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__ 조자양 소로스 토플러 천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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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__조자양 소로스 토플러 천안문- 신맬서스주의자-- 10ok

뚱보강사 이기성

 

 

     555__조자양  소로스  토플러  천안문

 

 

천안문 사태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대의 민주화 운동이다.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주도로 1989415일에 시작되었으며, 중국 공산당 정부의 진압군이 전차를 앞세워, 유혈 진압함으로서 198964일에 비극적으로 끝을 맺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진정한 인민들의 공화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던 민주화 운동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안문 사태 수습의 숨은 본질은 소로스, 토플러, 밀턴 프리드먼이 조자양을 앞세워, 중국을 저임금 노예 노동국가로 만들려는 획책이 분쇄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페친] 한찬욱 님이 [페북]에 소로스와 천언문 관련 글을 올렸다.

 

등소평(덩샤오핑)20세기 후반 중국 공산당의 개혁 · 개방 정책을 이끈 인물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경제정책(흑묘백묘론)의 실사구시적 태도를 취하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합을 시도했다. 정치 분야에서는 일당독재를 지속하고, 무리한 개혁 · 개방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빈익빈 부익부와 부정부패들을 일소하지 못하면서, 이에 반발하여 발생한 중국 인민들의 1989년 천안문 6.4 항쟁을 탄압하고, 민중 학살을 자행한 책임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반적 평가는, 모택동(1893~1976)이 사회주의 중국을 건설한 창업자라고 한다면, 등소평(1904~1997)은 모택동이 이룩한 국가 토대에서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 중국의 부흥을 이루어낸 번영의 지도자라 볼 수 있다.

 

 

    소로스의 오른팔   조자양 고르바초프

 

소로스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헝가리어로는 Soros György(쇼로시 죄르지)라고 한다. 20세기 최고의 펀드매니저이자 현대 금융사의 신화적 존재이고,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 회장으로 지금은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회장만 맡고 투자 현업에서는 완전히 은퇴했다. 워렌 버핏과 동갑이며, 유대인답게 미국의 정치권을 등에 업고, 태국 홍콩은 물론이고 영국이나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에게까지 환투기 공격으로 국가를 휘청거리게 하는 방식으로 치부한다. 경제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3세계 국가의 빈민이나 민주화 운동가들을 돕는 방식으로 이용해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양면적 행보 때문에 사악한 구세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1997년 한국 IMF 사태 당시에는,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통화 폭락의 주범으로 공공의 적 취급을 받던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는 대통령 당선자 신분의 김대중이 지난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일에 호감을 보이며 투자 요청을 승낙, 1999년부터 본격적인 한국 투자 행보를 시작해 약속을 지켰다. 아무튼 헐값에 나온 한국의 증권사나 일부 기업을 인수해 사옥을 매각하고 고배당과 유상증자로 돈을 챙긴 후, 매각하고 철수해 1천억여 원의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이 소로스의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함대들이 모든 수준에 침투하도록 내버려두는 동안, 소련을 강탈하기 시작하고 서구의 대의민주제의 해체로 이끌었던 같은 기관들에 의해 색깔 혁명이 시도되었을 때, 중국은 1989년 천안문 광장에서, 그 사악한 의제를 보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중국은 1989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이자 나이가 든 등소평의 후계자로 정치적 권력의 정점에 도달한, 소로스의 오른팔 조자양을 지체하지 않고 제거했다. 소로스의 부하라고 불리는 조자양(자오쯔양, 趙紫陽)1980년대에 서방 언론들은 이미 그를 "중국의 고르바초프"라고 부르고 있었다.

