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__ 외국인 독립운동가
- 뚱보강사
- 2021.11.09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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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____외국인 독립운동가-----10ok
뚱보강사 이기성
406__외국인 독립운동가
페친 [전우용]님의 글-1입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75만 명, 브라질 60만 명, 인도 46만 명, 멕시코 29만 명, 러시아 24만 명 등 전 세계에서 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한국의 사망자 수는 3천 명, 사망률은 0.8%로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백신 접종률은 인구 5천만 명 이상 국가 중 1위입니다. 팬데믹(범유행, pandemic)은 전염병이나 감염병이 범지구적으로 유행하는 것이다. 상황에서도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이탈리아를 추월했고, 무역규모도 영국을 제쳤습니다. 가요, 영화, 드라마 등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를 휩쓸었으며, 유엔은 한국을 ‘선진국’으로 공인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과의 싸움에서 한국은 전 세계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11월 5일자 페친 [전우용]님의 글-2입니다. 자기 일가친척과 부하들에게는 엄청난 부정축재의 기회를 안겨 주면서 국민에게는 한없이 잔인했던 전두환. 사대강, 자원외교, 민영화 등 온갖 ‘창의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수익기반’으로 삼았던 이명박. 지나친 무식과 무교양 때문에 주술사 같은 최순실에게 나라를 맡겼던 박근혜. 탐욕, 잔인성, 간교함, 무식은 현대의 한국인들이 ‘기득권자’가 되기 위해 익숙해져야 했던 ‘악덕’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악덕’이, 한국 기득권 세력과 그 추종자들의 고유 속성이 된 듯합니다... ...
독립운동 “세계인과 연대하다”
“독립운동 애국지사, 그들은 달랐다”... “나라 밖 세계인과 연대하다”... 우리의 국조 단군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과 세상을 다스려 교화하는 재세이화(在世理化)를 바랐다. 그래선지 옛 선조는 백성의 세금을 가볍게 했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의 <<한국통사>> 책에 단군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단군의 건국이념은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치로써 세상을 다스리라는 재세이화이다...라고,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시(Emanuel Pastreich)’ 교수는 "홍익인간 정신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세계를 위한 새로운 교육법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라고...
우리나라 고대에는 ‘20분의 1 세법’을 시행했다. 교회의 십일조는 재산이나 소득의 1/10을 신에게 바치는 구약성서의 관습인데, 우리나라의 2배를 징수했다. 고조선의 조세는 생산량의 20분의 1을 바치는 이십일조(입일세, 卄一稅)였다. [매일신문] 2021년 10월 22일자 정인열 논설위원의 글이다...
고조선은 중국의 10분의 1세 즉, 십일세(十一稅)의 절반인 20분의 1세 즉, 입일세(卄一稅)를 시행했다. 한민족은 이민족 외침을 1천 번쯤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 외침도 버티며, 한국인은 세계인과 연대로 독립의 길을 찾았다. 1919년 한국 유림(유학을 신봉하는 무리)이 2천 600자가 넘는 긴 편지를 국제사회에 보낸, ‘파리장서운동’을 통한 협력과 연대의 호소도 같은 맥락이다.
파리 장서 운동
유교계는 3ㆍ1운동보다 7년 앞서서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대규모의 독립운동을 획책하다가 발각되어, 많은 핵심 인물들을 잃은 바가 있었다. 1919년 기독계와 불교계가 주동한 가운데 3ㆍ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유교계는 대대적인 장서(사연을 길게 적은 편지)운동을 일으켜, 이에 호응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파리장서운동’인데, 137명의 유림 대표가 전문 2천 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게 된 것이다. 이 장서(長書)는 심산 김창숙(1879~1962)이 짚신으로 엮어서, 상해 임시정부로 가져갔다. 임시정부에서는 다시 이것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한문 원본과 같이 3천부씩이나 인쇄하여 파리강화회의는 물론 중국, 그리고 국내 각지에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면우 곽종석(1846~1919)을 비롯한 수많은 유림들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한국 유림 대표… 137명은 파리평화회의 제위(諸位)께 삼가 이 글을 보내노라.… 한국이 비록 국력은 약소하나… 어찌 이웃 나라의 다스림을 받으리오.… 몸을 묶이어 죽음에로 나갈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아니 하리다.… 제위께서는 생각하시라."
중국인 저보성, 일본인 후세 다쓰지, 프랑스인 루이 마랭, 캐나다인 석호필, 중국인 신부 우빈 등, 일제에 맞서 외국인들이 자국 정부·의회·국민과의 연대, 한국독립 호소·청원, 친한(親韓) 여론 형성 및 모임 등으로 지원한 사례는 많다. 정부도 이들을 발굴, 서훈하고 있다. 6·25전쟁 때 국제연합(UN)의 도움을 새기려 매년 10월 24일(유엔결성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처럼, 외국인의 한국독립 지원과 연대 활동도 기릴 만하다.
---◆ 서훈 받은 이웃 나라 사람들
일본인으로 경북 문경 출신 박열(대통령장)을 도운, 아내 가네코 후미코(애국장), 변호사 후세 다쓰지(애족장)가 있다. 가네코는 1923년 박열이 주도한 단체 불령사(不逞社)에 가입, 활동했고 1924년 박열의 대역(大逆) 사건에 연루,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수감 중 1926년 삶을 마감했다.후세 변호사는 1923년 의열단원 김시현(미서훈) 등의 조선총독부 폭파계획 사건, 1924년에는 일본 이중교투탄의거 주인공이다. 일본인 후세 다쓰지는 김지섭(대통령장)을 변론했다. 또 1926년 박열사건 변론, 1927년 조선공산당 사건의 권오설(독립장) 등을 맡아 일제 고문 만행을 폭로했다.
