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7__ 세대별 성공. 은퇴 후 주의사항. 새우젓. 저자 루터와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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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7__ 세대별 성공. 은퇴 후 주의사항. 새우젓. 저자 루터와 출판

 

성공한 인생은 세대별로 다릅니다... 아직, 아내가 밥 차려주니까, 뚱보강사는 80대에서 성공 세대입니다... 룰루랄라...

10- 성공한 아버지를 뒀으면 성공

20학벌이 좋으면 성공

30좋은 직장에 다니면 성공

40- 2차 쏠 수 있으면 성공

50| 공부 잘하는 자녀가 있으면 성공

60- 아직 돈을 벌고 있으면 성공

70- 건강하면 성공

80--- 본처가 밥 차려주면 성공

90--- 전화 오는 사람이 있으면 성공

100--- 아침에 눈뜨면 성공

 

Mee Mee 님이 페북에 은퇴 후 주의할 사항 7가지를 올려주셨습니다...

1. 친구와 동업하지 마세요. 친구 잃고, 돈도 잃습니다.

2. 피 같은 퇴직금으로, 치킨 집 열지 마세요.

3. 자식집 자주 찾아가지 마세요. 2번째까지는 부모지만, 3번째부터는 짐짝 취급 당합니다.

 

4. 공짜 휴지를 주는 홍보관에 가지 마세요.

5. 돈자랑하는 동창회에 가지 마세요.

6. 자기가 퇴직한 전 직장을 찾아가지 마세요.

7. 내키지 않는 경조사에는 가지 마세요. 전에 받은 게 있으면, 5만 원만 보내세요.

 

 

     가을 새우젓()

 

추젓은 가을철에 담근 새우젓... 최진규(약초학자) 님이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서... 경험담... ... 염증도 더욱 심해져, 어떤 항생제도 효과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도, 마지막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추젓(가을철에 담근 새우젓)은 온갖 종류의 염증 질병 치료에 효과

아는 박사 님이 보름 전에, 약이라고 가을새우젓을 보내 왔다... 확신에 찬 어조로 꼭 먹을 것을 종용했다. 첨단 현대의학으로도 못 고치는 병을 새우젓으로 나을 수 있다니... ...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더군다나 짠 것을 먹으라고..., 맞다 문제 있다. 염증에 더 나쁠 것 같아서, 병실 한쪽 구석에 놓고, 추젓 뚜껑도 열어 보지 않았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현대의학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나니, 실낱같은 희망으로, 가을 새우젓에 꽂혔다. 눈곱만큼씩 먹는다고 해서 손해 날 일은 없겠지..., 그래서, 한 번 먹어 보기로 했다.

 

가을 새우젓을 쌀알 한 톨만큼씩 입에 넣고, 침과 섞어서 10분에서 한 시간쯤의 간격으로, 수시로 먹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즉시 위장의 통증이 사라졌다. 강력한 진통제로도 듣지 않던 통증이, 씻은 듯이 없어진 것이다. 이게 얼마만인가!!!

 

병원에서 허우적거렸던 병이 좋아지다니... 갑자기, 나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자, 양을 조금씩 늘려서 부지런히 먹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 뱃속에 꽉 막혔던 게, 시원하게 뻥 뚫리면서 밑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 ... 몇달 만에, 화장실에 가서 변을 보니..., 시커멓고 누런 고름덩어리 같은 것들이 변기가 가득 찰 정도로 쏟아져 나왔다.

 

그날부터, 미음을 먹고, 사흘 뒤부터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날 병이 호전되어, 병원에서 퇴원해버렸다... 그로부터, 새우젓으로 위염, 위궤양, 장염, 위암을 고쳤다는 환자들을 헤아릴 수 없이 만나봤다. 그 효력은 눈부셨다... 먹는 즉시 효과가 나타나며, 어떤 부작용도 없었다.

 

어째서 새우젓에 이처럼 놀랄만한 비밀이 있는 것일까? 특히 온갖 종류의 염증, 식도염, 위염, 장염, 구강염 같은 소화기관의 염증과 암에 효과가 매우 탁월하다. 소화기관의 염증이나 종양에는 효과가 매우 빠르지만, 폐렴, 간염, 담낭염, 기관지염 등에는 효과가 약간 더디게 나타난다. 그러나 오래 먹으면, 만성 간염, 담낭염, 기관지염, 폐렴, 신장염, 방광염 같은 온갖 염증성 질병을 뿌리째 뽑을 수 있다.

