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7__ 한국은 역사치매국. 환단고기. 5성취루. 녹도문 가림토문. 환단고기 실증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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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7__대한민국은 역사치매국- 환단고기- 5성취루- 녹도문 가림토문- 환단고기 실증 사례---24

뚱보강사 이기성

 

 

    777__ 한국은 역사치매국. 환단고기. 5성취루. 녹도문 가림토문. 환단고기 실증사례

 

 

대한민국은 사노식비(사대주의의 노예, 식민사관의 노비)가 지배한 역사치매국이다... 우리나라 한국사가 왜 이토록 혼란스러울까요? 어느 나라 국사가 또 이렇게 분열되어 있을까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본 조선총독부의 한국 역사 말살 정책 때문이다.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하여 연구하고체계를 정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일본 제국주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후신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와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제자인 이병도(1896~1989)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국사학 교수로 조선총독부(조선총독부가 편찬한 <<朝鮮史(조선사)>>)의 뜻대로 우리나라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이병도 학파가 국사학계를 접수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문교부(교육부)의 국사 교과서는 물론 국사 연구 분야도 조선총독부 한국 역사를 따라야만 연구비를 지원해주고, 진짜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면 학계와 교육부에서 기피 대상이 된다.

 

물론, 각 나라의 지금까지 남아있는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 대부분이다. 승전국이 패전국가의 책과 유물을 다 없애버리니까, 남은 책을 찾기 힘들다. 나라가 망하면 진실을 기록할 사람과 돈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신라가 이겼으니까, 신라가 유리한대로 역사를 기록한다. 고구려가 이겼으면 바른 고구려 역사가 남았을 텐데, 신라가 이겼으니 고구려 역사는 될 수 있는 나쁜 것만 남기거나, 아예 없애버리고, 승전국인 신라 마음에 드는 것과 일부는 조작하여 역사책을 만들었다. 거기다가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제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조선사>를 배우고, 세뇌(洗腦, brainwashing)되었다. 전쟁 무기나 경제가 세계 상위권 국가가 되면, 어느 나라든지 자기 나라에서 만드는 역사책이라는 게 자신들의 치부는 작게, 또는 은폐하고 과시적인 내용은 좀 더 상세하게 또는 과장되게 기록하기 마련이지만, 특히, 중국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1910년의 국권 강탈 이후 1945년 해방되기까지 35년간을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한국 국민을 영구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 역사를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조작하였고, 이 조작된 역사를 교육시켰기 때문에, 우리나라를 되찾은 후에도, 일본인 학자의 직계 제자인 이병도에게 교육을 받은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들의 거대한 세력과 친일학파의 세력에 대항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그림] 조선총독부의 한국 고대 역사 조작(식민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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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병도 식민사학(갈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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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서는 아예 역사책을 만드는 사관들에게 중국에 유리한 것만 기록하고, 중국에 불리한 것은 조작해서 기록하라고 교육을 시킨단다. 대표적인 것이 2100여년 전에 사마천(司馬遷)이 쓴 역사책 <<사기>>이다. 그래서 사마천의 <<사기>>(史记, 史記)는 사기꾼의 사기(詐欺) 역사책이라는 말이 남았다. 탁록대전에서 배달한국의 제14대 천황 '치우천황(蚩尤天皇)'에게 대패를 하고 도망친 중국놈을 '사기(史記)'의 첫머리에다 중국인이 '치우를 사로잡아 죽였다((擒殺蚩尤)'라고 거꾸로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BC 145?~BC 91?)은 중국 고대 전한(前漢)시기 역사가이다. 치우천황(蚩尤天皇)은 우리 신시(배달국, BC 3898~BC 2333) 시대의 제14대 환웅이다. 치우천황 또한 중국에서는 자신들의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의 환웅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우리의 대표 야사인 <<한단고기(환단고기, 桓檀古記)>>에서는 중국 최고의 제왕 복희(伏犧)를 우리 신시시대 5대 환웅인 태우의(太虞儀)의 막내아들 태호(太皥)라고 보고 있고, 소전(少典)의 아들 신농(神農) 또한 고시씨(高矢氏)로 우리 환웅 천황께서 대대로 농사일을 맡긴 집안이라 '고시례(高矢禮)'라는 풍습이 생겼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시켰다는 헌원(軒轅) 또한 소전의 자손 공손(公孫)의 후예라고 보고 있다.

