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__ 헝가리 혁명과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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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__헝가리 혁명 부다페스트의 봄과 민주화-----10ok

뚱보강사 이기성

 

 

      511__ 헝가리 혁명과 민주화

 

 

뚱보강사가 30대 초반일 때 그러니까 1970년 대 중반, 중학생 때 자주 놀러 가던 서대문 안산의 새절(봉원사)에 가서, 안내 간판의 글을 읽고 있는데, 나이가 지긋하신 스님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셔서 '문화창달(文化暢達)'이라고 커다란 붓으로 내게 글자 4자를 써주셨다. "자네는 한국 문화를 창달시킬 것이니 열심히 하게"라고 하셨다. , 신기했다. 내가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걸 어찌 알고서... 몇 달 뒤 봉원사에 찾아가서, 주지스님을 만나 뵙고 인사드리려고 했더니 다른 분이 나왔다. 알고 보니 그분은 굉장히 유명한 스님인데 그 당시 마침, 은퇴하고 잠시 안산 봉원사에 묵었다 떠나셨다고. 그 후 연락이 안 된단다...

 

--- 헝가리 공화국의 인구는 960만 명으로 세계 94위이다... 헝가리 북서부 다뉴브 강에 위치한 부다페스트가 수도... 로마 제국 시기부터 헝가리 왕국이 탄생한 1000년부터 1526년까지가 헝가리 왕국의 건국과 전성기였다. 헝가리 땅은 헝가리 평원이라 불리는 광대한 평원을 중심으로 하여, 예부터 다양한 민족이 침입하여 정착했다. 고대에는 판노니아라 불리고, 판노니아족 등이 거주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제국에 점령되어, 속주 일리리쿰에 편입되었다가, 1세기 중엽 속주 판노니아로 분리되었다. 종족을 하나로 통일한, 아르파드(Árpád)가 지휘하는 마자르인은 895년에 헝가리 분지에 정착하였다. ‘아르파드는 헝가리 역사에서 우리의 단군에 해당하는 인물로, 카르파티아 산맥의 분지 지역인 판노니아 평원에서 정복 활동을 통해 헝가리 대공국의 영역을 결정했다. 895년 판노니아에 정착한 뒤, 이곳을 본거지로 하여 이탈리아와 독일지역에도 원정하여 주변 민족들을 크게 위협하였다. ‘아르파드는 헝가리의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되는데, 그가 창시한 아르파드왕조는 1301년까지 존속하였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헝가리인들은 고대의 우랄어를 사용하는 민족에서 기원한다. 그 때, 그들은 볼가 강과 우랄 산맥 사이의 숲지대에서 살고 있었다. 1526년에 헝가리는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에 패배하여, 국왕 러요시 2세가 전사하였다. 1541년에 왕궁이 있는 부다가 함락되어, 그 결과로 동남부와 중부의 3분의 2오스만 제국(오스만 제국령 헝가리), 북서부의 3분의 1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가 분할 지배했다(왕령 헝가리).

 

 

   헝가리 분할 통치, 헝가리 공화국

 

--- 오스만 제국이 군사적으로 후퇴하자, 1699년의 카를로비츠 조약에서 헝가리 및 헝가리 국왕령의 크로아티아와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에 할양되었다... 헝가리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반복되었다. 1차 세계 대전(1914~1918)의 종전 직전(1918), 헝가리 최초의 공화제 국가인 헝가리 민주 공화국이 성립하여, 사회민주당계의 카로이 미하이(Károlyi Mihály)가 초대 대통령 및 수상을 맡았다. 1920년에 체결된 트리아농 조약에 의해, 헝가리는 트란실바니아 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의 왕국령 가운데, 면적의 72%, 인구의 64%를 잃고, 헝가리인의 전 인구 중 반수 가량이 헝가리 국외로 남겨지게 되었다. 합스부르크가를 대신하는 왕이 선출되지 않음에 따라, 192031호르티 미클로시’(Horthy Miklós)가 섭정으로서 통치하는 헝가리 왕국의 성립을 선언하였으나, 영토를 상실함에 따른 반작용으로 차츰 우경화되었다.

