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__광복군, 인도에서 일본과 전투- 서구 슬라브 노예.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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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7__광복군, 인도에서 일본과 전투- 서구와 슬라브 노예 - 우크라이나---10ok

뚱보강사 이기성

 

 

    577__광복군, 인도에서 일본과 전투-  서구 슬라브 노예. 우크라이나

 

 

광복군, 일본에 맞섰다... "한인 장교가 임팔 전투활약" 드러난 영국군 기록광복군, 일본에 맞섰다... [JTBC] 이지은 기자가 보도했다(2022812).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이다. “201 I.F.B.U.”... 이 부대는 처음부터 제17사단에 부속돼 있었다. 무선 접촉은 없었다. 17사단이 노새 한 마리를 잃은 것만 빼면, 희생자 없이 임팔로 철수했다. 17사단장은 사단이 철수하는 동안 문응국(Moon, 부대에 배치된 한국인 장교)이 보여준 가치 있는 작전 수행을 칭송했다. ‘임팔 전투의 임팔(Imphal, 힌디어: इंफाल)은 인도 마니푸르 주의 주도로, 인구는 217275(2001년 기준), 높이는 해발 786m이다. 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4년 이 곳에 진격한 일본군과 연합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 영국군과 함께, 일본에 맞선 한국 광복군의 인면전구공작대 이야기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에 맞섰다는 한국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인면은 인도와 미얀마를 뜻한다. 인면전구공작대는 19438월부터 19457월까지 인도와 미얀마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영국군과 일본에 직접 항전을 한 유일한 부대이다. 이 부대는 영국특수작전집행부(SOE) 산하 인도전구선전대(IFBU)에 소속돼, 영국군과 공동 작전을 펼쳤다. 영국군이 작성한 보고서에, 인면전구공작대 부대장인 문응국 지사의 전투 활약이 담겨 있다. 보고서에서 영국군은 이 부대의 한국인 장교, 문응국 부대장을 추켜세운다. 보고서에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한국 광복군 부대와 버마어와 인도어를 할 수 있는 14명이 배치됐다"고 쓰여 있다.

 

어떤 대일 선전 활동을 했는지도 나온다. 국가보훈처는 이처럼 영국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한 '한국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자료를 공개했다. 이 자료를 발굴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의 김희곤 관장은 "2차 세계대전에서 한국·영국의 공동항전과 연합작전 사실이 증명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독립 운동이 독립 쟁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반제국주의를 향한 연대와 공동 투쟁의 역사로 이어졌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 페친 한찬욱님이 서구와 슬라브 노예 -우크라이나에 대한 글을 올려주셨다. 중세 가톨릭은 기독교인 노예 매매를 금지시켰다. 그러면 어디에서 노예를 구하는가? ) 슬라브인. 누가 상인인가? ) 유태인. 지금 러시아 전쟁은 21세기 노예전쟁일지 모른다. 슬라브족의 뜻은 slave(노예)와 관계가 없다. 슬라브족은 동부 유럽권 사람들을 말한다. 인도 유럽어의 한 종류인 슬라브 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통틀어 일컫는다. 유럽 최대의 민족으로 인종은 백색, 금발이 많다. 벨라루시 우크라이나 러시아 민족은 동슬라브족, 체코 폴란드 민족은 서슬라브족, 옛 유고 연방의 나라들은 남슬라브족이다.

 

유럽 국가가 흑인, 인디언을 노예로 부리기 전에 슬라브족을 노예로 부렸다. 우크라이나인이란 동슬라브계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슬라브 민족을 말한다. 혈통상으로는 동슬라브족에 속하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루신인과 매우 가깝다. 우크라이나라는 말은 근세에 생긴 어휘이며, 중세에는 루테니아인(Ruthenians)이라는 말로 더 자주 칭해졌다. 우크라이나 흑토지대에서 기원한 자유민 용사 공동체 코사크로도 유명하고, 미인이 많은 나라로도 유명하다.

 

 

     슬라브인 노예들

 

자카리아(Zacharias)는 그리스 출신으로는 마지막으로 741123일 교황좌에 등극하였다. 교황 자카리아는 교양과 학식을 겸비한 인물로, 로마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울러 그리스-비잔틴의 황제로부터도 호감을 사고 있었다. 자카리아 교황은 자신의 교황 선출 소식을 황제에게 보고하여, 황제의 승인을 기다린 마지막 교황이었다. 랑고바르드족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프랑크와의 관계 정상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교황 자카리아는 랑고바르드족의 국왕에게는 과감하게 맞섰다. 끈질긴 담판으로 랑고바르드족의 국왕이 점령한 베드로의 세습령을 반환받았으며, 20년간 유효할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라벤나를 다시 양도받았다. 교황 자카리아는 752315일에 서거하였다.