 

민호추 [페친] 님도 걱정하신다. 우리나라 한국사는 왜 이토록 혼란스러울까요?... 어느 나라 국사가 또 이렇게 분열되어 있을까요?... 애통하고 애통하지요~ 한국사 복원... 우리 스스로 표준안을 만들고 관철해야 한다... 국사쪽 사이비 국적부터 뽑아내야 합니다. 김범수 [페친] 님도 중공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막기 위해서 한국사 복원이 중요합니다”... 라고 글을 올리셨다. 고려의 서경은 옛 고구려의 평양인데, 그 위치는 요하(遼河, 랴오허강)의 하류 동쪽에 있었다. 지금의 요양(遼陽, 랴오양) 위치이다. 고려 개경에서 보면 서경이 맞는다. 지금 평양은 개경에서 보면 북쪽이고 너무나 가깝다. 옛 지도에서도 고구려의 평양은 요하의 동쪽에 표시 되어 있다. 연개소문의 맏아들 천남생의 묘비에서 요동군 평양출신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평양은 지금의 평안남도 평양이 아니고, 역사서들에 의하면 현재 요하의 하류 동쪽이다(문성재 역, 조선동이전 4).

 

 

     ‘조선총독부<朝鮮史>’해제출간 금지

 

희대의 "역사매국스캔들" 터졌다!... "조선총독부 조선사"(번역본)와 해제 (8만 쪽 400권 분량, 조선사 조작사료) 출간을, 교육부와 사학계에서 막았다!... 강단식민사학자들의 학문이라는 것은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준 것이 원본이다... 교육부에서 해제(400권 분량, 조선사 조작사료)책 출간을 금지시켰다... 1938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편찬사업 마무리, 그 이 후 그 누구도 이 책을 연구하려 하지 않았다.

 

현 한국사의 텍스트북. 인하대 고조선연구소가 오랜 시간을 통해 드디어 번역을 마무리 짓고, 조선총독부가 조작한 조선사의 실체를 8만 쪽, 400권 분량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사학계는 연구실적 평가에 69점의 낙제점을 부가하며, 연구비 환수와 연구 관련 참여학자들을 압박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최고의 매국사학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법적투쟁 단계에서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 실체를 공개한다.

 

--- 그러나, 교육부와 사학계는 연구실적 평가에 낙제점을 부가하며, 연구비 환수와 관련 참여 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교육부와 강단사학계가 식민사관으로 점철된 악의 집단, 매국집단이라는 그들의 실체가 드러난 충격적 사건이다. 국회에 이 사건을 고발합시다. 국정조사를 통해서 사건의 전말을 반드시 드러내야겠다. 자손만대에 길이 남겨야 역사의 정의가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왜곡된 책인 <<번역해제 조선사>> 책 출판... 저자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 번역 편무진, 김현욱, 이태훈. 지식과교양 출판사, 2020년 발행... 하야시 다이스케, 우리나라에서 자주 임태보(林泰輔)’로 불리는 이 하야시의 <조선사>를 번역 출판한 책... 1892년에 한국역사에 대한 근대적 기술서로서 세상에 알려진 문헌이다. <조선사>는 형식적으로는 그때까지의 구습(舊習)에서 탈피하여, 근대적인 역사서술을 시도한 최초의 역사서라고 하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그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는 한국사, 특히 그 중에서도 한민족의 근간을 이루는 고대사에 대한 당시 일본사학계의 조선관(朝鮮觀)이 거의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책... 하야시의 <조선사>에 의한 식민사관을 계승 발전시켜, 1922년부터 만 16년 간에 걸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사료집으로 편찬한 것이 바로, 책명도 동일한 <朝鮮史>이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역사 주권자다. 식민사관 카르텔 청산을 위해 나서야 한다. 일본사학계의 조선관(朝鮮觀)을 연구하고, 우리의 진짜 역사를 밝혀내고, 일본사학계와 이병도학파 등 교육부와 강단사학계의 잘못을 밝혀내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서영희 저,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책은 2022년 사회평론아카데미에서 발행했다.

********* 목차 *********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를 출간하면서

책머리에

프롤로그 식민사학의 고종시대사 인식

 

*******1부 식민지 기초조사로서 구관조사사업

1장 구관조사사업과 자료수집

1. 취조국 설치와 구관조사 참여세력

2. 총독관방 참사관실의 구관조사와 고문헌 수집

3. 중추원의 구관조사와 사료조사

 

2장 규장각 도서의 형성 과정과 자료정리

1. 통감부 시기 규장각의 도서 취합과 제실도서의 형성

2. 취조국·참사관 분실의 조선총독부도서정리

3. 대한제국 정부기록류의 규장각 도서 편입과 경성제대 이관

 

*******2부 중추원의 조선반도사편찬 목적과 역사인식

3조선반도사의 편찬 배경과 편찬 목적

1. 조선반도사의 편찬 배경

2. 조선반도사의 편찬 목적

 

