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방송 50년의 빛과 그림자---열린 뜻 설날 시론
- 화동
- 2017.01.2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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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방송 50년의 빛과 그림자 -------------김평일
텔레비전 수상기가 아빠보다 더 높다고 아이들이 믿는다. 아빠가 퇴근 할 때 온 가족이 반기던 옛 모습은 어디가고, 요즘은 아버지가 “아빠왔다.” 이렇게 자진 신고하면서 들어 와도, 애들은 시큰둥 힐끗 곁눈으로 아는 체 할 뿐 몰두하던 뽀로로 만화영화에 열중 한다. 뽀로로는 뽀통령이라나-!
텔레비전 방송은 전구민과 같이 한다. 특히 시사 교양등 프로그램에서 텔레비전 방송은 시청자의 정보 제공뿐 아니라 의식까지 바꿔준다. 한 사람의 의식을 바꾸고 지배하는 텔레비전 방송, 아빠보다 높고 남편보다 잘났으며 아들보다 믿음직한 텔레비전 방송은 절대 독재자이다.
1961년 5.16으로 정권을 잡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소장은 집권 첫 작업으로 일본에서 텔레비전 수상기 10,000대를 수입하여 시청앞 광장에서 추첨 분양 하였다. 당시 민영 HLKZ 방송국이 보신각 옆에 있었으나 국내 텔레비전 수상기는 수백대에 불과하고 방송 내용도 외국방송물 번역 방송으로 그 영세성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고교 1년생인 본인의 60명 클래스에 텔레비전 수상기가 집에 있는 학생은 단 1명 아마도 교내 1인인 듯 했다.
일인당 년간 국민소득이 70달러다 120달러다 하던 당시, 먹고 살기도 힘든 그때 미수교국 일본에서 텔레비전 수상기 10,000대를 수입한 정신 나간 행정 책임자를 국민들은 부정적 시각 으로 바라보았다. 박정희 의장은 텔레비전 수상기 수입과 동시에 HLCK 국영 텔레비전 방송국을 설립하고 우리말과 우리제작진이 만든 순 우리 방송을 시작 했다.
경찰관 입회하에 분양된 텔레비전 수상기 10,000대 중 1대가 우리 집에 송달 되었다.지금처럼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우리 집에서 텔레비전 방송 시청하기는 어려움도 많았다. 방송이 시작 되면 낯모른는 행인들 까지 이웃과 함께 안방극장에 들어온는 것은 물론 창문에 매달려 시청하는 어린이들 때문에 방범 창문이 떨어져 버려 하마터면 동내 애들이 다칠 뻔 하기도 했다. 특히 장영철 프로레슬링은 온국민이 열광했으며, 그때마다 우리 텔레비전 수상기는 창문 밖을 내다보는 자세로 설치하고 우리식구들은 집밖으로 나와 동내 사람들과 시청하기도 했는데 이때 시청자는 줄잡아 200명 이상이었으니 시골은 서울 보다 더하였을 것이고 10,000대 텔레비전 수상기 당 200명이면 2백만 시청으로 텔레비전 방송은 수개월내 국민 생활을 지배했다. 더구나 금성사(현 LG)에서 텔레비전 수상기를 양산 보급하면서 우리집 안방극장 가족도 평온을 되찾았다
이때 사람들은 박정희 의장이 왜 가난한 우리나라에 부자 일본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사들였는지 깨달았다. 대구 사범 졸업 한때 교사였던 그는 텔레비전 수상기 화면 하단에 하얀 지막글자로 국민 교육을 시작 했다. 길지 않은 잡막이지만 국민 세뇌에 충분한 멘트였다. 소위 “하면된다.” “올해는 일 하는 해” “5자 정신(五自精神)"등을 반복 주입시키니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 자유당시절의 정치깡패에 시달리던 의기소침한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러 넣어준 것이다. 1962년 1억불 수출은 국민 환호로 달성했고 그때 목표를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 재설정 한다는 자막이 뜨면서 “하면된다”라는 텔레비전 하단의 하얀 글자는 더욱 확실하게 국민들 머리에 새겨 졌다.
이렇게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준 텔레비전 선생님께서 50년 세월에 너무 늙었는지 치매에 걸렸는지 요즘은 국민들을 많이 실망시킨다. 저질 막장 드라마는 순진한 아낙네들에게 이혼을 부추기며, 방송노조가 지배하는 방송국은 편파보도를 일삼으니 촛불시위는 확대보도하고 태극기 시위는 축소내지 결방하여, 바로 진나라를 망하게 한 간신 조고의 지록위마(指鹿爲馬-황제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 사슴을 말이라고 온 신하들이 외치게 함) 고사라 아니할 수 없다.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빛이 그립고 국민을 실망 시키는 그림자가 싫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