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__ 왕조실록과 우리 진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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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__왕조실록과 삼한통합-우리 진짜 역사----15ok

뚱보강사 이기성

 

 

     507__왕조실록과 우리 진짜 역사

 

  510, 오늘은 윤석열 당선자가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날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청와대 우병우가 정보부에다 전주 혁신도시에서 한국출판진흥원장으로 근무하는 내가 좌파인지 사상을 감시해서 보고하라고 명령해서, 한 달 동안 주말만 빼고 매일 같이 전주 사무실에 정보부 요원들이 같이 출근했었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서는 민주당이 당정협동으로 문체부 감사실과 운동권 단체를 앞세워, 나를 내쫓으려고 한국출판진흥원 정기감사라는 이름으로 세종시 문체부 감사실에서 전주 본사로 파견을 나와서 결재공문서를 전부 뒤지더니 잘못을 찾지 못하자, 며칠 뒤 다시 추가로 특별감사라고 또 나와서 접대비 영수증까지 샅샅이 조사하고, 해당 식당에다 영수증 진위여부도 직접 확인하고, 기사들의 차량운행일지까지 탈탈 털었다. 그래도 나올게 없자, 이번에는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보좌관들이 나서서 10월 여의도 국정감사에서 집이 몇 채냐?’는 등 신상털이를 하고, 거짓 이야기를 흘려 언론에다 망신을 주면서 한국출판진흥원장직 사표를 내도록 강요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우병우와 정보부가... 문재인 정부에서는 문체부와 청와대와 민주당 국회와 언론노조를 비롯한 운동권 단체가... 법으로 정한 임기가 1년 반이나 남은 선출된 기관장에게 사표를 내라고불법으로 못살게 굴었다. 시키는 대로 자기네 편을 안 들고, 공정하게 행정처리를 한 것이 죄목이었다. 이번 정부는 어떠할까?

 

  페친 이윤성님이 [페북]에 윤석열 대통령 취임축하 글을 올려주셨다. 우리나라 정치권은 여야 모두 비리가 많지만,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다면 나라가 되돌릴 수 없이 망할 뻔했다. 미국과 일본을 멀리하고 중국과 북한을 가까이 해와서 서구사회에게 버림받아 중국의 세력권에 들어갈 뻔했다. 포퓰리즘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이 나랏돈을 빼먹는 사람만 있어서, 나라가 베네수엘라 경제로 갈 뻔했다. 전국에 제로페이 같은 게 생겨 소비액의 10퍼센트를 나라가 보태주는 제도가 있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좋아한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우겨대서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있었다. 우파는 비리가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할 수 없을 때는 미안하다하며 물러나는데, 운동권들은 끝까지 잡아떼고 우겼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까 무서웠다. 이런 걸 바로 잡아주기만 해도, 이 정부는 할일을 다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일본 조선사편수회 한국사 100%날조

 

  [페북]에 한택영님이 게시물을 공유했다... 삼국사를 포함한 한국사는 일본 조선사편수회가 100% 날조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삼한통합은 신라가 아닌 ()고려가 통합한 것이다... 한국역사 삼국사가 일제강점기에 편집된 식민사학인 이유... 조선왕조실록의 기록 삼한통합을 검색하면, 31건 중 고종실록의 1건만 신라가 삼한을 통합했다고 나오며, 나머지 30건 전부 후고려가 삼한을 통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비등비등해 이기지도 지지도 못했다고 나온다...

 

  실록의 내용을 보면 신라는 삼한을 통일하지 못했으며, 전고려 즉 고고려 750년 그리고 신라 200년에 병합된 것으로 보인다. “시대 연대 전부 날조!”... 태조실록 11, 조선 1대 태조(1392~) 638일 신유 1번째 기사, 1397년 명 홍무(洪武) 30년 안익·김희선·권근 등이 황제의 칙위 조서, 선유 성지, 어제시, 예부의 자문을 받들고 오다. 3편의 시()는 명 황제가 권근(權近)에게 준 것이었다. 처음에 권근이 입조(入朝)하니, 황제가 대화를 하고서 권근이 학식이 있는 것을 알고는, 제목(題目)을 명하여 시 24()을 짓게 하였다.

 

  권근이 명에 응하여 시를 지었는데, 진한(辰韓)이란 제목에 대하여, "삼한(三韓) 옛적에 솥발처럼 분립하여, 천리가 병쟁(兵爭)에 피곤하였었소. “이기기도 지기도 힘이 서로 비등하여, 통합하기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왕공(王公)이 처음 의거 높이 드시니, 김씨(金氏)도 멀리 정성으로 귀화하여, 그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백성 생업을 이루었습니다."

