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__ '야설'과 '출판대국' 일본
- 뚱보강사
- 2021.10.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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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394__ '야설'과 '출판대국' 일본
20년 전만 해도 일본을 '출판 성진국'이라 했다. 지하철을 타면 거의 모두 종이책을 본다. 근데 왜 ‘선진국’이 아니라 '성진국'인가? 대부분 야한 만화, 야한 소설, 노출이 심한 주간지를 보고 있다. '야설'과 '출판대국', '출판 성 선진국'이 일본 출판계를 한마디로 나타내는 키워드이다. 오죽하면 애들이 있는 집에서는 책을 집으로 가져가지 말고, 지하철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라’고 안내 방송을 할까?
종이책이 오디오북으로, 웹소설로, 종이만화책이 웹툰으로, 만화가 영화로, 소설이 드라마로, 종이출판물이 비종이출판물로, CD-ROM책, 비디오책이 컴퓨터 통신의 발달로, 손전화나 패드, 노트북으로 볼 수 있는 통신망화면책으로 발전하고 있다. 만화책이나 소설책이나 원고 하나로 종이책 한 가지만 출판하던 OSOP(One Source One Product)시대에서 지금은 원고 한 가지로 오디오북, 드라마, 영화, 웹소설, 손전화용 전자책 등 여러 가지 종류로 출판하는 OSMP, OSMU(One Source Multi Product, One Source Multi Use) 시대로 들어섰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셋업박스를 타고(OTT), 컴퓨터모니터나 디지털TV로 보는 넷플릭스나 왓챠나 웨이브가 지상파TV 방송국, 케이블방송국, 위성방송국보다 더 장사가 잘된다. 오죽하면 국회 국정감사에서 KBS사장이 시청료를 올려달라고 하자, “국민들이 매달 4배나 높은 9500원을 내는 넷플릭스는 비싸다고 하지 않는데, 왜 KBS가 걷는 2500원을 비싸다고 하는지 아나요?” 오랜만에 국회의원다운 질문을 했다. 2018년 통계로 KBS 직원의 60.8%가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공영방송이 상용 TV 광고도 하면서, 거기다 방송 콘텐츠는 국민 수준에 한참 못 따라오면서, 뉴스는 편향적이면서, KBS 시청료를 3800원으로 인상한다고요? 2500원에서 3800원이니까 52%를 올린다고요? KBS는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같은 드라마는 왜 못 만드나요?
컴퓨터를 켜고 웨이브 광고를 보세요. “LIVE, VOD는 물론 이제 영화까지 wavve 이용권으로 더 넓은 콘텐츠 세상으로의 항해, wavve와 함께하세요!”...
야설(冶說)
야설(冶說)은 야한 소설, 음란 소설, 야한 동영상 등과 같이 대표적인 도색매체이다. 사촌 격으로 에로 라이트 노벨이 있다. 일반적으로 성인소설과 동급이거나 그 안에 포함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성인소설이 합법적 경로를 통한 것임에 비해 음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따로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음란소설"이라고 하여야 정확하겠지만, "야설"이라는 표현이 더 흔히 쓰이므로,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 표현을 사용한 예를 볼 수 있다. 음란소설을 속칭 야설이라고 하므로 ... (대법원 2003. 7. 8. 선고 2001도1335 판결). 이 사건 이른바 야설의 음란성 여부에 대한 ... (대법원 2008. 6. 12. 선고 2007도3815 판결). 일본에서는 전통적인 야설은 관능소설(官能小説)이라고 부른다. 단, 관능소설은 단순한 야설이 아니라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대형출판사에서 떳떳이 일반대중 상대로 판매한다. 전문 포르노 소설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남성 위주의 팬이 많은 야동보다 여성 위주의 팬이 더 많다.
