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5__ 어르신과 선생님. 발해와 고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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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__어르신과 선생님- 정치여론조사- 발해와 고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17ok

뚱보강사 이기성

 

 

    735__ 어르신과 선생님. 발해와 고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 ‘어르신선생님’... 2023년 봄에 과천시 복지관에서 실시한 호칭 투표 결과가 나왔다. 복지관 이용자인 65세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호칭 선호도는 어르신(142), 회원님(121), 어머님/아버님(117), 선배님(18)이었다. 복지관 직원 호칭 선호도는 선생님(273), 직함+''(101), 아저씨/아가씨(14), 저기요(4)였다. 202358일부터 복지관 직원은 이용자분들께 '어르신', 이용자분들은 복지관 직원에게 '선생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 ‘어르신의 착각... 페친 안중찬 님이 페북에 올려주신 글... 남편을 보면 가슴이 떨린다? 부정맥. 남편이 갑자기 멋있어 보인다? 백내장. 걷다가 남편 쪽으로 몸이 기운다? 관절염. 남편과 달달한 커피가 마시고 싶다? 당뇨. 남편이 갑자기 똑똑해 보인다? 인지장애. 남편이 갑자기 작아 보인다? 고도비만. 남편에게 애교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갑상선질환. 연애시절처럼 남편 등에 업히고 싶다? 골다공증... 한때 인터넷에 떠돌던 '중년여성질환 자가 진단법'을 다시 보며 고개를 끄덕이노라니, 세상에서 가장 없어도 되는 물건이 신랑기를 벗어난 늙은 남편 아닐까 싶다.

 

 

     정치여론조사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자문위원, 펜앤드마이크 편집제작부장 최대현 님이 페북에 올리신 글... 정치여론조사의 응답률... 한국갤럽 14.6%, 조원씨앤아이 2.6%, 한길리서치 2%, 코리아정보리서치 2.4%, 여론조사꽃 2.4%, 리얼미터 2.5%, 알앤서치 2%... 이 수치들은 매주 쏟아지고 있는 정치여론조사의 응답률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는 정당이나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여론조사는 반드시 신고 후에 허가를 받아 실시하도록 하고 있는데, 9/5~9/11까지 일주일간 실시된 여론조사가 12개나 된다.

 

--- 문재인의 집권과 함께 여론조사가 폭증... 문제는 이런 여론조사의 결과가 정말 민심을 대변하고, 내년 총선의 향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냐는 것이다. 일단 먼저 생각할 것은 예전에도 이렇게 여론조사가 많았는지에 대한 점검이다. 문재인이 집권하기 전인 201595일 부터 911, 즉 지금처럼 총선(2016)이 있기 7개월 전에는 여론조사가 딱 하나만 실시됐다. 그러나 문재인이 집권한 후인 201995일 부터 911일에는(2020년 총선 7개월전) 무려 21개의 여론조사가 쏟아졌다. 문재인의 집권과 함께 여론조사가 폭증한 것이다. 여론조사도 사업이니 자유시장경제체제에서 제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00명 응답률 2%는 전화통화료만 214만 원... 문제는 그 여론조사들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에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응답률 2%대의 여론조사는 ARS자동응답 여론조사들이다. 여론조사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무작위로 추출된 번호를 사용한다고 하지만, 2%대의 응답률이란 말은 여론조사 한 건을 성공하기 위해선 50통의 전화를 걸어야 하며, 여론조사가 보통 1000명의 응답을 기본으로 해야 표본오차가 낮게 나오기에 5만 통의 전화를 걸어야 ARS 여론조사가 완성된다는 의미다. 현재 KT에서 공시하고 있는 시내 통화료는 42.9/3분 이니까, 42.9x 50000= 2,145,000... ARS 여론조사를 한번 실시하는데 전화통화료만 이 만큼이 든다는 말이다. (물론 전화 통화에 실패하는 경우 요금은 감액될 수 있음)

 

