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단편소설 "아버지의 믿음"
- 화동
- 2014.11.04 11:03
- 조회 105
- 추천 0
최신작 단편 소설입니다.
"아버지의 믿음"
믿음으로 우리가 어찌 구원 되는지 --
문협 발행 월간문학 549호 (2014/11월호) 124쪽에서 141쪽
************************************************************************************************
아버지의 믿음--------------------------김평일
“불초 박동수가 사제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12살 철부지 시절 만화경이라는 장난감에 집착하다 당한 고난에서, ‘믿음’으로 구원되는 모습을 보여주신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고자 결심한 때문입니다.”
박동수 요한 신부는 자신의 사제 수품 50주년인 금경축을 맞아 축하하려온 하객의 축사에 대한 답사의 말씀으로 자신이 사제의 길을 걷게 된 추억어린 옛 이야기를 고백, 공개 하였다.
“50년 사제 생활에 처음 고백하는 이 이야기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 라는 말씀의 교리적 해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느님을 믿는 인간의 믿음’으로 인간이 고통과 죽음에서 구원 된다고 알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믿을 때’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처럼 인간은 구원 된다는 진실을 알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 인간이 인간을 믿어도 구원 된다는 진실은, 인간이 믿는 인간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를 믿어 주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종종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느님 모습을 보게 되니까요.”
*
“나도 만화경이 생겼으면 ―.”
동수네 초등학교 같은 반 반장 ‘이윤철’이는 반 애들의 부러움을 한껏 모으는 귀하신 몸이었다. 부잣집 막내아들답게 애들이 부러움을 살만한 여러 가지 인기 장난감을 학교에 가져와 반 애들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이번에 그가 최근 소개한 장난감은 마치 요술 같은 ‘만화경’이라는 장난감이다.
윤철이가 학교 앞 문방구에서 200환이라는 큰돈을 주고 구입한 ‘만화경’은 가로 다섯 치, 세로 한 치 정도의 꼭 같은 크기의 직사각형 거울 세 조각을 긴 변끼리 붙여서 내면이 거울인 정삼각기둥을 만들고, 빛이 들어오게 한쪽 끝은 젖빛유리로 막고, 젖빛유리 반대쪽은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한가운데 작은 작은 구멍을 낸 골판지로 막아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들고, 삼각기둥 안에는 여러 색깔의 색 쪼가리 등을 넣고, 삼각기둥을 조금씩 돌리면서 보면 색 쪼가리가 삼면의 거울에 반사되어 눈송이 모양 꽃송이 모양으로 보이는 요술 같은 장난감이었다.
요즘처럼 전자오락 등 첨단 오락이 넘치는 세대는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유치한 장난감이겠으나, 6.25 전쟁이 막 휴전으로 끝난지 6개월 뒤인 그 시절, 년 간 1인 당 국민 소득이 70 달러라는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나라 형편엔 만화경은 전대미문의 절대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전주 이 씨로, 이승만 박사처럼 왕손인 반장 윤철이는 공부는 별로지만 경찰서장이신 아버지의 금지옥엽 막내로 학교에서 유명했다. 윤철이 외할아버지도 자유당(50년대 집권당) 국회의원이어서 교장 선생님도 윤철이를 아는 척하는 처지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윤철이 형 윤호는 정말 대단했다. 별명 ‘낭기’로 통하는 전설적 건달 주먹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가 6.25 전쟁 직후여서, 미군부대가 시장 통 인접이었는데 늘 상인들을 괴롭히는 키 2미터짜리 근육 덩어리 미군 덩치가 시장 상인들에게 큰 고민이었었다. 집안에선 문제아들로 낙인찍혔던 윤호였지만 건달 중에는 의리 있는 형님으로 통했다. 천하의 낭기가 있는데 시장 상인들이 미군 한 놈 때문에 고통을 받다니, 이윤철의 형 윤호, 낭기는 자존심 상한정도가 아닌 치욕으로 여겼다.
“가만 둘 수 없다.”
