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5__ 최복규 S마피아 회장. 웹소설 산업 현황. 한글신문 한성주보와 한자신문 한성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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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1055__ 최복규 S마피아 회장. 웹소설 산업 현황. 한글신문 한성주보와 한자신문 한성순보

 

[보안리더] 최복규 S마피아 회장 "날 원하는 곳 있어 행복"... 보안 마케터 모임 이끌어... 소프트뱅크·안랩·시큐레터 이어 앤앤에스피 근무...

[ZD] 유혜진 기자가 인터뷰했다(202557). “이제 마케팅 시대예요. 마케팅최고책임자(CMO) 평균 연봉이 기술최고책임자(CTO)보다 많다네요.” “보안 전문가가 개발한 기술이 시장에서 팔리도록 알리는 역할도 있어야죠.” 최복규 에스마피아(S마피아) 회장은 최근 지디넷코리아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에스마피아는 한국 보안(Security) 산업을 마케팅(Marketing)하는 사람들의 이상향(Utopia·유토피아)이라는 뜻의 모임이다.

 

한국에서 보안 산업이 활발해진 2000년대, 초 모이기 시작했다. 10여개사로 출발해 규모가 5배 넘게 커졌다. 삼성SDS 자회사인 시큐아이 강명수 실장이 초대 회장으로, 에스마피아를 이끌었다. 당시 보안 산업 홍보·마케팅 담당자들이 대부분 1970년대생으로, 나이와 직업이 비슷해 의기투합했다. 현재 50여개사 7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한다. 매년 회장을 새로 뽑는다. 보안 기업은 전시회나 기술 설명회에 참가해, 업체마다 사업을 뽐내곤 한다. 이때 현장에서 자주 만난 담당자끼리 관련 소식과 마케팅 정보, 정보기술(IT) 동향을 주고받는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한편 매년 상·하반기 정기 모임으로 친목을 다진다.

 

최복규 에스마피아 회장은 정보보호 기업 앤앤에스피 마케팅팀 상무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에스마피아를 만든 초기에는, 사회관계망(SNS)이 없던 때라 한 달에 한 번 만났다. 영화에 나오는 마피아처럼, 정기적으로 모이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주로 홍보·마케팅 관련 정보를 교류한다. 보안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담당자들에게 매우 유용하다고 들려줬다.

 

마케팅은 경영학에서 뻗어 나왔다.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시장을 만드는 일을 한다. 최 회장은 보안 기업 마케팅으로 제품 출시 전략 수립, 회사 브랜딩, 사업 기회 발굴, 전시 및 행사 등을 꼽았다. 최 회장은 소프트뱅크 한국지사 채널마케팅 과장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안랩 세일즈마케팅 부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은 소프트뱅크 한국지사가 없지만, 그때 한국에서 안랩 보안 상품 총판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안랩으로 옮겼다고 돌아봤다. 이후 시큐레터 마케팅총괄 이사를 거쳐, 앤앤에스피 상무로 일하고 있다. 최 회장은 몇 번 이직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해, 대학에서 예체능을 전공했다. 시각디자인학과에서 웹기획한 경험을 살려 간, 첫 직장에서 마케팅에 빠졌다.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박사 과정에 도전할 마음도 있다. 현재 성균관대·국방혁신기술보안협회가 운영하는 사이버보안 최고위과정 제1기에 참여한다.

 

 

     웹소설 산업 현황

 

2024년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 발간.pdf (2025416). 출판진흥원, 2024년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 발간... 웹소설 산업 규모 2022년 대비 3110억 원 증가한 13500억 원... 웹소설 이용자 79%, “유료 결제 경험 있어”...

 

웹소설 CP사 및 플랫폼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웹툰과 웹소설을 포함한 콘텐츠 관련 연평균 매출액은 약 16454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웹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45.3%, 연평균 매출액은 약 745400만 원이었다. 웹소설 관련 세부 매출 항목 중에서는 출판 매출이 55.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유료 콘텐츠 매출이 31.8%로 그 뒤를 이었다.