4조선반도사의 편찬 경위와 역사인식

1. 조선반도사의 편수체계와 참여세력

2. 조선반도사의 역사인식

3. 조선사학회 편 조선사대계와의 관계

 

*******3부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편찬과 조선사 인식

5조선사편찬의 배경 1 38

1. 문화통치와 식민지 역사편찬 방침의 전환

2. 조선사참여세력의 조선사를 보는 관점

 

6조선사의 편수체계와 조선사 인식

1. 조선사의 편수체계와 편찬 과정

2. 조선사의 고종시대사 편찬

 

*******4부 이왕직의 고종순종실록편찬과 고종시대사 인식

 

7장 일본 궁내성의 이태왕실록편찬 경위와 배경

1. 아사미 린타로의 이태왕실록편찬

2. 이태왕실록의 편찬 자료 분석

 

8장 이왕직 편 고종순종실록의 고종시대사 인식

1. 오다 쇼고와 고종순종실록편찬 참여세력

2. 고종순종실록의 편찬 과정과 편찬 자료 분석

 

에필로그 고종시대사에 대한 식민사학의 기원과 궤적

본문의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조선총독부의 국사책을 믿는 한국 사람들

 

환단고기(桓檀古記)1911년 계연수가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진짜 역사보다, 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 국사책을 믿는 한국 사람들이 아주 많다... [한사모]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세계한민족 공동체회의 대표인 Tak Kim 님과 박창보 님이 글을 올렸다. “만약 환단고기가 조작된 창작물이라면, 그 작가들은 인류 최고의 천재일 것입니다.” 하기야 식민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맞지 않으면, ‘위서다’, ‘잘못된 기록이다하는 주장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않나요?

 

2022731일자 [전북도민일보]에 박창보 국학박사가 가야사 바로 잡기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국정 100대 과제 중 하나로, 가야사(伽耶역사) 복원을 천명하고 12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혈세를 책정하였다.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사이의 강역을 차지했던 가야는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해상무역을 장악하였으며, 일본에 진출하여 한민족의 문화와 세력을 유지하였다.

 

 

     국비 운영되는 단체들 식민사관을 추종

 

주로 경남을 중심으로 경북일대가 가야문화권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전남북 일대와 금강 상류 유역까지 아울렀던 역사가 알려지며, 오늘날 영호남의 동서간 벽을 무너트릴 호재로 생각한 듯하다. 문제는 복원이랍시고 제대로 된 학술적 연구나 조사, 국민적 합의 없이 소수의 학자와 단체 등의 꿀잔치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관과 재단, 사학계를 비롯하여 국비로 운영되는 단체들 모두가 식민사관을 추종하고 있으며, 교과서 내용도 조작과 날조로 쓰였다는 것은 소수의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가야사 역시 식민사학으로 왜곡되어, 예컨대 남원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기문국이고 합천이 다라국이었다, 2019년 유네스코에 등재 신청하였던 음모가 발각되어서 잡음이 일고 있다. 오로지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국명을 어떻게 한반도내에 억지로 비정한 것인지, 제정신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가야가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라는 논리가 정한론의 근거가 되었으며, 실제 우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주권을 빼앗기고,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온갖 수탈의 고통을 겪었다. 올해 시행되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 또한 고조선을 배제하고, 8대 역사권역(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 중원, 예맥 등)으로 나누어, 완전한 식민사관으로 정립하였다.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일제가 한국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이다. 식민사관에 기초를 둔 한국사 연구는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신공왕후의 신라정복설과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한국역사를 만주에 종속된 것으로 보는 만선사(滿鮮史) 이론, 당시의 한국 경제를 일본 고대의 촌락경제수준으로 보는 이론 등을 내세웠는데, 이러한 논리는 20세기 초 조선침략이 본격화되자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정체성론, 타율성론으로 대표되는 식민사관의 토대가 되었다.

 

 

     역사문화권 특별법 또한 고조선 배제

 

그렇다면 삼국 이전의 역사는 아예 없었다는 말인가? 이러한 이유와 원인이야, 친일 후손은 물론 일본 유학을 했거나, 연구용역을 받은 자들이 정관계를 비롯하여, 언론 또한 일본의 극우 집단과 연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일제가 날조한 엉터리 가상 역사소설을 떠받들고, 배워 가르치는 사학계다. 단단한 카르텔 내에서, 서로 밀고 끌어주니 어느 순간 잘못된 관행을 알게 되면서 논쟁할 수가 없고, 자신의 논문을 수정하기도 어렵다.