 

[참고] AI 브리핑: 새우젓 성분, 네이버AI.

새우젓의 주요 성분은 단백질·칼슘·타우린·비타민 B군 등이며, 발효로 아미노산과 효소가 생성됩니다.

(1) 주요 성분

1. 단백질: 새우 자체 단백질이 발효로 아미노산으로 분해되어 흡수가 쉬워집니다.

2. 칼슘: 새우 껍질에서 유래한 칼슘이 포함됩니다.

3. 타우린: 콜레스테롤 조절과 피로 회복에 도움을 주는 성분입니다.

4. 비타민 B: 에너지 대사에 필수적인 비타민이 소량 들어 있습니다.

5. 유익한 효소·아미노산: 발효 과정에서 생성되어 소화 흡수에 도움을 줍니다.

6. 나트륨·콜레스테롤

나트륨 함량이 매우 높아 100g3,000mg을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콜레스테롤은 주로 0mg 수준으로 매우 낮습니다.

(2) 섭취 팁

1~2스푼 이내로 섭취하고, 고혈압이 있으면 더욱 조절하세요.

식약처 권장 나트륨 섭취량(하루 2,000mg 이하)을 고려해 과다 섭취를 피하세요.

 

    -새우젓 성분들-

새우젓은 기형세포와 염증세포를 없애고, 면역력을 높이는 데에 최상의 약이라 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치료약을 모두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명약이 우리 음식에 있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가을철 서해안에서 잡히는 아주 자잘한 가을새우를 추젓이라고 한다. 한 여름철에 잡은 육젓은 약으로 쓰지 못한다. 크기가 아주 작고, 몸이 거의 투명하며, 바닷물 위에 얕게 떠 있는 것이라야 한다. 젓갈을 담갔을 때, 몸통은 다 녹아 형체가 남아 있지 않고, 눈만 까맣게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추젓으로 새우젓을 담글 때는, 봄철에 만든 천일염을 써야 한다. 새우젓은 항아리를 뚫고 나온다... 새우젓을 오지항아리에 담아 두면, 항아리 바깥쪽에 하얀 가루가 묻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하얀 가루를 손에 묻혀서 맛을 보면 새우젓 맛이 난다. 옛사람들은 이를 새우젓 항아리에 담아 두면, 땀을 흘린다고 하였다.

 

새우젓에는 물과 공기도 통과할 수 없는 항아리를 뚫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한 초미립자의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다. 초미립자 상태로 쪼개진 단백질과 칼슘, 그리고 온갖 미네랄 성분들이 뇌로 올라가서, 뇌에 영양을 공급하고 뇌세포를 튼튼하게 한다.

 

사람이 먹는 영양소 중에서, 입자가 작고 가볍고 맑은 것은 뇌로 올라간다. 반대로 무겁고 탁한 것은 팔다리와 몸통으로 내려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경청(輕淸)한 음식을 주로 먹으면, 그 성분과 기능이 뇌로 올라가서 머리가 좋아지고, 중탁(重濁)한 음식물을 주로 먹으면, 그 성분과 기능이 팔다리와 내장으로 가서 힘이 세진다.

 

가을새우젓을 어린이들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져서 공부를 잘 하게 되고, 노인들이 먹으면, 기억력이 쇠퇴하지 않고 치매를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 가을새우젓(낙지 문어류함께 섭취)에는 뇌세포가 자라는 데 가장 좋은 영양소가 들어 있다.

 

사람의 뇌세포는 태어나서 만 3 살이 되기 전까지 90% 이상이 자라서 완성되고, 18세가 넘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뇌세포는 가장 미세한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른이 되면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뇌로 보낼 수 있는 미세한 영양소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뇌세포의 성장이 멈추는 것이다.

 

예로부터, 새우젓을 먹으면,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뇌에 영양을 충분히 공급해, 망가지는 뇌세포를 보강해 주기 때문이다. 새우젓은 소화력과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가장 좋은 약인 동시에,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새우젓에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많이 들어 있다. 그래서 새우젓을 먹으면 소화가 아주 잘 된다. 밥 한 숟갈에 새우젓을 콩알만큼씩 넣고, 숟갈로 박박 문질러 밥을 비벼서, 다른 나물 반찬 등과 함께 짜지 않을 정도로 먹으면 된다.

