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간 단 한 번도 우리는 우리역사를 만들지 못했다.----열린 뜻 시론

150년간 단 한 번도 우리는 우리역사를 만들지 못했다.---------------김평일

 

세계사에게 유래 없는 제국의 탄생이 대한제국과 만주제국의 탄생이다. 대한제국과 만주제국의 탄생은 중국에서 조선과 만주를 분리하여 일본 영토로 만들기 위한 일본 제국주의의 음모라 할 수 있다. 민족사 최초의 제국 탄생이 일본제국의 음모 결과였다니 - 이런 치욕의 역사는 1895년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1897년 대한제국이 괴뢰국이 된 이후에도 계속 된다.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극동 최강 챔피언이 된 일본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먹기 위해 우선 외교권을 빼앗아가니, 1906년 을사보호조약 그리고 4년 뒤 1910년 동양평화 대동아공영이라는 미명으로 우리나라를 없앤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우리 역사를 결정 지울 수 없었다.1945년 일본항복으로 조국은 일본을 대신한 전승국 미국과 소련(러시아)이 점령하고 1946년 1월 미소 공동회의 결과 두 점령국은 우리를 배제하고 제멋대로 38선으로 민족을 가른다.

한편 당시 러시아 소련의 전제 통치자 스탈린은 태평양의 교두보 황금열매 조선을 1905년 일본에 내어준 이래 기회만 보다 진주만 폭격으로 일본 미국의 전쟁이 개전되자 일본패망을 확신하고 1942년부터 조선 경영을 계획하니 1945년8월6일 원폭투하 3일만인 8월9일 일본에 선전포고 후 두만강을 건너 침범하여, 8월15일까지 단 한 주간 참전으로 전승국이 되는 교활 함의 극치를 보였다. 이후 스탈린은 김일성을 앞세워 1950년 6월25일 38선을 무너뜨리고 남침하여 스탈린이 갑자기 죽는 1953년 3월까지 한국전쟁을 부추기더니 사망 4개월 뒤 휴전이 성립된다. 한 마디로 6.25는 스틸린이 시작 스탈린 죽음으로 끝나는 일인극과 같다.

그러한 스탈린 모노드라마 휴전을 요즘 평화 협정으로 바꾸자는 북한 김씨 조선의 제안을 젊은이들은 희망찬 통일의 열쇠로 받아 드리지만, 휴전이 우리 맘대로 안 된 것처럼 평화 협정도 우리 맘대로 아니 된다는 사실은 현실이다. 북한은 미국과 북미 평화 협정을 맺겠다고 하며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데 그러면 북핵이 무서워 미군이 철수 할 것으로 보이는가?

한반도는 전 세계 3대 강국과 국경을 이웃으로 하는 유일한 지정학적 입지에 놓인 나라다. 따라서 이들 3대강국이 지난 150년 우리나라 운명을 좌우 했다. 단 한번이라 이들에게 토를 달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국경을 접하지 않아도 2차대전 이후 미국은 맘에 안 드는 나라 14개국의 대통령을 미군 무력으로 살해하고(마지막이 2006년12월 살해 -- 사담 후세인)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가는 미군에 체포되어 미 연방법원의 종신 징역에 처해졌다. 이밖에 미군이 아닌 CIA 공작으로 처단 된 인사는 비밀공작인지라 세어보기 불가능 하다 한편 러시아의 KGB는 공작이 없었겠는가.

미소 공동회의 결과물 38선을 끝까지 저항하신 김구 선생님은 왜 돌아 가셨을까? 미소 점령군 만든 38선을 오로지 애국애족 신념으로 저항하신 분이 김구 어른이시다. 38선을 넘어 평양을 오가시며 민족통일을 위하여 무던히 애쓰시던 민족의 스승 김구 선생님은 1949년 6월26일 포병장교 안두희 소위의 흉탄으로 살해 되신다. 사건 당시 정부와 군 당국은 이 사건을 김구 선생님의 한독당 내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안두희는 재판 중 2계급 특진을 하였고, 사건 1년여 만에 형 면제 처분을 받고 군에 복귀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특혜를 받았다. 안두희 배후는 설왕설래 70년이 되어가지만 짐작컨대 미소공동회의 결과에 정면 배치하는 민족 지도자는 두 강대국을 당황케 하는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 30분께 안두희는 인천 중구 신흥동에 있는 그의 집에서 ,당시 46세의 박기서씨가 휘두른 정의봉에 맞아 죽었다. 그는 사망 당시 80세였고 최후의 그 순간까지 배후 비밀을 지켰으니 에이전트 가운데 에이전트 이었다.

같은 연유와 맥락으로 또 하나 -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있다.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의 미군철수 방침 대비로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장을 준비 하였고, 충남 대덕 단지에서 핵 개발을 착수 하니 미국 대통령 카터는 2번이나 한국을 방문 했다. 매끄럽지 못한 한미 정상회담은 불안 감을 낳았는데 -그리고 1978년 10월26일 KCIA 수장 김재규 정보부장은 대통령을 시해한다.

3대 강국을 이웃에 둔 우리나라 --사대주의는 우리 운명인가 보다. 이들의 이해가 섬세하게 얽힌 한반도에서 사대주의는 비극이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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