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__선강 시대 독서와 인강 시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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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__선강 시대 독서와 인강 시대 독서

뚱보강사 이기성, 공학박사

한국출판문화진흥원장, 계원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책에는 죽은 책과 산 책이 있다. 죽은 책은 정지된 그림이 들어있는 책이고 산 책은 움직이는 그림이 들어있는 책이다. 종이소설책, 종이교과서, 종이잡지는 죽은 책이고 전자소설책, 웹소설, 웹툰, 디지털교과서라 불리는 전자교과서, 전자잡지는 산 책이다. 정지된 사진이나 정지된 그림만 있는 책은 죽은 책이라 볼 수 있고, 움직이는 움직그림(꿈틀그림)이나 동영상이 들어 있는 책은 산 책이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선생님이 강의하는 선강은 죽은 강의이고, 인터넷에서 강의하는 인강은 산 강의인가? 물론 정적인 책과 동적인 책을 죽은 책과 산 책으로 비교하는 것이 좀 심하기는 하다. 그러나 글자, 소리, 동영상이 함께 통섭하여 난무하는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 시대에 정지된 그림과 글자만 가득한 책이 살아있는 책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하긴 하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티브이 소리를 듣고 엠피쓰리 음악을 듣고 세상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라디오만 듣고 자라거나 흑백 티브이를 보고 자란 엄마 아빠 세대와는 책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어른들은 종이책을 보면 독서를 잘 한다고 하고 전자책이나 웹소설을 보면 공부 안 한다고 야단을 친다. 참 억울하다. 이글을 쓰는 뚱보강사도 고등학생 때 야단을 많이 맞았다. 시험 공부하는 놈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한다고. 그 때 억울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보면 집중이 잘 되었다. 라디오에선 폴랭카나 비틀즈, 카니 프란시스라는 서양 가수 노래가 나왔었다. 지금은 한류바람에 엑소나 싸이, 원더걸스, 소녀시대, 씨스타가 날리는 시대. 음악 들으면서 공부한다고 야단치지 않는다.

 

요즘엔 고2인 우리 딸과 냉전 상태. 복면가왕이라나 무슨 대회에서 9번이나 우승했다는 하○○. 그런데 국카스텐이라는 밴드공연에 하뭐시기가 나온단다. 잠실에서 하는 저녁 공연인데 2분 만에 표가 매진됐다고. 정말 이상한 것이, 의자에 앉는 좌석표보다 서서보는 입석표가 더 비싸다니. 그런데 저녁 7시에 시작하는 공연에 글쎄 아침부터 간다고 집을 나선다. “, 미쳤냐? 9시간 전에 가다니”. “아빤 표 값도 안주면서 웬 간섭?” “, 공부를 그렇게 해봐라”. 이때부터 냉전 시작.

 

뚱보강사의 아버지는 출판사 사장. 아버지 친구분들이 책이 나오면 선물로 보내준다. 세계문학전집 50. 한국문학전집 20. 무슨 문고 100권씩. 응접실 책꽂이에는 두꺼운 책들이 가득가득 차 있다. 보기만 해도 질린다. 당시 인기가 있던 수호지나 무협소설책은 없고 명작소설, 고전문학책만 가득. 어쩌다 빨간색 표지 책을 펼쳐보니 재미가 있다. 아버님한테 야단 맞았다. 애들은 그런 거 보면 안 된다고. “야담과 실화라는 10권짜리 전집. 보지말라니까 더 보고 싶어 몰래 모두 보았다. 재미가 있는 책이 또 있나 들쳐보다가 좁은 문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주인공 제롬은 아주 어렸을 때, 두 살 위 사촌 누이 알리사에게 홀딱 반했다. 그런데 정숙한 알리사는 자기의 동생 말괄량이 줄리엣도 역시 제롬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줄리엣은 언니와 똑같은 희생 정신에서, 언니의 행복을 빼앗지 않으려고, 자기보다도 훨씬 연상인 구혼자와 결혼해 버렸다. 군대에 입대해 헤어져 있으면서 제롬은 알리사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다. 제롬이 결혼하자고 하면 알리사는 우리는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함을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 제롬이 생각했던 편지 속의 알리사와 직접 만나본 현실의 알리사는 생각과 행동이 다르므로 제롬은 알리사를 단념한다. 그러나 병들어 외롭게 숨진 알리사가 남긴 일기는 알리사의 가슴 아픈 비밀을 알려 준다.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고, 알리사가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의 행복보다도 오히려 제롬의 행복이었다. 제롬을 자기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함으로써, 저 성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둘이서 나란히 들어갈 수는 없다는 '좁은 문' 쪽으로 제롬이 혼자서 걸어가는 것을 보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뚱보강사의 가슴을 울렸던 일기의 한 구절은 하느님이시여, 다시 한 번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하여 주옵소서였다. 194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앙드레 지드의 책 좁은 문의 진정한 심오함을 당시에는 몰랐으나, 책에 나오는 화려하고 감미로운 글귀에 반해버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이 있다니. 서재에 있는 그 옆의 책, 또 옆의 책을 내 방으로 가져와서 계속 읽다보니 서재에 가득찬 책을 거의 다 읽어버렸다.

