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1__ 긱 이코노미. TV프로그램 선호도. 반공포로 석방. 이승만 대통령. 프란체스카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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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761__ 긱 이코노미. TV프로그램 선호도. 반공포로 석방. 이승만 대통령. 프란체스카 난중일기

 

 

임시로 하는 일(긱 이코노미; Gig Economy)과 플랫폼 노동... 직장은 사라지고 직업만 남은 시대, 성공한 고수들의 노하우는?... [인터뷰] <재야의 고수들> 저자 최규문 소셜네트웍코리아 대표... [프레시안]의 이명선 기자가 입력했다(20231125). 우리는 개인과 개인이 서비스를 주고받는 시대, 새벽 배송과 퀵 배달이 일상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사무실 출근하느니,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젊은 층이 많아졌으며, 사무실과 상근 직원이 없는 무() 직장이 늘고 있다. 혹자는 코로나19가 앞당긴 변화라고 하지만, (임시) 이코노미와 플랫폼 노동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Gig'임시로 하는 일'이고 Economy'경제', '긱 이코노미'는 필요에 따라 임시로 일을 맡기고 구하는 경제 형태이다. 단기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프리랜서, 계약직 등을 주로 채용하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디지털 마케팅, 소셜 휴먼 큐레이팅 분야 전문가 최규문 소셜네트웍코리아 대표는 "이미 전 세계 고용 시장은 바뀌었다"고 말했다. "직장은 사라지고 직업만 남은 세상이다. 기술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회사도 평생고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정규직에 대한 고정비용이 부담스러워 아웃소싱을 늘리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도 1년마다 연봉 재협상을 하는 식이다. 이는 사용자도 노동자도 얼마나 스트레스인가?

 

 

     '(Gig)'은 임시로 하는 일

 

그러다 보니, 개개인 각자가 갖고 있는 실력만으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구조가 '긱 이코노미'. 긱 이코노미는 기업에서 그때 발생하는 업무 수요에 따라 계약직, 프리랜서 형태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커진 경제 현상을 말한다. 1인 스스로가 고용 주체인 동시에 노동자인 셈이다. 앞으로 2~3년만 지나면 긱 이코노미에 의한 자기 고용으로 벌이를 하는 비율이 50%를 넘을 것이라고 본다."

 

최규문 대표는 최근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 '크몽(kmong)'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재야의 고수들>>(이코노믹북스 펴냄)을 냈다. 2011'5000원의 재능 나눔'이라는 소박한 슬로건으로 페이스북에 올라온 서비스 하나를 눈여겨본 결과다. 책은 변화한 노동시장 외에도 "인류의 노동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생산성 혁명기이자, 인간과 기계가 소통하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TV프로그램 선호도, 시청률

 

최대현 전 [펜앤드마이크] 편집제작부장이 글을 올렸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사프로그램 1, 한국인이 좋아하는 방송 4위인 더라이브가 폐지됐다" 라고 하면서 [한겨레]가 떠들어 댄다. 무려 한국갤럽의 면접여론조사를 통해서 나온 결과라고 한다. 그럴 리가 없다 싶어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역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을 통해 이뤄졌고, 응답률은 13%에 표본오차가 3.1%.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4위니, ‘꽤 지지도가 나왔겠지?’라고 상상한 분들, 더라이브의 선호율(시청률)은 불과 2.1%. 좋아하는 프로그램 2가지를 말해달라고 조사한 결과다. 이 설문조사가 진행된 기간은 1114~16일로 KBS 박민사장이 취임하고 진행자 교체와 프로그램 개편이 시작되면서 KBS의 프로그램과 진행자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던 시기다. ,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2가지 말해달라고 질문함으로서, 들어본 적이 있는 프로그램까지 말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통계 마사지, 통계 조작 방법의 하나이다. 실제로 조사결과의 로우데이터(raw data)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더 라이브'를 좋아한다고 답변한 사람들의 분포는 40,50대 남성에 편중돼 있고, 직업은 농업, 임업, 어업, 자영업자에 집중돼 있다. 보편적인 호응을 얻는 프로그램이 아니란 것이다. 특정한 정치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으로 대답한 내용으로 꾸며진 여론조사라는 말이다.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도 조사는 사실 웃기는 일이다.

