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__ 인간 단군 이병도와 최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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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316__ 인간 단군 이병도와 최태영

 

 

뚱보강사 칼럼 ‘#89__ 중국 만리장성과 LA 만리장성 동창회에 단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 역사의 시작은 4345년 전의 단군조선 개국부터라고들 이야기 하는데, 사실은 그보다 앞서서 9211년 전의 환국5910년 전의 배달국(신시)이 있다. 배달국은 뚱보강사와 64학번 동기들이 중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배달민족의 그 배달국을 말한다. 일본인 역사학자 이마니시 류, 서울대 국사학과 이병도 교수, 한국 친일학자와 친일정치가에 의해 배달국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버렸고, 단군조선도 역사가 아닌 신화로 둔갑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사학자 신채호와 재야사학자 문정창, 최태영 박사 등은 일본학자가 근거로 내세우는 구절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여 왔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병도 박사도 1986109일 조선일보에 단군이 실재 인물이다라고 발표했다.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여 문제가 발생한 뒤, 2008103SBS TV 방송국 ‘SBS 8시 뉴스'에서 일본인 역사학자 이마니시가 삼국유사의 글자를 변조한 사실을 보도했다. SBS TV‘SBS 스페셜-일제 낙랑군 유물 조작편에서도 일제의 조작 사실을 밝혀냈다.

 

단군조선(고조선)4354년 전인 BC 2333년부터 BC 108년까지 2226년간 존재했고, 단군조선이 건국되고 2094년이 지난 BC 239(2260년 전)에 단군조선 영토 한편에 북부여가 건국되어, 단군조선이 멸망한 50년 후인 BC 58년까지 존속한다. 뒤를 이어 신라가 BC 57, 고구려가 BC 37, 백제가 BC 18년에 개국된다(단군조선이 2226년보다 130년 짧은 2096년간 존속했다는 설도 있다).

 

200558일자 고대신문에 난 글. 1900년생인 최태영 박사는 한국인 최초의 법학 정교수이자, 고려대(보성전문)의 첫 한국인 정교수였다.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1918년 동경 메이지대 법학부에 입학했다. 1924년 귀국하여 일제 치하의 보성전문 교수 시절에,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아 많은 핍박을 받았다. 신사(神社)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의 사당이다. 일제는 1910년 국권 강탈 후에는 적극적으로 신사를 설립하고 한국인의 참배를 강요했다. 한민족의 정신을 짓밟는 행위였다. 특히 일본 왕(천황)을 신격화시켜서 한국인도 강제로 참배시켰다. 1925년 남산에다 조선 신궁을 지었다. 1920년대 이후 일제는 국가적 단합을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학교 단위로 학생들을 강제로 신사 참배에 동원시켰다. 이에 불응한 학교들은 폐쇄시켜 버렸다.

 

최태영 박사가 보성전문 교수와 경신학교 교장을 겸하고 있던 1945, 해방 전 총독부에서 일어 상용 촉진회의가 있을 때, 다른 조선인 교장이 일본어 상용에 찬성했는데, 최박사가 공개석상에서 일본어 사용을 공식 반대하여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다행히, 며칠 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살아날 수 있었다. 해방 후 최박사는 부산대 인문대학장, 서울대 법대학장, 청주대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정년 퇴직후 한국 상고사 연구에 몰두해서 단군조선의 실체를 밝히고, <삼국유사>에서 환국(桓國)이 환인(桓因)으로 변조된 것을 증명해냈다. 최박사는 한국 상고사 입문(최태영/이병도 공저, 고려원)1989, <한국상고사>1990. <인간 단군을 찾아서>2000, <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2002를 저술했다.


