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2__한자. D램 동경선언. 미국의 반지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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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582__한자. D램 동경선언. 미국의 반지성주의.

 

 

나이와 집중력... 나이가 들면 무조건 머리 나빠진다?... "일부 기능은 향상될수도"... 미국 조지타운대 메디컬센터 연구 결과... 집중력 등 기능 향상 사례 적지 않아... '기민함'은 예외... [시사저널] 박선우 기자가 보도했다(2022824). 인간에게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일부 화장품 등을 통해 노화를 지연시키려는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나, 노화 자체를 멈추는 방법은 아직 없다. 노화에 있어선 신체 겉모습만큼이나 뇌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역시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다. 기억력, 사고력, 집중력 등 정신의 전반적 기능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쇠퇴한다는 것이다. '나는 머리가 굳어서'로 시작하는 푸념을 중년 이상 연령층에게 한번쯤 듣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집중력, 주의력 등 일부 기능은 되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향상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58~98세 연구 참가자 702명을 대상으로 주의력과 인지조절능력의 세 가지 측면인 '기민(alerting)' '정향(orienting)' '집행기능(executive inhibition)' 관련 두뇌 네트워크를 조사했다.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능력은 '기민' 뿐이었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었다. '정향'이나 '집행 기능'의 경우 오히려 향상됐다는 주장이다. 연구팀은 "연습으로 향상될 수 없는 기민함은 (노화에 따라) 감소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주의력과 집중력은 평생 연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이점이 근본적 신경 저하보다 더 크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의력과 집중력이 노화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보단, 적절한 연습 등을 기울이면 노화로 인한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기민(alerting), 정향(orienting), 집행 기능(executive inhibition)은 각각 들어오는 정보에 대응하고자 경계 및 준비 태세를 강화하는 것 뇌의 자원을 특정 위치로 이동시키는 능력 정보가 산만하거나 상충되는 상황에서 중요 정보에 집중하는 능력을 뜻한다. 운전을 예로 들 때, 기민은 교차로 접근시 준비태세 강화, 정향은 보행자 등 갑작스런 움직임을 향해 주의를 돌리는 능력, 집행 기능은 광고판 등 주의력을 해치는 요소를 억제하고 운전에 집중하는 기능이다. T.얼만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는 연구 결과에 대해 "알츠하이머병과 같이 노화로 인한 장애를 가진 환자들을 포함해서, 임상적 개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일본과 한국의 한자 정책

 

한자문제가 코로나 못지않게 답답한 현실이다... [부산일보]에 이우석 영산대 명예교수·전 대한일어일문학회 회장이 기고했다(2020830). 신문에 손 세척제를 손 세정제로 쓰고 있는 점이 코로나바이러스 못지않게 답답하게 느껴진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굴착기를 만드는 제조업체의 홍보물에서까지 굴착기굴삭기로 잘못 쓰고 있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일본으로의 유학을 주선하는 유학원에서조차 전형료선고료로 잘못 쓰는 곳이 있으니 쓴웃음이 나온다. ‘첨단선단이라 하고 장애장해라고 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면 이처럼 잘못 씀으로써 우리말을 왜곡, 변질시키는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일본과 한국의 한자 정책의 차이에 있다.

 

--- 일본은 2010년에 신상용한자’ 2136자로... 우리는 한글전용론한자혼용론논쟁... 일본은 한자 사용을 제한하여, 1946년에 당용한자라 하여 1850자를 선정해서 사용해 왔다. 그중에서 획수가 많고 복잡한 한자는 약자화시켰다. 1981년에는 여기에 사용빈도가 높은 96자를 추가, 보완하여 1945자를 상용한자로 제정하여 사용해 왔다. 그러다가 2010년에 여기에 다시 5자를 삭제하고, 196자를 추가하여 2136자로 확대 개정해서 사용해 오고 있다. 2136자는 신상용한자(新常用漢字)’로서 이는 법령과 공용문서, 신문 잡지 방송 등 일반 사회생활에서 일본어 표기의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신상용한자’ 2136자에 포함되지 않는 한자의 표기는 음이 같고 뜻이 유사한 한자로 바꾸어 쓴다라는 대용한자(代用漢字) 정책에 따라, 다른 한자로 바꾸어 쓴다. 이에 따라 굴착(掘鑿)굴삭(屈削), 세척(洗滌)세정(洗淨), 전형(銓衡)선고(選考), 첨단(尖端)선단(先端), 장애(障碍)장해(障害) 등으로 쓰게 된 것이다. 물론 화살표 앞의 전자와 뒤의 후자는 일본어 음이 똑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우리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우리말을 왜곡, 변질시키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은 일관된 국어정책 하에서, 한자 사용을 강화하면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한자정책은 한글전용론한자혼용론의 논쟁 속에서 수없이 많이 바뀌어 왔다. 1970년 이후 한자는 초··고교의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75년부터 다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한자를 괄호 속에 넣어 보조적으로 표기하는 한자병용정책이었다. 현재 한자교육은 1972년에 제정된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국어시간이 아닌 한문시간에 가르치고 있으며, 이것마저 학교의 선택에 따라 무시되는 등 학교에서의 한자교육은 매우 빈약한 편이다. 점점 한자세대가 사라지고, 한글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대용한자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스스로 우리말을 왜곡, 변질시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삼성 64KD RAM  1983 [동경선언]

