 관계자는, “그때는 (계엄군이) 머리가 길었다, 사진 속 인물을 계엄군이라고 강변하려 한 상황도 있었다.

김 고문은 대한민국에 5·18 유공자는 없다는 주제의 세미나 토론에서, “5·18에 북한이 개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한국의 좌파들이 더 잘 알면서도,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철저히 숨길 뿐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17. 신군부 시나리오설엔 적극적반쪽짜리 조사 논란


정부 조사위가 북한 개입 조사는 미온적인 가운데, 신군부 시나리오설에 대해서는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하면서 물꼬를 전환하려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체 불명의 무장괴한들이,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선,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다.

--- 가짜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 5·18이 신군부에 의해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며, 당시 신원미상의 무장괴한을 북한군이 아닌 우리 군으로 몰아가는 데는, 가짜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 씨 탓이 컸다. 김씨는 2019JTBC 보도와 기자회견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사살 명령을 내렸고, 5·18은 신군부가 짠 각본대로 움직였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허위로 드러났다.

마이클 리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은 김용장의 말은 사실무근이라고, 본지에 밝힌 바 있다. 40년간 한국을 담당한 경험을 토대로 쓴 책 ‘CIA요원 마이클 리의 저자인, 리 박사는 결론적으로 딱 잘라서 5·18은 틀림없이 북한이 계획하고, 지휘한 작전이었다고 단언했다.

미국 공군 중령 출신으로,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인 타라 오 박사도 최근 민진사 회의에 특별 게스트로 참석해, 김용장 씨 발언에 대해 “JTBC가 내보낸 방송 화면만 봐도, 그와 관련된 서류에 통역자로 표기돼 있다그는 (핵심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개인적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1980년 정부가 북한군 개입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5·18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전속부관을 지낸 최종대 예비역 육군대령(육사31)신군부라는 표현 자체도 정확하지 않지만, 군부의 시나리오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짚은 뒤, “80년대에는 과거 일을 들춰내 그쪽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북한군 개입의 진위를 떠나, 개입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고 독려하는 분위기가, 군 고위층에 있었다고 전했다.

1995년 검찰 및 군검찰 공동조사 보고서 15쪽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은, 최규하 대통령의 10.26사건 이후 사실상 와해 상태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기능 정상화를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적임자로 판단, 인사 발령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격명령권을 가진 이희성 계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명령·지휘계통이 엄격하게 구분된다고, 군 출신 인사들이 예외없이 말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는 202111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임시 안치됐으며, 아직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순자 여사는 지난해 12월호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남편은 과거는 물에 흘려 보내고, 국민이 다시 화합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균형 잃은 조사위의 편향성을 언급할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가 송 위원장이다. 송 위원장은 5·18 발생 일주일 전 예비군 무기고 접수도청 점령을 사전 모의한, 이른바 자유노트를 직접 기록한 주동자였던 사실이, 본지 보도에서 밝혀진 바 있다.

송 위원장 자신이 5·18유공자로 등록돼, 그동안 혜택을 받아 온 사실도, 드러났다. 진상조사위의 활동 결과에 따라서는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보다, 폭동과 반란으로서 사회적 공감대가 모아질 수 있기에, 유공자가 위원장을 맡거나 조사 실무에 참여해선 안 된다.


육사 출신의 계엄군 장교를 지냈고 5·18을 연구해 온, 최종원 민진사 위원은 방송국과 무기고·공공기관을 죽창을 동원해 접수하고, 탈취한 무기로 도청을 점령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유노트5·18비폭력 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위중한 문건으로, 일각에서 받아들인다사실상 무장봉기를 사전 계획하고 획책하려 한, 항쟁계획서를 기록한 당사자이자, 유공자가 진상조사위원장을 맡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이라고 말했다.

 

     18. 9명 중 전남대 출신 63명은 전대 5·18연구소 전·현직


조사위는 전원위원회 소속 9명 가운데, 6명이 전남대 동문이다. 송 위원장(국문)과 김희송 위원(NGO민병로 위원(법학서애련 위원(법학오승용 위원(정외)이며, 최근 조사위로부터 사직권고를 받은, 안종철 부위원장(정치)이 포함된다. 이중, 민병로·오승용·김희송 비상임위원은 전남대5·18연구소 현직 연구소장과 전직 연구교수라는 특수 관계다. 이들 비상임위원은 조사위가 발주하는 용역을 최소 2차례 수주했다.