 

가을새우젓 1kg으로 환자 한 사람이 3개월 동안 먹을 수 있고, 건강한 사람은 6개월가량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몹시 쓰려서 위경련이 생길 수 있다. 새우젓에는 뇌에 좋은 미립자 형태의 단백질이나 칼슘 같은 미네랄 영양소가 많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훌륭한 소금이 들어 있고, 온 몸에 산소를 많이 공급하고 면역력을 길러 주며 염증을 없앤다. - 최진규(약초학자). 항암 병치료로 허약하신분들은 의사선생님의 조언을 받으시길 바래요...

 

 

     저자 루터와 출판

 

[아주경제] [황승연의 타임캡슐] 종교개혁 만난 '인쇄 혁명' 유럽이 잠에서 깨어났다... 황승연 경희대 사학과 교수(202619)... 마르틴 루터 이전에도 체코의 얀 후스(Jan Hus, 1369~1415)나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1320~1384)와 같은 선지자들이, 교회와 교황청의 부패를 뼈아프게 비판했다. 이들은 화형당하거나 훗날 부관참시를 당할 정도로 제도권을 흔들었다. 그러나 전 유럽에 광범위한 운동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금속활자 인쇄술이 없었던 그 시대에는 그들의 생각이 필사, 구전, 지역 설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널리 퍼지지 않았다. 만약 금속활자 인쇄술이 없었다면, 루터의 95개 반박문도, 로마의 부패상에 대한 그의 목격담도, 겨우 비텐베르크 인근 지역에 알려지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다행히 루터 시절에는, 이미 금속활자 인쇄술이 있었다. 그는 이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그의 저작물들은 독일뿐 아니라, 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인쇄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루터는 인쇄술이 만들어 낸 최초의 대중 운동 지도자였다. 말하자면 인쇄술은 오늘날 인터넷과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근대 정보혁명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그 결과물이었다.

먀샬 맥루한(Marshall McLuhan, 1911~1980)1964매체가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매체가 어떤 내용을 전달하는가?’하는 문제보다 매체 그 자체가 이미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사건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루터가 교회를 비판하는 95개 항 반박문을 성당 대문에 붙였을 때, 즉시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다. 루터의 반박문은 교수와 성직자를 대상으로 한 논쟁 주제였다. 따라서 라틴어로 작성된 것이었다.

 

이것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인쇄되었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유럽에서 새로 개발된 금속활자 인쇄술로 대량으로 인쇄되어, 2주 만에 전 독일에 퍼졌다.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까지 두 달이면 충분했다. 이는 루터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돈 냄새를 맡은 인쇄업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복제한 뒤 유통시켰다. 루터도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매체의 효과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루터는 종교 개혁가인 동시에 출판 혁명가였다.

루터는 금속활자 출판물의 대중시장을 처음으로 연 장본인이었다. 세계 최초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루터라는 이름 자체가 브랜드였다. 출판업자들은 경쟁적으로 루터의 글을 찍어내면서,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종교개혁은 출판 혁명이기도 했다. 루터는 출판업계에서 금광과 비유되었다. 당시에는 저자에게 주는 인세라는 것이 없어서, 루터에게 그 수익이 돌아가지 않았다. 또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 돈을 번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져, 자신의 신학 저작에 대해 금전적 요구를 하지 않았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주도했지만, 개혁 운동이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것은, 오로지 뉴 미디어인 금속활자 인쇄술 덕분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이라는 도구가 없었다면,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정도의 규모와 속도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쇄술이 없었다면, 루터는 그저 변방의 반체제 인사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00?~1468)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기 전, 모든 책은 손으로 베껴 쓰거나 문제 많고 비효율적인 목판인쇄를 썼다. 15세기 들어서면서, 수도원이나 대학 또는 귀족 가문에서 책의 수요가 많았다. 필사본 책 하나의 제작에 수개월에서 1년씩 걸렸다. 제작 비용이 높게 발생했다. 구텐베르크는 대대로 금속 세공업자인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웠다. 그가 활동하던 라인강 지역은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상업 중심지였다. 법률 문서, 상업 장부, 대학 교재 등의 수요가 많았다. 구텐베르크는 이 구조적 수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의 기술과 사업 감각으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벤처 창업가였다. 금속활자는 초기 제작 비용은 많이 들지만 표준화된 문서의 대량생산에는 크게 유리했다. 개별 글자를 조합해서 다양한 문서를 제작할 수 있고, 오타 수정도 가능했다. 활자 하나하나가 선명하고 쉽게 마모되지 않아, 수만 번까지 인쇄가 가능했다.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 인쇄기 발명의 목적을 처음부터 상업화에 두었다. 그러나 인쇄기를 만든 후, 거의 70년 동안 신기술을 활용할 적당한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인쇄 사업을 위해 자본을 조달하느라 빚을 졌는데, 이 빚을 갚지 못해 소송에 시달렸다. 결국 자신의 기술을 투자자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는 특허제도가 없어서, 발명에 대해 보호받을 수가 없었다. 유럽 전역에 모방 인쇄소가 많이 등장해서, 수익 창출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인쇄 기술을 사업화한 인쇄업자들에게 경제적 성공을 넘겨줘야 했다. 구텐베르크는 빚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다가 생을 마감한, 비운의 혁신가였다.

