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__ 낯선 미녀의 메시지. 스파이. 내년 간판 떼는 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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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1123__ 낯선 미녀의 메시지. 스파이. 내년 간판 떼는 검찰청

 

After-Culture 대표 김광혁 디자이너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페이스북을 오래하다 보면, 낯선 미녀에게서 메시지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올해 들어 유독 자주, 모델이나 배우같은 천상의 외모를 가진 여자분들로부터 호감을 표하는 메시지를 받곤 했는데요. 이런 분들의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0. 계정을 만든 지 얼마 안 되었다.

1. 패션을 전공했고 사업가라고 한다.

2. 외국 사람인데 한국어를 꽤 잘한다.

3. 이혼, 나쁜 남자를 만났던 과거를 고백한다.

4. 꽤나 친절, 철학적인데 지나치게 적극적.

 

5. 아침, 점심, 저녁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6. 페메 대신 라인,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유도.

7. 라인, 텔레그램으로 이동하면 이름이 다르다.

8. 자신의 하루 일상을 자주 공유한다.

9. 자꾸 나에게도 일상 사진을 달라고 한다.

 

10. 대화 중 종종 캐릭터 설정이 흔들린다.

11. 보낸 사진이 유명 인플루언서의 도용이다.

12. 인스타, 틱톡을 아이디 물으면 없다 한다.

13. 도용 사실을 지적하면 돌연 반말과 욕설.

14. 차단하면 곧 다른 계정으로 다시 등장한다.

15. 점점 더 정교하고 자연스러운 수법을 구사.

 

결론은 대부분 로맨스 스캠이며, 저같이 홀로 사는 중년 오타쿠를 집중적으로 노린다는 겁니다. 대화하다보면 술, 담배를 하지 말라고 정말 적극적으로 말하는데, 아마도 제 장기들이 건강해야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중년의 형제들이여, 꼭 기억하십시오.

 

혹시 페북에서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미녀가 있다면, 당신에게 호감이 있는게 아니라 당신의 건강한 장기나 든든한 통장에 호감이 있는 겁니다. 대체로 예쁜 여성께 혐오받으면 안전한 겁니다.

 

 

      스파이

 

디지털 크리에이터 서민영 님이 스파이라는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스파이: “적국의 주요 인물에게 직접 혹은 매우 가까운 주변부로 침투시킨 여성 스파이(여간첩)”라는 조건으로는... “침투(spy)”공작(agent)”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지만, 유사하거나 비교적 근접한 사례들을 몇 가지...

 

크리스텔 과유메(GünterGuillaume & ChristelGuillaume)

동독의 스파이였던 과유메 부부는 서독 사회민주당(SPD) 내부에 침투. 다만, 이들은 직접적으로 당시 서독의 정당과 정부 내의 고위층 네트워크에 침투한 사례. 동독(Stasi, MinisteriumfürStaatssicherheit) 요원으로 활동했던 부부인 GünterChristel Guillaume의 주요 경력과 의미.

 

Günter Guillaume 1927년 출생, 베를린 출신. 1956년 동독으로부터 서독으로 이주(난민 가장)해 활동을 시작. 1974424일 서독에서 체포됨.

1975년 고문 간첩 혐의로 13년형 선고. 1981년 동서 냉전 간첩 교환으로 동독으로 송환. 1995410일 사망.

 

Christel Guillaume (출생명 Christel Boom) 1927년 출생. 남편과 함께 간첩 활동에 투입됨. 1975년 서독에서 8년형 선고. 1981년 동독 복귀 직후 이혼. 2004320일 사망.

과유메(Guillaume) 사건” === 두 사람은 동독 정보기관의 명령 하에, 1950년대 중반 서독으로 위장 이주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서독 사회민주당(SPD)에 가입하고 당 내에서 입지를 넓혔으며, Günter1970년대 초반 WillyBrandt 총리의 보좌관까지 올라갔습니다. 1974424일 체포됨으로써 서독 정부에 큰 충격이 되었고, 이로 인해 Brandt 총리는 같은 해 56일 사임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Guillaume 사건(Guillaume Affair)**이라 부릅니다. 체포 이후, 재판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으며, 1981년 복귀 후 동독에서는 영웅으로 대우받았습니다.

 

이 사건이 왜 중요한가? 이 부부의 활동은 냉전시대 서독 내부에 동독이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Günter Guillaume가 총리 보좌관 직책까지 맡았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왔는데, 서독 총리 사임이라는 극단적 결과까지 낳았다는 점에서, 외교·정보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마타 하리(Mata Hari, 본명: Margaretha Geertruida Zelle)

1차 세계대전 당시 모종의 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여성 무용가. 그녀가 독일 혹은 프랑스 쪽에서 정보를 수집. 마르하레타 헤이르트라위다 젤러: 1876~1917(41), 국적 네덜란드.