 

그런 조짐이 보이는 순간,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꿰차고 있던 밥그릇마저 여지없이 날아간다. 국가와 국민은 그들이 끊임없이 뿌려대는 독 안개에 가려 점차 정신을 잃고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대한민국은 사노식비(사대주의의 노예, 식민사관의 노비)가 지배하는 역사치매국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은커녕 잊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는 동안, 강역과 정체성은 껍데기만 남아 있다. 전공이 아닌 바에 그다지 알 필요도 없고, 다른 일에 신경 쓰기 바쁜 현대인의 특성 때문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가 움츠리고 서로 분열하는 동안,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왕따 취급하며, 낄낄대고 무시하고 있다. 중원을 지배하고 호령했던 조상님들을 뵐 면목도 없거니와, 어려운 시기에 목숨을 걸고 싸운 순국선열들께도 할 말이 없는 실정이다. 중국과 일본, 우리가 합작하여 만들어낸 동북공정임나일본부의 논리가 어쩌면 동북아의 우크라이나로 전락하지 않으리라 어느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역사를 있던 그대로 연구 복원하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기존의 오염된 교과서와 백과사전, 각종 연구 저작물도 모두 폐기하고 다시 써야 한다.

 

사대주의의 노예, 식민사관의 노비(사노식비)들의 추방과 혈세를 환수하고, 관련자들의 문책과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언젠가 남북통일에 이어, 고조선의 고토수복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는 바로 지금 우리의 태도와 정신에 달려 있다.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는 자

 

<환단고기(桓檀古記)>1911년 계연수가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이다.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나팔 부는 자들에게" 묻는다... 본인이 직접 읽고 연구나 해보셨어요? 한 줄이라도 똑바로 읽어보지도 않은 자들이 누구 말을 믿고 위서라고 하나요?... 학술적인 증거를 대보세요. 고조선과 부여는 다 빼먹고, 고구려 신라 백제부터 시작하는 <삼국사기>를 능가하는 민족정사입니다. 중국인 사기꾼이라는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조선열전을 두고, 그나마 위만조선이라도 언급했지만, 사대 유학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고조선이) 아득히 멀고 가물가물하다'는 핑계로 '평양은 신인왕검의 옛 터전이다'라는 한 줄로 얼버무렸습니다.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金富軾) 등이 1145(인종 23) 완성한 삼국시대역사 책인 <삼국사기>...

 

기성교회가 자신의 존립기반을 뒤흔드는 도마복음을 이단이라고 하듯이, 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강단사학이 제놈들 밥줄이 위태로우니까, 목숨 걸고 집단으로 책이 나오자말자, 시비를 건 것이죠... 학술대회에서 내용에 대한 연구토론 맞짱 대결하자고 하면, 피하는 얼간이들이 언론 플레이만 하는데... <환단고기>를 가장 배척하는 두 집단이 유태 유일역사관에 세뇌된 유사 유태인과 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유사왜인들이다...

 

 

     <환단고기>

 

세계한민족 공동체회의 대표인 Tak Kim 님이 [페북]에 올리신 글이다. <환단고기>는 개인이 공상으로 창작한 것이 아니다. <환단고기>는 옛 기록을 주로 인용했는데, 인용한 조대기(朝代記), 고조선비기(古朝鮮秘記), 지공기(誌公記), 삼성밀기(三聖密記)등의 책명은 세조(世祖)가 내린 구서(求書)의 유시에도 보인다. 실존했던 역사책이라는 이야기다. 이걸 인용했는데 위서라고 한다면, 환장한 놈들이 아니고서야 할 말이 아니지요. 조선왕실 도서관 규장각에 보관했던, 이들 소중한 옛 기록이 통째로 사라졌는데 <환단고기>가 없었다면 그마저도 볼 수 없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환단고기>의 실증 사례

 

<환단고기>22가지 실증 사례를 알아본다.


[첫째]. 환단고기에 단군조선 13세 흘달 단군 50(서기전 1733) '5성취루'라고 하여 5개의 별이 루성 중심으로 모이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했는데, 이것이 천문학자 서울대 박창범 교수와 라대일 박사에 의하여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된 것이다. 박창범 교수는 '환단고기''단기고사' 등에 기록된 일식 등 천문현상을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했다. '환단고기'는 고려시대 이암이 썼고, '단기고사'는 발해의 대야발이 편찬했으나, 일부 사대식민학자들은 과학적 검증 없이, 삼국사기 전인 것과 후대의 조작 흔적이 있다는 것을 내세워서, 무조건 위서로 몰고, 외면하여 진지하게 연구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박창범 교수는 두 책에 모두 기록된 '5성취루' 현상에 주목하여 추적 조사한 결과, 실제로 서기전 1734713일 일몰 직후 금성, 목성, 토성, 화성 그리고 추가로 초승달까지 일렬지어 하늘에 나타나는 장관이 연출됐음을 확인하였다. 박창범 교수는 "이같은 현상을 우연히 맞출 확률은 0.007%에 불과하며, 책의 조작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적인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확인했다([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이것은 우리 민족 문화사 사운데, 상고사를 실증적 규명단계로 진입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단군조선이 민족국가로서 높은 수준의 문화를 창조했음과 더불어 환단고기의 실체를 입증한 것이라 사료된다.