최초의 상업적인 야설로 구분할 수 있었던 소설들은, 주로 프랑스 혁명기에 써졌다. 귀족이나 왕족을 깎아내리고, 학문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키기 위한 것으로, 주 등장인물은 마리 앙투아네트였다고 한다. 야한 사진, 야한 동영상, 야겜 등 다른 요소가 과학의 발전과 그 맥락을 같이 했다면, 이 야설은 오랜 옛날부터 유구한 전통을 자랑해왔다. 목적은 당연히 배출용?...
'출판 성진국' 일본에서 버블 경기가 한창이던 1980년대 일본 삿포로와 동경을 배경으로, 당시 성인물(어덜트 비디오)의 제왕이라 불렸던 무라니시 토오루(村西とおる)를 주인공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텐츠로 19금 드라마. 원제목은 ‘전라(全裸)감독’이나, 한국에서는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일명 "전과 7범, 50억 엔의 빚". 그는 1986년 말 하와이에서 징역 370년을 구형받은 적이 있고, 여주인공 모델인 구로키 가오루의 자살 미수, 미성년자의 AV 출연 등으로 물의를 빚었고, 2017년에는 위안부 관련 망언 등으로 비판받는 인물이다.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 어덜트 비디오(AV) 배우로 불리길 선호한다. 서양 쪽에서는 포르노(Porn, Pornography, Pornographic film) 배우라고 부른다. 1화부터 펼쳐지는 베드씬으로 시작해서, 평범한 영업사원 '무라니시'가 에로 잡지 출판을 거쳐 성인영화계에 뛰어들게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여준다. 2019년 8월 8일 세계 동시 공개되어, 높은 시청률과 좋은 평가를 얻었다. AV 업계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라(全裸)감독’ 시즌 2는 성인영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무라니시가 위성방송까지 노리며,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몰락하는 내용.
주인공은 무라니시 토오루 역은 야마다 타카유키. 영어교재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이었으나, 아내와 이혼하고 두 아이와도 떨어지게 되어 의기소침하던 중 ‘비닐 포장 책’의 유통과 판매를 하는 호쿠다이칸다서점(北大神田書店)을 거쳐, 어덜트 비디오 메이커 '사파이어영상'(サファイア映像)을 설립한다. 수박 겉핥기식이 아닌 내면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진정한 AV라는 믿음을 가지고, 현실과 타협 없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타케이와 이케자와가 꾸민 음모에 번번이 말려들어가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작품을 제작한다. 결국 헤이세이 시대가 도래하면서, 경찰 내 쇄신 분위기에 따라 타케이가 대대적 단속에 들어가, 이케자와를 체포하게 되고, 그에 따라 큰 적이 하나 줄어든 무라니시는 시즌 1의 결말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시즌 2에서는 쿠로키와 함께 방송에 출연하면서, 여러 사업 확장을 꿈꾸고 있다. 시즌 2 도입부부터 무라니시가 가두연설 도중 타케이에게 체포되는데, 그 이유는 작품에 미성년자가 출연했다는 이유였다. 회식자리에서 소속 여배우인 에도가와 로마가 인기 남돌 멤버인 켄쨩과 같이 잔 썰을 풀게 되면서 켄쨩의 유두가 성감대라는 썰을 듣고 아이디어를 얻어 작품을 제작하여 발매하게 된다. 결국 켄쨩 측 사무소에서 항의하지만, 카와다가 방송 관계자들에게 사죄를 한 것이 무색하게도 무라니시는 끝까지 고자세를 유지해, 무라니시와 쿠로키가 레귤러로 출연하던 방송에서 강판되고 만다.
시즌 2에서 무라니시의 최대 관심사는 '위성'. 위성방송 사업을 총괄하는 우미노에게 온갖 무시를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성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사파이어의 대표인 카와다와 의견충돌로 대립하거나, 규제에 어긋나고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제작 및 발매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 작품들이 판매량이 증가했고, 설상가상 팬들이 사파이어 영상의 사무소 앞에서 항의시위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데도, 이에 아랑곳 않고 '고마워 시리즈'를 발매한다.