 

19826,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미국 IBM사로부터 기술정보를 빼내오다 국제망신을 당한 적이 있었다. 이에 전두환 대통령(19808~19882)은 즉시 이병철을 불렀다. 외국 기술을 몰래 스파이 해 올 생각을 하지 말고, 첨단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파격적인 값을 당당하게 지불하고 기술을 확보하라며, 반도체 개발을 부탁했다. 이병철은 실리콘밸리를 접촉했다. 19832, 이병철은 상기된 채로 삼성이 64KD RAM 개발에 착수한다는 이른바 [동경선언]을 발표했다. [프리덤뉴스] 지만원 기자가 보도했다(2022821).

 

삼성은 그해 198311월에 성공했다. 한국이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 반도체 생산국이 됐다. 이어서 삼성은 1986년에 1메가 DRAM을 생산했다. 1986년 전두환은 4메가 D램을 정부개발 방침으로 선언했다. 여기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당시 반도체를 생산하는 회사는 삼성과 현대와 LG였다. 레이건은 1988년에야 불루리본위원회로부터 일본의 13개 업체가 공동출자하고, 정부 자금을 보태서 반도체 산업의 핵심인 제조공정을 개발해 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전두환은 1986년에 이미 삼성, 현대, LG의 연구개발비를 합치고, 정부의 예산을 보태 4메가 D램 개발에 착수했다. 400억으로 추산된 개발비를 전두환은 배분했다. 100억 원은 3개 회사로부터, 200억 원은 체신부가, 100억 원은 과기처가 부담하도록 했다. 민간 100, 정부 300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82, 4MG DRAM이 전두환 정권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오늘날의 먹거리는 공부하는 전두환이 마련해 준 것이다.

 

이번에는, 1983년도 상황을 삼성 입장에서 살펴보자. 19836월 삼성은 마이크론과 64K D램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크론은 계약에 따라 D램 설계도와 마스크(회로 패턴을 새긴 원판), 완제품 3000개를 삼성에 제공했다. 이들 재료로 진행한 시험 조립 생산은 성공했다. 작게나마 반도체 사업을 해 온 삼성이었기 때문에, 단순 조립은 어렵지 않았다. 핵심 제조 공정도 완벽히 내재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전자신문]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가 보도했다(2016824).

 

1983년 당시 미국 현지 마이크론에서 기술 연수를 받고 있던 이윤우 연구소장(전 삼성전자 부회장)의 목은 바싹 말라 있었다. 삼성 연수팀을 대하는 마이크론 연구진의 태도에서 매우 강한 적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연구진은 삼성 연수팀을 산업스파이쯤으로 바라봤다. “방문자 명단에 나머지 직원들 이름이 없습니다. 회사 안으로는 단 두 명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이크론 연구진은 삼성 연수팀이 나타나기만 하면, 질문은 받지 않고 도망만 다녔다. 기술을 숨기려고 한 것이었다. 정해진 동선에서 이탈했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싶으냐?”며 멱살을 잡히는 수모도 겪었다. 기술 연수는 단지 계약서에 명시된 글귀에 지나지 않았다.

 