 

 

    주은래와 등소평  4대 현대화

 

매튜 에렛(Mattew Ehret) 기자가 2021818일 보도했다. 제목: 'How China’s Gorbachev Was Flushed in 1989' by Matthew J. L. Ehret. 1989년 천안문 사태는 조자양을 통해서 키신저와 소로스와 밀턴이 중국을 저임금 노예노동 국가로 만들려는 획책과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데올로기가 분쇄된 사건이라는 내용. 주은래와 등소평의 ‘4대 현대화비전의 승리... 중국이 천안문 사태 문제의 원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한 걸음 물러서서 왜 소로스가 미국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로스를 중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지 물어보라. 매튜 에렛은 전 세계에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딥스테이트(Deep State)를 추적하고 있는 기자로 자신이 운영하는 '더 커네이디언 페이트리엇' 사이트를 통해 딥스테이트의 조직을 지속적으로 폭로해온 언론인이다.

 

매튜 에렛의 보도내용을 네이버 파파고(Papago) 프로그램이 번역을 해서 말투가 어색하기는 하나, 무슨 뜻인지 대강은 이해할 수 있다. 헝가리의 초대형 투기꾼에서 자선가로 변신한, 조지 소로스가 지난 40년 동안 국제 정세에서 해온 악랄한 역할에 대해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이든 소시오패스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적인 학살에 깨어난 많은 사람들은 소로스가 혼자서 세계의 민족 국가를 없애기 위한 국제적인 음모를 꾸몄다고 가정하거나 서구의 기독교 기반 질서 타도를 추구하는 사악한 중국 공산당의 꼭두각시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민족국가를 해체하고, 세계 인구의 상당수를 노예로 삼으려는 음모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고, 혹은 심지어 미국 내에서 방금 색깔혁명이 일어났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1776년부터 현재까지 미국이 겪은 거의 모든 주요 역사적 조작의 중심에 있는 영국 정보기관의 인과적 손에서 주의를 돌림으로써, 중국은 지구 헤게모니와 "기독교적 가치"의 타도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서방의 심층국가를 관리하는 소로스와 한통속인, 그들의 자산을 사용하는 모종의 음습한 세계적인 슈퍼 악당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 조자양(1919~2005)1934~1935년에 대장정이 일어났을 때 10대였지만, 1951년에 중국공산당 행정부 내에서 두각을 나타내서 광동성 당 지도자 중 한 사람이 되었고, 1958~1961년의 대기근 동안 식량 사재기로 의심되는 농민들을 고문하는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관리했다. 영향력을 가진 특정 세력들은 당시 그런 종류의 행위를 높이 평가하는 듯했고, 그는 광둥성위원회 제1서기 겸 당 중앙 중남국 서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문화 대혁명(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모택동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운동)이 일어난 지 2년 후, 조자양은 홍위병의 공격 대상이 되면서, 후난의 한 정비공장에서 4년간 일해야 했고 그의 운은 고갈되었다. 그러나 1972년 그의 놀라운 복귀 후에, 조자양은 1973년 중국공산당 제10기 중앙위원이 되면서 그의 운은 다시 떠올랐다.

 

1975, 조자양은 쓰촨성(四川省) 당위원회 제1서기, 혁명위원회 주임, 청두(成都)부대 제1정치위원이 되어, 등소평 치하에서 개방 초기 몇 년 동안 농업 정책을 개혁하는 데, 규제 철폐와 시장 주도 경제학을 이용했다. 조자양은 이 기간 동안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승진했다. 1979년 당중앙정치국 위원을 거쳐 1980년 상임위원이 되었으며, 5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에서는 국무원 총리로 선임되었다. 이어서 1981년 당중앙위원회 부주석으로 임명되었고, 1987년 총서기, 1988년 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되었다. 그러나 19894월 북경(베이징)에서 발생한 천안문 민주화운동 때에 민주화시위에 동조하였다는 이유로 숙청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과 다른 기술 관료들과 같은 소름끼치는 변종인간주의자들(transhumanists, 미래과학의존자들)4차 산업 혁명, 인간과 기계의 합병, 인공지능의 "불가피한" 인간 생각의 대체, 그리고 아마도 인간의 노동력의 대부분을 불필요하게 만들 자동화 혁명을 기이하게 칭찬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많은 면에서 조자양의 마음속에서 살아서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와 같은 인간변종주의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앨빈 토플러의 후기산업 시대 개념은 많은 면에서, 현재 진행 중인 그레이트 리셋 의제의 성경 역할(bible for the Great Reset agenda)을 한다. However these ideas are not new and were alive and vibrant in the mind of Zhao Ziyang, who was profoundly influenced by ‘transhumanists’ like Alvin Toffler (author of Future Shock and the Third Wave) whose concepts of a post-industrial new age in many ways serves as a bible for the Great Reset agenda now underway.

