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__글자는 문화를 담는 그릇 -글자와 기록-

 140_글자는 문화를 담는 그릇 -글자와 기록-

 

               뚱보강사  계원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이기성


  국가기록원에서 기록의 소중함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기록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연락이 왔다. 뚱보강사의 한글디자인과 한글타이포그래피, 한글폰트에 관한 논문을 본 모양이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어준 우리글이고, 한국글은 한국인이 사용하는 글이다. 한국글에는 한글, 한자, 옛한글, 이두 등 여러 글자가 있다. 도장처럼 글자를 미리 새겨놓고 인주를 발라 종이에 찍을 수도 있고, 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에 손으로 쓸 수도 있고, 볼펜을 잡고 손으로 종이에 쓸 수도 있다. 글자의 종류에는 손으로 쓰는 육필 글자와 활판으로 인쇄하는 금속 활자와 도자기 활자의 글자, 오프셋으로 인쇄하거나 모니터 화면에 구현시키는 컴퓨터 활자(폰트)의 글자가 있다. 이 글자의 모양(꼴)을 서체라 하고, 서체에는 그 형태에 따라서 본문용으로 사용하는 본문체(바탕체, 명조체), 강조용으로 사용하는 네모체(돋움체, 고딕체), 제목으로 주로 사용하는 제목체가 있다. 한 민족이나 한 시대의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려면 문화를 담아서 보관하는 그릇이 있어야 되는데 이 그릇이 바로 글자이고, 이 그릇을 모아놓은 것이 기록이 된다. 

 

 한글 활자 개발 역사

  우리나라 한글 활자 개발 역사를 간추려서 만든 표가 <<한글디자인 해례와 폰트디자인>> 책에 나와 있다(한국학술정보, 2009). 1945년부터 연도별로 국내 활자에 관한 역사를 알아보자.  1945년 광복 후 한글로 교과서를 제작하려는데 한글 납활자가 없어서 우선 필경으로 등사판 인쇄를 하였다. 필경용 한글 서체는 필경사들이 직접 손으로 줄판(홈이 팬 강철판)에다 철필로 쓰는 육필체였다(1945년에 프린트로 발행된 교과서: 동양사, 지리, 물리, 연합 각국의 정치조직). 납활자를 주조하여 인쇄하는 일반 교과서는 납활자 주조기가 수입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트레이싱페이퍼에 직접 글자를 제도하는 지리부도(우리나라의 생활부도, 이웃나라의 생활부도, 먼나라의 생활부도)용 한글 활자의 원도를 먼저 제작키로 하였다. 원로 제도사인 김영작이 국내 최초로 한글 서체 원도 한 벌을 완성하였다. 이 글자로 제도된 지리부도는 1952년에 ‘중학교 사회생활부도’라는 과목명으로 문교부 검정을 취득한다(이대의, 나와 검인정교과서). 


  일반 교과서용으로는 1952년에 한글 활자 원도디자이너 최정순이 문교부의 국정교과서용 납활자(연활자) 원도를 제작한다. 1955년에 역시 한글 활자 원도디자이너인 최정호가 동아출판사와 삼화인쇄의 납활자 원도를 그린다. 1962년에 최정순이 중앙일보사와 평화당인쇄의 납활자를 제작한다. 1966년에 최정호가 도서출판 장왕사의 교과서용 활자 원도를 그리고 이를 광명인쇄사에서 금속 활자로 제작한다. 이 장왕사 교과서용 활자의 자모는 광명인쇄사뿐 아니라 신일인쇄사, 법문사인쇄사에서도 사용되었다. 1972년에 10월유신 조치가 선포되고 1977년 검인정교과서 출판사 탄압사건이 발생하여 대형 출판사의 한글 활자 원도 그리기와 활자 제작 사업이 수년간 중지된다. 1984년 석금호의 산돌 서체회사 설립과 1986년 김명의의 캅프로86 사진식자기 발명으로 납활자 대신에 컴퓨터용 활자인 디지털 한글 폰트 개발 작업이 시작된다. 


