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8__ 걸을 때 몸의 변화. 어버이 마음과 자식 마음. 최순실과 안민석. 독일차관 3억 마르크


1218__ 걸을 때 몸의 변화- 어버이 마음과 자식 마음- 최순실과 안민석- 독일차관 3억 마르크--- 83ok

뚱보강사 이기성

 

1218__ 걸을 때 몸의 변화. 어버이 마음과 자식 마음. 최순실과 안민석. 독일차관 3억 마르크

 

뚱보강사는 아침 식사 후나, 점심 먹은 후에, 햇빛을 쐬면서 매일 1000~2000 걸음을 걷습니다. 5/10() 1739 걸음, 5/11() 2091, 5/12() 1419, 5/13() 1514, 5/14() 1416, 5/15() 1396, 5/16() 915 걸음. 최근 만보기에 나온 1주일 평균은 1499 걸음입니다.

 

   한 시간 걸을 때 몸의 변화

 

한 시간 동안 걸었을 때 2분 후, 5분 후, 60분 후,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봅니다.

1. 2분 후: 혈액순환이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근육과 뇌가 깨어난다.

2. 5분 후: 심박수가 올라가고, 혈액순환과 산소 공급이 활발해진다.

3. 10분 후: 관절이 부드러워지고 뻣뻣함이 줄어들며, 기분도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한다.

4. 15분 후: 몸이 에너지원으로 지방을 태우기 시작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5. 30분 후: 엔도르핀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불안감이 줄어든다.

6. 45분 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개선되기 시작한다.

7. 60분 후: 몸이 본격적인 지방 연소 모드로 전환되며, 신진대사가 몇 시간 동안 활발하게 유지된다.

 

 

   예쁜말, 인간답게 친절하게 살아가자

 

좋은 기회를 만드는 예쁜 말 7가지(Human Be Kind)

1.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2. 저 혼자 힘으로 한 게 아닙니다.

3.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4. 부족한 점이 많지만, 더 노력하겠습니다.

5. 이걸로도 너무 만족합니다.

6. 도움이 되었다니 너무 기쁩니다.

7. 더 많이 성장하고 싶습니다.

 

 

   어버이 마음과 자식 마음

 

어버이날에, 자식한테 절대 기대하면 안 되는 것 6가지

1. 카네이션 한 송이라도 사오길 기다리지 마세요. 매년 똑같이 잊습니다'

바쁘다 잊었다는 핑계, 한 해도 안 빠집니다.

2. 어버이날 당일, 전화 한 통 기대하지 마세요

'며느리·사위가 알아서?' 전화 안 거는 게 요즘 자식들 패턴입니다.

3. 외식이나, 밥 한 끼 사주길 기대하지 마세요

'다음 주말에 갈게요.' 그 다음 주말은 영영 오지 않습니다.

4. 용돈을 줄 거라고 꿈도 꾸지 마세요

'받으면 기쁨, 못 받으면 당연.' 기대가 없어야 서운함도 없습니다.

5. 부모의 건강을 챙겨주길 기대하지 마세요

'본인이 아프면, 병원은 본인이 스스로 가야.' 자식이 약을 챙겨주는 시대는 벌써 끝났습니다.

6. 손주를 데려와서 함께 시간 보낼 거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손주는 효도 도구가 아닙니다'

 

 

   아줌마가 하지 말아야 할 것!

 

1. 가족들한테 잔소리를 하지 마라... 이제 아무도 안 듣는다

2. 바가지 긁지 마라... 남편의 퇴근이 늦으면 좋아할 나이다

3. 화장하고 다녀라... 이제 생얼은 청순하지 않고, 쪽팔리는 나이다

4. 20대를 야단치지 마라. 본인이 아무리 예뻐도, 다 가졌어도. 똑똑해도...

