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0__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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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1140__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북쪽에 있는 군인들이 한국을 무서워 하는 진짜 이유는...

- 한국에는 거리마다 총을 가진 총알택시가 달린다.

- 한국골목마다 대포로 무장한 대폿집이 있다.

- 식당가마다 군부대가 주둔하고 부대찌개를 판다.

- 술집마다 폭탄을 설치하고 폭탄주를 판다.

- 가장 무서운 것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핵가정이 70%.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야기

 

Ingyu Lee 님이 [페북]에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 거짓말로 범벅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야기 --- ‘대동여지도는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지도 중 최대 크기다. 세로 6.6미터, 가로 4.1미터에 달해서 3층 높이 이상의 공간이 있어야 걸어놓을 수 있다. 1936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서 3분의 2 크기로 영인본을 간행한 것이 최초의 영인본이었다.

 

[참고] 나무위키: 김정호(金正浩·金正皡)는 조선 후기의 지도학자, 측량학자, 지리학자. 자는 백원(伯源), 백온(伯溫), 백지(伯之), 호는 고산자(古山子), 본관은 청도(淸道). 순조 4(1804) 황해도 토산군(현재 황해북도 토산군) 출생. 직업은 실학자, 지도학자, 측량학자, 지리학자. 고종 3(1866) 향년 62세에 사망.

 

대동여지도를 만든 사람은 고산자 김정호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린 김정호를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오르내리며, 숱한 고생 끝에 지도를 완성했지만, 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을 함부로 알렸다고 하여 투옥되었고, 대동여지도는 불살라졌다고 말한다. 그런 내용을 보며, 미개한 나라 조선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정말 사실일까? 일제가 간행한 조작된 교과서 [조선어독본]의 내용이다.

 

김정호에 대한 이런 전설이 만들어진 것은, 일제시대 때였다. 1925년 육당 최남선이 [동아일보]에 실은 글이 최초의 내용이었다. 이광수는 이 글에서 그전까지는 전혀 언급되지 않던, 몇 가지 이야기를 던져놓았다. 김정호가 만든 것 중 대동여지도 하나만 남았다는 것, 전국의 산천을 샅샅이 답사하고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랐다는 것, 아내도 잃고 딸 하나와 함께, 대동여지도를 판각하여 만들었다는 것, 지도 제작법을 서양인에게 배웠다는 누명과 우리나라의 기밀을 외국인에게 알렸다는 죄목으로 옥에 갇혔고, 대동여지도 목판은 모두 압수당했다는 것, 청일전쟁 때 대동여지도가 그 가치를 드러냈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 내용은, 일제가 간행한 교과서 [조선어독본]에 전기 형식으로 다시 게재되었다.

 

일제가 간행한 교과서에는 조선 팔도를 세 번, 백두산을 여덟 번 올라간 끝에 딸과 함께 대동여지도를 완성했으나, 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이 누설되면 큰일이라는 이유로 부녀를 옥에 가두고 지도는 압수했고, 결국 부녀는 사라지고 말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면서 최남선이 말했던 청일전쟁에 사용되었다는 구절은 이렇게 바뀌었다. “명치37년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대동여지도는 우리 군사에게 지대한 공헌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후 총독부에서 토지조사사업에 착수할 때에도 둘도 없는 좋은 자료로, 그 상세하고도 정확함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탄케 하였다 한다. , 김정호의 고난은 비로소 이에 혁혁한 빛을 나타내였다 하리로다.”

 

청일전쟁이 러일전쟁으로 바뀌었는데, 러일전쟁이야말로 일제가 자랑한 전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러일전쟁에 실제로 대동여지도가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김정호의 업적은 대단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동여지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의 사실을 정리해보자.

 

첫째, 김정호는 대동여지도 하나만 만들지 않았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뿐 아니라, 지리 인문서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를 편찬했고, 지도는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수선전도] 등을 제작했다.

 

둘째, [대동여지도]의 판목은 대원군에 의해 불살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판목이 남아 있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다. 판목을 통한 연구로 [대동여지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다.

 

셋째, 김정호는 옥에 갇혀 죽지 않았다.

김정호에 대해서 남겨진 기록을 보면, 지도가 압수당한 바도 없고, 옥에 갇힌 죄인이 되었다고 볼 근거도 없다.