키가 한자는 더 크고 몸무게는 두 배는 될 그놈을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게 혼내주려면 작전을 잘 짜야 한다. 그래 윤호는 상수를 불렀다. 상수는 소싯적부터 윤호 똘마니였는데 손만 닿으면 담장을 펄펄 넘는 재주가 있어 날래기 짝이 없었다. 건달 사이에 제비로 통하는 상수는 몸매도 물 찬 제비다.
“상수야 ”
“네 형님”
“나 요새 고민이 있어 ― 시장에 미군새끼 지랄하는 거 너 알지?”
“형님도 그 새끼 땜 열 받는 사람이 어디 하나 둘입니까? 당근 알죠.”
“ 이 몸 낭기가 형님 소리를 들으며 그 새끼 꼴 그대로 보고 있자니, 아― 썅 환장하것다.”
“―”
“그래서 말인데 네 실력 좀 빌리자”
“네에??―”
눈치 빠른 상수는 파랗게 질린다.
“새끼 겁먹지 말고 ― 야 이 낭기형을 믿어……”
“네 형님”
“그 미군새끼 시장에 나오면 넌 이렇게만 하면 돼―”
낭기는 제비로 하여금 미군에게 시비를 걸고 얼굴에 준비한 모래와 고춧가루 범벅을 홱 뿌리고 도망치면서 미군을 유인 하게 하는 유인 전술을 설명 했다. 시장 지리를 잘 아는 둘이는 작전지점을 면밀히 검토 연구 실험 하면서 제비가 미군에게 잡힐 듯 잡힐 듯한 장소를 결정적 장소로 정하고 그 지점 골목 어귀에 낭기가 매복하고 있다가 천하의 김두한 형님도 칭찬 했다는 낭기의 두발장수 차기를 날리기로 했다.
작전은 전설이 되었다. 단 일격인데 미군은 크게 다쳐 본국으로 후송 되었다. 헌병들은 범인을 잡는다고 온통 시장을 이 잡듯 했으나 상인들이 철통같은 보안작업을 동원하여 낭기를 숨겨주어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하고 그 폭력 사고는 미군 헌병에서도 미제사건으로 끝났다.
시장 상인 들은 그 무용담을 하나의 전설처럼 미화했다. 이 전설은 학교 안에서 더욱 미화되어 낭기형의 전설은 윤철이 형제의 전설로 공유 되었다, 그 이후 윤철이는 졸업반 상급생도 무시하고 교내 첫째 주먹을 자처해도 아무도 토를 달지 못 했다.
그러한 그가 어느 날 거금 200환짜리 만화경을 사가지고 와서 늘 하던 대로 유세를 떨기 시작했다 윤철이는 이 만화경으로 반 친구들을 마음대로 했다. 한번 보여줄 때 마다 다섯 번 이상 원통을 돌리면, 꿀밤을 한 대 씩 때렸다. 한번 보여 줄때마다 심부름도 해야 하고 별별 아니꼬운 일을 다 시켰다. 그래도 만화경을 보여 준다는 사실 하나로 애들은 황송 했다. 마치 조선시대 왕처럼 윤철이는 즐겼다. 윤철이 주변엔 사실상 신하들이 많았다. 늘 가방 들어주는 녀석들, 문방구 심부름 하는 녀석들, 여럿 호위병을 분단별로 두고 분단장에 되도록 했다. 그런 그가 거금 200환짜리 만화경을 가지니 달리는 말에 날개를 단 꼴이다. 그 시절 사친회비(師親會費: 수업료)가 한 학기에 1,400환 했으니 200환은 반 동무 모두에게 아주 큰돈이었다.
―아 나도 만화경이 생겼으면 ―
말 수도 적고 수줍은데다가 자존심마저 센 동수는 딱 한번 윤철이 만화경을 보았다. 잘못 돌려 많이 돌렸다고 꿀밤을 머리통에 맞는 것도 모른 체 ―, 그래서 더 갖고 싶었다.
그러나 동수 네는 동수 아버지가 방물장수 행상을 나가 보름 만에 한번 집에 오시는 근근한 생활이기에 만화경을 동수가 구입 한다는 것은 동수 생각에도 무리였다.
