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알고 사랑함이 바른 외교다. 치과임상 8월호 시론
- 화동
- 2019.07.2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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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알고 사랑함이 바른 외교다. --------------김평일
고려 성종 12년(993년) 서희 장군은 거란(요나라) 80만대군의 침공을 받고 국가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을 때, 겨우 3만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하여 화살 하나 날리지 않고, 세치 혀를 굴려 거란을 물리치고 통일신라 이후 우리 땅이 아니던 평안북도 일 때 강동6성 까지 고려의 영토라는 인증까지 받는 전과(戰果)를 거둔다.― “혀의 대승” 이것이 바로 외교다.
서희 장군은 거란(요나라)의 의도를 지피지기(知彼知己) 전술로 잘 파악했었다. 거란(요나라) 은 중국 중원을 점령하여 송나라를 접수하는 것이 꿈인데, 송을 공략하는 동안 고려가 만주로 침공하면 요의 본거지가 없어지고, 송과 고려 연합으로 반공하면, 낭패이기에 강동 6성 쯤 내어주고 화친한 뒤 중국으로 진격하는 군사 정책을 보인 것이다 서희 장군은 적의 의도를 100% 파악하여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전과를 이룩했다.
대학에서 외교학을 공부 했을 터 인데, 현재 한국 외교는 어떤가? 중국을 천리마로 비유하고, 그 천리마 궁둥이에 붙은 파리는 만리도 같이 갈 수 있다는 아부성 발언을 하는가하면, 일본에 대해선 경제 제재란 말이 나오자 ‘한일 간 경제 전쟁에 돌입하겠다.’하여 일본의 분노를 샀다. 전자는 한국은 중국의 속국 내지는 소국이라는 외교 인식을, 후자는 나라경제 파탄을 초래하는 어리석음이다. 바위에 계란을 던지지 않는 것처럼 외교는 늘 손익 계산서를 먼저 따져 봐야 한다. 한국의 극한 대응 발언에 일본이 꿈쩍 하지 않으니, 이번엔 미국에 일러바치는 외교를 했다. 만약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한 일본의 태도였다면, 애들도 웃을 일이다.
일본하고 싸우고 싶으면, 서희 장군이 요나라를 간파하듯, 먼저 일본을 알아야 한다. 실학소설 허생전에 북벌(청나라 공격)을 주장하는 당국을 풍자한 내용이 나온다. 북벌을 하려면 요동반도에서 북경까지 우물이 몇 개며, 위치 파악이 되는지, 가는 곳마다 식량 확보가 아니되면, 군량 미는 어떻게 조달하는지-- 인사 정보 작전 군수 작전내용을 허생이 이완 대장하고 담론 하는 대목이 나온다.
300백 년 전 허생의 지혜가 소설이지만 리얼하다. 일본과 경제 전쟁을 하려면 먼저 일본 외교의 인사 정보 작전 군수에서 충분한 검증 연구를 하고 행동해야 했다. ‘일본이 경제 보복하면 우리도 좌시하지 않는다.’는 강경 발언으로 불속에 기름을 끼얹고, 아프리카 순방길을 떠난 외무부 책임자는, 한일 경제전쟁 도발자다.
혀의 전쟁은 이미 2천 수백 년 전에도 있었다. 손무자의 손자병법이 나온 시대이던 전국시대는 7개국 전쟁시대다. 손자병법이 나올 만큼 치열한 전쟁 가운데, 적수 공권의 논객들의 외교 전쟁은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소진(BC.337년 ~ BC.284년)은 그의 달변으로 6 개국 군주를 설득하고, 동맹을 체결시켜 무려 15 년간이나 평화를 유지시킨다. 또한 그의 라이벌이며 동문수학 친구이던 장의(? ~ BC 309)는 진나라을 위해 6개국 동맹을 파기시켜, 진나라에게 복종시킨다.
손자병법의 내용은 그 으뜸이 절대 전쟁을 하지 말라는 전쟁 절대 불가론이다. 그러나 그 버금은 ‘피치 못할 전쟁’이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전승책(戰勝策)이 그 내용이다. 손자병법대로 어떻게 하던 일본의 비위를 맞춰 전쟁을 피해야 했었다. 그러나 엎지른 우유처럼 이왕 일본과 무역전쟁을 선포 했으니, 이겨야 하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 체면 불구, 지금이라도 화친해야 한다. 화친 화해가 손자병법의 핵심 언어다.
화친을 배척하면서, 나라 망한 이야기--조선 왕조의 망국. 1871년 전국적으로 건립한 척화비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이런 무모한 배척은 나라를 파는 매국(賣國)을 지나, 불과 한 41년만인, 1910년 망국(亡國)의 처지가 된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