마이크론(Micron Technology Inc.)은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기업으로, 주로 DRAM과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며 이를 B2B B2C로 판매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는 Crucial이라는 상표로, 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간 메모리 카드 및 SSD를 판매한다. 본사는 미국 아이다호 주의 주도인 보이시(Boise)에 소재하며, 해당 도시의 가장 큰 민간 분야 고용기업이기도 하다. 1978년에 워드 파킨슨, 조 파킨슨, 데니스 윌슨, 더그 피트먼의 4명의 공동 창업자가 아이다호 주의 보이시에서 설립했다. 이들은 아이다호 지역의 부호들에게서 창업 자금을 투자 받았는데, 1981년 첫 번째 실리콘 웨이퍼 제조 공장을 버지니아 주에 완공해, 여기서 64k bit DRAM을 생산했다. 이후 1984년 두 번째 실리콘 웨이퍼 제조 공장을 완공해, 여기서 256k bit DRAM의 생산을 시작했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회사는 NAND 플래시 메모리 시장 점유율 20221분기 5위 기업이며, DRAM 시장 점유율 20221분기 3위 기업이다. 2007년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후 일본의 유일한 DRAM 반도체 회사인 엘피다 메모리를 20127312천억 엔에 인수했다. 참고로 엘피다 메모리는 이후 마이크론 메모리 재팬이라는 마이크론의 자회사가 됐으며, DRAM 생산 공장은 일본 히로시마, 설계센터는 카나가와현의 사가미하라시에 위치해있다.

 

1983년부터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NEC,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전기 등의 일본 기업들이, 정부를 등에 업고 치킨게임(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상태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다가,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을 통해 장악하게 됐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1983~1985년까지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많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 당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대표적인 미국 반도체 기업은 인텔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살아남아, 메이저 반도체 기업이 되었다. 물론, 미국이 당시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게 반덤핑 상계 관세와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시장 경쟁력을 유지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1998618일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을, 20011218일 도시바에서 DRAM 사업 부문을 인수하면서 싱가포르, 일본 등 전 세계에 실리콘 웨이퍼 제조 공장을 가진 업체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후 2007년 메모리 반도체 치킨게임과 2008년 세계금융위기,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엘피다 메모리가 탈락하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재빨리 인수해 몸집을 키우게 되었다. 그 결과 DRAM에서 삼성 - SK하이닉스와 더불어 빅3로 남을 수 있었다. 이후 메모리 시장의 호황으로 2016년 세계 7위에서 2017년 세계 4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이때 전년에 비해 80% 증가한 228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냈다.

 

 

    64K D램  독자 개발로 방향을 틀다

 

1983년 연수팀이던 조수인 과장(전 삼성전자 사장)을 포함한 6명은 미국에 출장가서 마이크론 회사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모텔에서 묵으며 전해 듣는 얘기로 기술을 익혔다. “이럴 거면 기술 이전 계약은 왜 했나? 더 이상 연수는 의미가 없다.” 이윤우 소장(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독자 개발로 방향을 틀었다. 미국 현지 삼성 법인의 이상준 박사와 이종길 박사, 국내 연구진으로 구성된 20명의 64K D램 프로젝트팀은 생산 공정 기술을 하나둘 개발하기 시작했다. 309가지 제조 공정 가운데, 어렵사리 대부분 공정을 개발해 냈다. 하지만 미세 가공을 포함한 8개 공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꼬인 실타래 같았다.

 

마스크에 새겨진 설계 패턴을 실리콘 웨이퍼에 전사시키는 노광 공정에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어느 정도 두께로 발라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가스 주입 공정에선 시간 흐름에 따른 농도 변화로 불량품이 나오기 일쑤였다. 실행과 반복의 연속이었다. 시행착오는 계속 이어졌다. 감광액을 두껍게 바르면 패턴이 잘 새겨지지 않았고, 노광 공정 완료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얇게 바르면 패턴이 너무 깊숙하게 새겨지는 문제가 있었다. 가스 주입을 적거나 많이 하면, 증착 막질이 떨어졌다.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삼성 프로젝트팀은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1983년 그때, 삼성이 64K D램 개발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0년대 초반에 국가반도체개발계획 수립 때만 해도, 한국은 1986년쯤에야 64K D램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보다 3년이나 앞당겨 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꿈같은 일로 받아들여졌다. 1983106. 삼성은 마침내 모든 공정을 개발해 내고, 웨이퍼를 투입하기에 이른다. 117일 미흡한 몇 가지 공정을 보완하고, 다시 제품을 뽑아 시험했다. 정상 작동이 됐다. 여러 번 테스트를 해 봐도, 결과는 모두 정상 작동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성공했다며 만세를 외쳤다. 1983121, 64K D램 개발 발표회에서 강진구 사장은 기자들을 불러 모아서 발표문을 낭독했다.

 

삼성반도체통신이 6개월 만에 64K D램을 개발했습니다. 생산, 조립, 검사까지 모든 공정을 완전히 내재화했습니다. 미국, 일본과 10년 이상 기술 격차가 났었지만 단숨에 이 격차를 4년 정도로 좁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소식은 세계 각국으로 전해졌다. 개발 어려움으로 D램 사업 진출을 망설이고 있던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경악했다. “한국이 그걸 해낼 수 있겠느냐?”고 비아냥대던 미국과 일본은 충격에 빠졌다. 이들 국가는 삼성이 이른 시간 내 우리를 추격할지 모른다는 우려감을 나타냈다.