그런 동수에게 꿈이 이루어지려는지 보름 전 설날 세뱃돈으로 번 돈이 200환, 윤철이가 장만한 만화경 가격이었다. 예년엔 세뱃돈은 늘 엄마가 크면 준다고 뺏어 가곤 하셨는데, 설 전날인 까치설날 저녁, 동생 ‘동희’가 아파 엄마가 병원엘 응급으로 가셔서 이틀 병원서 자고 오신 북새통에 세뱃돈은 그냥 동수차지가 됐었다. 만화경과 딱 맞는 그 돈, 만화경 사는데 써도 되는지, 한 주간 망설이다가 결심한 것이 지난 주일날―
‘월요일 아침 등굣길에 문방구에 들려야지’
문방구 마 씨 아저씨가 생각에 떠올랐다. 딸기코에 늘 몸에서 소주 냄새가 나는 아저씨는 별명이 ‘말방구’다. 오래 전 간판이 ‘마문방구’였는데 어느 날 “문”자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 마 방구가 되었고, 그래서 애들이 모두 ‘말방구’ 아저씨라 불렀다.
오늘 따라 말방구 아저씨가 출근을 안했다. ― 월요일 아침이라서 월요병일까? 아니다 술 때문이다. 말방구 아저씨는 두꺼비 술을 좋아 하셔서, 시간을 잘 못 지키신다. 월요일 아침에 준비물을 못 챙기는 애들은, 늘 말방구와 두꺼비를 원망했다.
“야 동수새끼 아니야- 너 여기서 뭘 해?”
돌아보니 윤철이다.
“너도 여기서 뭐 사기도 해 ?”
“---------”
동수는 말없이 윤철이 눈치만 봤다.
“넌 준비물도 엄마가 사다 준다며?”
“---------”
“쌔끼―대답이 없어!”
‘딱’ ― 윤철이는 대답 않는 벌로 꿀밤 한방을 동수 머리에 먹이고 먼저 가버렸다.
“에잇 재수 없어……”
동수는 사라지는 윤철이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아 정말, 윤철이가 재수 없었고, 말방구 두꺼비는 더 재수 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재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방구의 술과 게으름으로 일어날 동수의 절망은 동수의 일생을 바꿔놓을 일이 곧 일어나게 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재수 없는 이날 3교시가 시작 되었을 윤철이가 교탁 앞으로 나가 담임선생님께 뭔가 일러바치는 듯했다. 말씀을 들으신 담임선생님은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시더니 반 학생 모두에게 모든 소지품을 책가방에 넣고 책가방을 교단 앞으로 내어 놓게 하였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구나. 윤철이가 200환을 잃어버렸다. 2교시까지 필통에 200환이 있었다는데 지금 막 없어 졌다니, 이제 곧 모두의 눈을 1분 동안 감게 할 것이다. 눈을 모두 감은 1분 새에 가져간 사람은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손을 들어 주기 바란다. 그러면 그 결과는 선생님만 알고 일체 비밀에 부치 것이며, 돈을 잃어버린 윤철이한테도 비밀로 할 것이다.”
반 애들은 모두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천하의 낭기 동생 윤철이 돈을 훔치다니, 애들은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자 이제부터 1분간 절대 눈을 꼭 감는다. 실눈만 떠도 선생님은 훔친 아이로 여길 것이다.”
“각자 마음속에서 뭐라 하는지 소리가 들릴 것이다.”
“윤철이 필통에서 200환을 가져간 사람은 손을 들어라. 아무도 눈은 뜨지 말라.”
담임선생님은 이런 식으로 세 번이던가 윤철이 돈을 훔친 사람의 자수를 유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수는 점점 가슴이 뛰기 시작 했다. 마치 자기가 범인인 것처럼― 이대로 훔친 애가 안 나오면 선생님은 소지품 검사를 할 것이고 만화경을 사려고 필통 안에 넣어둔 세뱃돈 엄마도 모르시는 내 돈을, 윤철이 돈으로 오해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은 방망이질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제발 하느님 훔친 애가 자수하게 해주소서. 동주는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모두 눈을 뜬다. 선생님이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돈 훔친 사람이 없다고 하니 이제부터 교단 앞에 내어놓은 너희들 소지품을 뒤져 볼 수밖에―.”
“반장 부반장 주번 앞으로 나와라.”