 

그냥 매번 나오는 시청률 보다 더 정확한 여론조사가 있을 수 있나? 더라이브의 시청률은 2%를 넘기기 힘들었다. 게다가 방송시간이 밤 11시로 이 시간대는 여론조사에 답변한 농,,어업, 자영업자들 보다는 2030 청년층의 주 시청시간대다. 한마디로 엉터리 조사로 여론을 호도하고 부풀려, 언론장악 프레임을 씌우려는 한겨레의 농간일 뿐이다.

 

[그림] TV 시청률표(20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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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덜레스 장관과 반공포로 석방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 두 토막... [이동복] 교수가 1950년대 초 6.25 전쟁 기간 중 청와대를 출입취재했던 80대 중반의 한 언론계 퇴역 원로로부터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 관한 두 꼭지의 일화(逸話)를 들었는데, 혼자서 간직하는 것이 아깝게 생각되어 여기에 소개해주셨다.

 

---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국군 증강, 주한미군의 유지 등의 안보 공약을 미국으로부터 쟁취하다... 1953618일부터 21일까지 사흘에 걸쳐 부산·대구·영천·마산·광주·논산·부평 등지의 포로수용소에 분산 수용되어 있던 반공포로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명령을 수행하는 한국군 헌병들에 의하여 일제히 석방되었다. 이 조치로 35,451명의 반공포로들 가운데 26,424명이 석방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의한 이 조치는 한국이 반대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있는 판문점 휴전협상에 대한 그의 반대 의지를 극적으로 폭발시킨 거사였다.

 

이로 인하여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던 판문점 휴전협상은 예상치 않았던 위기가 조성되었다. 당황한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을 통하여 시도한 석방된 반공포로들의 재수용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협조 거부로 허사가 되었다. 결국 미국의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정부는 문제의 반공포로 석방 직후인 6월에는 로버트슨(Walter Robertson) 특사를, 그리고 다음 달인 7월에는 덜레스(John Foster Dulles) 국무장관을 서울로 파견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반발을 무마하는 설득 외교를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상 타결을 묵인하는 대가로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한국군 증강, 그리고 주한미군의 유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안보 공약을 미국으로부터 쟁취하는 뛰어난 외교적 수완을 과시했다. 다음은 이 과정에서 19537월 덜레스 미 국무장관의 방한 때 있었던 일화 한 토막이다.

 

덜레스 국무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은 황규면(黃圭冕) 비서관으로 하여금 시장에 나가서 애완용(愛玩用)으로 길들여진 참새 몇 마리를 사 오게 했다. 그는 이 참새들을 담은 새장을 당시 관저로 쓰던 경상남도 도지사 관저 정원의 나무 가지에 걸어 놓게 하고, 그를 방문한 덜레스를 정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자연스럽게 새장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참새들이 두 사람의 화제가 되었다.

 

 

     길들여진 새는 새장을 떠나지 않는다

 

이승만 대통령이 새장 속의 참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유는 새장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욕망의 표현이라고 말하자, 덜레스는 새장 안의 길들여진 새는 새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반론을 폈다. 두 사람의 대담은 반공포로 석방을 두고 주고받는 선문선답(禪問禪答)이었다. 덜레스 국무장관의 반론에는 반공포로 석방이 포로들의 자의(自意)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함의(含意)를 담고 있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어디 그런가 보자면서 새장의 문을 열어주었고, 그 순간 참새들은 새장을 나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이승만 대통령의 말이 이어졌다. “보라. 길들여진 참새도 저처럼 자유를 갈구하는 것이 아니냐?” 이 뒤로는 덜레스 국무장관으로부터 이미 기정사실화된 반공포로 석방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시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무쵸 대사, 미국산 쇠고기를 놓고 가려고

 