 

당시 뚱보강사는 여친이 생길 나이. 책을 읽을 때 멋진 문구를 발견하면 연애 편지에 써먹으려고 공책에다 적기 시작했다. 1이 되어 신문동아리에 들어갔다. 당시는 신문반이라 불렀다. 성당에서 본 예쁜 여고생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보낸다는 생각으로 연애편지를 써서 신문 칼럼에 실었다. 남자 이름은 제롬대신에 도밍고. 여고생은 조안나. 인기 폭발. 상급생들의 연애 편지 대필로 용돈을 푸짐하게 조달했다. 신문반과 문예반 학생 중에서 몇 명이 뜻을 모아 에버그린클럽을 만들었다. 당시는 농촌 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심훈의 대표작인 상록수책에 반해 있을 때.

 

상록수19358월 동아일보가 공모한 소설에 당선된 책. 공모전의 취지는 첫째, 조선의 농촌어촌산촌을 배경으로 하여 조선의 독자적 특색을(원문에는 색태와 정조를) 가미할 것, 둘째, 인물 중에 한 사람쯤은 조선 청년으로서의 명랑하고 진취적인 성격을 설정할 것, 셋째, 신문소설이니 만치 사건을 흥미 있게 전개시켜 도회인 농산촌을 물론하고 열독할 것이었다. ‘상록수의 여주인공은 원산여고 출신의 최용신을 모델로 삼은 것이란다.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한 축으로 삼아, 농촌 계몽운동에 헌신하는 지식인들의 모습과 당시 농촌의 실상을 그린 상록수책이름을 따서 클럽 이름이 항상 초록인 에버그린’. ‘에버그린클럽의 문예잡지 이름은 상록’. 1960년대는 개인용컴퓨터와 프린터가 나오기 전이라 초를 입힌 원지에 철필로 쓰고 갱지에 등사판으로 밀어서 문예지를 발행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에버그린 클럽의 상록과 세븐클럽의 스펙트럼이 양대 문예잡지. 두 클럽 모두 훈육선생님 방에 불려가 반성문을 썼다. 공부는 안 하고 쓸 데 없는 짓 한다고. ‘상록책의 권두언을 쓴다고 어려운 책을 읽어서 몇 줄씩 베껴 넣고. 요즘 말로는 표절을 한 것. 덕분에 어려운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좋은 문장을 골라서 공책에 적으려다보니 독서하는 습관도 붙고, 문장력도 많이 는 것 같다.

 

정적인 종이책이건 동적인 전자책이건 많이 읽는 것이 인생과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내용, 줄거리(영어로는 콘텐츠, 스토리)를 글자와 정지그림만으로 책을 만든 것이 종이책이다. 종이책에서 빼곡한 글자만의 답답함을 벗어나 글자 부분의 일부를 시각화(이미지화)시켜 디지털로 제작한 것이 전자책(이북)이고, 이미지화를 책 전체에 적용한 것이 드라마나 영화라 볼 수 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밥을 먹어야 X이 나오지, 먹지도 않았는데 X이 나올리 없다. ‘나는 글재주가 없어. 나는 글이 안 써진다라고 하는 경우는 나는 책을 잘 안 읽는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독서등산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취미 독서는 얻는 것이 적다. 독서는 자기가 필요한 것 또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찾아 읽는 기획 독서가 바람직하다. 한 번 읽어서 잘 모르면 두 번 읽고, 그래도 이해가 안 가면 세 번 읽고 그러다보면 대개 이해가 된다.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직접 강의를 듣는 선강 시대에서 인터넷에서 강의를 듣는 인강 시대에로 들어온 지금은 기획 독서가 정답이다. 읽을 책의 형태는 종이든 디지털이든 상관없다. 종이교과서, 종이단행본, 종이잡지, 디지털 교과서, 디지털 소설, 디지털 잡지, 웹소설, 웹진, 웹툰 무엇이든 가리지 말고 읽는 것이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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