선생님과 3명의 학생이 가방 필통 등 소지품 검사에 들어갔다. 잠시 시간이 지나도록 부산한 가방 뒤지기가 진행 하더니―
“선생님 여기 있어요.”
윤철이가 동수 필통을 들고 소리쳤다.
아 ― 염려가 그대로 이루어지다니 동수는 머릿속까지 하얗게 질려 버렸다.
“윤철아 네 돈 맞아? 네 돈인지 표시를 어디 해 놨던 거야?”
“내 맞아요, 표시는 안했어도 세뱃돈으로 받은 새 돈이었어요. 보세요. 새 돈.”
선생님은 날카롭게 필통 속 20환을 살폈다.
“누구 필통?”
“박동수 필통입니다.”
“------------”
담임선생님은 잠시 생각 하시는 듯 했다.
“됐고, 아무래도 이 시간 수업은 자습이다―그리고 박동수 ―너-따라 와.”
동수는 웅성 웅성거리는 반 동무들의 소리를 뒤로 하고 선생님을 뒤따랐다. 말로만 듣던 훈육실은 교무실 옆이다. 담임선생님과 둘만 마주보는 이 자리는 마치 경찰서가 이렇겠구나 하고 생각 들었다. 동수는 온몸이 땀에 젖도록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담임선생님은 똑 바로 당신을 보라 하셨지만 동수는 무서워 바라 볼 수가 없었다.
“왜 그랬니.”
“―”
어금니가 부딪치면서 딱 딱 딱 소리가 나서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돈을 훔쳤어?”
선생님은 언성을 크게 높이셨다.
동수는 그래도 정신 차리고 진상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목소리가 자꾸 기어들어 간다.
"그 그 그 돈, 제 돈인데요."
"아니? 이 녀석이- 뭐 네 돈이야?"
"네가 이렇게 많은 돈을 갖고 다녀? -네 엄마도 아셔?
“-----”
"엄마도 모르는 돈이 200환이라―"
선생님은 어지간히 참으시면서 조용히 조용히 동수를 타이르셨다. 선생님은 사친회비 내기도 근근한 동수네가 아들에게 200환이나 필통에 넣고 다니게 할리 만무하다고 생각하고 그 돈은 윤철이 것이 확실하다고 믿는 것 같았다. 그러니 백번 해명해 보았자 모두 거짓말 변명으로 들리실 것이다. '―오 하느님'
날이 어둑해 질 때까지 선생님의 동수의 고백을 기다리셨다. 교무실 앞 복도에 몇 시간씩 무릎 꿇리는 고통과 오가는 모든 사람들의 구경꺼리가 되는 굴욕을 주시면서 훔친 돈임을 자인하는 고백을 기다리셨다.― 그리고 이튿날 엄마를 모시고 오라하시는 말씀을 남기시고 퇴근 하셨다.
난생 처음으로 집이 싫어 졌다.
‘불같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반쯤 죽일지 몰라’
그러나 엄마 모르게 할 일은 아니다. 내일 당장 엄마를 오시고 오라는 담임선생님 엄명이 있었으니까.
"왜 이렇게 늦었냐?"
"기냥"
엄마는 저녁상을 놓고 동수를 유심히 바라보신다.
"너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구나?"
"으 흐흐 흐흑 -"
동수는 어께를 들먹이며, 세차게 그러나 소리는 죽여 가면서 울었다.
"어여 밥부터 먹어-!"
엄마는 휑하니 밖으로 나가신다.
밥을 먹는지 마는지 허겁지겁 두어 술 뜨고 동수는 방구석에 가서 소리 안 나게 한없이 울었다. 그리나 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자신은 제 아무리 결백해도 내일 엄마는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하셔야 한다.
동수는 평소 1원 2원도 써보지 못 했다. 엄마는 애들이 돈을 알면 못쓴다고 준비물조차 말방구 아저씨 가게에 가서 직접 사다 준비하시는 분이다. 세배 돈을 받아도 늘 엄마에게 반납하여 왔다. 그런데 이번 세뱃돈은 동생 동희가 응급으로 병원에 가는 바람에 엄마께서 챙기는 것을 잊으셨고, 한편 동수는 만화경을 갖고 싶은 유혹 때문에 엄마한테 신고하지 않고 비자금처럼 갖고 있어서 벌을 받은 것이다.