 

삼성의 64K D램 개발은 비록 마이크론으로부터 설계 도면을 들여오긴 했지만, 309가지에 이르는 공정 프로세스와 조립, 검사 기술을 단 6개월 만에 독자 기술로 해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둘 수 있다. 이는 반도체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사건으로 기록된다. 이종덕 서울대 교수는 삼성의 64K D램 개발 성공은 기술의 빅점프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기술 선진국을 앞서게 된 것이 4M에서 16M D램으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이는 64K D램 개발 성공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개발팀은 64K D램 개발에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으로 설계 착수 7개월 만인 198410월에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19867월 삼성반도체통신은 당시로선 꿈의 반도체로 여겨지던 1M D램의 자체 개발에 성공한다. 256K D램 개발 이후 1년 반 만에 거둔 성과였다. 설계에서 공정 기술까지 완벽하게 독자 기술로 개발한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대놓고 견제하기 시작한 시기도 이즈음이다. 기술 강자 인텔은 삼성의 1M D램 개발이 한창이던 1985~1986년에, 백기를 들고 D램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 Anti-intellectualism) 또는 반주지주의(反主知主義)는 지성, 지식인, 지성주의를 적대하는 태도와 불신을 말하며, 주로 교육, 철학, 문학, 예술, 과학이 쓸데없고 경멸스럽다는 조롱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에 의해 창안된 개념이다. 이는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몰아치던 매카시즘의 광풍을 비판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주로 파시즘·트럼피즘 등 극우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사용돼 왔다.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 1916~1970)는 미국이 낳은 역사가이며, 지성인이다. 1964년 비소설분야에서 퓰리처상을 수여하였다. 호프스태터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드위트 클링턴 미국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는 초기에 공산주의 사상에 빠졌으나, 후기에는 '합의 역사'로 사회주의, 자본주의로 양분하는 역사관을 비판하였다.

 

학계의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기에 실패한 자칭 지식인들을 반지성주의자라고 하기도 한다. 이때는 사이비 지식인(pseudo-intellectualism)이라는 표현이 더욱 흔하게, 더욱 정확한 의미로 사용된다. 대중을 중심으로 한 담론에서, 반지성주의자들은 정치상·학문상 엘리트에 맞서는 대중을 옹호하는 사람을 자처하고 또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그 사람들은 배운 사람들은 절대 다수의 관심사와 유리된 계층이며, 대중과 유리된 그 사람들이 정치에 관계된 담론과 고등교육을 독점한다고 주장한다.

 

반지성주의는 전체주의다운 독재정체(獨裁政體)에서, 정치에 관계된 이견을 압살하려고 흔히 나타나는 양상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따위에서 나타나는 국가사회주의 도이칠란트노동자당의 포퓰리즘 레토릭은 반지성주의를 매우 흔하게 나타낸다. 반지성주의의 극도에 도달한 정치에 관계된 형태는 1970년대 폴 포트와 크메르 루주 정권 치하의 캄보디아(당시 국호 민주 캄푸치아)에서 나타났다.

 

또한 종교에 딸린 반지성주의는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사실들을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하거나,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지식의 습득을 일부러 차단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일부 근본주의적 교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창조과학과 지적설계가 그것을 대표할 정도로 전형이 될 만하거나 특징이 있는 예이다. 이들은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하거나, 이것을 교육받은 사람들을 적으로 규정하며, 관찰 가능한 사실인 진화를 비롯한,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지식의 습득을 일부러 방해하는 일을, 예를 들어 스콥스 재판(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본격적인 반격. 원숭이 재판으로 비꼬아 부른다)과 같은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반지성주의가 극단화해, 교과서 진화론 삭제 사건과 같은 사회문제가 일어나기도 했다.