 

[둘째]. 환단고기 등장 이전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발해 3대 문왕 대흠무의 연호가 환단고기에 '대흥(大興)'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1949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용두산에서 출토된 정효공주 묘지 비문에서 문왕 대흠무가 자기 존호를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라 하고 불법의 수호자로 자처한 데서 드러나, 환단고기가 사료로서 가치 있음이 과학적으로 실증되었다. 정효공주묘 벽화(연변 화룡현 용두산) 3대 문왕의 딸인 정효공주묘는 당나라 양식을 다른 것이나, 석실 내부의 벽에 백회를 바르고 12명의 인물을 그린 벽화는 고구려의 전통 화법을 이은 것이다.

 

[셋째]. 고구려 유장 이정기가 중국 중동부 15개 주에 대제(大齊, 평로치청)라는 큰 나라를 세우고, 458년간 다스린 기록이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 본기에 처음 나오는데, 이것도 1997년 처음으로 발간된 책 <고구려를 위하여>(김병호, 하서출판), 그리고 KBS 역사스페셜 '중국 속에 또다른 고구려가 있었다, 이정기 왕국(2001.5.16)에서 역사적으로 확인되었다.

 

[넷째].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각 왕조마다 해마다 천제를 지내온 바, 그 첫 기록이 환단고기 단군세기 단군왕검 무오 51(BC 2282)에 쌓았다는 것이 나온다. 마니산 참성단은 지금도 그 자태를 빛내고 있으며, 서울올림픽, 월드컵축구와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선지가 되고 있다. 강화도에서는 이 밖에도 고조선 유물로 정족산성과 고인돌 127기가 있다.

 

[다섯째]. 단군조선의 실재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양 강동현에 있는 대박산에서 단군릉이 1993년 발굴되었다. 여기에는 왕과 왕후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었으며, 북한은 단군릉을 거대하게 개건하여 성역화하였다. 그리고 1926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모금운동을 하여, 평양 강동현 단군릉을 보수하고 해마다 제사를 올린 바도 있다.

 

[여섯째].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는 장수왕이 즉위하자, '건흥'이라는 연호를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건흥 연호는 1915년 충북 충주 노온면에서 출토된 불상의 광배명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고구려 불상에는 '건흥오년세재병진(建興五年歲在丙辰)'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한때 백제 불상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광개토대왕릉비>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은 임자년인 412년에 사망한다. 즉위년 칭원법에 따라, 이 해를 장수왕 즉위 원년으로 삼아본다. 그러면 장수왕 즉위 5년은 병진년이다. 따라서 병진년 불상 광배명과 <태백일사>를 통해 '건흥'이 장수왕 대의 연호라는 새로운 지견을 추가할 수 있게 된다.

 

[일곱째].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조대기>를 인용하여 연개소문의 아버지 이름은 태조(太祖), 할아버지는 자유, 증조부는 광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연개소문의 할아버지와 증조부의 이름은 <태백일사>를 제외한 어떠한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1923년 중국 낙양의 북망산에서 출토된 연개소문의 아들 천남생의 묘지에서, 천남생의 증조부 이름을 '자유'로 명기하고 있어서 <태백일사>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었다.

 

[여덟째]. 환단고기 태백일사에 <진역유기>를 인용하여 현재 태국에 있는 아유타국과 백제 상인이 교역한 기록이 남겨져 있다. 이는 지역적 근접성으로 보아 백제가 현대의 캄보디아인 부남국과 교역했다는 <일보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백제 해외경영의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이병도   단군은 실존 환단고기 등 믿어야

 

[아홉째]. 이병도 1986, 단군조선의 사실과 환단고기를 믿으라고... 실증사학을 내세운 사대식문사학(매국 식민주의 학자)의 거두 이병도 박사가 과거에는 단군을 신화로 몰다가, 친구인 재야학자 최태영 박사와 국사 찾기협회회원들(김세환, 박창암 씨 등)의 우정 있는 충고를 받아들여 참회하고, 단군은 실존의 우리 국조이며, 역대왕조가 단군제사를 지내왔으나 일제 때 끊겼고, 삼국사기 이전의 환단고기 등 고기의 기록을 믿어야 한다고 198610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에 쓴 사실이다. 단군조선의 사실과 환단고기를 믿으라고 쓴 것이다. 시대식민사학자들은 그들 태두의 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열 번째]. 환단고기가 위사라면, 실증적 입장에서 깊이 연구하여 6하 원칙에 입각하여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 위조했는지 명백히 제시해야 하는데, 이를 제시한 사람이 현재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열한 번째]. 갑골문의 귀방이다.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물, 유적이 발견되었다. BC 1291년 단군조선 제 21대 소태단군 재위 때 은나라 왕무정이 '귀방'을 쳤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남아 있는데, 과연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는 은나라의 귀방 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환단고기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증명하고 있다.