 

조자양은 1983109일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그것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든 3의 물결이라고 부르든 간에, [이 작가들]은 모두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서구 국가들이 높은 수준의 산업화에 도달했고, 현재 정보화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Whether we call it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or call it the Third Wave, [these writers] all believe that Western countries in the 1950s and 1960s reached a high degree of industrialization and are now moving to an information society.

 

금세기 말과 다음 세기의 시작, 또는 몇 십 년 안에 현재 일어나고 있거나 곧 일어날, 신기술의 돌파구가 생산과 사회를 위해 사용될 새로운 종류의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 생산성의 새로운 도약을 가져올 것이고, 그에 따라 사회생활의 새로운 변화들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우리가 주목할 가치가 있으며, 향후 10년에서 20년간의 장기 계획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실제 상황을 토대로 신중하게 연구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와 4대 현대화의 미래에 기회이자 도전이다."

 

--- 주은래와 조자양의 4대 현대화를 위한 전투... The Battle for the Four Modernizations... 조자양이 언급한 4대 현대화로 알려진 이 정책은 중국의 위대한 국가 건설자인 주은래(1898~1976)1963년 중국이 현대 기술 선진국으로의 부상을 지도하기 위한 여러 세대에 걸치는 요강으로 처음 공식화했다. 주은래의 계획은 1)공업 생산성, 2)농업 생산성, 3)국방 및 4)과학/기술 진보의 돌파구가 주도하는 전반적인 경제 및 산업혁명에 달려 있다. Zhou Enlai’s plan hinged on an over-all economic and industrial revolution driven by breakthroughs in 1) Industrial productivity, 2) Agricultural productivity, 3) Defense and 4) Scientific/technological progress.

 

나이순으로 보면 모택동(1893~1976), 주은래(1898~1976), 등소평(1904~1997), 조자양(1919~2005), 시진핑(1953~)이다. 마오쩌둥에 이어서 같은 해인 1976년에 주은래가 사망할 무렵, 1966~197610년 동안 수천 년의 역사를 재설정하려고 시도했던, 4인방 체제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 점점 분명해졌고, 주은래의 프로그램은 점점 더 중국의 장기적인 발전 전략의 원동력이 되었다. 1978년 주은래의 동지인 등소평이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맡으면서, 4대 현대화를 위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소집되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기술분야에서 가장 유능한 인력 수천 명을 선발해, 이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재정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는 수당과 보조금을 지급하고당내에서 지식존중과 훈련된 인력에 대한 존중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지식인을 존중하지 않는 잘못된 태도는 반대해야 한다." The erroneous attitude of not respecting intellectuals must be opposed.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모든 일은 노동이다." "Be it mental or manual, is labor."

 

마르크스주의 노동개념을 육체적인 노동에서 끌어올려 창조적 정신노동을 수용한 등소평(1904~1997)의 선택은 훌륭했고, 중국을 몇 세대 안에 아시아의 거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새롭고 활기찬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과학적 창의성과 미래에 대한 비선형적 예측에 관한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어떤 철학과 경로가 비선형 목표를 가장 잘 진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토론과 해석을 위한 많은 공간이 종종 있다. 당시 서방 세계를 휩쓴 신()맬서스 이데올로기가 바로 이곳에서 힘을 발휘했고 개방적인 지배체제 이론과 폐쇄적 지배체제 이론 간의 사활이 걸린 싸움이 시작되었다.