--- 꼼수 표본추출... 가짜 여론조사를 하는 이유?... 전화통화료 이외에 여론조사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격증이 있는 여론조사 전문가를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전화통화를 적게 하고 응답률을 끌어올리는 건 회사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꼼수가 발생한다. 여론조사 응답률이 생각보다 떨어질 경우에, 여론조사 회사들은 과거에 응답률이 좋았던 번호들을 따로 모아뒀다가 그 번호에 다시 전화를 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작위 표본추출이 아니게 되므로, 엉터리 조사가 되는 것이다. 응답률 때문에 꼼수 표본추출을 한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더 이상 해당 여론조사는 믿을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요즘 지난 대선 직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산저축은행 사건의 진짜 몸통이었다는 가짜뉴스를 공영방송에서 수차례 검증 없이 방송했던 일이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여기에 대장동의 검은 돈이 흘러들어갔던 것도 속속 드러나면서, 이재명의 연루의혹까지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가짜뉴스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문재인 정권당시 폭증한 여론조사가 만들어 내는 가짜민심 동향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듯 하여 걱정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서는 여론조사 업체가 정말 무작위로 전화통화를 해서 진짜 민심을 조사한 것인지를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

 

만일, 단 한통이라도 임의로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일벌백계하여 더이상의 선거조작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응답률 2%대의 여론조사는 통계학적으로도 가치가 없다는 것이 통계학자들의 중론이니, 응답률 10% 이하의 여론조사는 보도할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세뇌 당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 문재인 집권기에 여론조사가 폭증했을까? 문재인 이후 매일 쏟아지는 여론조사는 지금도 민심을 조작하고 있을 수 있다.

 

 

     이씨조선이 대륙에서 쓰던 지명들을 한반도로 옮겨놓았다

 

손문의 역사 조작... 후고구려는 그 후 799년엔 태조 대조영에 의해 대진으로 국호가 변경되었다가, 다시 발해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적지인 천문령의 위치가 대륙 조선의 혁명파 손문 정부에 의해 바뀌게 된다. 천문령 전투(天門嶺 戰鬪)698년 대조영이 이끈 고구려 유민들이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대와 싸운 전투이다. 698년 대조영(大祚榮, 고왕)이 이끈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靺鞨人) 집단이 거란(契丹) 출신의 장수 이해고(李楷固)가 이끈 당나라 군대와 천문령에서 싸운 전투로, 여기서 대조영의 세력이 승리하면서 발해(渤海)가 건국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 오대회요(五代會要), 신오대사(新五代史)등에 관련된 기록들이 전해진다.

 

 

     고구려의 원래 위치

 

<남사(南史)>에서도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나라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遼水)가 흘러나오고 남으로는 조선, 예맥이 동으로는 옥저 북으로는 부여와 인접해 있고 도읍지는 환도성(丸都城)으로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어 깊은 골짜기가 많아 시냇물을 식수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림 1] 원래 고구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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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자출판교육원 [웹진] 8(2022121일자)의 이기성 담론 '고조선은 중국을 지배한 왕조'와 뚱보강사 칼럼, ‘#271__ 반중정서와 심백강 교수’ (2021429)와 심백강 교수의 책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바른역사 출판사 발행(2021)에서도 중국대륙을 지배한 한민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중국의 역사 조작은 지금의 동북공정(2002~)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발해 건국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천문령의 위치가, 대륙 조선의 혁명파 손문 정부의 조작으로 가짜 위치로 이동을 한다. 이씨조선이 한반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1876~1945) 대륙에서 쓰던 원래 지명들을 한반도로 옮겨 놓았듯이, 서부에 있던 한족국가들의 지명들을 순차적으로 옮긴 한편, 그곳에 있던 기존 지명들은 만주와 한반도로 옮기는 조작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지역이 처음부터 한족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날조해 놓은 것이다. 손문 정부 판 동북공정은 이때 이미 시작되어 사기 조선전, 한서 지리지 같은 것도 이미 왜곡 변조되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이다.