 

--- 1946년 왕제 폐지...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 표방 헝가리 인민 공화국성립... 정치 체제 논쟁과 2차 세계 대전... 헝가리는 나치 독일의 후원 하에 1930년대 말, 뮌헨 협정과 빈 중재,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 등으로 일부 영토를 회복하였다. 헝가리는 제2차 세계 대전(1919~1949)에서는 잃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나치 독일의 압박을 받아, 추축국(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세 나라가 중심)에 가담하였으나, 전쟁의 국면은 서서히 열세가 되어, 1944년에 호르티 미클로시섭정은 추축국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하였으나, 나치 독일군과 화살십자당에 의한 쿠데타(판자르파우스트 작전)로 저지되어, 194558일의 패전까지 추축국으로서 전쟁을 치렀다. 19455월의 패전에 의해, 소비에트연방에 점령된 헝가리에서는 공산화가 추진되었다. 194621일에 왕제가 폐지되고, 헝가리왕국은 명실 공히 붕괴하였다.

 

 

   1989년 헝가리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로

 

소비에트 연방 점령하의 헝가리에서는,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한 헝가리 인민 공화국’(2공화국, 1949~1989)이 성립되었고, 198910월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청산하고, 헝가리 공화국은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로 선회했다. 19903월 다당제 민주주의를 기초로 하는 자유 총선거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선거를 통해 청년민주동맹(Fidesz)이 승리하고, 헝가리 사회당은 제4당으로 전락하였다. 보수주의 성향의 언털 요제프(Antall József, 1932.4.~1993.12.)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아르파드 괸츠(Árpád Göncz, 1922~2015)1956년 소련 반대 봉기인 헝가리 혁명에 앞장섰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6년간 복역했다. 석방 이후에는 미국·영국 등의 소설을 번역하거나, 직접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하였다. 19905월에 대통령 선출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되었고, 의회 간선방식이 채택되어, 문학가·정치가인 아르파드 괸츠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아르파드 괸츠는 1995년 재선에 성공하여 총 10년간 대통령직(1990~2000)을 수행하였다.

 

헝가리는 1990년대 초, 국가 보조금의 철폐와 급속한 민영화의 여파로 심각한 경제 불황에 시달렸으나, 긴축정책과 연립정부를 통한 국정운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갔다. ‘빅토르 오르반’(Viktor Orbán, 1963.5.~) 총리 1기 시절인 1999,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여 군사 분야에서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였고, 2004년 키프로스·체코·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몰타·폴란드·슬로바키아·슬로베니아와 함께 유럽연합(EU)에 가입하였다.

 

2010빅토르 오르반총리(1998.7.~2002.5., 2010.5.~현직)2기 정부가 출범하였고, 2011년 헝가리는 유럽이사회의 의장국을 맡았다. 20121, 헝가리 <신헌법(New Constitution)>이 발효되었고,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헌법 내용을 두고 국내외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야노슈 아데르(János Áder, 1959.5.~) 대통령이 취임하여 2017년 연임하였고, 2018년부터 빅토르 오르반총리가 4기 정부를 이끌고 있다. 2020330,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무기한으로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률을 개정하였으나, 국내 여론의 극심한 반대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의 비난으로 해당 법률은 폐지되었다.

 

 

   청년민주동맹(Fidesz, 피데스)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띄는 것도 현 헝가리 여당의 특징이다. 청년민주동맹(Fidesz, 피데스)2015년 이전까지만 해도 우파 내지는 중도우파 성향이었지만, 유럽 난민 위기 당시 독일의 일방적인 난민 수용 제안을 거부함에 따라 급격하게 우경화되었다. LGBTQ는 성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합하여 부르는 단어 LGBT에 무성애자(Asexual), 간성(Intersex), 아직 자신의 성정체성, 성적 지향에 의문을 품은 사람(Questioner)을 더한 것이다. LGBTQ의 권리를 제한하고, 야당 성향의 언론사를 폐간시키며, 대법원장들을 자신들의 측근으로 갈아 끼우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헝가리 정부는 점차적으로 독재를 표방한다는 서구 사회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럽 의회 내의 원내교섭단체인 유럽 인민당에서는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을 제명하였고,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각국은 헝가리를 대상으로 한 제재안을 발표하였다.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헝가리 정부는 가짜 뉴스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를 올리지 못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 서방으로부터 쏟아지는 엄청난 비판에 헝가리는 강성한 친중, 친러 정책으로 화답하였다... 중국 대학교의 캠퍼스를 부다페스트에 유치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오르반 빅토르총리의 영향으로 중국과 러시아의 대 헝가리 영향력은 강화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러시아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러한 일련의 추세는 헝가리가 레드 팀에 가입하게 되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헝가리가 확실하게 러시아의 편을 들면서, 서방 세계는 물론이고 자국의 반러파 시민들에게도 위협감을 주었다.