젊은 20대한테는 못당한다

5. 아줌마가 30대인 척 하지 마라... 남들은 다 안다

6. 남편을 너무 구박하지 마라... 그래도 애들이 떠나고 나면, 남는 건 그 놈 한 놈뿐이다

 

 

     최순실과 안민석

 

팔로워 6천 명팔로잉 1천 명의 손문호 님이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거짓말로 국정을 농단한 인간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피해자 최순실씨는 감옥에서 10년이나 고난을 당하는데... 최순실을 석방하고 사면해야 법치가 살아있는 것 아닌가요?

 

팔로워 1.8만 명팔로잉 108, [시민일보] 고하승 님의 글입니다.

최순실이 스위스 계좌에 돈을 숨겨두었다고 난리를 치던 안민석 전 민주당 의원... 오늘 대법원이 허위사사실을 유포한 그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둥이를 함부로 놀린 대가다. 그런데 그런 놈이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고? 너무 뻔뻔한 거 아냐? 저쪽 진영은 사람이 그렇게도 없나? ? 교육감이 되면 학생들에게 거짓말 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에라~~ 당장 교육감 후보직을 사퇴하라!

 

 

     안민석 ‘300조 원 사기극

 

[KBS 뉴스] 박세준 촬영기자의 [현장영상]입니다. ‘최서원 명예훼손안민석, 1심 유죄제보자 신분 입증해 항소”(2025710).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 대한 명예훼손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심 재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수원지법(형사19단독 설인영 판사)은 오늘(2025710)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민석 전 의원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공소제기된 안민석 전 의원의 발언들 중 1개 발언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하고, 나머지 발언들은 모두 무죄로 봤습니다.

 

유죄 판단 부분의 양형에 대해서, 재판부는 "피고인은 구체적인 근거자료를 제시하는 노력 없이, 공중이 상당히 관심 가질 사안에 대해, 허위 사실을 적시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 "다만 유죄로 인정된 명예훼손 행위의 횟수, 동종범죄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가 유죄로 본, 안민석 전 의원의 발언은 "최 씨가 미국 방산업체 회장과 만났고, 이익을 취했다"는 내용입니다.

 

다음 내용은 ‘5.18 유공자 명단과 유공내용 공개촉구 국민연합 (5.18 공촉연)’의 피드 게시물입니다(2026421).

‘300조 사기극의 끝, 2,000만 원 그리고 경기교육감 후보 안민석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나선 안민석 전 의원의 행보가 거침없다. 예비후보 등록 뒤 공약 발표를 이어가고, 진보 진영 단일화 경쟁에도 뛰어들며, 선거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안민석 전 의원은 최근 특수교육 공약과 돌봄·교육 관련 공약도 잇따라 내놓고 있다.

 

20년 정치 경력의 5선 국회의원 출신 안민석 전 의원이 국가와 사회에 더 기여하겠다며, 경기도교육감 선거에 나선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있다. 대한민국 전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던, 이른바 최순실 300의혹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은닉 통치자금이 300조 원에 이르고, 그 돈을 최순실 측이 관리했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바로 그 말이, 한때 대한민국 온 나라를 흔들었고, 당시 국민 대다수는 분노하고 좌절했다. 최근 대법원은 안민석 전 의원이 최서원 씨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그 충격이 컸던 이유는,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엄청난 액수와, 그 말을 뱉은 당사자가 5선의 현역 국회의원이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름 없는 제보꾼이나 유튜버가 아니라, 국민이 뽑은 현역 국회의원이었고, 그가 겨눈 대상도, 당시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많은 국민이 그 말을 가볍게 흘려듣지 못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안민석 전 의원은 그 거대한 의혹을 말로만 키운 것도 아니었다. 그는 독일과 스위스를 누비며, 마치 거대한 은닉 재산의 실체를 곧 밝혀낼 것처럼 행동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해외를 뛰어다니며 의혹을 좇는 장면은, 그 자체로 강한 신호가 됐다. 많은 국민이 그 말을 더 무겁게 받아들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훗날 법원도 안민석 전 의원이 직접 조사한 것처럼 행동해, 의혹의 신빙성을 키우고, 비난의 수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판단했다.