 

중국에 대한 키신저의 노예노동 비전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1971, 본격적으로 시작된 헨리 키신저의 중국 개방 프로그램은 탈민족 국가 세계질서라는 이념을 전제로 했다. 키신저의 생각에서 1971년 주로 1차 산업혁명(농업)을 겪고 있는 중국인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로서 정체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순전히 서방 소비시장에 수출하기 위한 상품을 생산하기 위한 값싼 노동력의 구역 역할을 하기 위해서이다. 서구의 소비시장은 키신저의 프로그램 하에서 중국으로 가는 산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서구는 산업 패러다임 하에서 소위 "성장의 한계"를 달성했기 때문이다(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그것을 "2의 물결"이라고 불렀다). "포스트 산업주의" (토플러의 제3의 물결)라는 새로운 시대 아래, 인류는 정보 주도 사회로 "진화"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토플러  제2, 3의 물결  출현

 

토플러는 1978년 자신의 주장을 기술하면서, 3의 물결의 출현과 산업문명의 퇴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시대는 이제 끽끽거리며 멈춰가고 있다. 산업 문명은 현재 최종 위기에 처해 있으며,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명이 등장하여 세계 무대에서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다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진 그 어떤 기술보다도 훨씬 더 발전했지만, 더 적절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롭고 더 정교한 진화 발전 상태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역사의 새로운 국면으로의 도약은 새로운 에너지 패턴, 새로운 지정학적 체계, 새로운 사회 제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및 정보 네트워크, 새로운 신념 체계, 상징 및 문화적 가정을 가져오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정치 구조와 과정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나는 우리가 어떻게 기술 혁명, 사회 혁명, 정보 혁명, 도덕, , 인식론 혁명을 겪으면서 정치 혁명을 겪지 않는 것이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정부 즉 대의 정부의 붕괴는 주로 노폐화(obsolescence)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산업 시대의 정치 기술은 더 이상 우리 주변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문명에 적합한 기술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는 구식이다."

 

1974년 토플러의 악명 높은 국가안보 연구 비망록 200’(NSSM-200)이 미국의 외교 정책을 친개발에서 친-인구감소로 전환시켰기 때문에, ‘신맬서스주의자로서의 키신저의 역할은 모두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에서 사용된 컴퓨터 모델들이 창조적인 이성과 기술적 진보에 대한 완전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현실에 기반한다는 가정을 받아들였다.

 

 

    <성장의 한계> 표준 모델

 

인구증가에 대한 주요 치료법으로는 NSSM-200은 산아제한과 식량 유보를 꼽았다. 키신저가 물었다: "미국은 인구증가를 통제할 수 없거나 ,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식량 배급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키신저의 보고서는 노골적이다 미국 경제는 해외, 특히 저개발국으로부터 많은 양의 광물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사실로 말미암아 미국은 공급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에 대한 높은 이해관계를 갖는다.” “출생률 감소를 통한 인구 압력의 감소가 그러한 안정의 전망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인구 정책은 자원 공급과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관련이 있게 된다.” 인구 압력이 관련된 유일한 요인은 아니지만, 인구성장이 느리거나 0인 조건에서는 이러한 유형의 좌절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적다.“

 

키신저, 토플러 등 로마 클럽(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세계적인 비영리 연구기관)의 신봉자들, 수학과 컴퓨터 모델링의 필터에서 인류를 바라보는 신맬서스주의자들은 곧 바로 국무원에서 가능한 한 많은 영향력 있는 위치에 침투하여, 반인륜적인 목적을 향해 중국의 <4대 현대화>를 포섭하려고 시도했다. 주은래의 4대 현대화 계획은 1)공업 생산성, 2)농업 생산성, 3)국방 및 4)과학/기술 진보의 돌파구가 주도하는 전반적인 경제 및 산업혁명에 달려 있다

 

---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중국 해안에 부딪히다... 이 모든 인물들은 1980년대 내내 그들의 지속적인 보호자이자 촉진자였던 강력한 조자양을 중심으로 모였다. 중국의 1자녀 정책의 건축가로 알려진 영향력 있는 맬서스주의자1950년대 러시아 유학 시절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연구한 미사일 과학자 송건(宋健, 1931~)이 있다. 1979년 핀란드에서 열린 제7차 국제자동제어연맹 총회에 참석한 후, 송건은 로마의 성장의 한계클럽에 소개되었다.