 

넷째, 지도 유통이 금지되어 있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지도를 민간이 제작하거나 유통할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조선 전기의 상황이었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물품 유통이 활발해지자, 지도가 꼭 필요하게 되었다. 관리와 사대부는 옷소매에 넣을 수 있는 수진본 지도를 애용했고, 목장지도, 궁궐도, 역사부도 등 다양한 지도가 등장했을 정도였다. 수진본(袖珍本·소매에 넣어 다닐 만큼 작은 책)은 휴대용 지도이다. 각 장은 상하로 두 번씩 접혀져 있어, 이를 펼쳐보게 되어 있다.

 

다섯째, [대동여지도]는 조선 지도의 계승자다.

최한기 [청구도제]에서, 김정호가 어려서부터 지도에 깊은 뜻을 두고, 지도 제작의 장단점을 검토했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호가 최초로 만든 지도인 [청구도]는 정조 때 만들어진 [해동여지도]를 참고한 것이고, [해동여지도]는 신경준이 만든 [조선지도]를 변형한 것이다.

 

여섯째, 김정호가 직접 팔도를 답사하고, 백두산을 올랐다는 말은 근거가 없다.

김정호 당대의 현실을 보아도 타당성이 없다. 이 이야기는 일본 지도제작자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 19세기 일본의 최고 지도제작자)의 일화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일곱째,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이 내용은, 더이상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있지 않다.

김정호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이우형, 이상태 등 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1997년에 제대로 된 내용으로 김정호 이야기가 개정되었다.

 

대동여지도의 진실은, 김정호가 고위 관료인 신헌과 최한기, 최성환 등 사대부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도를 제작했고, 판각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기존의 지도를 섭렵해 [대동여지도]를 비롯해, 각종 지리서를 편찬한 지도 편집자였다. [출처: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이문영 지음]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이문영 지음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는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한국사 속 통념·신화·오해를 검토하고, 실제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교양 역사서이다. 인터넷, 방송, 영상 콘텐츠 등을 통해 확산된 재야사·유사역사학의 주장들을 차근히 짚어주며, 한국사의 여러 논쟁을 과학적·문헌적 근거로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의 저자 이문영은 오랫동안 유사역사 바로잡기를 주제로 연구·글쓰기 활동을 해온 작가로, 이 책은 그동안 발표해온 칼럼과 문헌 검토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핵심 내용

1. 한국 고대사는 과장되거나 확대 해석된 부분이 많다

고조선·부여·고구려의 영토에 대한 과도한 확장, 환단고기 등의 사료 문제점, ‘한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식의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없다.

 

2. 사료 비판이 왜 중요한가?

한국사는 일제강점기의 왜곡보다, ‘무근거한 민족주의적 과장이 더 큰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사료의 성격·작성 시기·의도 등을 살피는 근대 역사학의 기본 절차를 소개한다.

 

3. 잘못 알려진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

단군의 실존 여부와 신화의 의미, 삼국시대 강역과 실제 영향권, 신라·백제·고구려의 문화적 수준을 과대·과소평가하는 오류, 고려·조선의 군사력, 경제력, 국제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오해들.

 

4. 역사 왜곡이 만들어지는 과정

인터넷 커뮤니티 재야사 유튜브 대중 확산의 순서... ‘흥미민족주의 감정이 결합할 때 왜곡이 폭발적 파급력을 갖는 이유,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접근 방식 차이.

 

5. 한국사를 바라보는 건강한 관점 제시

사료 중심의 합리적인 역사 이해, 민족주의보다 사실·증거를 바탕으로 한 역사 인식의 중요성, 역사는 자부심을 세우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 사실을 검토하는 학문이다.

 

📚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책의 특징

읽기 쉬운 한국사 바로잡기 교양서이다.

역사 논쟁을 감정이 아니라, 근거 중심으로 정리했다.

청소년·일반 독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역사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료 기준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의 저자 이문영은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초록불의 잡학다식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역사 콘텐츠를 써왔다. 매일경제신문에 물밑 한국사, 고교 독서평설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등을 연재했으며 유사역사학 비판서 유사역사학 비판만들어진 한국사, 역사학을 가르치는 중학생을 위한 역사학 수업, 역사 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등 다채로운 역사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이문영 저, 역사산책 출판사, 2023