울고 있는 동수를 실망스럽게 의심스럽게 바라보시던 엄마는 오늘 하루를 낫낫이 캐 물으셨다. 그 새 성격이 불같으신 엄마는 매를 참지 않으시니 동수는 지옥과 같은 밤을 보냈다.
날이 밝아 학교에 갈 일이 막막하다. 모든 친구들이 따돌릴 것이다. 집도 학교도 다 지옥 같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처지로 학교엘 갔다. 애들이 수근 거리고 눈을 흘긴다.
“박동수 - 이리와.”
윤철이가 불렀다.
"너 제대로 반성 했어?"
윤철이는 습관적인 특유의 꿀밤을 동수 머리에 날렸다. 하필 어제 엄마한테 맞은 자리라 더 아프다. 너무 아픈 표정을 지으니, 때린 자리를 윤철이는 만져 보았다.
" 너 어제 집에서 많이 혼났구나 ―!”
“----------------”
“됐고, 네 자리로 가……”
잠시 괴로운 표정을 짓던 윤철이는 벌떡 일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교단으로 올라갔다. 마치 담임선생님처럼 ―
“전체 주목, 동수가 잠깐 판단을 잘못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순간 실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동수는 우리 모두의 반 친구 아니냐. 그런 반 친구 사이란 뭐냐, 서로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하는 사이다. 오늘 동수를 자세히 보니 집에서 많이 맞고 혼난 것 같다. 그러니 반 친구로서 우리들도 동수를 도둑이라고 따돌린다면, 그건 상처 받은 친구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일단 동수는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용서를 받은 것이니 우리도 모두 동수와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
― 내가 동수를 용서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너희는 모두 친구로 동수와 전처럼 지내야 한다. 만약 앞으로 동수에 대해 요상한 생각이나 말을 꺼내는 쌔끼들이 있다면 나 이윤철한테 죽는다.”
잘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 말을 무겁고 화가 난 어투로 내 뱉다시피 하고 윤철이는 말없이 제 자리로 돌아갔다. 반 친구들에게 동수에게 편견을 갖지 말라 명령한 것이다. 윤철이의 말은 동수네 반의 법이었다.
동수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동수는 윤철이가 고마웠다. 반에서 늘 왕으로 군림하는 그가 자기 처지를 살펴 주었다고 생각했다. 어제 사건 이후 최초로 사람대접을 받은 것이다. 실로 어머니께 서럽고 서러운 것은 윤철이의 반만큼이라도 아들을 대접 했었다면, 마음이 이다지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담임과 엄마가 보기에는 200환은 동수가 필통에 넣고 다니기엔 너무 큰돈이었다. 평소 1원, 2원도 아니 쓰고, 큰돈을 지니지 않는 동수가 큰돈을 가진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심적 증거가 되고 만 것이다. 세배 돈으로 받았다고 해도 왜 엄마는 모르고 있었나, 역시 엄마의 분노를 살만 했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선생님이나 엄마나, 모두 미웠다. 반 친구들도 싫었다. 윤철이 으름장에 내색은 않지만, 전에 동수를 대하는 태도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특히 동수 짝 종민이가 그렇게 동수가 좋다며 살갑게 굴었는데, 종일 말이 없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여전히 말 수가 없다. 동수는 종민 이에게도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종민이 너마저도’-
건달 주먹의 전설 낭기의 동생이라는 사실 하나로 학교 친구들에게 윤철이는 존엄의 대상이었다. 반에서 학교에서 늘 왕 노릇을 하는 윤철이를 우습게 보는 애가 있다면― 감히 윤철이 돈을 가질 수도 있는 반 친구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이었지만, 단 한명 예외는 있다면. 윤철이도 다소 대우를 해주고, 윤철이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애는, 애어른 같은 영학이다. 영학이는 6.25 피난통에 취학을 놓쳐 나이가 또래 보다 다섯 살이나 많아 17살이다. 영학이는 동수와 같이 성당엘 다녀 잘 아는 처지인데, 결코 윤철이의 돈을 손댈 아이가 아니다. 형이 없는 동수는 영학이를 늘 형처럼 생각해 왔었다. 그러니 윤철이 돈을 아무도 가져 갈 반 친구는 없다. 담임선생님과 엄마는 이러한 반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짐작이라도 한다면 동수가 범인 이라고 단정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야 했다.
