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__ 컴퓨터 혁명 시대의 한국 출판
- 뚱보강사
- 2018.10.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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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_컴퓨터 혁명 시대의 한국 출판
뚱보강사 이기성
인류는 쌀 같은 곡식 재배 방법을 알아내게 되면서 이동하며 생활하는 유목 시대에서 벗어나 1년 내내 한 곳에서 정착하고 살 수 있는 농업혁명이 제1차로 일어난다. 다음에는 가축이나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에게 대신시키는 산업혁명이 제2차로 일어난다. 1950년대 컴퓨터가 발명되고 실용화되면서 정보 저장과 처리를 컴퓨터에게 대신시키는 컴퓨터혁명이 제3차로 일어난다. 산업혁명이 일어날 때 소극적이거나 늦게 참여한 국가는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매우 불리한 생활을 하여왔다. 제3차 컴퓨터혁명 역시 이 시기에 출판/인쇄 산업계가 컴퓨터혁명이라는 물결을 타고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그 업계와 그 국가는 또다시 손해를 보는 피해자 신세가 될 것이 자명했다.
1960~1970년대의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군사정권 상태에서 치안유지와 통치행위에 주력을 하느라 컴퓨터혁명의 물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려웠다. 대형컴퓨터에서 중형, 소형으로 컴퓨터 크기가 작아지고 성능이 좋아지더니 1970년대에 드디어 개인용컴퓨터가 탄생했다. 1971년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출판인연구코스를 동경에서 수료하고 돌아와 1971년 12월호 월간 ‘출판문화’에 일본은 컴퓨터로 CTS(전산사식조판시스템) 조판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귀국 보고 강연에서 우리나라 인쇄/출판계도 앞으로는 조판을 컴퓨터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출판협회에서 컴퓨터를 도입하여 출판사가 공동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으나 찬성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1800년대 후반부터 독일의 납활자 인쇄기술이 선교사를 통하여 한국보다 일본에 먼저 전수되는 바람에 그후 100년 이상이나 독일의 조판/인쇄 기술과 일본의 조판/인쇄기 회사에게 한국의 인쇄 산업계가 종속되었다. 1980년대 개인용컴퓨터가 보급되자 새로운 조판/인쇄 기술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한국의 인쇄계와 출판계는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 이대로 대응책이 없이 지나가면 금속활자를 최초로 발명하고도 독일과 일본의 조판기와 인쇄기의 소비 시장으로 전락한 뼈아픈 경험을 컴퓨터 혁명시대에 또다시 겪어야 할 수밖에 없게 될 것으로 판단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국내 상황을 기억해본다. 개인용컴퓨터에서 완벽한 한글을 구현하려면 스크린 폰트나 프린터용 폰트를 워드프로세서나 그래픽 프로세서 같은 응용프로그램에서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것보다는 운영 체제(O/S) 상에서 한글을 제대로 구현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한글이 가능한 운영체제 프로그램으로는 한글MS-DOS 프로그램, 한글 윈도 프로그램, 한글 유닉스 프로그램, 한글 시스템7 프로그램, K-DOS 프로그램 등이 있는데, 한글이 완벽하게 표현되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단지 삼보컴퓨터에서만 유일하게 MS-DOS 버전 6.0 이후부터 조합형 한글과 완성형 한글을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한글입력용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이밖에, 한메소프트의 윈도용 한메 프로그램과 DOS용 태백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영문 DOS나 영문 윈도에서 조합형 한글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2000년에 출판된 동일출판사의 <<ebook과 한글폰트>>책에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의 국내 상황이 나와 있다).
한국에서 컴퓨터를 판매하거나 제작하는 업자들은 1만 1172자의 현대 한글이 완벽하게 표현되지 않는 한글 도스 프로그램이나 한글 윈도 3.1이나 한글 윈도 95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는 것을 반성하고, 하루빨리 한글이 완벽하게 표현되는 컴퓨터와 운영체제 프로그램을 개발했어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1998년부터 공급되는 한글 윈도 98 프로그램에서는 현대 한글 1만 1172자가 가능하였으나, 옛한글은 2017년까지도 완전하게 구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2018년 6월부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현대 한글 1만 1172개와 옛한글 6천여자를 모두 구현하는 폰트인 순바탕체를 제작하여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참고: 이기성, ‘KS 한글 코드는 조속히 수정되어야 한다’, <월간 매경 PC 저널> PP. 180-183, 매일경제신문사, 1990년 4월].
대기업의 전산 담당자들이나 관계 공무원이 솔선수범하여 1999년 현재에도 한글이 20%밖에 표현되지 못하는 행정전산망 데이터베이스를 완전한 한글 코드로 바꾸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넷츠고 같은 상용게시판(PC통신) 프로그램도 한글이 100% 표현되는 한글 코드로 시급히 변환시켰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한글을 컴퓨터에서 다시 완전히 살려내는 일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문자 문화를 되살리는 길이고, 한글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고, 애국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에 한국의 소유권이 있는 한글 운영체제 프로그램인 K-DOS를 개발하였지만, 공무원들의 무지와 편견, 그리고 미국의 압력 등에 의하여 정부 부처를 비롯한 국내 각 사업체에서 사용하도록 하는데 실패한 결과가 1999년에 몰아친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파문을 일으키게 한 원인의 하나인 것이다. 개인용컴퓨터에 필수적인 윈도 운영 프로그램 한 개에 20만원이나 내면서 구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공무원과 국회의원, 외제를 무조건 좋아하는 일부 국민들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우리의 소유권이 있는 운영체제를 개발함으로써 외화 낭비를 막고, 운영체제 소유 국가에 노예처럼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세계화라고 해서, 국내 시장에서 외제 물품을 암만 잘 팔아도, 이것은 우리 민족이 세계적인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고, 외국 문화에 종속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참고: 1995년 9월 26일 화요일에 방영된 채널 13번 EBS-TV의 ‘컴퓨터는 내친구’ 강좌의 제 8 강 DOS #6 편에서는 “1994년에 K-DOS 버전 5.0까지 개발되었다”라고 말하는 K-DOS 개발자의 인터뷰 장면이 소개되었다. 교육방송 TV ‘컴퓨터는 내친구’ 강좌의 PD는 윤문상, 진행은 이기성/김다혜 2인이었다. K-DOS 개발자는 윈도95 같은 GUI 방식의 운영체제 프로그램 개발에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하나, 1995년 9월 현재 우리 정부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워했다].