 

1963년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가 쓴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책은 유강은 번역으로 교유서가 출판사가 2017년 발행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지성이란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가?”... ‘트럼프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인 미국의 반지성주의... 정치의 타락은 지성이 타락한 결과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오늘의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미국의 지적 전통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지식인은 민주주의의 실현에 힘이 되는가? 저명한 역사가가 미국의 역사를 반지성주의라는 개념으로 분석한 현대 지성사의 고전이다. 미국의 건국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종교, 경제, 교육, 문학 등을 소재로 삼는다. 이 책의 목표는, 미국인의 삶에서 지성에 쏟아지는 멸시를 묘사하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인 지성이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가에 관해 발언하는 것이다. “내가 반지성적이라고 일컫는 태도나 사고에 공통되는 감정은 정신적 삶과 그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의심이며, 또한 그러한 삶의 가치를 언제나 얕보려는 경향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

저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

***** 목차 *****

추천사, 서문을 대신하여

1: 서론

1장 우리 시대의 반지성주의, 2장 호평 받지 못하는 지성

 

2: 마음의 종교

3장 복음주의의 정신, 4장 복음주의와 부흥운동가

5장 근대성에 맞선 반란

 

3: 민주주의 정치

6장 젠틀맨의 쇠퇴, 7장 개혁가의 운명, 8장 전문가의 부상

 

4: 실용적인 문화

9장 기업과 지성, 10장 자조와 영적 기술, 11장 주제의 변주

 

5: 민주주의 사회의 교육

12장 학교와 교사, 13장 생활 적응의 길, 14장 어린이와 세계

 

6: 결론

15장 지식인: 소외와 체제순응

감사의 말/ /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참고] [시사저널] 박선우 디지털팀 기자, 2022. 08. 24.

https://news.v.daum.net/v/20220824074103097

[참고] [부산일보] 이우석 교수, 2020-08-30. www.busan.com

[참고] [프리덤뉴스] 지만원, 2022.08.21.

http://www.freedom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71&fbclid=IwAR1p55Zi4CIYbRLDuVv2iyrRC8Kwr2cknEO1Z75mv3Trq-GAQMN0JDkvuBA

[참고] [전자신문]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2016-08-24.

https://www.etnews.com/20160824000230

[참고] <<미국의 반지성주의>>, 리처드 호프스태터 Richard Hofstadter/ Adam Verner(NRT), 유강은 역, 교유서가, 2017.

http://www.yes24.com/Product/Goods/38924687

[참고] <<시사상식사전>>, 반지성주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19783&cid=43667&categoryId=43667

[참고] <<위키백과>>, 반지성주의.

https://ko.wikipedia.org/wiki/%EB%B0%98%EC%A7%80%EC%84%B1%EC%A3%BC%EC%9D%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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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D램,  '2·8 도쿄 선언’

    1983년 2월7일 밤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손에는 100쪽 분량의 반도체 사업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첨단 반도체 중 일본이 미국보다 앞선 분야는 메모리’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일본이 미국을 앞설 수 있다면 우리도 가능하지!”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손재주가 좋아야 하는데 젓가락에 익숙한 한국인의 손재주는 일본인과 다를 게 없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실도 걱정이 없었다. 한국인은 방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지 않는가. 이 회장은 날이 밝자마자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결정 지은 '2·8 도쿄 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반도체산업을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남은 문제는 기술이었다. 삼성에 기술을 전해줄 곳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 샤프의 연수 허락을 받아냈다.이회장은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특공대’로 파견했다. 

    샤프 측은 기술 유출을 우려해 이들의 행동을 극도로 제한했다. 연수단원들은 허드렛일을 하는 틈틈이 현장을 눈에 익혔다. 주요 설비 길이는 발걸음 수로 쟀다. 화장실 대화를 엿들으며 조각 정보를 모았다. 낮에 보고 외운 것을 밤에 모여 노트에 취합했다.

    어깨 너머로 설계 제조 기술을 배운 이들은 귀국해 반도체 산업의 주역이 됐다. 
    이들이 함께 돌아온다는 보고를 받은 
    이회장은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들 정신 나갔구먼! 같은 비행기로 귀국하겠다니 무슨 소리야! 
    한 사람씩 다른 비행기를 타고 와!” 사고라도 나면 애써 배운 기술을 다 잃지 않느냐는 걱정이었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그해 12월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 일본과 10년 이상 차이 났던 기술력을 6개월 만에 따라잡았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외국계 하청공장만 있던 열악한 환경에서 독자 기술 개발로 승부를 건 삼성의 쾌거였다.

    이 회장은 ‘2·8 도쿄 선언’에 앞서 10년간 해외 전문가들을 만나고 수백 권의 책을 탐독했다. 1974년에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기초 체력을 다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세운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와 경쟁하며 기술 발전을 이끌었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단일품목 최초로 연간 수출 10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누적 수출도 1조달러를 돌파했다. 1994년 100억달러를 수출한 지 24년 만이다. 100억달러 수출 기념일인 10월25일은 ‘반도체의 날’이다. 매년 기념식에는 맨주먹으로 ‘기적의 돌’을 만든 원로 기술자들도 참석했다. 이들은 “보릿고개에서 출발한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장사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말했다.
    <윤병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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