최태영 박사(19003, 황해도 은율~200511)의 저서 인간 단군을 찾아서20004월에 학고재 출판사에서 출판됐다. 마침 페친 [김영기]님이 <최태영 회고록> ‘단군과 이병도, 김재원 그리고 기독교라는 글을 올려주셨다. 최태영 박사의 글로 시작한다. 나는 법학 전공자로 역사에 대해 학문적 반박을 들이댈 연구는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방되고 한참이 지난 뒤, 한국사가 한국사 왜곡의 핵심 인물이었던 일본학자 이마니시 류가 조종한 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쿄 대학과 교토 대학 학자들이 나서서 한국사 왜곡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때, 이마니시는 교토 대학 사학과 교수로 1920년대에 조선사 왜곡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총독부는 이마니시의 학문을 식민 통치의 도구로 적극 활용해서, 한국사를 난도질하기에 아주 적절한 앞잡이로 이용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마니시와 한 팀이 되어 통일신라 이전부터 신라 통일시대, 고려시대를 편찬했고, 해방 이후 그 사관을 가지고 국내 강단파의 거두가 된 서울대 국사학과 이병도 교수를 돌려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 최태영은 도쿄 유학 시절부터 이병도를 알았다. 이병도는 보성전문 법과를 나오고, 도쿄 와세다 대학 사학과에 들어갔다. 내가 메이지 대학에 다닐 때, 기숙사 친구 최정순이 와세다에서 이병도와 같이 공부해서 셋이 어울렸다. 내가 서울법대 학장으로 있을 때, 그는 서울대 사학과 교수로 있었고, 같이 학술원 회원이 되어 그는 학술원 회장을 지냈다.

 

이병도는 한문과 일본 고대사에 정통했다. 그러나 국사는 처음에 일본인이 고쳐놓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최태영)도 처음에는 이병도가 우리 역사를 바로 찾아 잘해주려니 믿어마지 않았는데, 한번 일본인들에게 설득당한 사람은 아주 모르는 사람보다 더 고치기가 힘들다. 이병도의 완강한 식민사관을 두고 국사학계에서는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었다. 송지영과 국어학자 이희승, 숙명여대총장 윤태림 등이 하는 말들은 이런 것이었다. “최태영 당신이 죽으면 이병도를 설복시킬 사람이 없으니, 죽기 전에 꼭 해내라. 이병도에 맞설 사람 당신밖에 없다.” 혹은 그 이병도 말 안 듣는 인간이니 설득할 것도 없다.” 또는 그깟, 제풀에 매장되게 내버려두라.” 그러나, 사학자 장도빈이 조선사편수회 회의록을 인용해 이병도의 식민사관과 경력을 폭로한 내용이 박창암의 글로 1980년 일본의 <역사와 현대>지에 발표된 뒤에, 이병도는 흔들리고 있었다. 옳은 역사를 지켜내기 위해 이병도를 전향케 하려면 내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 최태영이 대법관이 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다행히 이병도와 나, 김재원은 학술원을 통해 매일 같이 만나는 친구였고, 내가 쓴 <서양 법철학의 역사적 배경>이 학문적 입장을 전적으로 신뢰토록 한 전제가 되었다.

 

나는(최태영은) “당신이 언제 한국사 공부를 정식으로 해봤냐?”고 이병도에게 말했다. 이병도 자신이 한국사에 대해 혹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아야 했다. “당신은 북애의 <규원사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건 괜찮은 역사인 듯해.” 이병도의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옳다하고 생각했다. “북애의 말처럼 우리가 공자한테 눈이 멀어 엎어져 있지 말고, 우리 조상을 공부했으면 이렇게 안 됐을 거다.” 이병도의 부인이 만년에 내게 도움을 주었다. “최태영 선생님 말씀이 먹혀 들어갑니다. 선생 말이라면 믿고, 요즘은 단군을 믿나봅니다.” ‘옳다, 바짝 달라붙으면 되겠구나고 생각했다. 이병도를 설득하기 위하여 그와 사이가 틀린 인사들과 만나는 것도, 이완용을 들먹이는 것도 피했다.

 

내가 <세종실록>에서 찾아낸 <세년가>를 이병도에게 들이댔다. <세년가>는 임금이 대를 이으면서, 각 대에 이룩한 사적을 전하는 노래인 것이다. 이병도가 이를 받아들였다. 세종이 이병도보다 먼저 알게 된 <세년가>, 후일에 이병도도 알고, 그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잇달아 고려 공양왕 때까지의 사적을 언급한 <동국세년가><표제음주동구사략>에서 나왔다. <동국세년가>는 단군 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영사체(詠史體)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영사체는 역사적 사실을 시가로 읊는 사서체이다. ‘동명왕편’, ‘제왕운기등이 해당된다. 조선 세종 때 권제(권근의 아들) 등이 단군 조선에서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노래 형식으로 정리한 <동국세년가>를 편찬하였다.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1540~1550년대에 유희령(柳希齡: 1480~1552)이 지은 한국의 역사서이다. 활자본으로 여러 번 간행되었다. 단군 ·기자 ·위만의 고조선에서 삼국을 거쳐 고려까지 수록하였다. 체제상 사건의 요지를 표제로 내세웠으며 고유명사의 음을 밝힌 것이 특징이다. <표제음주동국사략>은 삼국을 각기 독립시켜 서술했을 뿐 아니라, 신라 중심이 아닌 고구려 중심의 체계를 세웠다. 121책으로 구성된 주자본이다. 이 책은 서거정(徐居正)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동국통감이 양적으로 방대하고, 일반인이 읽기에는 너무 상세하다 하여,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려는 의도에서 중국의 십구사략(十九史略)형으로 축약, 편찬한 책이다. 본문 상단(오두=烏頭)에 그 기사 내용을 밝히는 제목을 붙이고, 또 인명이나 국명 등 고유명사의 음을 주로 달았으므로 표제음주(標題音註)’동국사략(東國史略)’ 앞에 관서(冠書)한 사략(史略)형의 사서(史書)이다. 내용은 십구사략을 본떠서 책머리에 세계도(世系圖)를 붙이고, 그 뒤에 총목과 권제(權踶)동국세년가(東國歲年歌)를 실었다.