그러니 대체 누가 감히 윤철이 돈을 훔쳤을까?’ 하루 이틀이 지나며 동수는 의문점이 점점 자라기 시작 했다 그 시작점은 극히 작은 의문 윤철이에 대한 의문점이다. 겨자씨만큼 생긴 이 의문점은 나날이 커져 의문의 큰 나무로 자라고 있었다.― 그렇다 윤철이 돈을 훔친 범인은 없었다. 다른 애들은 동수가 훔쳤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동수가 보기엔 훔칠 사람은 없다. ― 이것은 윤철이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꾸민 자작극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 하였다. 윤철이는 그날 돈을 잃어버린 날이 아니라 자작극으로 돈을 번 것이다.
마문방구 앞에서 윤철이와 마주 쳤을 때 눈이 날카로운 윤철이는 동수가 뭘 살 돈을 갖고 있는 것을 간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엄마도 모르게 구입 한다면, 그것은 만화경일 것이라는 짐작도 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윤철이가 반 애들에게 동수를 전처럼 대해주라는 명령을 내린 그 때부터였다. 평소 애들에게 난폭한 왕처럼 군림하던 윤철이가 동수에게, 그것도 자신의 돈을 훔치려 했던 동수에게, 전처럼 잘 대해 주라는 명령을 내려 동수를 보호할 까닭은, 있을 수 없는 극히 이례적 일로 곰곰이 생각해보면 병을 주고 약을 주는 형국이었다.
윤철이는 담임을 속이는 자작극으로 동수 돈 200환을 빼앗은 것이다. ― 생각이 여기에 머물면서 동수는 이제까지의 괴로움을 넘어 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앞 뒤 사정을 전혀 고려치 않고 편견 속에서 자신을 몰아세운 담임선생님과 엄마에 대하여 섭섭한 서운한 감정도 함께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빼앗긴 내 돈 200환’ 그것 이외에 세상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동수의 고통은 점점 커지기 만 했다. 어떤 말을 하건 친구들은 자신을 전처럼 대하질 않았고, 그런 점은 담임도 엄마도 마찬 가지였다.
이렇게 한주간이 지나면서 토요일이 되면 아버지께서 장사 일을 끝내고 오실 터인데, 엄마처럼 아빠는 얼마나 낙담하실까, 하는 걱정도 점점 같이 커졌다.
아 -늘 그립던 아빠! 동수는 평소 유달리 아빠를 그리워해서 2주마다 아빠가 오시는 토요일을 기다려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죽을 운명이 다가올 때처럼 아버지 오시는 토요일이 무서웠다. ‘아― 이대로 돌처럼 굳어 버렸으면' -동수는 길가에 뒹구는 무심한 돌의 신세가 부러웠다.
마침 사순절이라 금요일 저녁엔 성당에서 저녁 7시에 ‘십자가의 길’ 기도가 있었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예수님께서 죽을 죄인으로 판결을 받으시고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셔서 죽임을 당하시는 모든 과정을, 십자가를 지고가신 길을 14개 처소로 나누어 묵상하며 기도 하는 가톨릭교 기도의 하나다. 14개 처소를 7개 처소로 나누어 성당 좌우에 각각 7처소의 성화를 그려 붙여 놓고 그 성화를 바라보며 해당 기도를 바친다.
고통스러운 동수는 내일 오실 아버지께서 자신 때문에 고통 받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하고 싶어 성당엘 갔다. ‘십자가의 길’ 기도 시간에 동수는 하염없이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십자가의 업을 이루시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하실 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였다. ‘호산나 만세’를 부르며 나귀타고 오시는 길엔 사람들의 자신의 겉옷을 벗어 깔고 나귀가 밟고 지나가도록 환영 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한 이스라엘 기득권층은 죄악의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잡히셔서 죽기까지 예수님은 성경 예언서 그대로 ‘묵묵히 끌려가는 양처럼’ 일체의 거부감 없이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다.