 

자카리아 교황 (741-752)의 시대에는 베니스에서는 노예들을 이태리에서 구매하여, 북부 아프리카의 무어 인들에게 파는 노예시장을 개설했고 이 시장은 번창했다. 이슬람교도에게 기독교인 노예 판매가 금지되었을 때, 베니스 상인들은 슬라브족을 비롯하여 동유럽의 비기독교인 노예들을 더 많이 팔기 시작했다. 노예들의 카라반은 동유럽에서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패스를 거쳐 베니스에 도착했다. 그 중 일부는 보헤미아와 키에프 루스의 슬라브족 노예들이다. 그들은 키예프에서 프르미미실, 크라쿠프, 프라하, 보헤미아를 거쳐 왔다. 여자노예가 남자 노예보다 더 비쌌다. 거세된 노예는 특히 가치가 있었고, 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베니스와 다른 유명한 노예 시장에서 "거세 집들"이 생겨났다.

 

남부 이탈리아에는 그리스, 불가리아, 아르메니아 및 슬라브 지방을 포함한 먼 지역에서 온 노예들이 넘쳐났다. 9세기와 10세기 동안 아말피는 북아프리카의 주요 노예 수출국이었다. 베니스와 함께 제노바는 12세기 동부 지중해 연안 무역과 13세기 초 흑해 무역을 주도했다. 그들은 슬라브계와 발트계 노예들, 그리고 그루지아인들, 투르크 인들, 그리고 흑해와 코카서스 민족 노예들을 중동의 무슬림 국가들에 팔았다. 제노바는 주로 13세기까지 크리미아에서 이집트까지 노예무역을 장악했다. 1414년에서 1423년 사이에 베니스에서 적어도 1만 명의 노예가 팔렸다.

 

 

     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

 

우크라이나의 '독립전쟁'"푸틴에 굴복하면 '우리'가 없어진다"... 이건 독립전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일방적 침공 결정에 의해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이 시각에서 봐야 한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가 보도했다(2022318). 혹자는 우크라이나가 서구 세계의 부추김 속에 러시아와 대리전을 치렀다고, 피할 수 있는 전쟁을 어리석은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과 국민들의 오판으로 겪고 있다고, 그리고 결국 남는 건 잿더미가 된 국토뿐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한다.

 

[머니투데이]2022224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특별 군사작전 개시 명령 선포 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침공한 이후, 십 수 명의 우크라이나인, 그리고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과 교수와 인터뷰를 갖고 이번 전쟁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진짜 독립'을 위한 선택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 지배-피지배 관계싸워서 '자유 국가' 쟁취... "그동안 우리는 속국 취급을 받으며 억압받아왔다. 독립, 자유, 그리고 존엄을 위해 반드시 싸워야 한다."(르비우의 대학생 크리스티나, 20).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택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길을 택했다. 우리는 이 전쟁을 통해 '자유로운 국가로서의 존재'를 쟁취해낼 것이다."(키이우의 교육계에서 일하는 크라우트소우, 35).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권위주의 독재체제'인 러시아로부터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91. 이미 30년 동안 지켜온 물리적 독립이지만, 초강대국 러시아의 영향력은 너무 강했다. 이 영향력을 이제 차단하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독립된 길을 걷고 싶다는 게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진짜 독립'을 위한 전쟁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복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 이런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과 관련된 대화를 한국외국어대학교 올레나 쉐겔(Olena Shchegel) 교수와 나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독립전쟁'이라는 의미에 동의를 표하더라. "그렇다. 탈 소련화, 그리고 탈 러시아화. 영향에서 벗어난다고 한다면 좀 부드러운 표현일 것이다. 사실은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분명 우크라이나의 '선택'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제사회에는 분명 강대국들이 있다.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의 편을 들어 움직인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그런데 그건 나름의 이득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안보자산이든, 경제적 이득이든, 뭔가가 있어야 편을 들 수 있는 것 아닌가? 그걸 피해보면서 왜 누군가의 편을 드나?"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해준 게 없다는 것인가?... "그런 거 보다는, 한미관계를 예를 들면 그건 '협력관계'이지 않나. 한 쪽이 힘이 강하고 한 쪽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그래도 협력관계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협력관계인 적이 없다. 러시아는 지배, 우크라이나는 피지배였다."

나토? 미사여구(레토릭)일뿐목표는 '속국 우크라이나'... 그렇다고 전쟁을 일으킨 건 우크라이나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을 원한 적이 없다. 러시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등 우크라이나의 도발로 전쟁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배-피지배'의 맥락에서 보면 이런 러시아의 침공 명분은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실제 나토 측은 러시아와의 갈등을 우려해 단 한 번도 우크라이나의 요청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없다. 가시화된 적 자체가 없단 의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전쟁 직전인, 지난달 15일 푸틴 대통령에 협상을 통한 양국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나토 가입은 그저 꿈"이라고 했던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는 것은 '현상유지'만으로 충분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전쟁 발발 후, 러시아 측의 본심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본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이었던 전통이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했다. 그리고 줄기차게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는 "점령해서 다시 속국으로 삼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크림반도 병합, 돈바스 지역 분쟁도 모두 이 수순에 있는 과정이었음이 드러났다는 것.