 

로버트 주브린에 따르면(According to researcher Robert Zubrin), 송건은 원저자를 명기하지 않고 즉시 그 책을 중국어로 번역했고, 선형 모델을 사용하여 1세기 동안의 인구, 오염, 자원 손실의 추세를 감안하여, 중국의 최적 인구(일명 "부양능력Carrying Capacity")65~7억 명이라고 결론 내렸다.(그 당시 전체 인구보다 3억 명 적은 수치). 이러한 로마 클럽 사상은 불길처럼 번졌고, 곧 중국의 정책으로 채택되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은 인구 재생산률과 함께,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유아 살해의 최악의 사례 중 하나를 낳았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원인 줄리안 게워츠가 중국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주임으로 일하는 2019베이징의 미래학자 2019 study ‘Futurists of Beijing’에서 언급했듯이”, “송건은 중국의 과학 정책 사고로마클럽 시스템에 묶어두기 위해 조자양과 긴밀히 접촉했다.” 앨빈 토플러의 아이디어를 중국으로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인물은, 중국 사회과학원의 선임 연구원인 동요산(董乐山, 1924~1999)이었다. 그는 몇 달 동안 미국을 돌며 토플러와 만났다. 1981, 동은 그의 여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내가 미국의 지적 경향에 대해 논한 모든 사람들은 [토플러의] "3의 물결"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3의 물결,  마르크스주의와 반대되는 것

 

동요산은 즉시 '중국미래학회'를 조직하여, 몇 달 후 공식적으로 토플러의 첫 중국 방문을 초청하였고, 토플러는 동요산에게 "당신의 주요 정치 인사들과 장기적인 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그 명단의 제1순위에는 조자양이 있었다. 19833, 삼련(三聯)이라는 중국 출판사가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의 중국판을 번역했고, 그것의 사상이 모든 수준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반대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즉시 스캔들이 일어났다.

 

토플러가 요약한 사회 진화에 대한 신비로운 생각은 사상이나 의도가 아니라, 오히려 맹목적인 도덕적인 힘이 인류 문명을 더 높은 복잡성으로 몰아간다고 가정한 트랜스휴머니즘을 가장한 개혁된 우생학일 뿐이었다. 이러한 맹목적인 운명론적인 힘들에는 인간의 의도가 결여되어 있었고, 각각의 물결에 할당된 사회-정치적 역학을 포함하는 발전의 물결을 통해 불가피하게 우리 종을 움직였다. 1차 물결 = 농업/봉건/선국가, 2차 물결 = 산업/민주/국가, 3차 물결 = 정보/기술 민주주의-국가/포스트 국가)

 

--- 이 기간 동안 토플러와 그의 중국 추종자들이 제공한 주요 통찰력은 중국(및 다른 후진국)이 제2의 더러운 산업화를 건너뛰고, 1의 물결에서 제3의 물결로 곧장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83, 조자양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은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제3세계 국가들이 개발의 '2의 물결'을 완전히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3의 물결' 문명을 이루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길을 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해외에서 원료와 반제품 원료를 수입하기 위한 연안의 "경제특구"와 저임금 노동집약적인 저기술 공장들, 그리고 그 원료를 완제품으로 변환하여 해외 제1세계의 소비자시장으로 다시 운송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수단으로 획득한 돈은 유전 공학, 인공지능, 정보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어 제3의 물결 과학 프로그램에 투자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중국의 미래를 위한 조자양의 3대 우선 사항이었다. 조자양, 키신저, 토플러가 추진한 "아래서 위로" 자유시장 이론의 마음에 과학 우선 순위를 형성할 수 있는 위대한 프로젝트와 구체적인 목표에 의해 추진되는 대규모 개발에 대한 모든 고려가 금지되었다.