지극히 선하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율법학자와 기득권층에 의해 체포되시고, 채찍질의 고통을 받으시며,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이스라엘의 왕이란 조롱을 받으시며, 그들에 의해 로마 총독 빌라도의 재판에 넘겨지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언덕을 향해 걸어가시는 모습 속에서 동수는 현재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그대로 찾을 수 있어 한없이 가슴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동수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처음으로 받아 입으로 모시는 첫 영성체를 위한 준비 교리를 받을 때 교리를 가르치신 헬레나 수녀님은 남의 살과 피를 먹어야 사는 이세상의 죄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우리 양식이 되시기 위해 예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온 빵 생명의 빵이라고 요한복음 6장에 말씀 하신다. 수녀님께서는 생명나무, 곧 십자가 나무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생명나무 열매로 열리시기 위해 말없이 묵묵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그러니끼니 영성체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예수님 생명으로 사는 게야 알간?”
그렇다 묵묵히 죄 없이 죽어 가신 예수님을 따르려면 나 동수도 묵묵히 죄 없이 당하는 이 모든 고난을 감사하게 받을 것이다.
“박동수 요한아 영성체를 통해 나의 살과 피를 받아먹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았으니 너도 네 자신을 이웃의 밥으로 내어 놓아라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요 며칠 사이 너의 억울함과 고통을 묵묵히 받아주고 있으니 너는 진정한 크리스천이다.”
동수의 마음속에 십자가 길에서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제1처의 묵상, 예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심’ 담임선생님 반 친구들 그리고 엄마까지 동수를 도둑으로 몰아치셨다. 윤철이를 그리고 누구든지 미워하지 말게 하소서
‘제2처의 묵상, 십자가를 받으심-’ 엄마 앞에서 순종하며 끝까지 엄마를 사랑합니다.
‘제3처의 묵상, 예수께서 1차 넘어지심’ 기력쇄진으로 예수님은 제7처 제9처까지 3번 넘어지신다. 무거운 예수님 십자가 뒤를 따르는 동수의 작은 십자가를 동수는 찾아냈다.
‘제4처의 묵상, 예수님은 길에서 어머니 마리아님을 만납니다.’ 마리아님은 아드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넘어지심에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나오신다. 기도하는 동수의 모습을 성당 한 쪽에서 바라보실 엄마, 나 울고 있습니다. 나도 넘어졌습니다. 그리고 엄마 사랑합니다.
‘제5처의 묵상, 시몬이 십자가 짐을 도와줌.’ 고통의 아드님과 비통의 어머니의 만남에 악당들도 마음이 움직여 농부 시몬이 십자가 잠을 돕게 한다. 윤철이도 동수를 잠시 아파했다.
‘제6처의 묵상, 착한 여인 베로니카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 예수님을 얼굴을 닦아드리는 착한 여인의 용기와 사랑에 예수님은 그 수건에 당신 얼굴을 새겨주신다. 동수의 마음에도-
‘제12처의 묵상,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일곱 말씀을 남기시며 돌아가신다.’
‘첫 말씀’ “목마르다.” ―예수님은 출혈로 극심한 갈증, 동수는 엄마 담임 친구들의 오해로 극심한 사랑의 목마름을 체험하니 동수는 목마르다 사랑을 고백 합니다.
‘둘째 말씀’ “요한아 마리아님이 너의 어머니시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아들과 어머니는 사랑입니다. ― 아아 아무리 오해 하셔도 동수는 어머니 사랑입니다.
‘셋째 말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지극한 고통과 소외를 느끼신 주님. 동수도 미약하오나 고통, 소외됨을 지니고 주를 따릅니다.
‘넷째 말씀’ “아버지 저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니 저들을 용서 하소서” 모든 이가 엄마까지도 동수의 처지를 모릅니다. 그들 모두를 사랑하게 하소서.
‘다섯째 말씀’ “함께 낙원에 들 것이요.”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오른쪽 강도처럼 우리 모두 주님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여섯 번째 말씀’ - “아버지 내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주님 이 시련도 맡기오니 두렵지 않습니다.