 

웹소설 창작자 대상 조사 결과, 웹소설 연재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은 전체 수입의 약 60.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웹소설 작품 1편당 평균 인세 수준은 ‘100만 원 이상 300만 원 미만28.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웹소설 이용자 대상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9.0%가 웹소설 유료 결제 이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1회 평균 결제 금액은 8032원으로 나타났다.

 

웹소설 산업은 플랫폼 매출과 2차 저작권 활용을 중심으로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웹소설은 웹툰, 영화, 게임 등 다양한 2차 콘텐츠로 확장 가능한 원천 IP(지식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로서 높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웹소설 산업에 대한 정확한 통계자료 확보는 산업의 현황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한글신문 한성주보와 한자신문 한성순보

 

[항일의 기억, 광복의 기쁨)] 100년 전 지역 항일운동 불 지폈던 상해판 독립신문’, [경인일보] 강기정 기자가 보도했다(202557).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신문은 188310월 창간한 '한성순보'로 한자신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신문은 189647일 서재필이 창간한 독립신문이며, 주시경이 교열과 교정에 참여하였다. 서재필이 이끌던 독립협회가 제작했는데, 순 한글로 모든 사람들이 소식을 접할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영문판도 함께 있어 외국인들에게 조선의 소식을 알렸다. 1896년 한글신문 독립신문이 발간되기 10년 전인, 1886125일에 '이노우에 가쿠고로'는 최초의 한글 신문 [한성주보]를 만들었다.

 

독립신문3년 뒤인 1899년까지 제작됐지만, 그 취지와 정신, 의미는 머나먼 중국 상하이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20년 뒤, 19193·1 운동이 일어난 해에, 만들어진 상해 임시정부에선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정부의 활동상과 국민 계몽 등을 위해 같은 제호의 독립신문을 발간했다(상해판 독립신문).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19198월부터 192611월까지, 무려 7년 동안 207호가 간행됐다. 조선 독립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상해판 독립신문은 매 호마다, 관련 소식들을 부지런히 게재했다. 때때로 상해판 독립신문을 받아본 경기도내 독립운동가들이 항일의 불꽃을 태우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최초의 신문인 독립신문만큼이나, 상해판 독립신문 역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사회를 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던 신문이었다는 평이다.

 

디지털 크리에이터 Ingyu Lee 님이 한글신문에 대하여 글을 올려주셨다... 🎊한글날 경축🎊 최초의 한글신문은 일본인이 만들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근대 신문은? 한자신문 한성순보이다. [한성순보]에 대해, 우리는 역사왜곡으로 아이들과 성인들에게 교육을 시킨다.

 

*** 1박문국에서 주도하여 신문을 발행하였다. (🔺)

박문국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인쇄소이자 신문 및 잡지 등을 편찬인쇄하던 출판 기관으로, 신문을 발행했다는 점에서는 한국 최초의 신문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문국을 만든 사람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 角五郎, 1860~1939)'이다. 이 사람을 조선으로 보내, 조선 최초의 신문을 만들게 지원한 사람도 일본인이다. 그 사람은 바로 일본 1만엔 권의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 2갑신정변에 의해 중단 되었다. (🔺)

"급진적인 개화론자들에 의해, 신문 발간은 중단되었다"고 이야기만 하지 왜? 중단되었는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진실은, 갑신정변으로 인해 청나라군이 일본인을 탄압하고, 박문국(인쇄소)이 불타 없어지고,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일본으로 피신하는 통에 신문을 발행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청나라군은 '이노우에 가쿠고로'를 핍박했는가? 18841월 청나라군이 조선에 주둔하던 시절, 청나라 군사들이 조선의 약방에서 약을 많이 외상으로 사갔는데, 조선인 약방 주인이 외상값을 달라고 하자, 청나라군들이 그를 구타하고, 옆에 있던 약방 아들을 총으로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이 사건을 1884130일자 [한성순보] 10호를 통해 보도를 했다.

당시 청나라로부터, 조선 정부의 내정, 외교 등 간섭이 심해지고, 특히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병사들의 약탈 및 강간 등의 횡포가 심했다. 그래서 한자신문 [한성순보]는 청국병사에 의한 '서울약주인피살사건'을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하고 이를 규탄했다. 이것이 청나라를 자극해,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청나라는 [한성순보]'이노우에 가쿠고로'의 신변을 위협했으나, 조선 정부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못했다.