 

--- 역사학자 마이클 빌링턴(Michael Billington)19813자위원회 the Trilateral Commission 가 중국을 봉건적 모델에 묶어두기 위해 베이징에서 직접 회의를 열었다고 언급했다... "19815, 데이비드 록펠러는 베이징에서 열린 3자 위원회의 국제회의를 주재했다. 그 회의에서,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책임자인 윌리엄 C.Butcher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개혁은 노동집약적 생산을 위해 대규모 산업이나 위대한 개발 프로젝트를 거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공업과 인프라는 두 가지 큰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와 엄청난 돈인데, 둘 다 중국에는 풍부하지 않다"고 말했다.

 

1984년 그의 저서를 잠시 금서로 지정시키게 만든 토플러의 또 다른 이단 중 하나는, 정치가 경제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토플러의 신비주의적 세계관에서 기술 진보의 ""은 정치적 의제와 도덕적 고려를 통해 인간의 의도가 개입될 때에만 억제될 수 있는 진화적 다양성의 것이었다. 조자양은 수년간 경제가 정치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국무원과 논쟁하여, 중국에 스며들고 있는 악을 인식하는 정치인들의 분노를 샀다.

 

--- 밀턴 프리드먼이 중국에 발을 들여놓다... 밀턴 프리드먼은 1979년 모든 여행에서 조자양과 반복적으로 만나, 중국 엘리트들과 면담하고 강연을 하도록 초청된 최초의 서방 경제학자 그룹 중 하나였다. 1988년 중국 순방 후, 프리드먼은 조자양과의 2시간 동안의 만남을 묘사하면서 "우리는 이 사람과 그의 지혜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시장의 범위를 넓히기로 결심했다. 그는 기꺼이 실험하고 배우며 다른 사람들의 제안과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

 

임금 삭감, 사유화, 그리고 "친시장" 개혁의 필수적인 집행자로서 파시즘을 결코 거부한 적이 없는(피노체트의 칠레에 대한 그의 지지에서 보듯이) 프리드먼은 중국 공산당은 절대적인 중앙 권력으로서 유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조자양), 가능하다면, 공산당의 최고 권위를 지켜야 한다. 그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기술이 필요하다.”

 

프리드먼, 소로스, 키신저와 같은 소시오패스들이 때때로 공산당에 주는 지지는 항상 반인간적이고 반국가적인 조자양 같은 꼭두각시 기술관료-성직자들의 통제 하에, 당을 장악하려는 그들의 약속에 달려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중앙집권적 권력이 유교적 '천명'에 헌신하는 진정한 철학자 왕들에 의해 운영되는 정도와 비례하여, 중국 공산당은 유토피아적 세계주의자들에게 악몽이 된다.(기술봉건제 개혁가들-밀턴 프리드먼, 앨빈 토플러, 키신저, 조지 소로스).

 

    조지 소로스와  조자양(자오쯔양)

 

1986, 조자양은 투기꾼 소로스의 100만 달러의 보조금을 사용하여 "중국의 개혁개방을 위한 기금"으로 소로스가 운영하는 두 개의 새로운 싱크탱크 중 첫 번째를 후원했고, 그 뒤를 이어 조자양의 측근인 진일자(陈一咨)가 공동 운영하는 경제구조개혁연구소(IESR)를 후원했다. IESR1988년 중국에 두 개의 사무소를 설치한 국가민주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Democracy=CIA)과 긴밀히 연계했다.

 

조자양은 자서전에서 "중국은 자유 언론, 조직할 자유, 독립적인 사법부와 다당제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포스트 히스토리 시대에 러시아 경제를 분열시키는 준비를 하고 있던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 모델을 따라, 조자양은 당시 "국유 기업의 민영화, 당정 분리, 그리고 일반적인 시장 경제 개혁"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1989년 인터뷰에서, 소로스는 고르바초프의 위대함을 묘사했지만, 경제적 무능에 대한 그의 한 가지 비판은 다음과 같다. "반면, 중국 공산당 총서기 조자양은 뛰어난 경제학자이며, 뛰어난 젊은 두뇌를 가진 싱크탱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소로스, 프리드먼, 토플러는 1988~1989년 동안 기대가 붕 떠 있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서구 국가들이 탈국가 신대륙 질서에 저항하는 친산업적 정치인들을 대부분 씻어냈기 때문에 수십 년간의 고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게 되었다. 도이체방크의 반몰타주의 회장 알프레드 허하우젠과 미국 경제학자 린든 라루슈와 같은 몇 명의 성가신 인물들이 여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성가신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 곧 발견되었다. 서방국가들은 초국가적 기술관료제에 크게 사로잡혔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 철의 장막의 반대편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들도 이 같은 기술관료 엘리트들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는 용광로에서 녹고 있었다.