‘일곱 번째 말씀’- “마쳤다.” 예수님은 사랑의 과업을 마치시고자 십자가 나무에 생명을 주시는 생명나무 열매가 되셨습니다. 주님 저의 마음도 주님 마음과 같게 하소서.
*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동수는 첫날 엄마에게 혼날 때 흘린 눈물과 고통 그것과 사뭇 다른 감각의 눈물을 체험하면서 엄마를 모시고 밤길로 집에 돌아왔다.
어제 저녁 십자가의 길 기도로 동수는 용기를 얻었으나 토요일 학교에서의 친구들과 담임의 찬바람은 여전 했었다. 그러나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고비를 넘긴 듯했다. 기도를 들어주신 것일까? 기도 전엔 아버지께 혼날 일을 생각하며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어제 저녁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친 후 마음이 달라졌다. 아버지께 혼날 일이 무서운 것 보다. 아버지를 상심 시킬까 더 겁이 났다. 보름에 한번 집에 들르시고 머나먼 행상 길을 고생길을 다녀오시는 아버지께 얼마니 큰 실망을 끼쳐 드릴까 또 사랑하던 아들을 혹시 싫어하실까 동수는 아버지도 엄마 같을까 생각하며 또 마음을 조였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
다른 때에는 마른 내 돌다리를 방물짐 실은 손수레가 덜컹 소리를 내면 동수는 총알처럼 튀어 나가 “아버지” 하며 마중을 나가 손수레를 같이 밀어 드렸었다. 그러나 오늘은 돌다리가 잘 보이는 대청마루엘 나가 앉을 용기가 나질 않아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밥 먼저 먹어 .”
4식구지만 아버지께서 오셔야 식사를 했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늦으신다. 해가 지자 동희와 엄마 동수 이렇게 셋만 식사를 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식곤증에 깜박 초저녁잠에 빠졌는데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여보― 동수 너무 혼내지 말고 말로 잘 타일러요. 담임선생한테 혼나고, 나한테 맞을 만큼 맞았고, 한 주간 내내 혼났으니.”
공부방에서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는 안방에서 진지를 드시나보다
가슴은 콩닥콩닥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 했다.
저녁상을 물리시고 아버지께서 동수 공부방으로 들어오셨다.
“잠이 들었더구나.”
“그래―너희 엄마한테 이야기는 다 들었다.”
“-----”
말없이 ― 동수는 아버지를 살펴보았다.
의외로 평소처럼 무표정하신 아버지 모습에 동수는 다소 놀랐다.
“―그런데 아버지는 동수의 말을 직접 듣고 싶구나.”
동수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할지 몰랐지만 그보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덜덜덜 덜리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모기소리처럼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래도 정확히 아버지는 아셔야 할 것이기에 동수는 정신을 바로 차리고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아버지께 말씀 드렸다. 성당에서 신부님께 첫 고백성사를 했던 작년 여름 그렇게 긴장 했었는데, 동수는 아버지께 그 때보다 더 진지한 고백성사를 하고 있었다.
“-----------”
아버지는 언제 잡으셨는지 동수의 손을 꼬옥 잡고 입은 굳게 다무신 체 동수의 고백을 듣고 계셨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눈물자국이 볼에 비치신 것이다.
동수의 고백이 끝나자 아버지는 동수를 품에 꼭 끌어안으시며 눈물 젖은 까칠한 수염자국의 볼을 동수 얼굴에 부비시며 말씀 하셨다.
“동수야 아버지는 동수를 세상의 누구보다 잘 안다. 아버지는 동수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 세상 누구보다 동수를 믿는다.”
*
아―, 그리운 아버지, 그 옛날 아버지께서는 믿음으로 아들 동수를 고통의 수렁에서 건지셨습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저로 하여금 윤철이를 용서 하게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저의 뒤에서 저를 흉보는 모든 친구들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믿어 주심이 저로 하여금 주님 더욱 굳세게 믿도록 하여 주시고, 서품 50년을 맞이한 늙은 사제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끝으로 늘 아버지 안에 계셨고, 지금은 하늘에 함께 계실 우리 주 예수 성심께 금경축의 모든 믿음 소망 사랑을 봉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