 

2022년 유우식 박사는, 한국에서 인쇄된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픽맨(PicMan)으로 이미지 분석한 결과, 이 판본이 구텐베르크(1400?~1468)가 태어나기도 전인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원간본임을 객관적이고, 과학적 데이타를 통해 밝혀냈다. 논문은 세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보존과 복구를 연구하는 세계적 학술지로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Heritage'(Scopus 등재지)에 실렸다. 1239년이면 유럽에서 금속활자 인쇄를 개발한 구텐베르크(1400?~1468)가 태어나기 161년 전인 것이다.

 

     직지보다 138년 빠른 남명증도가

 

20251017[문화일보] 장재선 기자가 보도했다. “직지보다 앞선 증도가자세계 최초 활자·문화재 지정 재검토”... 허민 국가유산청장 국감서 다시 면밀히 검토”... 2017년 문화재위서 보류결정 다시 살피기로...

 

정부가 고려 시대 활자인 증도가자(證道歌字)’를 세계 최초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하고,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검토 작업에 다시 나선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20251016일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여수시을)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해 질의한 것에 대해 다시 면밀히 검토하겠다라고 답했다.

 

증도가자는 지금까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1377)보다도 100년 이상(138) 앞섰다. 무엇보다도 금속활자의 실물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직지심체요절과 서양의 구텐베르크 성경(1452)이 금속활자로 찍은 인쇄본 책만 존재하고, 실제 금속활자는 남아 있지 않다.

 

조계원 의원은 이런 점을 간략히 설명한 후, 지난 201528SBS 8시 뉴스에서 직지보다 앞섰다새 최고(最古)금속활자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던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의 기자는 학계서 증도가자 진위 논란이 있었으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진품이 맞다는 조사보고서를 내놨다라고 전했다.

 

조계원 의원은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섰는데, 금속활자까지 발견됐다라며, “국가적 경사가 아니냐?”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그런데, 2017년 문화재위원회가 이 결과를 뒤짚고 부결했다. 그 이유는 뭐냐?”라고 허민 청장에게 질문했다.

 

허민 청장은 당시 활자의 서체와 주조 조판 등을 비교한 결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조계원 의원은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당시 문화재위원회 간사를 맡던 공무원이 활자의 조판실험 결과를 보고할 때, 일부 주요사항을 누락하거나, 통계 분석을 잘못 적용하여, 결론이 뒤집힌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계원 의원에 따르면, 감사원은 이에 대한 제보를 접수해 조사한 후,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지난 924국가유산청에서 재심 여부를 판단하는 게 적절하다라며 이첩했다.

 

조계원 의원은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뒤, 지난 2017년 문화재위 담당 공무원이 실제로 전횡을 했는지도 살펴달라고 했다. 당시 문화재위원들이 증도가자가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금속활자로 판명되면, 직지 연구로 알려진 본인들의 권위가 떨어질까봐, 고의로 문화재 지정을 회피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실제로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이 보류된 후, 당시 문화재위원과 정권 실세 유착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활자 소유자가 고미술갤러리를 운영한다는 이유로, 문화재위원들이 장사하는 사람 물건을 보물로 지정할 수 없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당시 문화재청장은 이른바 문화재계 마피아들로부터 증도가자를 문화재로 지정하면, 법정에 세우겠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세계 인쇄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유물을 두고 순수하게 문화재적 가치를 따진 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세력 다툼이 이면에서 벌어졌던 셈이다. 허민 청장은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겠다라는 말로 재검토 의지를 밝혔다.

 

뚱보강사 칼럼에서도 여러번 남명증도가에 관한 글을 올렸다... [뚱보강사] 칼럼 “#921__ 유우식 남명증도가연구 세계 주목. 로제 아파트. 80대의 활약의 내용 요약이다(2024-11-05).