1895년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 주둔하고 있었던 군인 루돌프와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으나, 타향살이도 부부 관계도 순탄하지 않았다. 1899년 아들이 죽은 후 네덜란드로 귀국했으나 결국 1902년에 이혼하고 딸도 빼앗겼다. 전 남편이 송금을 거부하자 생계가 막막해졌고, 자바섬에 살았을 때 배운 춤과 이국적인 외모로 돈을 벌면서 파리에 왔다. 특히 20세기 초, 물랭 루주 등을 무대로 선정적인 복장에 선정적인 춤을 추면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 과정에서 매춘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언어에 재능이 있었는데 모국어인 네덜란드어 말고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다. 검은 머리카락과 연갈색 피부를 가진 이국적인 미인으로, 자신이 인도네시아의 자바인과 네덜란드인의 혼혈이라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스러운 이미지나 첩보원으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유명해 프리슬란트인이라는 점은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있다. 예명이었던 '마타 하리'는 인도네시아어로 '태양'이라는 뜻이었는데, 인도네시아어로 mata'', hari'하루'라는 뜻이므로 mata hari를 직역하면 '하루의 눈'이라는 뜻이었다.

 

이런 식으로 프랑스 상류 사교계에 드나들기 시작했으며,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 육군 정보부에서 그녀에게 접근하여 거금을 주기로 약속하자, 그녀는 프랑스 육군의 정보를 빼내기로 계약했다. 당시 마타 하리가 출연하던 클럽은 프랑스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사, 외교계의 고관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라 독일 측은 많은 기대를 했으나, 그녀는 그다지 많은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그녀를 통해 독일이 얻을 수 있었던 정보는 프랑스 고관들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 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육군 항공대의 에이스 파일럿이었던 샤를 뇡제세 등의 유명인과 염문이 나돌기도 했다.

 

대전 중반에는 프랑스 육군 정보부에서도 스파이 행동을 눈치채고, 접근하여 오히려 독일 측의 정보를 빼내 올 이중간첩으로 만들고, 독일 방첩 기관장에게 접근하여 유혹하도록 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보냈지만, 이 임무도 독일 측이 눈치채서 실패했고, 독일은 오히려 역정보를 프랑스에 흘려 프랑스 측이 그녀가 여전히 독일을 위해 일한다고 판단하게 만들어, 그녀를 체포하도록 만들었으며, 결국 파리 교외에서 반역 혐의로 19171015일 총살형에 처해졌다. 사망 당시 나이는 41세였는데, 처형당할 때 그녀는 모든 걸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서인지 눈가리개를 거부하고 미소를 지으면서 사수들에게 "어서 쏴요. 그걸 계속 들고 있는 것도 힘들지 않나요?" 라고 말했다고 하며, 자기 시신을 맡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테니 그냥 인체 해부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생전에 밝혀 사형 집행 후 시신이 그대로 처리되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밴 르브

미국 남북전쟁 시기, 남부 연합(Confederacy)의 백악관(Jefferson Davis)이 머물렀던 리치먼드(Richmond)의 주변에 거주하면서, 내부 정보를 수집했던 흑인 여성 간첩. 그녀는 남부 지도자나 고위층과 직접 대면하는 전용 간첩은 아니었지만, 극비리에 조직 내부 정보를 훔치고 보고.

 

SOE 여성 요원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여성 스파이들)

영국의 비밀작전기관 SOE(Special Operations Executives)에서는 많은 여성 요원을 적 점령지에 투입했는데, 이들은 적군 장교나 행정관 등과 접촉하면서 정보를 수집.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들은 첩보 활동, 공작, 무선 통신, 연락, 탈출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버지니아 홀, 누르 이나야트 칸 등이 있습니다. 여성 요원들은 남성 요원들과 마찬가지로 용맹함과 치밀함으로 조국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마가리타 코넨코바

KGB 스파이, 소련 KGB의 여성 스파이였던 마가리타 코넨코바는 1930년대부터 10여 년간 미국에 거주하며 활동. 그녀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접근하여 10년 가까이 열애 관계를 유지.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아인슈타인 주변의 과학자 네트워크로부터 미국의 핵 개발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여 KGB에 전달.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10여년간 소련 스파이와 열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은 독일 월간 정치평론지 치세로 1월호에 실린 '아인슈타인의 위험한 사랑'이란 제목의 표지 기사에서 밝혀졌다. 소련 스파이는 러시아의 유명 조각가인 세르게이 코넨코바의 부인 마가리타였다. 마가리타는 1923년 소련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유명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노어 등과 가깝게 지내며 미국 상류사회에서 인기가 높았다.

 

1935년 아인슈타인(당시 56)은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기 위해 코넨코바의 화실에 갔다 마가리타(당시 39)를 처음 만났다. 매혹적인 자태와 세련된 매너에 홀딱 반했다. 마가리타는 "아인슈타인은 매우 흥분해 상대성 이론을 설명했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까 편안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는 메모를 남겼다. 1년 후 아인슈타인의 두 번째 부인이 죽자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마가리타는 아인슈타인의 집도 자주 찾아갔다. 두 사람은 몇년 동안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샤라넥 호수에 있는 아인슈타인의 요트에서 밀애를 즐겼다.