또한, 조사위는 이달 1일 안종철 부위원장에 대해 사직 권고안을 냈으며, 위원 7명 중 4명이 찬성해, 채택했다고 광주MBC19일 보도했다. 안 부위원장의 돌연 사퇴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북한 개입설에 대한 부실 조사 책임이라는 시각이 있고, 최종 보고서에 참여하지 않아 면책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그는 ‘5·18 때 북한군이 광주에 왔다고?(아시아문화커뮤니티·2016)’라는 책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적극 반박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보자는, “조사위는 심의·의결 권한이 9인 전원위원회에 있는데, 이들 중 6인이 전남대에서 학위를 받았고, 3인이 특정 연구소의 전직과 현직으로 특수 관계를 이뤄 담합의 여지가 있다면, 애초 여야 합의로 위원을 추천해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한 취지에 위배된다국가적 차원에서 공정한 판단이 아니라, 광주 지역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뿐이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 [5·18 진실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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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830__ 배 열고 누운 환자 출혈 막고 수술 계획을 잡으려니. CIA 요원이 밝히는 5·18(앞부분)’, 뚱보강사, 2024.04.24., 조회 216.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965352

[참고] [스카이데일리] 허겸 기자, 2023-09-27.

https://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0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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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수
    공감마당 대표
    2024-10-13

    https://www.facebook.com/seogsu

    한가하니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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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질긴 반미주의 확산은 80년 5.18과 관련되어있다.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군이 시위진압을 위해 20사단(사단장 박준병) 4개 연대 광주투입을 승인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광주학살에 미군도 책임이 있다는 논거였다. 이렇게 반미주의는 시작되었다. 
    좌파진영은 해제된 미 비밀문서를 봐도 승인했다고 주장한다. 아마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국민들은 그 선동을 그대로 믿었을 듯싶다. 나 역시 얼마전까지 그리 생각해 청년시절을 민주화운동과 반미운동으로 세월을 보냈으니.
    그러나 미국의 해제된 비밀문서 어디에도 그런 문구는 없다. 일부 기밀해제된 문서에는 미국이 신군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미국이 광주에서 20사단의 활용을 승인했거나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했다.   좌파진영은 이를 승인으로 본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선동은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럴만한 정서가 퍼져있을 때 가능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싶을 때 가장 그럴듯한 용의자가 나타나면 시시비비 가릴 겨를도 없이 폭풍처럼 책임론을 몰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이 딱 그 짝이다. 
    한미연합사는 1978년에 만들어졌다. 거기에 한국군 특전사와 시위진압부대인 20사단은 속하지 않았다. 한국군이 어느 정도 자율권ㅇ르 가진 부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신군부는 이들 부대를 광주진압에 투입할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신군부에 대한 미국 입장은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대사의 회고록에도 나온다. 12.12 직후 글라이스틴은 노발대발하며 신군부를 비난한다. 그러나 사태는 돌이킬수 없었다. 이미 신군부가 군내 정보망과 군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여기에 광주문제는 한국 내부 문제이므로 미군이 간여할 공간이 거의 없다. 주한미군은 북한 등, 외부세력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위해 주둔하는 것이지 한국내 문제에 간여할 목적이 없거나 약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휴전선이 불안해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항공모함을 부산에 기항시킨다. 이들 두고 좌파진영은 전두환일당이 광주를 마음놓고 유린하라고 뒷배를 봐준 것이라고 한다. 지나고 보니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이다. 한국 정세가 불안정하니 북한이 오판하지 말라는 항모기항을 전두환 뒷배로 몰아갔다. 