 

 

   고려 때 마한-진한-변한 삼한(三韓)통합

 

  ---- 고종실록 36, 26대 고종(1863~) 341013일 양력 2번째 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백성에게 포고하던 조서(詔書)인 반조문(頒詔文),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태조실록 7, 태조 4125일 경신 1번째 기사 1395년 명 홍무(洪武) 28년 정도전과 정총이 고려사를 편찬하여 바치다. 그들에게 내린 교서 왕씨(王氏)의 세상을 상고해 보면, 고려라는 국호를 습용하여 능히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해[]를 지낸 것이 5백 년에 가깝고, []를 전한 것이 30대를 넘으매... 생각하건대, 왕씨(王氏)는 고려를 세워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한 집을 만들고...

 

  태조실록 15, 태조 7912일 갑신 5번째 기사 1398년 명 홍무(洪武) 31년 태묘에 고유하고, 정전에 앉아 즉위 교서를 반포하다. 기자(箕子)는 조선(朝鮮)에 봉토(封土)를 받아 실제로 풍화(風化)의 기초를 닦았으며, 고려 왕조의 시조(始祖)는 삼한(三韓)을 통합하여 모두 동방 백성에게 공로가 있으니, 마땅히 제전(祭田)을 두어 사시(四時)에 제사를 지내야 될 것이다.

 

  세종실록 78, 세종 1986일 계해 3번째 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김종서에게 4진의 형세와 앞으로의 추세를 보고하게 하다. 고려의 태조가 힘은 능히 삼한을 통합하였으나, 위엄이 북방에 미치지 못하여, 다만 철령(鐵嶺)으로 경계를 삼았다. 명종실록 9, 명종 41012일 무신 1번째 기사, 1549년 명 가정(嘉靖) 28년 조강에서 임권이 숭의전을 수리할 것 등을 아뢰다. 옛날에 우리 나라에 삼국이 정립하여 있을 때 고려 왕 태조(王太祖)가 삼한을 통합하여백성들이 소생할 수 있었으니 그 공로는 큰 것입니다.

 

  고종실록 36, 고종 34929일 양력 2번째 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김재현 등 716명이 황제로 칭할 것을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리다

우리나라는 나라가 나누어지고 통합된 것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라(新羅),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세 나라는 각각 그 땅의 주인으로 다 같이 왕의 칭호가 있었으며 심지어 송양(松讓), 가야(伽倻), 예맥(濊貊), 여진(女眞), 탐라(耽羅) 등의 작은 나라들도 각기 왕으로 불렀습니다. 고려 때 통합하여 다만 묘호(廟號)만 썼으며 본조(本朝)에서는 옛 관습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고종실록 36, 고종 341013일 양력 2번째 기사, 1897년 대한 광무(光武) 1년 국호를 대한으로 하고 임금을 황제로 칭한다고 선포하다. 반조문(頒詔文), "봉천 승운 황제(奉天承運皇帝)는 다음과 같이 조령(詔令)을 내린다. 짐은 생각건대, 단군(檀君)과 기자(箕子) 이후로 강토가 분리되어 각각 한 지역을 차지하고는 서로 패권을 다투어 오다가, 고려(高麗) 때에 이르러서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을 통합하였으니, 이것이 삼한(三韓)’을 통합한 것이다.

 

 

   이병도 1986단군실체 인정

 

  ---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삼국사를 포함한 한국사는 일본 조선사편수회가 100%날조한 일본사로 세뇌시킨 것이다... 삼한=삼국사=삼국지는 기자단군기 이후 잠시 분열된 역사를 한국 민족을 미개족속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주된 역사로 날조한 가짜 역사이다. 우리가 중,고 시절 학교에서 배운 국사책의 신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는 전부 일제시대 일본 총통의 지시에 따라 만든 식민사학으로 편집된 가짜 역사이다. 조선왕조실록 기록일본은 전국 8도에 66주로 우리나라 300개의 주와 군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라고 임금께서 말씀하십니다...

 

  현재 한국사는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 이후에도 일제시대의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가짜 역사를 가르친 서울대 이병도 학파의 책임이 크다. 이병도(1896~1989) 박사는 죽음을 3년 앞두고, 1986109일 조선일보에 단군의 실체를 인정하고, 잘못을 후회하였는데도, 그 제자들은 아직도 일제가 조작한 가짜 역사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인은 은나라=단군조선 후손으로 기자단군 한나라(마한=,후 고려) 대조선 망명정부 대한민국으로 이어진 후손들이다. [참고] ‘225__동이족과 서량지 교수와 조공사기’, ‘316__인간 단군 이병도와 최태영’.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역대 조정에서 국왕이 교체될 때마다 편찬한 것이 축적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 내용은 ‘1대 태조(1392~)부터 25대 철종(1849~)까지‘26대 고종(1863~)부터 27대 순종(1907~)’, ‘순종부록(1910~)’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시대 역대 임금들의 실록(實錄)을 통칭하는 것으로서 태조강헌대왕실록(太祖康獻大王實錄)으로부터 철종대왕실록(哲宗大王實錄)에 이르기까지 472년간에 걸친 25대 임금들의 실록 28종을 일컫는다.