 

--- 즉 이번 전쟁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비이성적 프로파간다'(지배-피지배) 아래 진행됐다... 마치 '독일 제국'의 재건을 바라고 폴란드를 침공했던 히틀러처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노리고,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 "왜 히틀러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나?"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푸틴 대통령이 일으킨 이번 전쟁도 마찬가지다. 쉐겔 교수는 "2019년에 '나토 가입이 외교정책의 방향 중 하나다'라는 취지의 문구가 헌법에 들어간 것은, 2014년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 공격을 받고 사람들 생각이 바뀐 결과다. 그마저도 '가입하겠다'는 뜻도 아니다"라며, "러시아가 그렇게 우리를 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토 가입이 아니라 해도, 러시아는 다른 핑계를 찾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 발씩 내디뎌온 민주주의굿바이 루스키 미르(러시아의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하여 러시아어 보급과 문화 전파 및 교류 등의 사업을 추진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재단)...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딱 하나였다. 우크라이나가 순순히 무장을 모두 해제하고, '러시아의 속국' 위치를 받아들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불가능해진지 오래다. '권위주의 독재체제'만 경험해온 러시아 사람들과, 소련 붕괴 이후 30여 년 동안 자유 민주주의를 조금씩 발전시켜온 우크라이나 사람들 간에, 아예 다른 사고방식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2004년 오렌지혁명, 2013년 유로마이단 혁명을 거치며, 독재자들을 끌어내리고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천천히 한 발씩 내딛어온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35세 키이우의 크라우트소우는 "우크라이나는 부패한 권위주의적 대통령에 반기를 들었고, 이제 조금씩 잘 살기 시작했다. 반면 러시아 정부는 철저히 부패했다""푸틴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인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푸틴은 이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파괴를 원한다"고 말했다. 르비우의 학생 미하일로(21)"러시아는 그저 땅만 큰 북한에 지나지 않는다. 독재자가 권력을 쥐고,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단지 핵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르비우의 대학생 크리스티나는 "러시아의 제국주의는 프로파간다, 전체주의 레짐(가치, 규범 및 규칙들의 총합) 그리고 독재에 기반한다"고 평가절하했다.

 

 

     '자유 민주주의적 전통'  우크라이나

 

쉐겔 교수는 이런 '자유 민주주의적 전통', 우크라이나가 이른바 '루스키 미르'(russkiy mir, 러시아적 세계)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는 16~17세기 코자크(자유민) 시대 때부터 우크라이나에는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문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강제로 권위주의 세계관의 '루스키 미르'로 끌고 들어왔고, 이제 거기서 나오려는 우크라이나에 온갖 협박을 하다가, 전쟁까지 일으켰다는 것이다. 쉐겔 교수는 "우크라이나에는 그동안 국내에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유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 의견을 얘기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의 작은 나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강인한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 "이번에 무너지면 '우리'가 없어진다반드시 국가 재건"... 결국 쉐겔 교수는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러시아에, 우크라이나가 '자유 수호'를 앞세워 결사항전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는 "유럽은 자유, 민주주의, 복지, 질서 등 4개의 키워드를 갖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부정부패, 관료주의, 제국주의, 독재주의 키워드"라며 "둘 중 어디로 가야 하나? 당연히 유럽으로 가게 돼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통과 가치관은 유럽과 밀접하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이번에도 무너지고 국권을 빼앗기면, 러시아가 우리를 짓밟을 것이다. 완전히 우리를 없애려고 할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번에 무너지면 우리의 역사가 없어진다.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것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고 힘을 줬다. "피신하라"는 미국의 제안을 뿌리치고, 수도를 사수하는 대통령, 직접 기관총을 들고, 전선에 나선 '전설의 복싱 챔피언' 시장(비탈리 클리치코), 결혼을 하자마자 입대해 총을 든 신혼 부부, 러시아의 탱크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며 시위를 하는 헤르손 지역의 시민들, 직접 화염병과 위장용 그물을 만드는 국민들은 그렇게 세계 2위 러시아의 군대에 맞서고 있다.

 

개전이 어느덧 4주차에 접어들며, 이제 러시아가 자력으로 우크라이나를 굴복시키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다. 약소국은 초강대국 패권에 따라야 한다는 '이론'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적 세계(루스키 미르'에서 확실하고 단호하게 걸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서부 테르노필의 회사원인 킬코(32)"푸틴이 스스로 철군을 결정할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오직 우리가 그들을 물리칠 때에만 철수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우리'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승리한 다음, 반드시 나라를 재건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꿈을 꾸고 있다.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 [JTBC] 이지은 기자, 2022-08-12.

https://news.jtbc.co.kr/html/539/NB12070539.html?fbclid=IwAR2ngtvWm1--909i0sXw8PGieNmiRGII50lbMC6ncocx7M_0XvS4BT9vx5o

[참고] 한찬욱

https://www.facebook.com/saranmul

https://www.facebook.com/photo/?fbid=5162883487139379&set=ecnf.100002533350192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자카리아 [Zacharias] (교황사전)

[참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EC%9D%B8

[참고]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2-3-18.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3171703284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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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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