 

[열두 번째]. 비파형동검이다. 단군조선의 비파형동검은 단군조선이 지나와 구별되는 선진 청동문화를 가진 정치세력 집단이었음을 가장 단적으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유적, 유물이다. 이 정치집단의 분포도는 환단고기가 말하고 있는 역사적 시기와 역사적 강역이 너무도 일치하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비파형동검의 분포지는 만주, 한반도, 중국대륙의 동편으로 환단고기가 설명하고 있는 역사 강력과 완전히 일치하며, 그 연대도 완전히 일치한다.

 

[열세 번째]. 고인돌 유적이다. 환단고기의 택백일사가 설명하고 있는 고인돌에 대한 기록 또한 환단고기의 사료가치성을 유적유물로 뒷받침하는 단군조선의 실증적 증거물이다. 환단고기의 태백일사에서는 배달국 신시시대의 장묘문화부터 고인돌 시대 장묘문화와 삼국시대의 장묘문화까지를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는 이와 같이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실상을 연대기와 역사기록과 역사 강역을 정확히 표시하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 역사서이다.

 

[열네 번째]. 하북성 중산의 천자문명이다. 하북성 중산묘에서 BC 10세기 것으로 보이는 청동도기가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천자건방중산후(天子建防重山后)'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인 서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BC 22세기의 도자기 부호와 양식이 완전히 같은 것이었다. 이것은 BC 22세기부터 BC 10세기까지 북경과 하북성 일대를 다스린 것은 단군조선의 천자였음을 기록한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지나인들이 최초로 천자(황제)를 참칭한 것은 BC 221년의 진시황이었다.

 

[열다섯 번째]. 요녕성의 '번한' 명문이다.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환단고기가 기록하고 있는 단군조선의 제후국 번한(번조선)의 명문이 나타나, 환단고기의 사실성을 증명하고 있다. 요녕성 대집둔 지구에서는 번한(番汗)을 나타내는 '番汗'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은 도장이 발견된 것이다. 단군조선은 개국과 동시에 진한(요하지역)과 번한(황하/하북성)과 마한(한반도/만주) 등의 삼한(삼조선)으로 나누어 다스렸다는 환단고기의 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하는 유물, 유적이 출토된 것이다.

 

[열여섯 번째]. 남녀 조각상과 곰 석상이다. 서요하 지역의 적봉시 나사대 지역에서는 환웅과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의 곰녀를 상징하는 남녀 조각상과 곰 석상이 출토되었다. 서요한 지역의 적봉시 홍산유적지에서는 갑골문의 초기형태가 발견되어 은나라의 갑골문이 흥산문화 담당자들에 의해 전해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 흥산문화와 나사대 문화는 대체적으로 배달국 시대(BC 3898년과 BC 2333년 사이)와 일치하고 있다.

 

 

     녹도문 가림토문

 