 

안민석의 거짓말은 곧바로 정치적 효과를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조건 끌어내려야 할 존재가 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업화의 지도자가 아니라, 검은돈을 남긴 독재자로 다시 불려 나왔다. 실제 확인은 뒤로 밀렸고, 분노와 낙인은 먼저 자리를 잡았다. 한 번 굳어진 이미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드러난 뒤에도, 쉽게 걷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과장이나 실언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나라의 기억을 흐리고 국민의 판단을 흔든 대형 정치 선동이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결말이다. 그렇게 나라를 흔든 사건의 법적 결론은 최근에서야 나왔다. 이번 확정은 20215월 최서원 씨가 손해배상 소송을 낸 뒤 410개월여 만에 나온 결론이다. 나라를 흔든 말의 정치적 효과는 이미 다 지나간 뒤였고, 상처는 이미 남을 만큼 남은 뒤였다. 그 거대한 거짓의 끝이 민사 2,000만 원이라면, 국민이 느끼는 것은 분노를 넘어 깊은 허탈감일 수밖에 없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법의 잣대다. 이 나라에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은 결코 가볍게 다뤄지지 않는다. 태블릿PC 조작설을 유포한 변희재 씨가 징역 2년 확정판결을 받은 사례와 비교해 볼 때,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안민석 전 의원이 피선거권을 유지한 채, 다시 선거판에 나선 현실은 국민에게 깊은 허탈감을 안겨준다.

 

안민석 전 의원이 사실상 중대한 처벌 없이, 민사 2,000만 원 배상에 그치고, 피선거권까지 유지한 채, 다시 선거에 나선 현실은 국민에게 큰 허탈감과 무력감을 안긴다. 더 답답한 것은 그다음 장면이다. 그렇게 큰 의혹을 퍼뜨리고도, 그렇게 큰 상처를 남기고도, 그는 지금 경기교육감 후보로 다시 뛰고 있다.

 

교육은 신뢰와 책임의 영역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질 교육감은 말의 무게와 근거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

허위 주장으로 사법적 철퇴를 맞은 당사자가 아무런 정치적 자성 없이 다시 교육 수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교육의 본질에 반하는 일이다. 거짓의 끝이 2,000만 원이라는 면죄부가 되고, 그 당사자가 다시 교육감 후보로 등장하는 현실... 이는 비단 한 정치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법적 잣대가 국민의 눈높이와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독일차관 3억 마르크

 

팔로워 9.1천 명팔로잉 3.2천 명, East-West Center 박승배 님이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의 기적으로> 재미동포 학자 양재윤 박사의 청와대 근무 18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직필 증언,

~라인강의 기적을 한강의 기적으로~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가장 풍요롭고, 국민소득 35천불을 넘는 세계 10대에 들어가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저는 19615.16군사혁명정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비서실에 행정관으로 보직을 받고,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해서 18년동안 그분을 모시고 공직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최고회의는 혁명주최인 군장교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살기가 등등 했습니다. 그속에 민간인은 나혼자였고 혁명군 장교들은 국민복을 입은 나를 보는 눈빛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중략>

 

5.16 군사혁명의 배경

1961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2번째로 제일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혁명군은 1961516일 새벽 3시에 영등포 문래동에 있는 제6관구사령부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한강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혁명군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혈로 국가 3권을 장악한 뒤, 육군참모총장 장도영을 위원장으로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이것이 혁명정부 국가재건최고회의입니다.

 

그리고, 혁명제1성에서 우리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궐기한 것이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는다. UN 헌장을 준수 한다. 지금까지 사회의 부패와 구악을 일소해서 새로운 기풍을 진작한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 한다”. 이렇게 혁명공약을 발표했습니다.

 

국가 3권을 장악하고, 혁명에 성공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장군은 맨 먼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국민을 구하고 경제개발계획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우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John F. Kennedy 미국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Kennedy 미국 대통령은 헌정을 중단시키고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정권을 받은 박정희 의장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조로 먹고사는 나라에, 무슨 돈을 꿔줄수 있는가?하고 박정희 의장 일행을 만나주지도 않고 문전박대를 했습니다.