 

--- 헝가리 내에서는 동성애자 권리 제한, 반페미니즘, 반민주주의, 반자유주의적 즉, 반서구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여당에 맞선 야권이 연합을 맺어 여당에 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중도좌파 사회당, 중도우파 요빅, 중도파 민주동맹, 중도좌파 헝가리 녹색당 등 6개 정당과 3개 시민단체가 뭉친 야권 연대 "헝가리를 위한 연합"은 야당의 지지율을 모조리 흡수하여, 2021년 연말 청년민주동맹(피데스)의 지지율을 추월하면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1956년 부다페스트 10월 헝가리 혁명

 

유럽(동구권) 현대사에 있어서, 공산화에 저항하는 반 소련항쟁으로는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운동이 가장 유명하다. 이 프라하의 봄의 기반이 됐던 반 소련항쟁 운동은 12년 전 헝가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19561023일 시작돼 17일 만에 진압된 헝가리 혁명은 오늘날 '부다페스트의 봄'이라 불리며 동구권에서 진행된 여타 민주화 운동 중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혁명이었다. (‘프라하의 봄운동은 19681월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당 제1서기 알렉산데르 두브체크에 의해 시작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유화 운동이다. 소련과 동유럽 제국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민주화의 움직임이 자국에 파급될 것을 우려하여, 820일에 루마니아를 제외한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은 체코슬로바키아에 군사 개입하여 개혁을 봉쇄하였다. ‘체코사태라고도 한다.)

 

--- 2차 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공산화 됐던 헝가리는 이른바 작은 스탈린이라 불렸던 독재자, '라코시 마차시(Rákosi Mátyás, 1892~1971)'에 의해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폭압통치가 이어졌다... 1945~1956년 헝가리 인민공화국의 초대 국가주석 라코시 마차시는 당 내 반대파 수천 명을 숙청했고 산업 국유화, 집단농장 등을 강제 도입했고, 이에 따라 헝가리는 극도의 경제적 위기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후 스탈린이 1953년 사망하면서 정치적 세력을 잃었으나, 소련의 세력을 배후로 그는 당서기 직함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헝가리 정부의 개혁노선에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1955년 개혁파를 이끌던 너지 임레’(Nagy Imre)를 축출하는데 성공했으나,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195610월 헝가리 혁명을 일으켰다. 2만여 명의 시민들은 부다페스트에서 스탈린 동상을 철거하고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봉기가 격화되자, 다음날부터 소련군이 개입을 선언하고, 시민군과 시민군으로 돌아선 헝가리군과 함께 교전이 시작됐다. 신정부는 일당제 폐지, 바르샤바 조약기구 탈퇴, 소련의 헝가리 철군 등을 골자로 개혁정책을 발표했으나, 소련은 곧바로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19561023일 시작된 봉기는 114일부터 소련군 기갑부대가 투입되자, 시민군의 저항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119, 헝가리군 전체가 소련군에 의해 장악됐고 1111일 부다페스트가 완전히 함락되면서 헝가리 혁명은 좌절됐다. 이 과정에서 헝가리 시민은 3000여 명 이상이 숨졌고, 2만여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으며, ‘너지 임레를 비롯한 신정부 각료들은 소련군에 체포돼 교수형을 당했다. 사상자 절반이 젊은 청년들과 학생들이었다.

 

--- 페친 전집현님이 “19561023일 헝가리 혁명에 대하여 자세히 글을 올려주셨다. ‘소련 괴뢰정부의 폭압과 소련 탱크의 포성에 온 몸으로 맞서며 피를 뿌리다’...