 

마가리타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소속 스파이였다. 남편도 몰랐다. 저명 물리학자의 핵무기 개발 상황 정보를 캐내는 것이 임무였다. 당시 원폭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소장이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도 접근했다. 마가리타의 직속 상관은 "그녀는 베테랑 첩보원"이라고 평가했다. 마가리타 덕분에 소련은 미국의 첫 원폭실험 성공 정보를 곧바로 입수했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439183

 

김수임(1911~1950.6.22. 총살)

개성 출신,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 영어·사교 능력이 뛰어났음. 미군 헌병대장 혹은 미군정 관련 미국인 고문관 베어드(Baird) 대령과 동거했음. 남로당의 지도자급 인물인 이강국(李康國)의 애인. 미군의 기밀 미군 정보를 북한에 유출. 남로당 조직원들의 월북이나 탈출을 도왔음.

 

 

     내년에 간판 떼는 검찰청

 

보완수사권 결론 없이 검찰청 폐지여당 "() 죽음 내몬 칼 사라져"

내년 간판 떼는 검찰청... [조선일보] 김나영 기자, 오유진 기자, 김상윤 기자가 보도했다(2025927). 926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19488월 정부 수립과 함께 개청한 검찰청이 78년 만에 사라지게 됐다. 검찰청 대신, 기소만 담당하는 공소청과 부패·선거·마약 범죄 등 9대 주요 범죄 수사를 하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신설되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중수청과 공소청,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 설치 법률 제정에 대해 추후 논의를 거쳐 연내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번 개정안은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정성호 법무장관은 이날 새로 출범할 수사·공소 기관은 국민 인권을 수호하는 정의로운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했고,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을 구형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정권의 칼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최대 쟁점은 검()보완 수사권

이번 검찰 개편안에 따라 정부조직법 내 검찰청공소청으로, ‘검찰검사 사무로 각각 명칭이 바뀐다. 관할도 기존 법무부 산하 검찰에서, 수사를 맡는 중수청은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옮기고 공소청은 그대로 법무부 산하에 둔다. 검사들은 공소청에서 기소 업무를 담당하게 되고, 수사를 하려면 검사복을 벗고 중수청 수사관으로 전직해야 한다.

 

개편안의 핵심은 수사와 기소의 분리다. 현재 검찰은 부패·경제 등 일부 범죄에 대해서만 직접 수사권을 갖고 있는데, 공소청으로 전환되면 수사권을 완전히 잃게 된다. 다만 검찰의 보완 수사권또는 보완 수사 요구권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최대 쟁점이다. 여권에서도 보완 수사권 유지와 전면 폐지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의 보완 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경찰 수사에서 미진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야 기소부터 공소 유지, 형 집행까지 형사 사법 절차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8.1%공소청에 보완 수사권이나 보완 수사 요구권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구더기가 싫어도, 장독을 없애면 되겠냐?”며 보완 수사권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형사 사법 시스템, 향후 어떻게 되나?

검찰청 폐지 후 형사 사법 체계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대원칙은 공소청 검사는 수사에서 손을 떼고 기소 여부 결정과 공소 유지만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보완 수사권마저 뺏기면 사법적 통제가 없는 경찰,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수사기관만 난립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1차 수사기관이 기소·불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건을 공소청에 송치하는 전건 송치가 거론된다. 이 밖에 현재의 고등검찰청 같은 기관의 설치 여부, 중수청 수사관의 구성과 수사 범위 등도 남은 1년 논의를 거쳐 정해진다. 민주당 관계자는 첨예한 쟁점이 많아 향후 입법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고 했다.

 

() 내부 분위기... “올 게 왔다

검찰청 해체가 현실로 다가오자, 검찰 내부에선 올 게 왔다는 분위기다. 이날 정부조직법이 통과하자, 대전지검 서산지청 차호동 부장검사가 사표를 던졌다. 그는 검찰 내부망에 독재국가에서나 볼 법한 기형적인 제도라며 공무원인 제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반대 의사 표시로 사직을 선택했다고 썼다. 재경 지검 한 부장검사는 당장 검찰이 쓰는 전산 시스템(KICS) 개편에도 많은 시간과 예산이 투입된다. 형사 사법 체계가 마비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법무부는 윤석열 정부의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을 다시 고쳐서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더 줄이는 안을 입법 예고했다.


 

[참고] 김광혁 디자이너 After-Culture 대표(CEO), The Twilight Radio Producer Director 슬로우뉴스 편집위원.

https://www.facebook.com/nitro2red

[참고] 서민영 Thermidorian Reaction 을 위하여 자유애국우파입니다. Trust Me Trust U 20161023일 손석희 태블릿피시 보도 시작, 프로필 · 디지털 크리에이터. https://www.facebook.com/minyoung.suh.77

[참고] [조선일보] 김나영, 오유진, 김상윤 기자(2025927).

https://www.chosun.com/national/court_law/2025/09/27/QEES3TYYEZGN5EALOTUN23XU3A/

[참고]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439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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