 

12권 중 권1은 단군·기자·위만의 전조선, 사군·이부(二府구이(九夷삼한(三韓)과 고구려 전 시기를 수록하였다. 2는 백제를, 3은 신라의 시조로부터 효성왕까지 34왕을, 4는 경덕왕으로부터 경순왕까지 22왕과 가락국·발해국·궁예·견훤을 수록하였다. 5는 고려의 태조로부터 정종까지 10왕을, 6은 문종으로부터 예종까지 6왕을, 7은 인종, 8은 의종부터 광종까지 5왕을, 9는 고종·원종을, 10은 충렬왕을, 11은 충선왕으로부터 충정왕까지 5왕을, 12는 공민왕·공양왕을 수록했고, 끝으로 우왕·창왕을 부기(附記)하였다.

 

 

이병도 단군이 실재 인물이다

 

권제(權踶, 초명은 권도(權蹈))동국세년가(東國歲年歌)는 이병도가 단군을 실재 인물로 받아들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신이 죽고 나면 일본의 식민사관을 전파시킨국사학자라는 평판을 교정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변화된 진정한 사관을 용감하게 발표하는 것이 이완용의 반열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다라고 설득했다. 1986년 이병도가 나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를 3년에 걸쳐 공들인 토의의 결과였다. “이제 발표하자.” “내가(이병도가) 글을 내겠다면 기자들이 욕하지 않을까?” “아니다. 무조건 발표하는 것이 당신이 사는 길이다.” 그리고 신문에 통지했다. 원고를 넘기기 전 그가 우리집에 와서 원고를 정리하면서, 내 말을 듣고 몇 자를 더 수정했다. 정신문화연구의 윤여덕 편수관이 증인 겸 원고를 다시 정서했다. 발표 전날 밤 한 모임에서 이병도의 사관을 매우 비판하는 말이 나왔지만, 밤 동안 또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신중함으로, 이병도가 새로운 사관의 글을 섰다는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신문기자와 만나는 자리도 피했다. 내가 옆에 있으면 그를 윽박질러 억지로 쓰게 한 것이라는 의심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1986109일자 조선일보에 이병도의 단군이 실재 인물이다라는 글이 실렸다. 그 후 1989년 나와 공저로 쓴 <한국 상고사 입문>은 이병도 박사가 사관을 바꿔 국사학의 방향을 전환환 뒤 내 이론이 옳다고 인정한 것이다. 만년의 그는 이마니시에게 속아 어리석은 역사를 했음을 인정하고, 이를 교정할 기회 마련에 적극적이었다.

 

 

고구려의 <유기> 역사책 100

 

초대 국립박물관장을 지낸 김재원 박사는 17세에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바람에 한국사를 알 수가 없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잘했다. 내가 보성전문 교수로 있을 때 강사로 들어온 이후 끝까지 교분을 나눴다. 그가 부정하는 역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으나, 나의 주장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김재원 박사의 주장은 고구려 동명성왕이 <유기>라는 역사책 100권을 썼다지만 그때는 글이 없었다는 것. 최태영 박사는 <유기> 책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천만에. 고주몽 보다 앞선, 삼한시대에 쓰던 먹과 붓이 대량 발굴됐다. 글이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잡힌 것이고, 사기가 씌어졌다는 것이 인정된다. 설사 만에 하나 글이 없었다 하더라도, 역사를 노래로 지어 부름으로써 전한다. <세년가>가 그것이다. 실제로 고려 공양왕 때 부르던 <동국세년가>가 있고, <세종실록><세년가> 이야기가 나온다.”