나이트클럽을 빌려 시리즈 판매 10만장 돌파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폭발한 카와다와 틀어진 무라니시는 이제 사파이어 영상을 떠나 '다이아몬드영상'(ダイヤモンド映像)을 설립하고, 결국 우미노에게서 위성방송의 송출권 계약을 따내고야 만다. 이후 시즌2의 이야기는 무라니시의 광기와 주변의 배신, 인간관계의 파탄 등으로 마무리가 지어지며, 더 이상 잃을게 없는 광기의 무라니시를 집중 조명한다.
'출판대국' 일본, 시발점은 '야설'
지난 2021년 1월 27일 국내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은 누적 관객수가 170만 명에 근접하고 있다. [매경]의 신윤재 기자가 보도했다(2021년 4월17일). 지난해 일본에서 애니메이션 한 편이 신드롬적 인기를 끌었다. 바로 '귀멸의 칼날(이하 귀멸)'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고, 도처에 '오타쿠'가 넘쳐나는 '아니메(애니메이션의 일본식 표현) 왕국' 일본에서도 '귀멸'의 인기는 특별해 천문학적 경제 효과까지 발생했다고 한다. 닛케이에 따르면 '귀멸'의 경제적 파급 효과는 지난해 12월 기준 이미 2700억 엔(약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일본에서 개봉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욱일기' 논란에도 국내에서 한때 박스오피스 1위에 머무르며 총 관객 170만 명 동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대만에서도 역대 장편 애니메이션 흥행 1위 기록을 세웠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달 개봉이 예정돼 있다. 어쨌든 세계적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3위 '출판대국' 일본... 그 시발점은 '야설' 이었다? [매경]의 신윤재 기자가 입력했다(2021년 10월 9일). 전자판 출판 규모가 늘고 있다곤 하나, 일본에서 출판은 보통 사양 산업으로 인식된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전철을 타도 과거와 달리 대부분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할 뿐, 책을 읽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일본은 최근까지 전 세계에서 3~4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출판 시장이다. 발행 부수 기준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요미우리신문이 있고, 아직까지 조간과 함께 석간신문을 같이 발행하는 신문사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16세기까지만 해도, 일본 출판업의 규모나 수준은 중국과 유럽은 물론 조선보다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17세기 중반에는 일본의 3대 도시(교토, 에도, 오사카)를 중심으로 200여 개 출판업자들이 경쟁하게 됐다. 당시 서점은 대개 판매뿐 아니라 인쇄와 출판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18세기가 되자 이런 곳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매년 1천 여 종의 책이 출간됐고, 지방으로 서점들이 퍼져나가면서 19세기에는 일본 어디서든 원하는 책을 입수해 읽을 수 있게 됐다. 이처럼 일본의 출판 분야가 급성장한 계기는 뭘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400년 전 에도시대(江戶時代) 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 상인 계급, 초닌(町人) 계층의 성장과 이하라 사이카쿠... 에도시대 사농공상은 지배계층인 무사, 아래 나머지는 직업의 차이일 뿐, 신분상 높고 낮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긴 전쟁과 혼란의 시대가 끝나고 평화가 도래하자 일본의 인구는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도시의 발달도 빨라졌다. 생존에 대한 걱정이 덜하니 삶을 즐기려는 사회적 욕구도 고조됐다. 활자 문화 소비, 문학적 욕구도 그중 하나였다.
한반도와 유럽을 통해 도입된 활판 인쇄술도 이 같은 욕구를 자극했다. 특히, 목판 인쇄술의 발달은 책이라는 매체의 대량 생산과 유통 체계를 갖추게 해주는 필요조건이었다. 하지만 17세기 중기까지만 해도, 교토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역사서나 불서(佛書) 등은 너무 어렵고 재미가 없어, 상류층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변화를 몰고 온 계층이 바로 ‘초닌(町人)’, 조선으로 따지면 ‘중인에 속하는 상인 계급’이었다.