상해 망명정부가 있던 중국 국적 독립유공 서훈자는 가장 많다. 장개석(대한민국장)과 부인 송미령(대한민국장), 손문(대한민국장) 같은 지도자에서부터 하상기(건국포장) 중국 여성 독립투사까지 다양하다. 특히 여성 독립투사 두군혜(애족장)와 이숙진(애족장)은 각각 한국인 독립운동가인 김성숙(독립장)과 조성환(대통령장)와 결혼, 항일에 합류했다. 중국인 당계요(대통령장)는 30~50명의 한인 청년들이 운남육군강무대에 입학해 수업을 받도록 하고, 일제 방해에도 한국과 우의(友誼)를 지켰다. 중국 천주교 남경교구 우빈(대통령장) 총주교는 1940년 350만 천주교도에게 총동원령을 내려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과 중국 정부의 한국 임시정부 승인을 촉구했다. 저보성(독립장)은 1932년 윤봉길 상해 폭탄투척 의거 이후 일제 추격을 받던 김구 지도자 등 임시정부 요인 신분 보호와 피신·은신처 제공 등의 활동을 펼쳤다.
---◆ 서훈 받은 먼 나라 사람들
미국인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미네르바 루이즈 구타델(건국포장) 선교사는 1903년 한국에 파송돼 전도활동을 하다, 1912년 귀국해 3·1운동 소식을 듣고 한국의 참혹상을 알리고 독립운동 지원에 나섰다. 또한 1919~1920년 시카고에서 한국친우회 서기로 활동하며, 의회와 정부에 한국 독립문제를 청원하는 등 친한(親韓) 여론 형성에도 노력했다. 호머 베잘렐 헐버트(독립장)는 1906년 책으로 일본의 한국침략을 폭로하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밀사로 파견돼, 을사늑약과 일제의 한국 침략 부당성을 호소했다.
윤산온으로 불린 미국인 조지 새넌 맥큔(독립장)은 평양 숭실학교장으로 항일운동을 지원했고, 1920년 방한 미국 의원단에 대한독립승인신청서를 전달했다 추방됐고 1928년 다시 입국, 숭실학교장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해 학교 폐교 등 탄압을 받았다. 영국인으로 한국명 배설로 유명한 어네스트 토마스 베델(대통령장)은 1904년 러일전쟁 취재 특파원으로 방한해, 『대한매일신보』를 창간, 항일 논설로 일제 침략을 고발했다. 대구에서 퍼진 국채보상운동 확산에도 기여했으나, 일제 탄압도 받았다. 조지 루이스 쇼(독립장)는 중국에서 자신이 경영하는 이륭양행 회사에 임시정부 교통국 사무소를 두고 무기운반과 군자금 전달 등 용도로 쓰게 했다.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독립장)는 언론사 종군기자로 방한해 취재한 내용을 책으로 일제 침략상을 알렸고, 뒷날 1920년에는 영국에서 한국친우회를 조직해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캐나다 국적의 스탠리 해빌랜드 마틴(독립장)은 중국 길림에서 병원장으로 의료선교를 하면서 3·1운동 때 사상자 치료와 장례식 거행, 1920년 경신참변 당시 한국인 피해자 위로와 일제 만행의 국제사회 폭로 등의 활동을 폈다. 석호필로 널리 알려진 캐나다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독립장)는 3·1운동 때 만세를 외치고, 수원근교 제암리 교회 학살 참상을 사진에 담아 세계 언론사 등에 고발했다.
아일랜드 국적인 패트릭 도슨(애국장)과 나(羅)도마로 불린 토마스 다이엘 라이언(독립장)은 제주천주교회 신부로 일본 비판과 주민의 항일 의식을 북돋우다, 각각 징역 2년6개월과 금고 2년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다. 프랑스의 정치인 루이 마랭(애국장)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 때 임시정부와 인연을 맺은 이후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1921년 국회 하원 의원으로 파리에서 한국친우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았다.
---◆ 외국인 서훈은 몇 명이나 되나?
2021년 8월 15일 현재, 독립운동 서훈자는 1만 6932명이며 외국인은 72명으로, 가장 높은 등급의 훈격인 대한민국장 5명, 대통령장 11명, 독립장 35명, 애국장 4명, 애족장 13명과 건국포장 4명이다. 국적은 중국 34명(47%), 미국 21명(29%), 영국과 캐나다가 각각 6명(8%)이다. 일본과 아일랜드 국적이 2명씩(3%), 나머지 1명은 프랑스이다. 이들 가운데 여성은 6명으로, 중국 5명, 미국과 일본 각 1명이다. 이들과 별도로, 한국인 후손인 서훈 외국인도 20명 있다. 국적은 최초 여성사회주의자로 알려진 김알렉산드라(애국장) 등 러시아 12명, 청산리대첩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최진동(독립장)의 동생 최운산(애족장) 등 중국 7명, 멕시코의 이병호(건국포장)이다.
[참고] 전우용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
[참고] [매일신문] 정인열 논설위원, 2021.10.22.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hm&sid1=103&oid=088&aid=0000727209
[참고] [이덕일의 한국통사] 단군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과 재세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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