 

--- 천안문 광장의 무장 색깔 혁명... 베를린 장벽이 흔들리고 소련은 붕괴 직전이었다... 이러한 모든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내부의 무언가가 4차 산업혁명의 사제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고, "무언가"는 제거되어야 했다. 천안문 광장의 색깔 혁명이 실패하다... 198964일 천안문 광장에서의 학생 시위가 폭력으로 폭발하는 가운데, CIA의 제임스 릴리(주중 대사), 국가민주기금(National Democracy), 조지 소로스가 전면적인 색깔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그들의 모든 자원을 투입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1989년 천안문 시위 기간 9일 동안 베이징에 있었던 현대 색깔 혁명가 진 샤프 Gene Sharp의 적극적인 참여와, 아시아 자유 아메리카 방송국을 통해 CIA가 주도하는 많은 선전이 쏟아지면서, 학생 단체들 사이에서 훈련과 자금 지원, 심지어 폭력 반동분자들을 화염병과 총으로 무장시키는 것까지 벌어졌다. 혼란 책동 작전은 결코 평화적인 항의가 아니었다.

 

 

    소로스 파 숙청,  주은래 비전 복원

 

중국의 소로스 파가 숙청되고... 주은래 비전이 복원된다... 천안문 광장 사태는 중국의 권력 구조를 감염시킨 자오쯔양, 소로스, 그리고 맬서스의 고양이들을 진정한 악으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만들었고, 중국에게 전화위복의 일종으로 작용했다. "평화로운 학생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에 반대하는 국민"으로서의 조자양의 "영웅적인" 역할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의 통제자들이 원하는 친자유 투사로서 조자양이 칭송받는 대신, 시위는 거의 유혈사태 없이 끝났고, 중국의 침략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노출되었다.

 

중국 공산당은 즉시 소로스의 모든 작전을 폐쇄하고, 그 투기꾼을 평생 추방하고, 2005년 사망할 때까지 조자양을 가택 연금하고, 모든 직책에서 그를 제거했다. 조자양의 가까운 동맹자인 천이지는 미국으로 도망쳐, 수백 개의 다른 실과 반역자들과 함께 소로스의 조직에서 장기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체포를 피했을 뿐이다. 오늘날, 중국은 유엔 헌장에 전제된 대유라시아 파트너십과 더 광범위한 다극적 질서의 초석으로서 주권국가를 방어하는 진보의 원동력이 되었다.

 

--- 중국의 경제주권 방어 능력, 강력한 중앙정부의 하향식 계획 능력, 국가은행 업무 및 상업과 투자 활동의 은행 분리에 의해, 중국은 토플러, 소로스, 클라우스 슈밥( Klaus Schwab), 키신저, 로마클럽의 이데올로그들이 인류의 고정된 운명이라고 믿은 모든 것과 반대되는 성장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BRI/뉴실크로드(New Silk Road)는 중국이 아래로부터의 수평적 민주주의와 위에서부터 기술 봉건 시스템을 관리하는 과학 사제만으로, 마음 없는 인공지능과 유전공학 인간에 의해 운영되는 "포스트 산업"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촉진시킨 제3의 물결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반하여, BRI/신비단길은 중국 젊은이들 중 최고의 정신을 형성하는 진정한 장기 궤도에 대해 도덕적 및 지적 원칙을 제공하였디. 창조적 이성의 동기원리, 끊임없는 과학적 진보, 그리고 천명의 기초가 되는 도덕적 의리는 일대일로를 주은래의 4대 현대화 비전의 완벽한 표현으로 만들었다.