 

미국대통령도 만나지 못한, 박정희 의장 일행은 Hotel에 돌아와, 가난한 나라의 설움에 복받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다고 합니다. 가장 믿었던 미국에 가서 문전박대를 받은 박정희 의장은 가난한 나라의 설움에 목이 메었습니다. 고심 끝에, 우리 민족역사에 처음으로 서독 상업차관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켜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서독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처럼 분단국가의 아픔과 패전의 상처를 딛고 당당하게 일어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서독을 보면서 같은 입장에 있는 우리의 사정을 호소해 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서독처럼 한강의 기적을 이뤄보자 라는 각오를 하게 됩니다.

 

혁명정부는 196111월 말, 정래혁 상공부장관을 주축으로 차관 교섭단을 구성해서 서독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독일어 통역을 맡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알아본 결과, 이승만 대통령시절 국비유학생으로 서독 뉘른베르크 에를랑켄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백영훈 박사와 연락이 되어, 사절단의 통역관으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196112월 한국 교섭단이 서독에 도착은 했으나, 듣도 보도 못한 가난한 나라에서 차관교섭단이 왔다고. 누구도 만나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를 옆에서 본, 통역담당 백영훈 박사는 루트비히 에르하르트(2년 후에 서독 총리가 됨) 재무장관과 같은 대학을 나온 자신의 대학 은사를 찾아가서, 장관을 좀 만나게 해달라고 눈물로 호소를 했다고 합니다. 19611211일 우리 사절단은 루트거베스트리크 재무차관을 만나게 되었고, 그 다음날 에르하르트 재무장관을 만나서, 마침내 15천만 마르크(3,000Dollars) 상업차관을 얻는데 합의를 했습니다. 사절단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행의 지급보증(금융회사의 거래자가 거래 상대방에게 부담하고 있는 채무의 지급을 금융회사가 보증하고, 대신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계약)이 있어야 하는데, 국가신인도가 없는 나라에 지급보증을 해주겠다고 하는 나라는, 세계에 어디도 없었습니다. 기적적으로 성공한 차관협상이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독일에 광부. 간호사 인력진출

못사는 나라의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있을 때, 백영훈 박사에게 구세주 같은 독일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대학에서 같이 공부했던 노동부 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슈미트라는 독일 친구였습니다. 찾아와서 하는 말이 너희 나라는 길거리에 실업자가 널려있다고 하던데지금 서독은 탄광에서 일 할 광부가 모자란다. 지하 1,000m를 파고 내려가야 하는데 지열이 뜨거워서, 파키스탄 터키 노동자들이 다 도망을 가버렸다. 혹시, 한국에서 광부 약 5,000명 정도, 간호조무사 약 2,000명 정도를 보내줄 수 있다면, 이 사람들 급여를 담보로 하고,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백영훈 박사는 신응균 당시 주서독 한국대사를 찾아가 이야기를 했고, 대사는 즉시 한국정부에 전문을 띄웠습니다.

 

한국정부는 바로 모집공고를 냈습니다. 그래서 1차 광부 500명 모집에 2,894명이 몰려와서 61의 경쟁률이 되었는데, 선발자격이 2년이상 경력자 였지만, 실은 30%가 대학졸업자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연금 저축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을 고스란히 고국 가족에게 송금을 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 송금한 돈은 년간 5,000Dollars, 그때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의 2%에 달한 큰 돈입니다. 이렇게 해서, 1977년까지 독일로 간 광부는 7,932명이고, 간호사는 1226명으로 집계되어 있습니다.