 

  이 실록에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주도로 제작된 고종태황제실록(高宗太皇帝實錄)순종황제실록(純宗皇帝實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두 실록은 1927부터 1932년까지 조선총독부의 주도로 조선사편수회가 편찬한 것으로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침탈과 황제황실의 동정에 관한 기록들에서 왜곡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엄격한 실록 편찬 규례에도 맞지 않는 점이 많다. 그러므로 고종순종실록의 역사는 참고하거나 인용하는 데에 주의가 필요하다.

 

  《조선왕조실록실록으로 약칭하기도 하며, 이들 중에는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와 같이 일기라고 한 것도 있지만, 그 체제나 성격은 다른 실록들과 똑같다. 대부분 왕대마다 1종의 실록을 편찬하였지만, 선조실록, 현종실록, 경종실록은 후에 수정(修正) 실록 혹은 개수(改修) 실록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광해군일기는 인쇄되지 못한 정초본 (正草本: 鼎足山本)과 중초본(中草本: 太白山本)이 함께 전하는데, 중초본에는 최종적으로 산삭한(삭제한) 내용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많은 정보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 CD

 

  《조선왕조실록은 대부분 목활자로 인쇄한 간본(刊本)으로 되어 있지만, 정족산본(鼎足山本)의 초기 실록 및 두 본의 광해군일기는 필사본으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웠으나, 1968년부터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1972년부터는 민족문화추진회가 국역사업을 시작하여 1993년에 완료하였다. 이 국역본은 신국판(新菊版) 413책으로 간행되었으므로, 이제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전자출판연구회와 서울시스템(대표이사 이웅근)1991~1994년 문화부에서 개발한 문체부 한글폰트 원도를 바탕으로 디지털 한글바탕체(본문체), 한글돋움체(고딕체), 한글제목체, 한글쓰기체(필기체) 폰트를 개발했다. 한국전자출판연구회와 문화부서체개발위원회의 인연으로 한자폰트와 한글폰트를 가장 많이 제작한 서울시스템의 이웅근 박사에게 조선왕조실록의 디지털화 필요성을 설득하였다. 결국 왕조실록을 연구하고, 보다 편리하게 검색하기 위하여 1995년에 서울시스템의 한국학데이터베이스연구소가 왕조실록 전질을 전산화하였고, 이를 CD-ROM으로 제작하였다. 실록 내용을 디지털 데이터로 입력시켰으므로, 인명, 지명, 사건 등 컴퓨터로 빠르고 정확한 정보 검색과 연구가 가능해졌다.

 

  현재 남한에서 소재가 파악된 조선왕조실록은 총 2,219책으로서, 이 가운데 정족산본 1,187책과 낙질 및 산엽본 99책이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그밖에 태백산본 848책이 국가기록원 역사기록관에, 오대산본 75책이 국립고궁박물관에, 적성산본 4책과 봉모당본(奉謨堂本) 6책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7훈민정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관 없이 왕은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 왕조실록이 유네스코에서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받은 이유는 공정성, 특히 사관의 철저함이었다. 역사는 인류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인식이나 기록을 말한다... 2022323[뉴스프리존] 김덕권 기자가 서울대 명예교수 허성도역사의 감계(鑑戒)라는 글을 해설해준다. 감계는 지나간 잘못을 거울삼아 경계하는 것’...

 

  ①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적혀 있다. 우리가 사극에서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왕은 공식 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심지어 인조(仁祖)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양을 보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다.

 

  ②사관은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다. 이걸 사초(史草)라고 한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하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한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한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한다.

 

  ③4부를 출판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엔 금속 활자본을 만들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인가,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인가? 쓰는 게 경제적이다.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를 빼먹을 수도 있다. 글자 하나를 잘못 쓸 수 있다. 글자 하나 더 쓸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 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다. 유네스코에서 확인 조사를 했다.

 

  ④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6,400만자다.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 보면 11.2년이 걸리는 분량이다.