일본에서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엄격히 존재했기에 이들 초닌 들이 사무라이처럼 정치권력을 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장사를 통해 확보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에도시대 일본이 신분제에서 조선과 달랐던 점 중 하나는 ‘상인의 위상’이 사실상 농민, 공인을 앞서 무사 계급 다음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 초닌 들은 돈에 집착했지만, 한편으로 신분적 한계라는 벽에 부딪혀 돈의 의미와 유한성에 회의감을 느끼는 입장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자신에게 그어진 한계에 대한 불만과 욕구를 글로 표출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사카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호색일대남'의 인기
‘이하라 사이카쿠’는 원래 10대 중반부터 일본 시의 한 장르였던, 하이카이(俳諧)를 짓던 시인이었다. 문학적 소질이 있어 약관의 나이에 이미 하이카이 비평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던 중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낸 첫 소설이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었다. 호색일대남은 소위 대박을 터뜨렸고 에도시대 일본 출판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호색일대남 이후로도 그는 '호색오인녀' '호색일대녀' '남색대감' 등 소위 호색물 계통의 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작가로서 일약 전성기를 누렸다. 그가 집필한 소설은 흥행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그는 생전에도 유명했지만 사후 더 높은 평가를 받아 현재 일본에서 근세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 '호색일대남'의 인기와 '우키요조시'... 호색일대남은 제목 그대로 '일생을 호색에 몰두한 남자에 관한 일대기'다. 주인공 요노스케(世之介)가 만 7세부터 60세가 될 때까지, 54년간 일본 전역을 돌며 행한, 파란만장한 성(性) 편력을 그렸다. 1년에 1개 에피소드씩 총 54장 8권으로 구성돼, 장마다 삽화를 넣어 독자의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했다. 60세가 되는 해 요노스케는 영원히 애욕을 즐길 수 있는 뇨고(女護)의 섬으로 호색호(好色丸)를 타고 떠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호색일대남은 표현이 노골적이거나 저급하지 않으면서도, 적나라한 성교행위를 상당히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컨대 1권 4장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남자의 동작이 거칠어지고, 여자는 진짜로 울음소리를 내게 되니, 저절로 베개가 튕겨 나가고 머리빗이 부러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침소에선 "아아, 이제 그만"이라며 휴지로 닦는 소리가….』 이런 점에서 호색일대남은 속된 말로 '야설' 즉 일종의 '포르노'라고 할 수 있다. 영화판 호색일대남(1961년작)에서 기생부터 하녀, 친척, 남의 아내, 미소년까지 요노스케가 관계를 맺은 대상은 여성 3742명, 남성 725명에 달했다.
한편으로 호색일대남은 형식과 주인공 설정, 내용 전개에 있어 일본이 세계 최초 장편 소설이라고 자찬하는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패러디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당시 일본의 세속적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피지배 계층의 심적 세계를 객관적으로 반영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호색일대남 출판 이전에는 권선징악 등 교훈적 내용을 담은 작품이 일본 풍속 소설의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이후 오락성이 확연히 두드러지는 소설들이 쏟아졌는데, 후대 일본인들은 이 같은 형식을 '우키요조시(浮世草子)'라며 하나의 장르로 구분 짓기 시작했다. 이에 오늘날 ‘호색일대남’은 우키요조시를 개척한 효시로 불린다.
우키요조시는 ‘호색일대남’처럼 질펀한 향락생활을 다룬 호색물이 주류였지만, 이 밖에도 무사도에 대한 잡화(雜話),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괴담, 서민의 경제생활 등 폭넓은 범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시 등과 달리 호색일대남을 읽고 재미를 느끼는데 높은 교양 수준은 필요하지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유흥에 대한 지식 정도면 충분했다. 덕분에 초닌은 물론 서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소비될 수 있었다. 일본의 출판문화가 성립하고 발전한 중심지는 원래 교토였다. 하지만 호색일대남을 기점으로 오사카가 급성장해 교토의 아성을 넘볼 정도가 됐다.