 

세계문화예술인축제_21세기 한민족 유라시아 알타이 대축제_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및 파주출판도시 CEO인 이양행 님이 글을 올려주셨다.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 대하소설 ' 대발해'를 읽고... 조선은 대륙에 있었다 ... 발해는 대륙에 있었다... 김홍신의 대하소설 '대발해'에는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발해인들의 웅혼한 기백과 장쾌한 기상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발해군이 당나라군을 쳐부술 때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피가 끓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로 근래에 보기 드문 역작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 내의, 별 볼 일 없는 하나의 지방정권으로 폄하, 왜곡, 날조하고 있는 이때에 그야말로 시의적절한 문학작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의 진상을 밝히는 대륙사관에 공감한 뒤로는, 이 소설 역시 이씨조선 초기 이후에 조성된 반도사관 외에도 일제의 식민사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문헌사학에 입각한 대륙사관을 외면하고 있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이성계 일파가 고려의 최영 팔도통제사의 명을 어기고, 정권욕에 눈이 멀어 적전반역을 꾀하여 위화도 회군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개경(산동성 치박시)에서 고려를 쓰러뜨리고 1392년에 새 나라를 세웠고, 그 후 이씨조선 말기에 만들어진 반도사관과 일제의 식민사관이 대하소설 '대발해'에는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의 기본 문헌인, 비록 왜곡 날조되었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외에도, 중국의 25사 중에서 사기, 한서, 구당서, 신당서, 요사, 금사, 송사, 원사, 명사 등의 관계 기록과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을 살펴보아도, 발해는 만주가 아니라 대륙의 섬서성 서안에 도읍한 것으로 되어 있다. 서기 688년에 고구려의 장안성(섬서성 서안시)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신라와 당나라는 같은 민족일 가능성이 높다) 함락될 때, 고구려 변방 제후국인 진국의 장군이며 대조영의 아버지인 대중상은 서압록하(감숙성의 호로하)를 지키고 있다가 고구려의 멸망 소식을 듣고, 무리를 이끌고 개원(감숙성 회령현)을 지나 세력을 규합하면서 동모산(섬서성 동천시)에 이르러 후고구려를 세운다.

 

발해의 세조 대중상이 붕어고, 태자 대조영이 영주의 계성(감숙성 진안현)으로 무리를 이끌고 와서 황제에 즉위했다. 그는 홀한성(중경현 덕부 즉 섬서성 인유현)을 쌓고 그곳으로 천도한다. 대조영은 말갈 장군 걸사비우와 거란 장수 이진영과 손잡고, 당나라 장군 이해고 군을 상대로 감숙성 통위현 부근에 있는 관문인 천문령에서 결전을 벌여 큰 승리를 거둔다. 바로 대조영군이 당군을 섬멸한 이 천문령은 만주 지역이 아니라, 감숙성 통위현에 있는 관문이었다.

 

 

중국 대륙 중앙에 있던 지명들을 만주와 한반도로 옮긴 것

 

후고구려는 그 후 799년엔 태조 대조영에 의해 대진으로 국호가 변경되었다가, 다시 발해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적지인 천문령의 위치가 대륙 조선의 혁명파 손문 정부에 의해 바뀌게 된다. 이씨조선이 한반도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1876~1945) 대륙에서 쓰던 지명들을 한반도로 옮겨놓았듯이, 서부에 있던 한족 국가들의 지명들을 순차적으로 옮긴 한편, 그곳에 있던 기존 지명들은 만주와 한반도로 옮겨진 것이다. 그리하여 그 지역이 처음부터 중국 한족의 영역이었던 것처럼 날조해 놓은 것이다. 손문 정부 판 동북공정은 이때 이미 시작되어 사기 조선전, 한서 지리지 같은 것도 이미 왜곡 변조되었다.

 

그리하여, 단군조선과 한나라가 지금의 하북성 난하에서 국경을 이루었고, 평양은 요녕성 또는 한반도 평안도에 있었던 것처럼 조작되었지만 이씨조선의 모화 사대주의자(양반계층)들은 이것을 그대로 답습하여서, 반도사관을 만들어 냈고, 대륙과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 역시 얼씨구나 하고 이를 이용하여 식민사관을 날조한 것이다. 발해는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영역을 그대로 이어받은 건원칭제국이었다. 건원(建元)은 나라를 세운 임금이 나라의 연호(年號)를 정하는 것.