다음은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부산에서 피난 생활 중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무쵸(무치오, John J. Muccio) 주한 미국대사가 찾아 와서 대통령 각하께서 이 고기를 드시고 힘을 내셔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라면서 그가 가지고 온 미국산 쇠고기를 놓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받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주먹밥과 소금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생명을 바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명색이 대통령인 사람이 어떻게 이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느냐?”면서 무쵸 대사가 가지고 온 쇠고기를 되돌려 들려 보냈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부분은 이 나라의 건국(建國) 대통령인 우남(雩南) 이승만 박사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제대로 정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지금 많은 고등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는 <금성출판사> 간행 <한국 근현대사>에는 김일성(金日成)의 사진과 김정일(金正日)의 사진이 각기 3매와 2매가 실려 있는 반면,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은 김구(金九)와 함께 찍은 사진 1매가 달랑 실려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간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독재와 장기집권의 오명(汚名)이 씌워져 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그 오명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공적이 있는 위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떠나서,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에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해 주고, 북한이 걸어간 길을 가지 않게 만들어 준 은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평가는 그것대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서도 역시 그것대로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 그의 공과 과를 모두 소개해야 국민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당시를 체험하지 못 하고 오직 책을 통하여, 또는 전해오는 말을 통하여, 그를 접해야 하는 후대(後代)들이 이 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사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이 동시대를 겪은 우리들의 의무 아닌가?

 

그를 비평하는 사람들이 친일(親日)’ 문제를 가지고 그를 비난한다. 그가 불모(不毛)의 땅에서 건국하면서 친일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을 용인(用人)’의 차원에서 활용했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이해한다고 하자. 그러나, 그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미국으로부터 귀국할 때까지 수십 년간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무릅쓰고, 해외의 객지를 전전(輾轉)하면서 벌인 항일독립(抗日獨立) 운동에 대한 평가는 어째서 그렇게 인색해야 하는가?

 

이승만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과연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앞두고, 그가 저술하여 태평양전쟁 발발과 더불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Japan Inside Out(‘일본, 그 가면의 실체’)를 한 번 읽어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또 그를 미국의 앞잡이로 모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읽어보아야 할 역사자료가 있다. 월간 朝鮮11월호로 68회째 연재하고 있는 역작(力作) 손세일(孫世一)의 비교평전: 한국 민족주의의 두 유형 -이승만과 김구가 그것이다.

 

 

     국군의 38선 돌파 명령

 

더구나, 해방 이후 해방공간에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과정과 6.25 전쟁 전후 이승만이 전개했던 대미외교를 기록으로 접하는 기회를 갖는 사람이라면, 이승만을 가리켜 미국의 앞잡이라고 폄하(貶下)하기는 어렵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1950101일 동부전선에서 이루어진 국군의 38선 돌파는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위양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위하여 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권도(權道)로 일시 행사하는 모습을 보여 준 극적인 사건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는 유엔군 사령관의 지시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는 정일권(丁一權) 공군 참모총장에게 당신은 나의 참모총장이냐?, 아니면 유엔군 참모총장이냐?”고 몰아세워 결국 그의 38선 돌파 명령을 수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38선 돌파가 결행된 날인 101일이 지금 <국군의 날>이 되어 있다.

 

