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화해와 일치”에 대한 단상--------치과임상 7월호 시론


“민족 화해와 일치”에 대한 단상 ---------------김평일

오늘은 2017년 6월25일 마지막 일요일, 67년 전 오늘도 같은 마지막 일요일이었다. 국군이 일요일 휴무로 외출 외박이 허용된 새벽 5시, 북한 인민군은 소련(러시아)제 탱크를 전면에 세우고 38선을 뚫고 선전포고 없이 전면 기습 남침한다. 민족의 크나큰 상처다. 그래서 6월의 마지막 주일을 가톨릭에선 해마다 “민족 화해와 일치”주일로 정하고 통일 기원 미사를 올린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당시 6살이던 그날을 회상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옛 노래, 두어 가사를 적어보았다

其-1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맨주먹 붉은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날을---/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의 겨레

其-2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 한다,/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 / 꽃닢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 자거라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돌진 한다./달빛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고개를 넘어서 물을 건너 앞으로 앞으로/ 한강수야 잘 있더냐 우리는 돌아왔다./들국화도 송이송이 피어나 반기어주는/ 노들강변 언덕 위에 잠들은 전우야

터지는 포탄을 무릅쓰고 앞으로 앞으로/ 우리들이 가는 곳에 삼팔선 무너진다./피가 묻은 철갑모를 손으로 어루만지니/ 떠오른다 네 얼굴이 꽃같이 별같이

일설에 의하며 이상의 몇 노래는 햇볕정책 당시 금지곡으로 지정 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가사 내용도 남북 친화적으로 바꾸어 개작 했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여부를 떠나 국민들 뇌리 서서히 사라지는 것은 이 가사를 기억 하는 사람이 거의 다 늙어죽어 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6.25 체험 세대는 윗 노래를 제대로 부르기 힘들도록 눈물이 북 바쳐 나온다. 특히 두 번째 노래는 유엔군 인천 상륙 작전을 계기로,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시작하여, 38선을 넘어 압록강 혜산진까지 조국 통일을 목전에 둔 전투에서 눈물겨운 전우애를 읊은 노래로, 피눈물을 쏟게 하는 “국민 노래” 였다.

국민을 버리고 도망간 정부-- 6월 27일부터 9월28일까지 3개월 적치하(赤治下)에서 공포정치 체험에 큰상처는 70년의 세월에 뭍혔다. 서울 시민 대부분이 피난을 못간 것은 무책임한 이승만 정권이 인민군의 추격을 늦추고자 한강교를 폭파하여, 서울 시민을 고스란히 적치하에 방치하니, 서울뿐아니라 지방도공무원만 피신하여, 낙동강 이남만 빼고 전국민은 적치하의 공포체험을 시켜 향후 반세기의 살아있는 반공교육이 되었다..

서울을 다시 빼앗기던 1.4후퇴 시엔, 두 번 당할 수 없어 서울이 텅 빈 도시가 되도록 전국민은 피난 보따리를 싸아 모두 피난하였으니, 그때 가졌던 공산당에 대한 공포심 적개심 반공의식은 후세대는 짐작도 어려워, 소위 전쟁 체험이 없는 전후 세대와 확연히 시각이 다른 전쟁체험 세대로 세대 구분이 되어 노소갈등이 시작 되어 왔다.

증오와 적개심을 버리기 위해 첫 단계는 용서다. 전후세대는 빨갱이가 어디 있냐고 비웃는다. 빨갱이 이기 이전에 동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체험세대는 --원수와 더불어 싸워 죽은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 그 밑에서 전사하리라 - 격앙된 인민군 적기가를 잊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린다. “원수들의 피” 물든 증오심으로 혁명성을 불러일으키던 그들의 붉은기 때문에 빨간 닭벼슬이나 맨드라미를 보고도 가슴이 철렁 했다는 표현이 글로 남은 전쟁 체험 세대의 가슴 철렁한 그 상처를 꽃길을 걸어온 젊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 서울 점령한 중공군(중국군)은 서울 시민이 썰물처럼 빠지도록 피난길에 오른 것을 보고 총사령관 팽덕회는 김일성을 크게 책망한다. 점령 3개월 사이에 서울 시민에 무슨짓을 했길래 빈 도시가 되었는가?, 인민군(북한군)을 고기라 하면 인민(서울시민)은 물인데, ― 마른 땅에서 고기가 살수 없음처럼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다고 책망하였다.

“민족 화해와 일치” 주일미사 강론 말씀의 핵심어는 “용서”였다. 말씀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 하라”하셨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형을 잡아간 한이 내 맘대로 용서 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가 어렵다면 시간을 통해 망각을 통해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로 인도 하신다고 강론은 결론 지었다. 그렇다 -- 하늘이 용서한 자는 사람도 같이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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