 

--- 고려도 건원칭제국... [자닮]의 류기석 기자가 고려의 도읍지 개경은 어디였을까?’ “고려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거대한 건원칭제국이었다.”글을 보도했다(2006127). 역사연구가 이병화 님의 글이다. 우리 민족사에서 고려(高麗)라는 국호로 국가를 영위한 나라는 고구려(高句麗, 58427)에서 고려로 국호를 바꿨던 고려(427668)와 태조 왕건이 건국한 고려(9181393)가 있다. 오늘날 한반도에서는 화려했던 고려가 남긴 역사문화 유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다... 진짜 위치와 지명을 조작한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사학계에서는 고려의 도읍지가 한반도 경기도에 위치한 개성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는데, 한반도의 개성에는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에 부합되는 역사유적이 없다. 외성, 내성, 궁성 등 고려시대에 축조된 성곽의 자취가 없고, 궁궐이나 사찰, 그리고 사당이나 공공건물, 그리고 민가의 자취나 흔적이 전혀 없다. 고려사의 기록이 거짓이 아니라면, 한반도의 개성이 고려의 도읍지 개경이라는 인식은 허구에 바탕을 둔 가설일 뿐이다. 한반도가 고려의 강역에 포함되는 주변지역이었다는 가설은 성립될 수 있지만, 고려의 중심강역은 대륙에 있었고, 도읍지 또한 대륙에 있었던 건원칭제국이었다.

 

[그림 2] 고려는 대륙에 있었다

 

 [그림2]고려는대륙에있었다--지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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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료(), (), (), (), () 등과 이웃하고 있었는데 송 금과는 화친했었고, 료의 끈질긴 침입을 막아냈으며, 원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40년간 전쟁을 치른 끝에 강화하면서 국가의 존립을 지켰다. 그러나 고려는 결국, 명의 침략이 두려워 명의 압박에 굴복한 친명파들에 의해 멸망했다. ‘존명 사대를 표방한 이성계의 조선은 명과 왜()의 침략을 이겨내지 못한 채 대륙의 강토를 지키지 못하고, 대륙에서 반도로 도읍지를 옮기면서 대륙의 강토를 명에 빼앗겼던 것이다. 고려는 목조건축물, 금속활자, 도자기, 황칠 등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나라였다. 전성기 때의 국토는 하남성을 중심으로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안휘성, 절강성, 강서성, 복건성, 호북성, 호남성의 전지역과 산서성, 섬서성의 대부분, 그리고 한반도와 만주를 그 통치영역으로 관장했던 거대한 건원칭제국이었다.

 

고려의 찬란했던 문화유산은 조선이 대륙에서 반도로 이전할 때에 팔만대장경판, 도자기, 불상과 불탑 등 극히 일부 옮겨온 것도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중화민국(대만)의 고궁박물관과 중국 각성의 역사고고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선의 건국지였던 송경은 고려말의 도읍지였다. 한양과 송경은 인접한 곳이다. 한양은 산동성 제남시(濟南市), 송경은 산동성 임청시臨淸市)이다. 조선초의 한양과 송경은 대륙 산동성에 있었다.

 

 

[참고] 최대현. 이승만 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자문위원, 펜앤드마이크 편집제작부장.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3137300443

[참고] 천문령전투 [天門嶺 戰鬪], 두산백과 두피디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52813&cid=40942&categoryId=33375

[참고] 고구려의 원래 위치

https://www.facebook.com/photo/?fbid=766796495132867&set=a.105375271274996

[참고] 이양행. https://www.facebook.com/pillsys

https://www.facebook.com/stories/1441378809280383/UzpfSVNDOjEzNDY0NTkwMTI5NDY4MzA=?view_single=false

https://www.facebook.com/photo/?fbid=9529105700496006&set=pcb.9529105893829320

[참고] 이기성 담론 '고조선은 중국을 지배한 왕조', 한국전자출판교육원

[웹진] 8, 2022-12-1.