 

  ⑤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가?’...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이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다. “보지 마시옵소서!” “,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은 참았다. 몇 년이 지났다. 그래도 또 보고 싶었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희 정승이 나섰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보려 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⑥그런데도 실록(사초)을 본 임금이 있었다. 아니다. 사초 원본이 아니라 사초를 요약한 서류를 대신... 간신 이극돈과 간신 유자광이 사초 원본을 보고, 이를 요약해서 연산군에게 보여줬다. 지난 2013712일 뚱보강사 칼럼 ‘#126_ 성종 아들 연산군과 왕조실록 -간신 유자광과 이극돈-’에서, 폐비 윤씨와 성종의 아들 연산군(1476~1506) , 조선에서 금기시하던 조선왕조실록을 꺼내보아서 여러 사람이 죽은 무오사화 얘기를 썼다. -중략- 연산군 시절에 간신 이극돈(1435~1503)이 사국당상(실록을 편찬하는 관리)이 되어 부임해서 사초를 훑어보는데, 사초에 자기의 과거 비리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해결할 방법을 묻기 위해서, 이극돈은 자신보다 더 머리가 좋은 간신인 유자광을 찾아간다. 간신 유자광은 김일손이나 그 스승 김종직이나 신진 선비들에게서 인간 취급을 못 받던 사람이다.

 

  간신 이극돈은 사관만 볼 수 있는 실록을 몰래 유자광에게 보여주고, 자기의 비리를 삭제시킬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실록을 살핀 유자광의 눈에 띈 것은 조의제문’. 항우에게 죽음을 당한 의제라는 임금을 조상하는 글이었는데, 결국 이는 숙부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을 조상하는 내용이었다. 세조는 지금 임금 연산군 아버지인 성종의 증조 할아버지. 유자광은 실록 편찬의 책임자라 할 어세겸을 찾아가 따지지만,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자, 아예 세조 이래의 권신들에게 당신들은 세조 대왕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협박을 하고 다녔다. 연산군도 이 소문을 듣게 됐다.

 

  연산군은 당장 사초를 거둬들이라고 명령한다. 이극돈과 유자광은 옛부터 임금은 사초를 보지 못하지만 일이 종묘사직에 관계되면 상고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신등이 그 상고할 것을 정리하여 올리겠습니다.”라고 하며, “그리하면 사초(실록)을 직접 안 보시고도 사태를 알 수도 있고, 임금이 사초를 보지 않는다는 의에도 합당합니다.”라고 고한다.

 

 

[참고] 이윤성, 2022-05-10

https://www.facebook.com/imloafer

[참고] 한택영

https://www.facebook.com/mepssi76

https://story.kakao.com/mepssi/JXS6vFndY3A?fbclid=IwAR3JSGgP9VoayxsOA2VWylvTZ2pXgrP2BVwfd_GL7bPG1QvAtKa7DsyxSP0

[참고] ‘#126_ 성종 아들 연산군과 왕조실록 -간신 유자광과 이극돈-’,

뚱보강사, 2013.07.12. 조회 882.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101384

[참고] ‘#225__동이족과 서량지교수와 조공사기’,

뚱보강사, 2020.10.30. 조회 376.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19737

‘#316__인간단군- 이병도와 최태영’, 뚱보강사, 2021.06.13. 조회 188.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71761

[참고] [카카오스토리] 서와, 대한민국의 진짜 역사.

https://story.kakao.com/mepssi/iZVvVnKJx3A

[참고] [뉴스프리존] 김덕권, 역사, 2022.03.23.

http://www.newsfreezon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9721&fbclid=IwAR2_eM8dLvoT8H3rxWpOUAMxqjtYGGRzKl4S04FkNH0kivA8D6ZukDAMMwA

[참고]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jsessionid=91147D41370C9D7D019B324D6536323E

[참고] 1~27대 왕조실록

1대 태조(1392~), 2대 정종(1399~), 3대 태종(1401~), 4대 세종(1418~), 5대 문종(1450~), 6대 단종(1452~), 7대 세조(1455~), 8대 예종(1468~), 9대 성종(1469~), 10대 연산군(1494~), 11대 중종(1506~), 12대 인종(1545~), 13대 명종(1545~), 14대 선조(1567)

선조수정(1567~), 15대 광해군중초본(1608~) 광해군정초본(1608~), 16대 인조(1623~), 17대 효종(1649~), 18대 현종(1659~) 현종개수(1659~), 19대 숙종(1674~) 숙종보궐정오(1674~), 20대 경종(1720~) 경종수정(1720~), 21대 영조(1724~), 22대 정조(1776~), 23대 순조(1800~), 24대 헌종(1834~), 25대 철종(1849~), 26대 고종(1863~), 27대 순종(1907~), 순종부록(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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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신문 2017.10.19 

    국내 양대 출판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와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강맑실)는 “이기성 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체육관광부가 ‘출판 통제’를 위해 임명한 인사”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원래 출판계는 그렇다”며 “단체도 많고 의견도 많다.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수긍하기는 힘들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은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뒤 경기대 대학원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공학자다.

    도서출판 장왕사 상무와 계원예술대학교 출판디자인과 교수, 한국전자출판연구원 원장, 사이버출판대학 학장, 한국전자출판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학술논문 110개와 저서 70권(단독 저작 44, 공동 저작 26권) 등으로 국내 전자출판 발전과 함께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 이정윤 기자

    출처 : 독서신문  이정윤 기자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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