 

독일에 취업한 광부, 간호사 월급을 담보로

이들의 급여는 모두, 독일 코메르크방크를 통해서 한국에 송금되었으며, 코메르크방크가 지급보증을 서서, 우리 민족 역사이래 처음으로 외국차관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 돈이 오늘의 경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종자돈이 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서독 국빈방문

서독정부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광부를 보내주고 간호사를 보낸 한국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마음으로, 한국 대통령을 국민방문으로 초청을 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의 서러움은 다시 계속됩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대통령 전용기는 고사하고, 비행기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미국 North West 항공기를 1대 전세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미국으로부터 항공기를 빌려줄 수 없다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그 이유는, 원조로 먹고사는 가난한 나라에 비행기를 빌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래서, 처음 외국초청을 받은 우리 대통령의 서독방문이, 허사가 될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서독에 특사를 보내, 우리나라는 비행기가 없으니, 서독에서 비행기를 좀 보내줄 수 없겠는지 부탁을 한 것입니다. 고맙게도 독일정부는 그때 독일에서 홍콩을 거쳐 일본을 왕래하는 루프트항공 일반 여객기를 서울에 일부러 들러서, 우리 대통령 일행을 태우고 오도록 조치를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행기는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로마를 거쳐서 28시간만에, 1964127일 서독 쾰른공항에 도착했고, 뤼브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말이 국빈방문이지, 대통령 숙소는 10평도 안 되었고, 수행원들은 아침에 샤워를 하면 샤워값을 별도로 내면서, 여관방 같은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연도로에 걸린 태국기도 불과 20여개 밖에 안 걸렸었고, 말로만 듣던 독일의 근검한 정신을 새삼 나는 느끼게 되었습니다.

 

차관교섭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15천만 마르크를 빌리기로 내부 합의를 했는데 절차상 국제은행의 지급보증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신용도가 없는 우리나라에 지급보증을 써 준다는 나라는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으므로, 독일정부는 궁여지책이지만, 독일에 와있는 광부와 간호사가 받는 월급을 1개월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당초 한국이 요구한 금액보다도 많은 3억 마르크를 차관하기로 결정을 헀습니다.

 

당시 서독에 취업한 우리 광부 간호사들이 본국에 송금한 총액은 년간 약 5천만 달러였습니다. 여기 교포들 중에 서독광부로 간호사로 다녀오신 분들 중에 그때 제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이분들이 서독에 가서 고생한 덕택으로 얻은, 차관이 종자돈이 되어서 가난했던 우리나라 경제를 재건하게 된 기초가 된 것입니다.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함부론 탄광회사 방문

19641210일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헤서, 박정희 대통령 일행은 독일 함브론 탄광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광부와 간호사 250여 명은 양복과 한복을 깔끔히 차려입고, 뒤스부르크 교외의 타운홀을 가득 메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 애국가 반주가 울려 퍼지자,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란 마지막 대목에서 여기 저기서 흐느끼기 시작했고, 대통령도 옆에 있던 육영수 여사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지하 1,000m까지 파고 들어가, 뜨거운 지열을 받아 얼굴이 새까맣게 탄 우리 형제들, 그리고 이국만리 타국 변두리 시골병원에서 덩치가 큰 독일인 시신들을, 알콜이 묻은 가제로 시신을 이리 저리 딩굴리며 닦고 있는 어린 간호사, 우리 딸들의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벅차오르는 가난의 설움에, 미리 써가지고 온 연설문은 꺼내지도 못하고,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열심히 합시다.” “우리 후세들을 위해서도 열심히 합시다.” “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우리도 서독의 라인강 기적처럼,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냅시다.” 우리 대통령은 눈물을 훔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광부와 간호사들은 서독 루브케 대통령 만세를 부르며, “우리 대통령을 도와 주십시오. 우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광부, 간호사, 육영수 여사, 대통령이 한데 엉켜서,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옆에 있는 서독 루브케 대통령은 자기 손수건을 꺼내서, 우리 대통령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세계 역사에, 일국의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동포들을 얼싸안고 이렇게 울었던 이야기는 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영부인의 옷자락을 붙들고, ‘우리 대통령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울면서, 놓아주지 않는 광부, 간호사를 겨우겨우 떨치고, 차에 올라서 호텔로 가는 중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옆에서, 뤼프케 서독 대통령은 손수건으로 계속 우리 대통령 눈물을 닦아 주시면서, “이제 그만 우세요.” “각하,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우리 독일 국민들이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위로를 해주셨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필자는 가난한 조국을 후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가득했던, 젊은 박정희 대통령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4128일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와 회담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정신과, 나라를 재건하려는 절절한 애국심에 감명을 받은, 에르하르트 총리는 서독의 경재를 부흥시킨 경험을 토대로 몇가지 조언을 합니다. "내가 경제장관을 할 때, 한국을 두 번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한국은 산이 많던데, 산이 많으면 경제발전이 어렵습니다. 고속도로를 깔아야 합니다. 독일은 히틀러가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깔았습니다. 다음엔 자동차가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차 폭스바겐도 히틀러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만들려면, 철판이 있어야 하는데 제철공장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료도 필요하니까, 정유공장도 있어야 합니다. 경제가 안정되려면 중산층이 탄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돕겠습니다. 경제고문을 보내주겠습니다.