2000년대 행정전산망용 한글 코드도 시급히 KSC-5700 규격에 따라야 했었다. 행정전산망 코드가 제대로 제정돼야, 국가기간 전산망의 모든 데이터베이스에서 완벽한 한글을 사용할 수 있다. 학교나 공공기관에 보급되는 컴퓨터의 규격을 지정할 때도 모든 한글을 표현할 수 있는 규격으로 정해야 한다. 한국PC통신, 데이콤, 나우누리, 삼성데이타시스템 등 대규모 상용게시판 서비스 기관에서 국내용 프로그램은 물론, 인터넷용까지 한글이 완벽한 코드를 사용한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사용자들이 완벽한 한글을 통신망상에서도 구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했다. 컴퓨터 규격에 한글을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한글에다 맞추어 컴퓨터 표준 규격을 지정했어야 할 것이다.
국내 일부에서는 1985년에 개인용컴퓨터를 이용한 출판 방식이 처음 개발되었으므로 디지털 활자 조판은 1985년이 세계 최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에서 DTP의 관점에서 본 견해이고, 실제로는 일본에서 1960년대 말에 이미 디지털 조판에 성공하였다. 컴퓨터를 사용하여 사전 편찬을 하는 등 전산 사식조판시스템인 CTS를 실용화시키고 있었다. 단지, 1970년대 초의 CTS는 입력기가 직접 디스켓에 입력시키지 못하고 종이테이프를 펀칭하고, 종이테이프 리더로 테이프를 읽어서 디스켓에 다시 입력해야 하는 방식이었던 점이 지금의 CTS와 다를 뿐인 것이다. 디지털이 기본이 되는 한국 전자출판 시대의 기본 인프라는 한글코드와 한글폰트이기 때문에 일부 한국 출판인들이 모여서 올바른 한글 표준코드의 제정과 다양한 폰트의 준비를 관계 부처와 언론, 출판대학, 출판연구소, 출판협회, 한글학회에 알리고 대응책을 함께 연구하였다.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까지는 원고 작성은 200자 원고지에 쓰는 것으로 배우고 있었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200자 원고지 사용법을 배웠다. 그러나 컴퓨터시대에는 가로 20자, 세로 10줄인 200자 원고지라는 고정된 형식이 아닌 자유로운 디지털 상태의 형식으로 바뀐다. 즉, 펜으로 네모칸에다 한 글자씩 써넣는 원고 작성법에서 키보드를 치는 방식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문서와 원고를 작성하는 프로그램인 ‘워드프로세서’라고 불리는 문서편집기(글틀/문서작성기/편집타자기) 소프트웨어가 탄생했다. 그러나 1980년대의 편집자는 소프트웨어가 무엇인지, 컴퓨터가 무엇인지, 워드프로세서가 무엇인지 그 단어 자체를 몰랐다. 실제로 1988년에 영진출판사에서 출판된 <<전자출판>> 책에서도 출판에 대하여 설명하기 이전에 컴퓨터 용어 해설을 제1부에서 먼저 자세히 다루고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출판인 ‘전자출판’이 무엇인지, ‘워드프로세서’가 무엇인지, 컴퓨터용 글자인 ‘코드’가 무엇인지, 개인용컴퓨터는 어떻게 사용하는지? 워드프로세서는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출판사 편집자들에게 시급히 필요했다. 우신사 노양환 대표가 광화문 출협 빌딩 내에서 ‘출판인대학’의 학장으로, 교학업무는 김세연 국장이 출판사 직원들의 연수 교육을 담당했다. 직장인이나 주부들이 컴퓨터 혁명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쉽게 쓴 책인 <<컴퓨터는 깡통이다>>가 베스트셀러로 등장한 것이 1993년도이다.
1940년대부터 독일과 일본의 납활자 조판/인쇄 기술에 한국의 활판 인쇄 산업계가 종속되었는데, 컴퓨터혁명시대에 나타난 전자출판 기술 혁신에도 또 동참하지 못하면 한국 인쇄계와 출판계는 다시 한 번 일본이나 미국의 기술 식민지로 전락하고 한글 서체 역시 일본이나 미국이 개발한 폰트를 수입해서 조판을 하고 책을 편집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이런 미래를 대비하여 일부 출판인들과 인쇄들이 모여 1988년에 한국전자출판연구회(CAPSO)를 정식으로 발족시키고 개인용컴퓨터 교육과 워드프로세서 교육은 물론 DTP 소프트웨어 개발과 전자출판 인프라 구축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전자출판연구회와 출판인대학의 출판인 연수 교육 과정 이외에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 전자출판 과목이 개설되었고, 신구대학, 계원예술대학, 김포대학, 서일대학, 혜전대학에서도 전자출판 과목 강의가 시작되었다. 당시는 컴퓨터혁명시대에 출판인은 어떻게 적응해야 할 것인지와 전자출판(CAP)과 전자출판물(EP), 전자책(eBook)이 무엇인지를 교육시키는 것이 우선 시급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