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과 정치권만 철들면 우리나라 만세 치과임상 2월호 시론
- 화동
- 2017.01.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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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과 정치권만 철들면 우리나라 만세 ― 김평일
해방이라지만 우리 조국은 1946년 1월, 점령 승전국의 협정인 미소(美蘇)공동회의 결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렸다. 그 후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방을 세력권으로 강화하면서 80년대 동서로 갈리고, 90년대엔 부익부 빈익빈으로 소득별 계층 상하위로 나뉘어 동서남북상하(東西南北上下)로 3차원적 분열 하더니, 어제 오늘엔 노소(老少)가 분열하여 공간을 초월 시간의 4차원적으로 분열하여 동서남북상하노소(東西南北上下老少) 8원적으로 분열하여 청년들은 촛불을, 노인들은 태극기를, 들고 이 추운 겨울을 행진한다. 누가 우리 국민을 이렇게 갈라놓았을까? 모래알 같은 민족성 때문일까?
아버지는 태극기를 아들은 촛불을 들고 행진하기에 이 겨울이 더욱 음산하다.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가족 간의 덕담을 나누는 연말연시였건만 요즘은 대화조차 되질 않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은 언론이 급격히 진보 보수사이의 균형이 깨져버린 모습이다.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던 보수 언론들이 늘 감싸던 정부, 청와대를 지난11월이래. 갑자기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뿐 아니라 편파보도의 극단적 모습을 보이니 아연 실색할 지경이다. 왜들 이럴까? 북의 대남공작이 성공적이어서 일까?
극우성향의 언론들이 돌연 청와대를 공격한 원인이 ‘김영란 법’ 때문이란 억측도 있다. 기자들의 주 수입원은 출입처에서 주는 홍보 차원의 봉투이었다는데, 이 봉투가 금지 당하는 ‘김영란 법’은 언론 반란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회자(膾炙) 된다. 그래서인지 태극기 행진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언론은 마치 군사독재 때 언론 통제처럼 태극기 행렬 기사를 통제하고 줄이니 보수 성향의 태극기 행진이 홀대를 받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태극기 행진은 6.25 전쟁을 체험한 세대로 구성되어, 반공의식이 투철한 보수 세대여서 전쟁 기억이 없는 세대의 촛불시위와 완연히 구분 되며, 언론 매체들은 보도 초점을 촛불시위 보도는 증폭시켜 보도하고 태극기 행렬은 축소내지는 보도 자제의 모습을 뚜렷이 보인다.
언론은 옛 조선 왕조 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처럼 직필(直筆)을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는 직필을 굽히지 않은 사관들이 목숨을 잃을지언정 사초는 일획도 고치지 않은 필화사건으로 역사에 뚜렷하다. 역사의 진화를 거슬러 우리 언론이 이렇게 퇴화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담하다. 요즘 언론들은 직필을 버렸음은 물론 은연히 보수진영 파국으로 군중을 선동하는 모습이다.
나치 독일 선전 장관 괴벨스는 선동정치를 강조 했다. 그는 선동 원칙으로 1) 누구 하나를 범죄자로 만들고 2) 빵 한 덩이와 왜곡된 정보로 대응하는 충성 군중 만들고 3) 선동 군중은 증오심으로 뭉쳐 놓고 4) 언론을 장악한다. 그는 4항목으로 똑똑 하다는 독일시민을 뜻도 없이 지껄이는 앵무새로 길들여 여론을 장악했다. 이런 사악함은 나치 독일을 패망으로 유도 했으며, 독일 항복으로 그는 온가족과 함께 집단자살을 한다. 괴벨스의 망령이 2016년 11월을 부활 하여 우리 언론과 정치권에 나타난 것일까! 그의 4개 항목이 우리 길거리 정치 모습으로 다가 왔다. 국정을 국회에서 갖지 않고 길거리에서 군중을 이용하여 밀어 붙이기 이렇게 의회가 무시 된다면, 이는 우리 국가와 민족의 불행이며 민주주의의 위기다.
언론이 직필을 꺾어 지록위마(指鹿爲馬)하면 나라는 나침판을 잃은 배처럼 미래라는 항로를 이탈 할 것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항로이탈을 축제처럼 즐기려는 철없는 정치인들은 권력의 재편성을 호기로 이전투구(泥田鬪狗) 도모하니 이것이 진정한 국정농단(國政壟斷)으로, 국정이 마비는 바로 이렇게 오는 것이다. 바른 정치인이라면 스스로 ‘내 탓이요’를 외치며 난국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다. 국정농단, 국정마비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아픔에 통렬한 책임감을 갖는 철든 정치인. 철든 언론인이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