[열일곱 번째]. 배달국의 녹도문창성조적비이다. 환단고기에는 BC 389818분의 환웅중 배달국을 건설한 제1세 거발환 환웅께서 신지에게 녹도문을 창안할 것을 명하고, 배달국의 역사기록을 담당시킨다. 그런데 이 녹도문이 한국의 평양에서도 발견되었고, 산동성의 창성조적비에서도 발견되었다. 평양의 녹도문과 창성조적비의 글씨는 모양과 형태가 배달국의 녹도문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열본 '구주신가'의 가림토문 비석이나 '이세신궁'의 가림토문 청동거울은 한글 비석과 한글 청동거울이라 명명하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완벽한 가림토문이다. 또 스리랑카 패엽경사 발위글과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역시 그 형태와 내용이 한글(가림토문)과 흡사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열여덟 번째]. 요하는 압록이고, 난하는 요하란 것이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는 지금의 압록강은 '동압록'이고,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나하가 '요수(요하)'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란 사실은 중국 요사지리지와 삼국유사도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지금의 요하가 압록이고, 지금의 나하가 요수임은 서토의 고지도 '지리도' '연산도' '중국 삼대간룡총람지도'에도 나타나 있다. 환단고기가 얼마나 정확한 기록을 반영한 역사서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열아홉 번째]. 낙랑군과 낙랑국이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와 북부여기는 낙랑군과 낙랑국에 대한 근거를 가장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낙랑이란 지명이 나타나는 것은 BC 1767년 제13세 흘달단군, BC 1237년 제23세 아흘단군, 그리고 BC 195년에는 낙락왕 최승이 보물을 싣고 마한의 서울 왕검성으로 가는 장면이 적혀있다. 이때부터 하북성의 낙랑군과 한반도의 낙랑국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스무 번째]. 단군조선 12세 이한단군 때 가림토로 추정되는 순수관경비를 세워, 역대 제왕의 이름을 새겼다는 내용이 환단고기 단군세기와 단기고사에 나오는데, 엄청난 시차를 두고 사항을 기록함에 위작을 했을 리 없는 것이다. 단기고사에는 아한단군과 유위자 선인의 먼 국가장래에 관한 대화 속에 "사방국경에 제왕의 명호를 본국의 문자로 비석에 새겨, 국문을 영원히 보전케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에는 아한단군 52(BC 1833) 4월 외뿔 가진 짐승이 송화강 북쪽에 나타났다. 8월 천제께서 나라 안을 순시하시고, 요하 좌측에 이르러 관경순수비를 세웠다. 여기에 역대 제왕의 명호를 새겼는데 이것이 가장 오래된 금석문이다.

 

[스물한 번째]. 환단고기에 원형 한글을 같은 의미로 가림토(加臨土)와 가림다(加臨多)라고 하는 표현이 있는데, 단군세기의 가림토나 태백일사의 가림다는 각기 다르게 전해져 오는 기록들 가운데 이암은 "가림토"(행촌, 단군세기), 이맥은 "가림다"(십일당 주인, 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훈)라는 표현을 참고한 것이다. 가림토는 가림(분별)하는 토대 즉 땅이라는 의미로 그 뜻을 택해 토()를 썼고, 가림다는 가림하는다(, )라고 다를 썼으나 같은 뜻이다. 환단고기가 위서라면 한가지로 표현했을 것이다.

 

[스물두 번째]. 환단고기의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제4 마한세기 상의 "소도(蘇塗)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을 보게 되었다."는 표현에 비밀이 숨어 있다. 이맥 선생이나, 안호상 박사, 환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 교수도 뜻을 잘 몰랐는데, 구길수 선생이 최치원의 천부경 81자는 본 천부경 16(하나,,,,다섯,여섯,일곱,여덟,아홉,)을 풀어낸 시첩이라는 비밀을 풀어내면서, "남근상이 모셔진 소도"라 풀어 산상웅상이 남근이라는 것을 밝혔다. 소도는 "솟다"에서 와서 솟터 솟토 소토 소도나 솟대가 되었고, 소도에 솟은 것은 처음에는 "박달나무로 된 환웅상"인데 그것이 여름(돌무더기로 표현)에 삽입된 남근상(힌두교의 시바 링가)이 솟아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환단고기를 쓴 이가, 전해지는 말이나 책의 내용을 자신도 이해하지 못해 원저본을 그대로 썼던 것이므로,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라는 한 증거이다.(출처: 신명나는 한국사, 고준환 저, P.61~69)

 

 

     환단고기(桓檀古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환단고기(桓檀古記)>1911년 계연수가 한국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책이라고 나온다. 계연수는 이 책 환단고기범례에서,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계연수가 1911년에 ①『삼성기(三聖紀)· ②『단군세기(檀君世紀)· ③『북부여기(北夫餘紀)· ④『태백일사(太白逸史)등 각기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스승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고, 묘향산 단굴암에서 필사한 뒤 인쇄했다고 한다.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와 종교를 서술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을 어떠한 관점에서 수용하는가에 따라서, 한국고대사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달라질 정도로 기존의 역사서와는 차이가 나는 내용이 많다. 현재 이 책의 사료적 가치를 두고서는 수용하는 측과 위서로 간주하는 측으로 나누어진다. 삼성기의 삼성은 환인(桓因) · 환웅(桓雄) · 단군(檀君)을 가리킨다. 삼성기에서는 한국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편저자인 계연수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때 계연수는 다음 경신년(1980)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제자인 이유립(李裕岦)에게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환단고기1979년 수십 부가 영인된 뒤, 1982년 일본인 가시마(鹿島昇)가 일역(日譯)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4권의 기존 책을 하나로 묶어 탄생시켰다는 환단고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과 체재를 지니고 있다.