 

히틀러 편을 든 헝가리... 히틀러의 패전으로 헝가리는 승전국 소련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2차 세계 대전(1939~1945) 후 소련 괴뢰정부의 폭압에 신음... 헝가리는 히틀러 편에 서서 2차 대전에 참전했고, 히틀러의 인종청소에 적극 가담했다. 전쟁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자, 소련군이 헝가리를 접수했다. 소련은 두 차례나 선거를 통해 공산정권을 수립하려 했으나, 인민들은 공산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소련은 공산당이 아닌 "헝가리노동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온갖 부정투표, 선거조작, 폭력을 통해 1948년 집권당으로 만든다. 당수는 라코시 마차시’(Rákosi Mátyás, 1892~1971)라는 유태인 공산주의자였다.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폭압통치를 펼치며 당내 반대파 7000명을 숙청하였다. 조금이라도 정부에 도전할 기미가 보이면 보안경찰이 찾아가 잡아갔다. 산업시설 국유화, 농업집단화를 강제로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헝가리는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게 된다.

 

 

   '부다페스트의 봄'  헝가리 혁명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함성...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공포 정치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19561023, 오후 2만 명의 청년학생들이 소련의 괴뢰정권 통치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복수정당제에 의한 총선거, 헝가리 주재 소련군의 철수, 표현과 사상의 자유, 정치범의 석방 등 16개 항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으로 향했고, 일부는 공원에 서있던 스탈린 동상의 머리를 깨부시고 거리에 끌고 다녔다. 시위대는 라디오 국영방송국으로 진격해서,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방송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찰은 사격으로 답했고, 시위대는 분노에 치밀어 방송국으로 쳐들어가서 경찰들을 제압했다.

 

소련 탱크의 도시 진입... ‘너지 임레의 신정부... 봉기 첫날인 1023일 밤에 소련과 라코시 마차시정부는 긴급회의를 했다... 다음날 1024일 아침,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 시커먼 소련탱크들이 들어선 모습을 보았다. 시민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무기를 탈취하여 시가전을 벌였다. 1025일에 들어서면서, 봉기는 헝가리 주요도시로 번지고, 1026일에는 국회의사당이 시민군에 의해 점거되었다. 유태인 공산주의자 "헝가리노동당" 당수 라코시 마차시는 소련으로 도망가고, 19561024너지 임레’(Nagy Imre, 1896~1958)를 중심으로 신정부가 들어섰다. 1028너지 임레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 일당제 폐지, 소련군 철군 등 일련의 개혁정치를 발표한다. 1028일에서 113일 사이에 소련군이 헝가리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믿은(잘못 판단한) 시민들은 전투를 중단하고 환호했다.

 

그러나 소련 탱크는 다시 돌아왔다... 3천 명 사망... 운명의 시각, 시민들은 피를 흘렸다... ‘너지 임레의 개혁 움직임은 소비에트 연방의 간섭권 이탈로 간주되었고, 흐루시초프의 소련 탱크는 다시 헝가리를 침공했다. 113일 밤, 탱크 1000대와 병사 15만 명이 부다페스트 시내로 진입했다. 날이 밝자 시위대를 향해 소련 탱크와 대포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공격 목표는 민가, 상가, 병원, 고아원, 학교를 가리지 않았다. 1956114일에만 1569명이 죽었다. 1111일 소련군은 부다페스트를 완전히 장악했고, 19561023일부터 2주간의 저항은 소련군의 무자비한 진압에 실패로 돌아갔다. 3000여 명이 사망, 실종되었고, 부상자는 2만 명에 달했다.

 

1956년 부다페스트 헝가리 혁명 발발 정확히 33년 뒤... 1989년 공산독재 종식... 1956년 혁명 실패 후, 다시 친소 정권이 세워지고, ‘너지 임레1958년 부다페스트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30년 이상 공산주의가 계속되었다. 19561023일 헝가리 혁명이 시작된 지 정확히 33년 뒤인 19891023. 헝가리 의회는 공산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루어낸다. 1989년에 너지 임레는 정식으로 복권되어, 부다페스트에서 31년 만에 정식으로 장례식을 치루고 안장된다. ‘너지 임레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의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운집했다.

 

[참고] [위키백과], 헝가리 역사.

https://ko.wikipedia.org/wiki/%ED%97%9D%EA%B0%80%EB%A6%AC%EC%9D%98_%EC%97%AD%EC%82%AC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헝가리의 역사: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와 제3공화정 수립,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참고] 전집현

https://www.facebook.com/ilyong.ko.5

https://www.facebook.com/photo/?fbid=5287705437909051&set=pcb.5287705577909037

https://www.facebook.com/photo/?fbid=5287705547909040&set=pcb.5287705577909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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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269__미얀마 헝가리 민주화, 586
    뚱보강사
    2021.04.28  조회 242회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67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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