 

그리고, 일본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도 프랑스와 16번을 전쟁을 했습니다. 독일사람들은 지금도 프랑스에 한이 맺혀있습니다. 그렇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우리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프랑스 드골 대통령을 찾아가 악수를 청했습니다. 한국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도자는 미래를 볼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오늘날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한, 황금 같은 지혜와 경험을 우리 대통령한테 이야기 하면서, 당초 우리가 요구했던 금액보다 더 많은 3억 마르크 차관을 조건없이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우리국민은 이 고마움을 앞으로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박정희 대통령은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캐딜락을 타고 160킬로 속도로 달렸습니다.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를 타고 가다가, 2번이나 중간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서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비볐습니다. 장기영 부총리를 비롯한 우리 일행들도 울면서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독일농촌은 한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웠습니다. 너무도 잘 정돈된 정원도시였습니다. 띄엄띄엄 보이는 농가는 마치 별장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대통령은 이것을 보고 "바로 이것이다"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도 이렇게 농촌을 가꿔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에서 에르하르트 총리의 경험담과 충고로 경부고속도로를 깔고, 포항제철공장을 짓고, 정유공장을 짓고, 원수로만 여기고 있었던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해서 대일청구권자금을 받아내고, 새마을 운동을 시작해서 농촌을 근대화시켰습니다.

 

독일은 이렇게, 우리나라 역사이래 처음으로 돈을 꾸어준 나라이며, 라인강의 기적을 이뤄서 부강한 나라를 만든 에르하르트 총리의 층고를 받아서, 종자돈도 없고 기술도 없었던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서,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 발달하게 된 것입니다.

 

필자는 박정희 대통령 서독방문 수행을 마치고, 청와대에 돌아와서, 보고 느낀 기적 같은 일들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행문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 기행문을 국회에 보내 실었습니다. 당시 국회의원들이 이 기행문을 읽고, 눈물을 흘린 의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코 우리는 독일정부와 국민들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가난에 찌들은 우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려, 부강한 나라를 만든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탄신일을 맞이해서, 다시 한번 그분의 업적과 애국정신을 가슴으로 추모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 민족중흥회 양재윤(Ph.D. in LA).

추천: 사단법인 한미동맹연합회 이사장 조성태.

 

[참고] 챗지피티: 걸을 때 몸의 변화.

https://chatgpt.com/c/6a092452-9098-8322-ab58-8860d3c6b6ce

[참고] 손문호, 전한길 팬클럽(계몽령). 팔로워 6천 명 팔로잉 1천 명

https://www.facebook.com/sonmunho.274643

[참고] [KBS 뉴스] 박세준 촬영기자, 20257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300812

[참고] 고하승, 팔로워 1.8만 명 팔로잉 108. 시민일보에서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지금은 주필로 재직 중..

https://www.facebook.com/gohaseung

[참고] 피드 게시물, 5.18 유공자 명단과 유공내용 공개촉구 국민연합 (5.18 공촉연). 2026421

https://www.facebook.com/groups/703633719816877

https://www.facebook.com/groups/703633719816877/about

[참고] 박승배, 팔로워 9.1천 명 팔로잉 3.2천 명. East-West Center.

https://www.facebook.com/kbs2baron

[참고] 민족중흥회 양재윤(Ph.D. in LA).

사단법인 한미동맹연합회 이사장 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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