    반미주의 좌파진영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이 필리핀을 먹는 대신 일본이 한국을 먹는 걸 양해했다는 사실만 강조한다. 그러나 국제관계란 냉혹해서 영원한 우방이나 적은 없다. 그때 그때 실용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박정희는 힘이 없어 남의 힘에 의존해 생존을 이어온 우리 민족을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했다. 역사는 그렇게 굴곡을 거치며 강국이 되기도 하고 약소국이 되기도 하며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미국이 우리에게 죄를 지었다면, 미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일등공신임도 인정해야 한다. 전후 전세계 GDP의 50%를 미국이란 한 나라가 가지고 있었다.(지금은 25%) 때마침 미소냉전이 이어지면서 미국은 모범적인 새끼 자본주의나라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유럽부흥계획인 마샬플랜에 돈을 쏟아부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민주개혁해서 자유민주국가로 만들고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한국전쟁이 일본에게는 특별 수요를 만들어내 다시 막강한 자본주의 생산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도와주었다. 여기에서 아시아의 4마리 용이 나온다.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다. 이들 나라는 마침 혜안을 가진 지도자가 있어 미국도움을 경제발전에 한껏 이용했다. 그렇지 못한 나라는 필리핀처럼 독재와 민중의 힘이 번갈아 나타나며 경제가 가라앉았다. 여기서 한국이 후진국을 가장 먼저 벗어난 중요한 모델이 된다. 국토와 인구 면에서 보통국가였기에 도시국가인 홍콩,싱가포르와 다르다. 실권을 잡고 개혁개방으로 나간 덩샤오핑도 한국의 발정희 개발독재모델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리고 오늘의 중국이 된다. 
    즉 오늘의 대한민국은 박정희라는 탁월한 지도자 덕도 있지만 그것은 주체역량일 뿐이고, 본원적 자본죽척에 가장 큰 기여자는 미국이었다. 아무리 조국근대화를 부르짓고 국민통합을 잘 해도 우리 누이들이 만든 가발 등을 미국이 관세를 부과해 수입을 막았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없다.  각종 경공업, 중공업 수출품들도 자유민주 미국의 도움으로 전세계로 나갈 수 있었다. 즉 냉전시대 대한민국이 미국에 착 달라붙어 온갖 진액을 다 뽑아먹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미국이다. 물론 미국이 구냉전 체제대결에서 승리를 위한 것이지만, 이승만, 박정희 등 건국과 경제성장에 집중한 우리 지도자들은 이를 잘 받아먹어 국민을 살찌웠다. 그 기간동안 자존심만 내세운 주체의 나라 북한은 70년도까지 남한경제력을 능가했으나 그 후 점점 뒤쳐져 지금은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미국 트럼프 등이 주장하는 것은 그네들 관점에서 일리가 있다. 동맹국 경제를 살렸는데 왜 미군 주둔비를 계속 미국이 부담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 호소가 미국민들에게 먹히기 때문에 개차반같은 트럼프 지지율이 저리도 높은 것이다. 

    약소국은 남탓만 한다. 자신이 못난 것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대국은 약소국의 남탓을 받아드리고 이해한다. 그런 포용력과 넉넉함이 있기에 세계를 제패한다. 
    5.18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우뚝 선것은 맞다. 그러나 그 와중에 필요이상으로 반미주의로 확산하는 것은 사실도 아닌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모든 투쟁을 반민자주화 투쟁으로!' 라는 슬로건으로 남한 내 주사파들의 내부교란과 이를 사주하는 북한의 반미주의를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갈 뿐이다.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 

    우리 필요에 의해 구냉전 시절엔 제국주의 모국이랄수 있는 미국에 착 달라붙어 건국을 했고,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도 한국민 여론을 우습게 보지도 못한다. 한류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문화유전자가 꿀린 미국이 프랑스나 영국을 동경하는 것처럼, 지금 세계는 한국을 동경한다. 
    선진국, 그리고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전략국가, 융성국가, 중추국가 초입에 들어선 한국이다. 언제까지 미국이나 일본 탓만 할 것인가. 일본과 미국을 친구로 두는 MZ세대, 우리의 미래가 지금 기성세대들 세계관과 역사관에 동의할까? 
    필요하면 친미도 하고, 친일도 해야 한다. 특히 구냉전과 지금의 신냉전 시대엔 그것이 국가 유지와 번영의 필수도. 그리고 필요하면 친북,친중,친러도 해야 한다.  2022년에 끝나버린 탈냉전 시대, 노태우로부터 시작한 탈냉전시대에 그렇게 해서 우리 국력이 배가되었다. 

    지금은 구냉전 체제대결논리와 탈냉전 국익추구논리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신냉전이다. 이 질서에선 전략적 명확성으로 가야 한다. 자유진영 일원이 아니라 아예 주도국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조 위에서 중국,러시아 등과 개별적인 국익을 추구하는 게 놓다.  
    그럴 때 단순 선진국이 아니라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융성강국이 될수 있다.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열린 눈으로 세계를, 우리를 보자. 그럴 때 보수 우파들도 한강의 노벨상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다고 본다. 더 넓게,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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