[참고] 이기성, 뚱보강사 칼럼, ‘#271__ 반중정서와 심백강 교수’,

2021.04.29., 조회 287.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67428

[참고] <<중국은 역사상 한국의 일부였다>>, 심백강바른역사 출판사, 2021.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barcode=9791195284214

[참고] 고려 개경의 도읍지 지도 www.jadam.kr 2006-12-07 류기석

[참고] [자닮] 류기석 기자, 2006.12.07.

https://www.jadam.kr/news/articleView.html?idxno=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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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선
    2017년 9월 16일  · 

    https://www.facebook.com/hongseon.kim.79

    엉터리 한일 고대사 5

    일본서기 欽明 2년 4월조에
    신라가 고구리에 구원을 청하여 임나와 백제를 쳤으나 이기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昔新羅援於高句麗 而攻擊任那與百濟
    신라가 금관가야를 병합한 것은 법흥왕 19년 532년이고 대가야는 법흥왕 23년 562년에 멸망시켰다.   신라가 가야를 공격할 힘이 모자라 고구리에게 구원을 청했다는 기록은 사서 어디에도 없으며 흠명 2년은 541년이다.   이미 병합하여 망한 나라를 타국에 의존하여 또 침범하고 아직 망하지도 않은 나라를 20년 전에 망할 것을 예상하는 나라가 역사 상 존재하는가?
    일본 서기에 기록된 신라, 임나, 백제는 한머리 땅에 없고 구주에 있었던 것이다.   신라는 다쿠쯔나 시라기, 임나는 구주에 있던 임나 연방체, 백제는 아리아케우미의 구다라인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시차를 달리한 이란성 쌍둥이라 할 수 있다.   영국엔 요크가 있고 미국엔 뉴요크가 있듯이 한국엔 신라가 일본엔 다쿠쯔나 시라기가 있었다.  
     식민사학자들이 심어놓은 잘 못된 역사 인식에 벗어나지 못하고 고구리 백제 신라가 한국 땅에만 있었다고 하면 호태왕 비문과  일본서기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제국주의자 들이 물러가면서 왜 자신있게 조선의 독립은 멀었다!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고 호언했는지 한일 고대 역사가 웅변해 준다.   멸망한 백제의 망명인 오오노 야스히로가 중심이 되어 편찬된 일본서기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새로 태어난 일본을 위하여 일본과 백제의 관계를 철저히 차단 시키고 일본의 국위가 손상될 우려가 있는 구절이나 사건을 성실히 기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본토 백제에 있었던 왕들의 이야기를 신화처럼 구색하여 백제과 일본의 연관성을 후세가 알지 못하도록 조작하였다. 

      太安萬勵는 그러나 있는 사실을 후세에 알리려는 역사가의 사명을 잊지는 않았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책무를 다하면서 후세인들이 그것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본토에 있던 고대 한국의 지명과 나라의 이름을 일본서기에 혼용함으로 고대 한일관계 역사의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헤메게하였다.  
     호태왕 비문에 기록된 수 많은 신라성은 한머리 땅엔 없다.   우리가 열도의 지명에 대한 지식을 싾고 고대 한국어를 공부한다면 고의적으로 암호로 기록한 일본서기의 비밀을 벗겨낼 수 있다.
    국강상 경평안 광개토 호태왕께서는 열도까지 진출하여 몸소 수군을 이끌어 백잔과 임나를 정벌한 것이며 호태왕 비문에 기록된 고구리군이 점령한 성은 열도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한일 고대 기록은 위치부터 틀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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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o master, 영어강사 및 대종교 총본사
    ...
    발해 글자

    강효백
    2022년 11월 1일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905621537
    강효백
    https://www.facebook.com/photo/?fbid=8229122470494525&set=pcb.8228868200519952
    발해-고려문자 강효백


    <사상최초> 발해 고려 문자 공개 
    *발해 고유 문자가 있었다 ㅡ구당서 
    *발해는 왜에 식민했다ㅡ속일본기
    *왜는 고려의 속국이다 ㅡ 사고전서,

    * 세종대왕이 한글창제 계기는 <고려사>를 편집하다 고려문자를 알았음ㅡ신준경 권덕규 김윤경, 강효백 종합 통찰 비정
    신라 문자는 한문과 같으나 
    발해 문자는 고유 문자 ㅡ중국정사 기재

    1. 해 달 별 눈 코 귀 입ㆍㆍㆍㆍ 
    현존 전세계 문자 중 단음 문자는 한글 뿐이 없다. 
    이 문자는 한글도 그렇듯 동이족문자의 특성 단음 문자이다. 
    그 구성에 있어서 일본의 가나보다 더욱 진보된 문자로 간주된다. 가나는 음절 문자이지만, 이 문자는 일종의 단음 문자이다..