  1987년 개인용컴퓨터에 연결되는 한글레이저프린터가 큐닉스컴퓨터와 삼보컴퓨터에서 출시되면서 영진출판사에서 국내 최초로 탁상출판(DTP) 방식을 사용하여 <<알기쉬운 BASIC 프로그램 모음>> 책이 발간된다(탁연상/이기성 공저).  1988년 최초로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 ‘전자출판’ 전공 석사과정이 신설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글 활자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시작된다. 그당시 한국전산원 주최 ‘출판분야 전산화 중장기계획’ 공청회에서 이환욱 한국사진식자회장은 “전국에 1200개의 사진식자업소 중에서 800개가 서울에 편중되어 있고, 디지털 폰트를 사용하는 전산사식기는 전국적으로 약 1000대가 보급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단국대의 ‘한한대사전 전산입출력 방향 검토회’에는 정주기기, 한국컴퓨그래피, 한국컴퓨터기술, 서울시스템, 선마이크로(현대전자), 매킨토시(엘렉스), 한국오쿠라, 한란(사켄), 삼화(모리자와)가 초청되었다.


  1989년에는 국내 최초의 PC통신이라 불리는 전자게시판시스템(BBS) ‘엠팔게시판’이 가동되고, 한국경제신문사에서도 나중에 하이텔로 명칭이 바뀐 ‘케텔게시판’이 시험 가동되었다. 또한 이기성이 호주에 출장 가서 ‘호주와 한국간 한글 컴퓨터 통신’을 성공시킨다. 1989년 7월 11일 호주 시드니에서 서울에 있는 컴퓨터와 전화선과 모뎀을 사용하여 조합형 한글코드로 통신에 성공하여 통신용 한글 폰트의 수요가 창출된다. 또, 문서작성용으로 이찬진의 ‘?글 1.0’이 발표되고, 몽당연필, 보석글V 워드프로세서가 무료 보급된다. 1990년 이어령 제1대 문화부 장관(1990-1991) 재임 시에는 문화부 홍보용 플래카드에 안상수체를 사용함으로 한글 탈네모틀체의 유행을 가져온다. 한편으로, 강경수의 한양정보통신이 한양시스템이라는 회사명으로 설립되어(1990년) 석금호의 산돌, 1989년에 설립된 윤영기의 윤디자인연구소와 함께 한양/산돌/윤디자인이 한글 폰트 제작의 트로이카를 이루게 된다. 이 3대 서체 회사는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모리자와/사켄 등 일본 사진식자 회사와 한글 폰트 디자인 경쟁을 시작한다. 1989년 설립된 휴먼컴퓨터 역시 탁상출판용 프로그램인 ‘문방사우’를 개발하고 ‘폰트매니어’라는 폰트 제작용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면서 서울시스템, 정주기기와 함께 한글 폰트 시장에 참여했다. 묵향서체로 유명한 강경수의 한양시스템은 1991년에 ‘한글과 컴퓨터’의 아래아한글에 HY신명조, HY중고딕 서체를 제공한다. 


문화부에서 한글 활자 원도 개발

  1991년에 문화부의 ‘한글 글자본 제정 기준안’이 확정 발표되었다. 문화부가 한글 교과서본문체(문화바탕체)의 한글 원도와 폰트를 개발하였다(연구원: 최정순, 홍윤표, 이기성). 강경수의 한양시스템이 코리아제록스에 레이저프린터용 한글 서체를 공급하고, 윤디자인연구소가 동아일보사에 한글 서체를 공급한다. 1992년 한글 표준코드에 KSC5601-92 조합형코드가 추가되어 한글 1만 1172개 음절 모두 표현이 가능해졌다. 문화부에서 한글 교과서네모체(문화돋움체)를 개발(검토위원: 김진평, 이승구, 이기성)하고, <<한글주요서체폰트 및 자소조합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문화바탕체->> 논문집을 발행한다. 윤디자인연구소가 조선일보사에 서체를 공급하고, 서울시스템(이웅근 사장)에서 조선왕조실록 CD 제작용 한글/한자  활자를 개발한다(1992-1995). 1993년 문화부에서 한글 교과서본문제목체(바탕제목체), 한글 교과서네모제목체(돋움제목체) 폰트를 개발한다(연구원: 최정순, 홍윤표, 이기성). 논문집 <<현대한글 낱내 순위에 관한 연구(1번-11,172번)>>가 (주)장왕사에서 출판되고, 동국전산의 홍우동이 한글 서체 홍우체를 발표한다. 문화부에서 한글 서체를 개발하는 기간에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을 비롯한 대학과 한국전자출판연구회 같은 연구소에서 한글 폰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1991년부터는 한글 활자 관련 석사 학위 논문이 발표되기 시작한다.


◆ <참고 문헌> 

계간 <기록인>, 2015년 여름호(통권 31호), 2015년 7월, 국가기록원


.[그림 1] 도자기 한글 활자(ceramic type)

도자기 한글 활자(ceramic typ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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