 

한국 불경(佛經), 세계인쇄사 이정표... 인쇄역사 연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1239)이다... [현대불교]()문화유산회복재단 이상근 이사장이 기고했다(2024522). --- 유우식 박사의 남명증도가연구, 세계 주목... 한국 불경들,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논쟁 야기...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의 줄임말인 직지(直指, 1372년에 제작 시작되어 1377년에 간행)는 세계에서 금속활자로 제작한, 가장 오래된 책으로 그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초대 주한프랑스공사인 콜랭 드 블랑시(1853~1922, Victor Collin de Plancy)1880~1890년 사이에 국내에서 구매해, 프랑스로 가져간 이래로, 현재까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다. 당시 적은 금액으로 입수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꼭 돌아와야 할 문화유산으로 손꼽는다.

 

그러나, 2024년 미국인쇄역사협회(American Printing History Association, APHA)의 홈페이지(https://printinghistory.org/)를 보면, 인쇄역사 연표가 “1239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주석이 있는 깨달음의 노래이다라고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History of Printing Timeline

[https://printinghistory.org/timeline/]

 

1239 The oldest Metal-Movable-Type printed book is The Song of Enlightenment with Commentaries by Buddhist Monk Nammyeong Cheon (Korean: 남명천화상송증도가, 南明泉和尙頌證道歌). (The Goryeo (高麗) Dynasty of Korea)

 

1377 The world's third oldest extant book printed with movable metal type (Korean: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Anthology of Great Buddhist Priests' Zen Teachings) published in Cheungju (淸州), Korea, now at the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BnF). It is often abbreviated to Jikji (직지, 直指).

 

경북대 유우식 박사,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라고 규명... "직지심체요절보다 138년 빨라"... 세계적 학술지 ‘Heritage’에서 주목... 유우식 박사, 자체 개발 이미지 분석 소프트웨어 픽맨(PicMan) 사용으로 과학적으로 밝혀내... 금속활자 인쇄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음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길 열릴 듯... 구텐베르그가 1455년에 인쇄한 '42행 성서'(구텐베르크: 1400?~1468)보다 216년이나 빠른... [영남일보] 박종문 기자가 보도했다(2022819).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 인쇄본을 두고 '직지심체요절''남명천화상송증도가' 사이에 이어져온 50년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결정적 논문을 경북대 인문학술원 유우식 연구자가 발표했다.

 

경북대 인문학술원(원장 윤재석 교수)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우식 박사는, 2012년 보물로 지정된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픽맨(PicMan)으로 이미지 분석한 결과, 이 판본이 1239년 금속활자로 인쇄된 원간본임을 객관적이고, 과학적 데이타를 통해 밝혀냈다. 논문은 세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보존과 복구를 연구하는 세계적 학술지로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Heritage'(Scopus 등재지)에 실려, 최단기간 최다 조회 및 다운로드가 된 논문으로 선정됐다.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원간본이라는 사실이 유우식 박사에 의해 명확해짐에 따라, 50년간 우왕좌왕하던 학설사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이 사실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종래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으로 알려진 '직지(1377)'보다 138년 앞서고, 독일의 구텐베르그가 1455년에 인쇄한 '42행 성서'보다 216년이나 빠른, 금속활자 인쇄물이 공인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임이 밝혀진 것이다.

 

     루터의 출판에 대한 열정

루터는 인쇄를 전략적 무기로 사용했다. 그가 쓴 쉽고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독일어로 된 짧은 소책자들은 값이 쌌다. 휴대가 가능해 농민, 노동자, 장인, 상인들까지 읽고 돌려볼 수 있었다. 루터는 책자들이 인쇄될 때 매번 일일이 지켜보며 표지디자인, 판형, 삽화, 활자체까지 개입했다. 인쇄물이 더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잔소리했다고 한다. 루터는 인쇄술을 통해 여론전, 정치전, 사상전을 벌인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쇄 기술은 종교개혁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핵심 동력이었다.

교황청이 루터의 저술을 금서로 지정했다. 그러나 인쇄물의 확산 속도가 빨라 이미 독일 전역에 수천, 수만 부가 팔린 뒤였다. 인쇄업자들은 돈이 되니 복제판을 찍어 유럽 전역에 유통했다. 인쇄술은 교황청과 제국 권력의 정보 통제 능력을 붕괴시켰다. 종교개혁은 인쇄 혁명이 만든 첫 번째 대중 운동이었다. 종교가 성직자 중심 구조에서 평신도의 신앙과 대중 운동으로 바뀌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종교개혁이라는 메시지보다 그 운동을 유럽적 현상으로 만든 인쇄술이다. 루터는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루터가 인쇄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인쇄가 루터를 만들었다는 의미는 미디어 형식 자체가 역사적 변화를 이끈다는 뜻이다. 종교개혁의 본질은 미디어 혁명이었다.