    2,고려와 조선의 관할지 쓰시마(1875년까지 경상도 관찰사 예하 도서1)에서 집중발견. 미야자키 도쿠시마 이야자와 나가노현에서도 발견

    3.발해의 식민지(발해인의 이주지) 가나자와 쓰루기 이카타 홋카이도 지역에서 집중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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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 사상 최초 최대 특종> 
    한글 창제도 세종대왕이 [고려사]를 편찬 감수하는 과정에서 고려문자를 참조하여 창제
    . 아래는 내가 창작한 글이 아니라(창작해서도 안됨) 선학의 글을 찾아내어 요즘 문체로 초벌 정리한 것임. 

      [훈민정음의 전신은 고려문자] 
    ∙ 세종은 『고려사』를 집필하면서 구문자를 연구정리하여 국력으로 반포 실행시킨 것이다. -권덕규 한글학자 권덕규(權悳奎): 일제강점기 「한글맞춤법통일안」의 원안을 작성한 학자. 국어학자.
    저서로는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1923), 『조선유기(朝鮮留記)』(1945) 및 『을지문덕(乙支文德)』(1948) 등이 있다.
     고려시대에 한자 이외에 이제까지 전하는 이두와 구결이 있음은 다 알고 있는 일임으로 이제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으나 이제 전하지 아니한 고대문자도 사용하였던 증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덕무(李德懋)의 청비록(淸脾錄)을 통하여 전하는 바를 보면 광종때 사람 張儒(號는 晉山  현종때 호부상서)가 나라의 사명을 띠고 중국의 강남(吳越錢氏時代)에 가 있을 때에 일쯕 高麗에서 어느 好事者가 그때 악부의 한송정곡을 슬의 밑에 새기어 바다에 흘리어 보낸 것이 그 곳에 표착하였는데 강남의 사람들이 이것을 보아도 알아낼 수 없음으로 이것을 張儒에게 가지고 온 고로 장유는 곳 이를 한시로 번역하여 『月白寒松夜, 波安鏡浦秋, 哀鳴來又去, 有信一沙鷗』한시로 번역하여 
    “달빛 밝은 한송정 밤, 물결 잔잔한 경포대 가을. 슬피 울며 오고가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갈매기 한 마리일세.”라고 하였다. 따라서 <한송정곡>의 원문은 고려고유의 문자로 쓴 것을 알 수 있다. 
    신경준은  『東方舊有俗用文字, 而其數不備, 其形無法, 不足形一方之言, 而備一方之用也』(註 라 함을 보면 그 『舊有俗用文字』라 함은 재래의 문자가 있음을 밝히 증거하는 동시에 그것은 한자를 차용하는 이두도 구결도 아닌 어떠한 문자가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이두나 구결을 가르침이라면 얼마던지 빌어 쓸 수 있는 한자를 ‘그 수를 갖추지 못하였고 또 그 형태가 법이 없다고 其數不備, 其形無法하기 만무한 것이다. 
     신경준은 영조때의 사람으로 훈민정음이 제정 실행된 지 수백 년 뒤 됨에도 불구하고 그때 까지도 구문자가 전하였던 것을 증명하여 주는 것이다. 영조때까지 전해져 있던 고려시대에 이미 그 문자가 있는 것은 확실시된다. 이에 대하여 의문이 있으나 이에 대하여 권덕규는  훈민정음의 전신이 고려문자라 하였다.  세종은 다만 고려사를 집필하면서 구문자를 연구하고 정리하고 또 국력으로 반포 실행시킨 것이라 보았다. 
    김윤경 “훈민정음 이전의 조선글(제2편) 「동광」 제23호 1931년 7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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