마침 1950년대 초 6.25 전쟁 기간 중 <평화신문> 기자로 청와대를 출입했던 심경억이라는 이름의 한 원로 퇴역 언론인으로부터 최근 들은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두 토막의 일화를 독자들과 공유하면서, 덧붙여서 소감을 적어 보았다... 이동복 [페북]에서...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 6.25와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출신 부인 프란체스카 도너(Francesca Donner Rhee, 이부란)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현대판 사관(史官) 역할을 했다. 19506256.25 전쟁이 발발한 날부터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의 일동일정(一動一靜)과 대통령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사 및 전쟁의 진행 상황을 날마다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亂中日記). ‘도서출판 기파랑은 이 같은 프란체스카 여사의 난중일기가운데서 전쟁 발발로부터 약 1년간의 부분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출판했다. 그 책이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6.25와 이승만>>이다.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 6.25李承晩>> 중에서... 하루치만 소개한다... [1950814] 일기... 어제 오후 콜터(John B. Coulter) 장군이 무쵸 대사 및 드럼라이트 1등서기관과 함께 찾아와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통령의 편지에 대한 회신으로 맥아더 사령관이 자기에게 “7천 명의 한국군 병사들에게 유엔군 휘장이 달린 군복을 입히고, 미군과 함께 먹고 잘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명령을 주었다고 보고했다. (지금까지는 한국군이 미군과 함께 행동하더라도 양국군이 먹는 음식은 달랐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편지로 요청한 내용은 그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원래 우리 젊은이들이 적의 게릴라 활동은 물론, 크고 작은 산속 길을 수색하며 적군의 침투를 막도록 하기 위하여 “3만 정의 소총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미군 병사들이 같은 한국인인 한국군과 공산군을 구별하여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같은 무기 공급 요청에 동의할 것 같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와 적군을 능히 식별하지만 미군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무쵸 대사, 정부를 제주도로 옮기자고

 

무쵸 대사는 대구가 적군의 공격권 안에 들어갔다면서 정부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건의했다. 그의 주장은 제주도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최악의 경우 남한 육지의 전부가 공산군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 ‘망명정부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무쵸 대사가 한참 열을 올려 이야기하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슬그머니 허리춤에서 모젤 권총을 꺼내들었다. 순간 무쵸는 입이 얼어 버렸고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나도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살 때, 고속도로 순찰 오토바이를 따돌리고 과속으로 달릴 때 가슴이 떨린 이후 이렇게 놀란 적이 없었다. 대통령은 권총을 아래위로 흔들면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오면 이 총으로 내 처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모두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코 도망가지 않겠소!”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대통령이 권총으로 무슨 일을 벌일 것은 아니었지만, 긴장한 무쵸 대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돌아갔다.

 

한국전쟁은 엄연한 전쟁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전쟁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양상을 띄고 있다. 그것은 전쟁을 피하기를 바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법으로 전쟁을 피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소련이 이 와중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뒷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러한 희망으로 우리측은 전쟁을 늦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소련은 이것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오히려 미국은 어째서 전쟁을 시작했느냐?”고 오히려 시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한다는 말인가? 미국이 소련으로 하여금 빠져나가게 해 주면, 소련은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참고] [프레시안] 이명선 기자, 2023.11.25.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3112110373421549?fbclid=IwAR0p9BGniFyQpT485YhUMDDYpQXS7YHNm7TWe2viWcEIwSkiKj2TW33FNtI

[참고] 최대현 이승만 기념사업회 자문위원, 펜앤드마이크 편집제작부장.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3137300443

[참고] [그림] TV시청률표, 202311.

https://www.facebook.com/photo?fbid=6793164914131351&set=pcb.6793165380797971

[참고] 이동복. 전 대학교수, 국회의원. 2023-10-10, 2007-11-15.

https://www.facebook.com/dongbok.lee.3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jky&x_csa=%7B%22fromUi%22%3A%22kb%22%7D&pkid=1&os=161255&qvt=0&query=%EC%9D%B4%EB%8F%99%EB%B3%B5

[참고] [조갑제닷컴], 이동복, <<프란체스카의 亂中日記 -6.25李承晩>>, 2014-06-29.

https://www.chogabje.com/board/column/view.asp?C_IDX=56357&C_CC=BC

[참고] 프란체스카 도너 리, <<프란체스카 여사의 난중일기6.25와 이승만>>, ‘도서출판 기파랑’.

https://ko.wikipedia.org/wiki/%EB%8F%84%EC%84%9C%EC%B6%9C%ED%8C%90_%EA%B8%B0%ED%8C%8C%EB%9E%91

[참고] 원석, [네이버블로그], 2023. 11. 21. [월간조선] <<孫世一의 비교 評傳 (100) 한국 민족주의의 두 類型 - 李承晩金九>>.

https://blog.naver.com/frtydhwang/22327066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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