 

금속활자 인쇄술로 근대가 시작되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유럽인들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사람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재구성되었다. 인쇄술 이후 동일한 내용의 책이 수천, 수만 권 동시에 존재했다. 정확성과 더불어 재현, 검증, 비교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근대 과학 혁명의 본질적인 조건이었다. 인쇄술 이전의 지식은 설교나 강론 등과 같이 단체 속에서 받아들여졌다. 인쇄된 책은 사적 독서라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것으로 인해 개인의 판단, 개인의 양심, 개인의 신앙, 자기 정체성의 형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근대적 개인주의의 출발점이며 루터의 만인 사제설과도 직결된다. 또 인쇄술은 국가별 표준화된 언어를 만들어 내면서 국민국가의 문화적 기반이 되었다.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면서 번역한, 독일어 성경이 인쇄되어 전 독일에 확산되었다. 방언들이 사라지고, 표준 독일어가 만들어졌다. 이후에는 영어 성경과 프랑스어 성경 등이 출현하였다. 이를 통해 근대 민족국가와 국민 정체성의 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중세에는 여론이 존재할 수 없었다. 대부분 라틴어로 쓰인 문서를 대중은 읽을 수가 없었다. 정보는 성직자와 귀족이 독점하게 되고, 권력은 메시지를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쇄술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차츰 대중의 의견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기 시작했다. 책이 동일한 형태로 유럽 전역에 뿌려지면서 신학, 과학 등에서 동일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다. 논쟁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로소 학문 공동체가 탄생할 수 있었다. 사고의 지평이 지역을 넘어 유럽 전체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근대적 유럽 문명의 탄생 조건이 되었다.

책이 많아지면서 문해율이 상승하고 학교가 증가했다. 논리적, 추상적 사고가 발달하고 법, 정치, 경제에서 합리적 개념이 정착하게 되었다. 문자 문화가 강화되면서 더 논리적인 토론이 가능하게 되었다. 법은 문서화되며, 더욱 명확해졌다. 계약, 금융, 회계 시스템이 정교해졌다. 이 모든 근대 경제, 근대 국가의 기술적 기반이 인쇄 문화에서 출발한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유럽 사회의 사고 구조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 결과 근대를 실질적으로 출범시켰다. 이것을 시작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다. 그는 개신교의 탄생뿐 아니라, 근대를 연 개혁가였다. 마르틴 루터 이후에 인간은 비로소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마르틴 루터에게 빚을 지고 있다.


[참고] 배영규, 평생교육사, 동양의학, 의학, 사회복지학, 법학박사(U.S.A

Doctor of the Sciece of Law). 팔로워 1만 명 팔로잉 722.

https://www.facebook.com/baeyeong.gyu.2025

디지털 크리에이터, 케네디대학교 대학원장 행정대학장

[참고] 최진규(약초학자), 대한민국의 자칭 약초 연구가로 196145일 생(64)이다. 블로그 닉네임은 운림.

[참고] 새우젓 성분, 네이버AI.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ssc=tab.nx.all&query=%EC%83%88%EC%9A%B0%EC%A0%93+%EC%84%B1%EB%B6%84&oquery=%EA%B7%B8%EB%A1%9C%EB%B6%80%ED%84%B0&tqi=jUenulqosZossT5iCbs-010676&ackey=ais59wuq

[참고] 황승연,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황승연 경희대 사학과 교수원, 2026-01-09.

[아주경제] [황승연의 타임캡슐] 종교개혁 만난 '인쇄 혁명'

https://www.ajunews.com/view/20260107114337352?fbclid=IwY2xjawPNUllleHRuA2FlbQIxMABicmlkETFRN1kxeUxMTUxURHpSNUE5c3J0YwZhcHBfaWQQMjIyMDM5MTc4ODIwMDg5MgABHioog-Kns-DYLv3FPIH_uBOMo_WhPhSfApECSx6ljX1qaRgIuaQg63EAJepa_aem_Tn8zwqMCppvgvbiXXnRWwQ

[참고] 인쇄술 역사 연대표 APHA

https://printinghistory.org/timeline/

[참고] 한국전자출판교육원 웹진 제20, 20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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