 

천안문 사태 수습은 조자양을 통해서 키신저와 소로스와 밀턴이 중국을 저임금 노예노동 국가로 만들려는 획책과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데올로기가 분쇄되었다. 이전 연설에서도 시진핑(1953~)은 토플러의 제3의 물결 이데올로기를 암묵적으로 비난했고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우리는 혁신을 성장의 주요 원동력이자 이 모든 사업의 핵심으로, 인적 자원을 발전의 주요 원천으로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이론, 제도, 과학기술, 문화의 혁신을 촉진하고, 혁신을 당과 정부의 업무와 사회의 일상적인 활동에서 지배적인 주제로 삼아야 한다. 16세기에 인간 사회는 전례 없는 활발한 혁신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난 5세기 동안 과학 기술혁신의 성과는 지난 몇 천 년 동안의 총계를 초과했다. 과학·산업혁명 하나하나가 세계 발전의 전망과 패턴을 심오하게 바꿔놓았다2차 산업혁명 이후 미국은 항상 과학·산업 진보의 선두주자이자 최대 수혜자였기 때문에 세계 패권을 유지해 왔다." 다음에 여러분이 중국이 여러분의 문제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왜 소로스가 여러분의 나라를 운영하는데도 불구하고, 소로스가 중국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중국 시진핑은 20133월부터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중국 국가주석을 맡고 있다.

 

[참고] 페친 한찬욱.

https://www.facebook.com/saranmul

[참고]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A1%B0%EC%A7%80%20%EC%86%8C%EB%A1%9C%EC%8A%A4

[참고] [Strategic Culture Foundation] Mattew Ehret, August 18, 2021

https://www.strategic-culture.org/news/2021/08/18/how-chinas-gorbachev-was-flushed-in-1989/

[참고] 네이버 파파고(Papago).

https://papago.naver.net/website?source=en&target=ko&url=https://www.lewrockwell.com/2021/08/no_author/how-chinas-gorbachev-was-flushed-in-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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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도형
    조지 소로스는 유태인이지만 유대교에서 불가지론자로 입장을 바꿨다

    https://www.facebook.com/jhanulso

    https://www.facebook.com/photo/?fbid=6319544594774002&set=pcb.6319544724773989

    12분  · 
    조지 소로스는 유태인이지만 유대교에서 불가지론자로 입장을 바꿨다. 불가지론이란 신의 유무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으니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입장을 말한다. 
    이는 18~19세기 서구 사회를 휩쓴 과학주의로부터 비롯했으며 《멋진 신세계》를 쓴 토마스 헉슬리에 의해 주창되었다. 불가지론에서의 신은 초자연적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으로 기독교에서의 절대적 존재를 뜻한다.
    불가지론은 당시 다윈 등의 진화론과 함께 인간을 신 또는 종교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근대로의 본격적 이행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습속과 인간 관계망에 대한 지속적인 해체의 방식으로 문명의 진보를 강요해 왔다.
    그리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가능케 하고, 해온 것이 바로 '자본'. 오늘날 금융으로 대표되는 대자본을 운용하는 주체들이 갖는 종교에 대한 일반적 관점이 기본적으로 '불가지론'이다. 
    흔히 자유로워지기 위해 경제 공부를 하고, 자유는 돈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시장만능의 경제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현상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삶은 지속되어 왔고 지속되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자들의 것만이 아니란 사실을 보편적 인류는 잘 알고 있다. 
    불가지론자 조지 소로스에게 사람은 중요치 않다고 말한 일론 머스크의 혜안이 그래서 더욱 반짝이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에 의해 다 잃게 되더라도 "나는 괜찮다!"고  말할 줄 아는 그야말로 우리 시대, 이 세계의 현자라고 나는 기꺼이 말한다.
    여러분의 신앙에 신실하시고, 타인의 종교를 존중하시고, 경건하고 절제된 생활로 일구어 가는 삶에 대한 애착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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