 

💢 이런 진실을 대한민국에서 말하지 않고 있다.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일본으로 피신 중에, 스승인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한자신문 [한성순보]를 보여주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꼭 한글을 사용하는 것이, 조선의 개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성순보]는 한글 신문은 아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인의 한글 보급에 많은 도움을 준 인물임에도, 한국인들은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숨긴다. 우리가 이제껏 받은 교육은 "일제가 한글을 탄압했다"라고 말하는 데, 엄청난 거짓말이다.

 

다시 조선으로 온 '이노우에 가쿠고로'1886125일 최초의 한글 신문을 만든다. 그 신문 이름이 [한성주보].

 

*** 3우리 교육은 한자신문 [한성순보]와 한글신문 [한성주보]에 관해 누가 창간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전혀 설명을 안 한다. 왜일까?

 

💢 그 이유는 일본인이 만든 것을 숨기고, 조선 정부기구에서 근대적인 신문을 발행했으며, 개화개방을 위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이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진실은 이러하다.

1. 그 근대적 신문이라는 것도 일본인에 의한 것.

2.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들도, 일본당이라 불리는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고, 일본의 지원하에 일어난 것.

3. 개화파와 일본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신문을 발행할 능력이 있는 조선인이 없었고, 신문은 바로 폐간된 점.

,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조선 정부에 한글 신문 창간을 건의하자, 고종과 신하들은 반대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조선의 왕과 양반들은 [한글]을 천박한 문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한 인간들이 쓰는 글자가 한글이다."

 

유일하게 '김윤식'이라는 분이, 한글 신문 발간 필요성에 공감하고 지지했다. 그의 도움으로 '이노우에 가쿠고로'는 일본에서 신문 발간에 필요한 기계와 활자를 들여와, 1886125일 한글신문 [한성주보]를 창간했다.

 

*** 4한성주보 제 3218861011일자 한글 기사를 끝으로, 한글 기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 이노우에 가쿠고로가 일본으로 귀국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사 자료로는 188826일자 제 101호까지 확인할 수가 있다.

 

조선은 근대화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한 것이다. 한글 보급에 힘쓴 것은 조선정부가 아니라, 일본인이었다는 진실을 우리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일본에 관해, 거짓말만 일삼는 한국이 나는 부끄럽다.

 

[참고] [ZD] 유혜진 기자, 2025/05/07.

https://zdnet.co.kr/view/?no=20250507094151&fbclid=IwY2xjawKL4ddleHRuA2FlbQIxMQBicmlkETFOWVdBWGNSa0lsVjhQUm1tAR6QLD8T5za68thaTS2CwOG6a_G02tmV5sRpxNaYu_MF1O6AVllXFxZOSZudwQ_aem_-7AovyanEr6jL2tcNL-j3Q

[참고] 최복규 회장 앤앤에스피 상무(현재). 약력: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성균관대·국방혁신기술보안협회 사이버보안 최고위과정 제1, 소프트뱅크코리아 채널마케팅 과장, 안랩 세일즈마케팅 부장, 시큐레터 마케팅총괄 이사.

[참고] 2024년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 발간.pdf, 2025-04-16.

https://www.kpipa.or.kr/p/g1_5/943?fbclid=IwY2xjawJr5-ZleHRuA2FlbQIxMAABHgNrCWU3tq7Q9O_ju4sb9-6X8V1gYLCGiIag2rrtt7dLqHQdUfbKS1NwTEYQ_aem_smXLQb_LYl9EAMjIuEPZ7A

[참고] Ingyu Lee

https://www.facebook.com/ingyu.lee.39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554119841791818&set=pcb.1554120375125098

https://www.facebook.com/photo?fbid=1554119888458480&set=a.123396101530873

[참고] ‘상해판 독립신문’ [경인일보] 강기정 기자, 2025-05-07.

https://www.kyeongin.com/article/1738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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