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문화바탕체 한글과 글꼴 저작권

 

뚱보강사 칼럼

104. 문화바탕체 한글과 글꼴 저작권

 

쎅시하게 생긴 부인이 보트를 타고, 시원한 호수 바람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었다. 경찰 보트가 다가와 검문을 했다. "부인,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책을 읽고 있는데요.” “이 지역은 낚시 금지 구역이라 벌금을 내셔야겠습니다.” “아니, 여보세요, 낚시를 하지도 않았는데요?” “낚시를 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배에 낚시 도구를 완전히 갖추고 금지 구역 내에 정박하고 있는 것은 벌금 사유에 해당됩니다.” “그래요? 그럼 난 당신을 강간죄로 고발하겠어요” “아니, 난 부인에게 손도 댄 적이 없는데 강간이라뇨?” “당신도 지금 강간에 필요한 물건을 다 갖추고 내 가까이 있잖아요?” (바지 속의 거시기).

 

우리나라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한글 글꼴은 몇 가지나 있는가? 간판 글자나 포스터용 글자 등 그래픽용 글꼴은 많이 개발되어 있으나, 책 한 권을 전부다 조판할 수 있는 글꼴 1만 1172자 전부가 한 벌로 개발된 글꼴(서체)은 아주 드물다. 한글 글꼴을 개발하려면 원도(밑그림, 본그림) 개발 과정과 폰트디자인(typeface design) 과정, 디지털 폰트 개발의 3개 과정이 필요하다.

 

21년 전인 1991년, 출판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글꼴인 돋움체(고딕체/네모체)와 바탕체(명조체/본문체)의 원도를 기획하고 디자인한 사람은 연세대의 홍윤표 교수와 계원대의 뚱보강사 이기성 교수, 그리고 세종기념사업회의 박종국 회장의 3명이었다. 3명이 디자인한 한글 글꼴의 원도를 그린 사람은 한글서체연구가인 최정순과 뚱보강사 이기성이었다. 2350자는 최정순이, 8822자는 이기성이 원도를 그렸다.

 

문화관광부(당시 문화체육부)가 주체가 되어 한글 글꼴을 개발할 때 2350자와 8822자를 합친 1만 1172개의 폰트디자인 과정과 폰트 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아날로그 상태인 원도를 디지털 상태인 폰트로 개발한 것은 이기성이었다. 한글 문화돋움체의 원도는 최정순과 이기성이 자의대로 제작한 것이 아니고, 16명의 한글 서체 개발 운영위원과 한글 서체 개발 연구진이 내린 결정에 따라서 원도를 제작하고 수정한 것이다.

 

1991년에 문화체육부에서 임명한 한글 서체 개발 운영위원에는 출판계, 인쇄계, 학계, 관 등 당시, 각 분야의 대표가 망라되어 있었다. 김낙준(당시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김석득(연세대학교 대학원장), 김일근(건국대학교 명예교수), 박병천(인천교육대학 교수), 박용진(교육부 장학편수실장), 박종국(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충일(대한인쇄문화협회 회장), 손보기(단국대학교 초빙교수), 송현(한글기계화추진위원회 회장), 안병희(당시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이기성(당시 신구전문대학 교수), 이상욱(카톨릭의과대학 안과 교수), 정덕용(문화부 어문출판국장), 최정순(한글서체 디자인개발연구원 원장), 허웅(한글학회 이사장), 홍윤표(당시 단국대학교 교수)의 16명이 운영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교과서 본문용 한글 글꼴(문화바탕체)을 기획할 때 목표로 삼은 10가지 유의점은 다음과 같다. 1. 한글 위주 조판용, 2. 가로쓰기 전용, 3. 가독성(일정한 크기, 착시 고려), 4. 변별성(공간의 넓힘과 획의 명확함), 5. 차밍포인트 활자의 크기, 6. 인쇄 용지 및 인쇄 방식, 7. 미려도, 8. 심리성(온화하고 끈기가 있도록 온화한 곡선 처리), 9. 시력 보호(피읖, 치읓 등 자소의 사이 띄기), 10. 경제성(폰트 제작시 릭스절충형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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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 개발 연구진은 이기성과 한국전자출판학회의 손애경 박사를 비롯한 4명이었다. 문화돋움체의 원도를 디지털 폰트 상태로 바꾸는 작업 역시, 뚱보강사 이기성 혼자서 자의대로 제작한 것이 아니고, 폰트 검토위원의 검토 결과에 따른 것이다. 폰트 검토위원은 김장실, 최진용(문화체육부 어문과장), 김진평(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박영실(한국 편집아카데미 원장), 박종국(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창수(국정교과서 편집과장), 박충일(한국 인쇄협회 회장), 윤종목, 김상구(서울시스템 실장, 이사), 이기성(당시 신구전문대 출판과 교수), 이승구(대한교과서 전무), 정준섭(교육부 연구관), 최정순(서체개발연구원 원장), 한성동(동아출판사 서체개발실 부장)의 14명이었다.

 

[] 폰트 개발 연구진

이름

당시 소속

직급/학위

현재

이기성

신구전문대학 교수

총괄/박사

계원예술대학교 명예 교수

손애경

한국전자출판학회

선임연구원/박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문화콘텐츠학부장

김민숙

한국전자출판학회

연구원/석사

김진하

한국전자출판학회

연구원/석사


[참고] <제목체 한글 폰트 개발연구>, 이기성, (주)장왕사, 1994

[참고] <타이포그래피와 한글디자인>, 이기성, 한국학술정보(주), 2008

[참고] 이기성, 「아나로그 본그림의 디지털화에 관한 연구-문화돋움체 한글-」, 문화체육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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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 김평일박사님 치과 개업 37년---1975년 9월5일, 영등포 당산동에 치과 개업을 하시고 현재에 이르르니 김평일 박사님의 치과 개업 기간은 오늘 날자로 만 37년에서 한주간이 빠진다...
    화동 형님 최고!!!  뚱강올림
    경기고 60회 인사 중에 한사람, 릭스, 뚱강 이기성교수가 이 이렇게 큰일을 낸것에 대하여 60회 졸업 동문으로 
    무한 자긍심을 갖습니다.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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