 

①『삼성기는 본디 안함로(安含老)가 지은 것과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이 중 계연수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안함로 저작의 삼성기를 상편으로, 태천의 진사 백관묵(白寬默)으로부터 얻은 원동중의 삼성기를 하편으로 하여 삼성기전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1457(세조 3) 세조가 팔도관찰사에 수압령을 내렸던 책들 가운데, 그 이름이 등장한 바 있는 삼성기는 한국민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단군조선의 건국과 그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삼성은 환인(桓因) · 환웅(桓雄) · 단군(檀君)을 가리킨다.

 

②『단군세기는 고려 말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지낸 이암(李嵒)1363년 관직에서 은퇴하여 저술했다고 한다. 이 책도 계연수가 백관묵으로부터 얻었다고 하는데, 471,096년에 걸친 단군조선의 편년사주2가 펼쳐져 있다. 아울러 여기에는 그 역대 왕명과 재위기간, 치적 등도 서술되어 있다.

 

③『북부여기는 복애거사(伏崖居士) 범장(范樟)이 저술한 것으로 본디 단군세기 합편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삭주의 이형식의 집에서 얻었다고 한다. 단군세기 합편가운데 단군세기는 백관묵의 소장본과 글자 한 자의 차이도 없이 일치했다고 한다.

 

④『태백일사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인 이맥(李陌)이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계연수의 스승인 이기가 소장했다고 한다.

 

이 책은 우주의 생성을 주로 다룬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 환인이 다스렸다는 환국의 역사를 적은 환국본기(桓國本紀), 환웅의 치세를 서술한 신시본기(神市本紀), 단군왕검이 나누었다는 진한(진조선) · 마한(막조선) · 번한(번조선) 중 마한과 번한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는 삼한관경본기(三韓管境本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攷)등 단군신화와 관련된 경전교리에 관한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 고구려 · 발해 · 고려의 역사 가운데 민족의 자존을 드날린 대외관계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고구려본기· 대진국본기· 고려국본기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백일사환단고기를 구성하는 4권의 책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은 것이다. 이처럼 환단고기는 한국 상고시대의 정치와 종교를 서술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을 어떠한 관점에서 수용하는가에 따라 한국고대사에 대한 인식은 현저한 차이가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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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장인수, <<치우천황(蚩尤天皇)의 탁록대전(琢鹿大戰)>>

[참고] 박석재. https://www.youtube.com/watch?v=zUmUT5zQLtE&t=2s

[참고] 민호추.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3230754023

[참고] 김범수. https://www.facebook.com/kushanman

[참고] [tistory]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후신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

https://gdlsg.tistory.com/3137

[참고] 유튜브, "역사매국스캔들" 터졌다! "조선총독부 조선사"(번역본)와 해제(8만 쪽 400권 분량, 조선사 조작사료) 출간, 교육부와 사학계에서 막았다! 매림 역사문화TV, 구독자 1.85만 명, 조회수 3,877, 2023. 12. 27.

https://www.youtube.com/watch?v=33pyjulFY3A

[참고] 서영희, <<조선총독부의 조선사 자료수집과 역사편찬>>, 사회평론아카데미 발행, 2022.05.16.

[참고] Tak Kim, [한사모]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 2023-12-28.

https://www.facebook.com/takkim1244

[참고] 박창보 국학박사, [전북도민일보], 2022.07.31.

https://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1016

[참고] <<환단고기>>22가지 실증 사례

https://blog.naver.com/lsd1969/221158348286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식민사관 [植民史觀] (두산백과 두피디아).

[참고] 환단고기(桓檀古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4977

[참고] 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도생(道生), 2021. 2. 21.

https://gdlsg.tistory.com/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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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7__  In history, Republic of Korea is a country of fools.   

    The Republic of Korea is a country of historical corruption ruled by the 'Sanosikbi' (slavery of historical ideology, slave of colonial viewpoints). Why is the Korean history so confusing? Which country history is divided like the Korean history? Why? This is because of th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Japanese colonial government)  to abolish Korean history. 

    It is because of th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to abolish Korean real history.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of Korea and Lee Byung-do (1896-1989), a student of the Japanese colonial history scholar Imanish Ryu who taught Korean history as the will of the "Japanese colonial Joseon(Korea) history" compiled by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Japanese colonial government).  

    After Korea's independence from Japan, Lee Byung-do is a professor of Korean histor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s College of Literature in Seoul, Republic of Korea.

     Since Lee Byung-do's school still accepts the Korean history academia, the Korean history textbook as well as the Korean history research field of the Korean Ministry of Education must follow the Korean histor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Japanese colonial government) to support the research fund, and if we really study our own history, the  Lee Byung-do's academia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 will avoided giving research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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