 

김재원: “중국에 가보면 단군사당이 얼마든지 많다. 우리가 그걸 흉내낸 것 아니냐?” 최태영: “네가 가서 본 게 맞다. 그게 진짜다. 만리장성 앞의 요동 땅은 원래 우리나라 단군이 살던 곳이다. 단군의 나라이기 때문에 단군사당이 많은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당에서 이젠 중국인이 된 옛 고구려인들이 자기 조상 위해 제사지내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자기네가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생각해서 그런다. 우리가 남을 흉내 내서 단군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조상이니까 당연히 위하는 것이다.” 최태영의 단군 강의는 그에게 효과를 냈다. 이후 김재원 박사는 한국사를 강의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의 책은 산동반도 무량사에서 나온 석실 벽화를 두고 단군의 존재를 논하고 있다. 며칠만 더 살았어도 단군을 확신하는 자신의 역사관을 공개적으로 설명할 예정이었는데, 돌연 작고했다. 앞날을 내다보고 공들여 사귀었던 두 사람이었다. 3년이 걸린 일이었다.

 


단군은 곰 아니고,  신 아니고,  하느님 아니고,

고조선을 건국한  우리 할아버지

 

그러나 나 최태영도 오산을 했다. 이병도 박사, 김재원 박사, 이 두 거두만 설득하면 우리의 역사를 찾는 일이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기득권을 쥔 세력이 되었다. 1994년경 기독교회관에서 젊은 목사들을 위해 단군조선에 대한 강연을 했다. 기독교도로 예수 믿는 것과 단군 조상은 별개의 문제라는 말을 했다. 내가 말하는 단군은 곰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니고, 고조선을 건국했던 우리 조상, 먼 윗대 할아버지이다. 나는 단군을 나의 조상으로서 진실로 존경한다. 조상과 기독교의 신이 무슨 관계냐? 젊은 목사들은 매우 공감하며 강의를 한 번 더 해달라고 하더니, 얼마 후 취소해야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이날 앞서서 한 신학박사가 예수 믿는 사람은 단군을 부인해야 된다는 강연을 했는데 그가 알고 취소하게 했다고 한다.

 

기독교를 초기부터 받아들인 나이든 예수꾼들은 단군조선을 제대로 알기에, 단군을 당연히 인정하고 조상으로 받든다. 그것은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요즘과 같이 전통이 단절된 시기에 역사 인식이 혼란스러운 일부 기독교 목사들이 단군이 신화라며역사를 뒤집어놓으려 한다. 기독교계에서 단군을 인정하는 곳은 YMCA와 산정현 교회 두 계파가 대표적이다. YMCA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던 초기, 신문화 전파의 큰 역할을 해온 전통이 있어 사회과학과 밀착된 유식한 기독교를 주창하는 곳이다. 나는 경신학교 이래 도쿄의 조선 YMCA2.8독립선언을 하고, 조선 유학생 활동의 구심점이던 시기에 도쿄 유학을 해서, 그 내부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당시 백남훈 선생이 총무였고, 그곳에서 이상재 선생과, 미국으로 3.1운동 자료를 가져가던 맥큔 선교사와 의논하고, 3.1독립운동 1주년 기념식을 준비했다.

 

당대의 유학생, 김우현 목사 등 사회 지도자들인 기독교인도 만났다. YMCA 원로 모임인 계묘구락부가 있다. 그 중 누구도 단군 조상을 부정하거나, 단군이 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YMCA의 이런 입장은 교계의 큰 버팀돌이 되어 이성적인 기독교 세력을 이끌어가고 있다. 산정현 교회는 평양에서, 신사 참배를 끝가지 거부하고 순교했던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선생이 이끌었던 숭고한 교회이다. 주기철 목사도 조만식 선생도 단군이 기독교가 배척해야 할 우상이라는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

 

 

[참고]

뚱보강사 칼럼 ‘#89__ 중국 만리장성과 LA 만리장성 동창회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44607

[참고]

한국 상고사 입문, 최태영/이병도 공저, 고려원, 1989.

[참고]

인간 단군을 찾아서, 최태영 지음, 20004, 학고재 출판사.

[참고]

[김영기]

https://www.facebook.com/origingold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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