1000부 베스트셀러, 대여서점
--- 베스트셀러와 대여서점 등장으로 탄력 받은 출판 붐... 이후 17세기 말부터는 에도를 중심으로, 구사조시(草双紙)라는 오락용 그림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약 200년간 출판됐던 구사조시는 보통 권당 10쪽씩 총 5권 내외에 장마다 그림을 중심으로 설명이 곁들여졌다. 에도를 중심으로 출판산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도 속속 등장했다. 판매량이 1천부를 돌파하면 '베스트셀러'에 해당하는 '센부후루마이'(千部振舞)라는 말이 쓰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서점 직원들이 총출동해, 조상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곤 했다. '도카이도주히자쿠리게'(東海道中膝栗毛)라는 여행소설도 그중 하나였다. 남성 2명이 일본 전역을 여행하는 설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이 작품은 3만권이 넘게 팔리며,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책이 딱딱하고 어려운 학문 목적보다 여가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상업출판 시장은 한층 탄력이 붙었다. 출판업이 성행하고 서점이 늘자 서민층의 책에 대한 접근도도 더 높아졌다. 하지만 당시까지 책은 서민층이 부담 없이 구매하기에는 고가 품목이었다. 이때 등장한 게 소위 대여서점(貸し本屋)이었다. 대여서점의 시스템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대 일수에 따라 임대료가 결정됐고, 연체와 분실 및 파손이 있으면 변상비도 내야 했다. 인기 서적의 경우 장기간 대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인기가 있는 분야는 주로 호색물부터 정치 풍자나 해외 풍물에 대한 것들이 많았다.
책 대여가 활성화되면서 에도 후기에 이르자, 에도에만 650여 곳의 대여서점이 생겨났다. 대여서점 1곳당 170명 정도의 단골손님이 드나들었다고 하니, 대략 11만 명 이상의 에도 주민들이 대여서점을 이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대여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거나, 구매해서 읽는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독서 인구 자체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18세기 말이 되자 인구 100만 명의 에도에서만 매년 수백 종의 서적이 출간됐다. 에도가 일본 출판문화의 중심이자 제1의 출판 시장으로 떠오르며 일본 내 상업출판의 붐이 본격적으로 일었다.
메이지유신과 에도시대, 출판 혁명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했다. 반면 조선은 근대화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조선과의 운명을 가른 중심에는 분명 메이지 유신이 있지만, 이 하나의 사건과 시점에만 천착하는 건 사실 단선적이며 반쪽짜리 이해다. 그들이 개혁에 성공하고 도약할 수 있었던 건 단지 그 시점에 운 좋게 얻어걸린 게 아니었다. 그 이전인 에도시대부터 축적됐던 변화를 위한 여러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배경 한 쪽에는 출판업의 성장이 있었다.
정보와 지식의 공유와 유통은 사회 변혁의 단초가 되며, 출판은 국민 계몽에 필수적이다. 일부 학자들은 250년 남짓한 에도시대에 최소 10만종 이상의 신간 서적이 출판되었다고 주장한다. 에도시대가 유신의 전야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에도시대 일본의 변화를 한번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건, 근대 이후 치욕의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야설? 음란소설? ... ‘이하라 사이카쿠’의 ‘호색일대남’은 일견 외설적이고 기괴해 보이지만, 일본 내에서 문학사적으로 높게 평가된다. 무엇보다 그 이상으로, 근대 이전 일본의 출판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하라 사이카쿠’와 그로부터 시작된 우키요조시(浮世草子)라는 장르가 일본의 출판 혁명을 부르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참고]
[매경] 신윤재 기자, 2021.10.09.
[참고] [알파위키]
https://awiki.theseed.io/w/%EC%95%BC%EC%84%A4
[참고] [매경] 신윤재 기자. 2021-4-17.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478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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