*********** 목차 ***********

책을 내놓는 변명을 겸해 ㆍ 5

01 환국은 없다 ㆍ 10

02 천부경의 비밀 ㆍ 24

03 신채호와 천부경38

04 단군 기념주화의 비밀 ㆍ 52

05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 60

06 중국에 흑치국이 있었을까? 68

07 백제는 요서 지방을 점령했을까? 74

08 임나일본부가 정말 있었을까? 84

09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 무덤의 비밀 ㆍ 102

10 에밀레종의 비밀을 찾아서 ㆍ 110

11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 ㆍ 116

12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죽었을까? 122

13 탐관오리 황희, 청렴한 황희 ㆍ 132

14 임금님 목숨을 구한 죄로 죽었다는 김덕생의 진실 ㆍ 142

15 신숙주의 아내는 자살했을까? 148

16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 이야기의 진실은? 158

17 벌레가 만든 글자 - 기묘사화의 진실을 찾아서 ㆍ 164

18 송강 정철과 기생 자미 ㆍ 174

19 이순신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ㆍ 180

20 청 황실의 성이 신라를 생각해서 만들어졌을까? 206

21 사도세자는 왜 죽었을까? 212

22 양반은 사람을 막 죽여도 괜찮았을까? 220

23 정조는 독살당했을까? 226

24 고산자 김정호는 옥에서 죽었을까? 234

25 간도는 우리 땅일까? 240

26 조선은 전쟁 없이 스스로 망했나? 254

27 민족대표가 한용운 이외에는 모두 변절했다고? 268

28 안창호의 약속 ㆍ 280

29 사라지지 않는 쇠말뚝 괴담 ㆍ 286

30 한국인은 그리스에서 왔다? 302

31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308

32 역사학과 유사역사학 ㆍ 326

참고문헌 ㆍ 341

찾아보기 ㆍ 344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전체 상세 요약

한국사에 대해 널리 퍼진 오해와 신화를 하나씩 짚고, 역사적 사료와 학계의 정설을 바탕으로 이를 반박하거나 바로잡는다. 저자 이문영은 먼저 환국이라는 개념이 역사적 사실이 아닌 전설에 가까우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천부경에 대해서도, 유사역사학 진영에서 매우 중시되지만 그 진위와 의미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신채호 등이 천부경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그 해석이 현대 유사역사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한다. 단군을 기념하는 주화(기념주화)에 숨겨진 상징과 그것이 한국 역사 인식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중국 밖이라는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지도 해석이 가지는 오류를 지적한다. “흑치국이라는 고대 국가의 존재 여부와, 그것이 실제 중국 사서에 나타난 내용의 오해 가능성을 논한다.

 

백제가 요서 지방을 점령했다는 주장은, 사료 해석의 과장일 수 있으며, 실제 고고학 증거나 문헌 증거가 제한적임을 설명한다.

 

임나일본부라는 개념이 실제로 역사적 실체를 가진 행정구역이었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한국 땅에 있다는 일본계 무덤의 존재에 대해, 민족주의적 시각이 개입된 해석의 문제를 지적한다.

 

에밀레종(백제 종)의 건축과 관련된 전설과 실제 사료를 대조하여, 전설이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탐구한다. 무영탑(그림자가 없는 탑)에 대한 이야기에서,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부분과 전설적 해석을 구분한다.

 

정몽주의 죽음 장소로 알려진 선죽교 설화가 역사적 사실인지 여부를 문헌과 기록으로 분석한다. 조선 시대 명재상 황희의 청렴 이미지는 후대의 미화일 수 있으며, 실제 정치적 행적과 대비해 본다. 김덕생이라는 인물이 임금의 목숨을 구한 죄로 죽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것과 실제 기록이 다를 수 있음을 논한다.

 

신숙주의 아내 자살 설화,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 간의 이야기 등은 감성적 전승이지만, 반드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종 때 기묘사화라는 사화가 벌레가 만든 글자 설화 등 전설로 포장되었는지 검토한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잘못된 신화 (: 무적 이미지나 전적 과장), 실제 전투 기록을 대조한다. 조선 후기와 근대사로 넘어가면서, 사도세자 사망, 정조 암살설, 간도 영유권 등 민족주의적 통념이 사료와 어떻게 어긋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정정이 아니라, “역사학 vs 유사역사학의 근본적 차이, 즉 증거 기반의 학문적 접근과 민족주의적 감정 기반의 접근의 차이를 정리하면서 끝맺는다.

 

 

[참고] Ingyu Lee,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에서 근무 2020105~현재

https://www.facebook.com/ingyu.lee.39

[참고] 장현경, 고산자 김정호.

https://ncms.nculture.org/famous-local-people/story/9846

[참고] 나무위키: 김정호(金正浩·金正皡)

[참고]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 이문영 지음

[참고] 챗지피티.

https://chatgpt.com/c/691bbe69-84e8-8321-9f20-e876f4c350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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