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__자동차 값과 폰트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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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176__자동차 값과 폰트 값

 

갑돌이가 시골에서 평생 농사를 짓다가 근처에 지하철역이 들어선다고 매수자가 몰려들어서 비싸게 땅을 팔았다. 돈이 생기니 서울에 아파트를 먼저 구입하고, 다음에는 자가용 자동차를 사기로 맘먹었다. “자동차 값이 얼마에요?”라고 묻자 영업사원이 답을 못한다. “무슨 용도로 사용하실 건지요? 어떤 차를 원하시나요?” “아따 이사람. 말도 많네. 값이 얼마냐고?” 차라리 얼마짜리 자동차를 원한다고 말하면 그 금액에 맞추어 답을 해줄 수 있는데.

 

네이버에서 자동차 시세를 검색어로 찾아보면 자동차를 매매하는 수많은 상점이 나타난다. 그중에서 XX회사를 누르니 ‘1신차 가격표‘2중고차 가격표항목 중에서 고르란다. ‘1신차를 고르니 1국산, 2유럽, 3일본/중국, 4미국의 4가지 메뉴가 나온다. 2유럽을 누르니까 벤츠, BMW, 아우디, 푸조, 볼보, 폭스바겐, 랜드로버, 람보르기니, 페라리, 마세라티, 롤스로이스, 피아트,,, 수많은 항목이 나온다. 다음 메뉴는 경차/소형/중형/대형/스포츠카/SUV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그다음은 연료를 고르란다. 가솔린/디젤/LPG/전기/가솔린+전기. 다음에는 옵션항목인데 에어백, 주행 지원, 정속 주행, 편의 장치, 통풍/열선 등을 선택한다. 대여섯 가지를 지정해주어야 판매가격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냥 자동차값 얼마예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태어나서 자동차를 처음으로 산 갑돌이가 옆집 아저씨가 BMW자동차를 6000만 원에 샀다는 말을 듣고는 “3배나 바가지 썼구먼”. “나는 자동차를 2000만 원에 샀는데라고 중얼거린다. 갑돌이가 산 자동차는 아반떼.

 

30년 전인 1980년대부터 컴퓨터 사는데 도와주지 말라고 하는 말이 유행했다. 애플II플러스, 아이비엠XT, 아이비엠AT 호환기종 컴퓨터가 보급되던 시절. 같은 아이비엠 호환기종 컴퓨터라도 삼보컴퓨터, 삼성컴퓨터, 대우컴퓨터, 세운상가 컴퓨터 가격이 전부 달랐다. 메이커 제품이 100만 원대라면 세운상가에서 조립한 것은 80만 원대로 저렴했다. 그러나 조립품이라도 하드디스크 용량, 파워 용량, 모니터 해상도와 크기, 한글카드와 통신카드의 내장 여부 등에 따라 같은 세운상가 컴퓨터라도 가격은 수십만 원씩 차이가 났다.

 

뚱보강사가 잘 아는 작가 심씨와 같이 컴퓨터 상가에 나가 품질 좋은 부속을 고르고 컴퓨터 마더보드도 안정된 것으로 조합해서 추천해주었더니 그 다음날 전화가 왔다. 방송국 다른 작가가 자기보다 싼 가격에 조립 컴퓨터를 샀다는 것이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좋은 컴퓨터를 적정 가격에 골라주었는데도 업자와 짜고 바가지 씌었다고 의심을 받던 시절이었다. 컴퓨터 기종, 본체 속의 기판과 부속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알지도 못하고 컴퓨터라면 다 같은 줄 알고 가격을 비교하다니.

 

자동차 가격도 천만 원부터 수억 원까지 다양하듯이 출판과 인쇄에서 사용하는 활자 한 벌의 가격도 다양하다. 인쇄/출판용 활자에는 납활자, 나무활자, 도자기활자, 사진활자, 디지털활자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요새는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디지털활자가 대세이다. 디지털활자는 보통 폰트(font)라고 부른다. 사실 폰트는 활자 한 자가 아니고 활자 한 벌을 의미한다. 폰트도 현대한글만 있는 것, 현대한글과 영문자가 있는 것, 현대한글/한자/영문자가 같이 있는 것, 현대한글과 옛한글/한자/영문자가 있는 것 등 종류가 많다. 현대한글도 2350자만 있는 폰트와 11172자 모두 있는 폰트로 구별된다.

 

단체장으로 있는 김수재가 소속 협회장을 공금을 낭비했다고 고발을 했다. 주무부서에다 특별 감사를 요구했다. 자기가 속한 단체에서 몇 년 전에 폰트를 만들 때 1억 원이 들었는데, 협회에서 새로 만든 폰트는 3억 원이 든다니까, 협회장이 업자와 짜고 차액 2억을 해먹었다는 것이 고발 사유. 김수재는 3억 원짜리 가치가 있는 폰트를 1억 원으로 깎은 것이 아니고, 1억 원짜리 품질의 폰트를 구입했던 것인데, 폰트를 잘 모르는 김수재는 같은 폰트인줄 알고 협회장을 도둑님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것이다. 시골 출신 갑돌이가 BMW와 아반떼를 구분하지 못하고 둘 다 자동차니까 같은 값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았다. 아마도 김수재는 폰트를 제작하는데 몇 개의 위원회가 필요하고, 몇 단계를 거쳐야 완성되는지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제대로 된 폰트 제작 방법을 몸소 체험한 전문가는 현재 많지 않다. 납활자 시절부터 사진식자 활자 시절을 거쳐 디지털 활자 시절 모두에서 활자를 제작해본 경험자는 극소수만 생존하고 있다. 폰트를 제작하려면 우선 기획 과정을 거친다. 기획 과정 단계에서 폰트 제작의 목적, 용도, 철학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27년 전 1991년에 교과서 본문용 폰트를 제작했을 때 기획 단계에서 목표로 삼은 10가지 유의점이다. 1. 한글 위주 조판용, 2. 가로쓰기 전용, 3. 가독성(일정한 크기, 착시 고려), 4. 변별성(공간의 넓힘과 획의 명확함), 5. 차밍포인트 활자의 크기, 6. 인쇄 용지 및 인쇄 방식, 7. 미려도, 8. 심리성(온화하고 끈기가 있도록 온화한 곡선 처리), 9. 시력 보호(피읖, 치읓 등 자소의 사이 띄기), 10. 경제성(폰트 제작시 릭스절충형을 채택).

 

폰트를 제작하려면 일반적으로 3개의 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 1) 한글 서체 개발 운영위원회, 2) 폰트 개발 연구진, 3) 폰트 검토위원회. 기획 과정이 끝나고 실제 제작과정으로 들어가면 첫째 단계로 원도(밑그림, 본그림) 개발 과정, 둘째 단계로 폰트디자인(typeface design) 과정, 셋째 단계로 디지털 폰트 개발 과정 단계 순서로 진행된다.

 

첫째 단계로 16명의 한글 서체 개발 운영위원과 한글 서체 개발 연구진이 내린 결정에 따라서 한글 글꼴의 원도를 그린 사람은 한글서체연구가인 최정순과 뚱보강사 이기성이었다. 2350자의 원도는 최정순이, 8822자의 원도는 이기성이 그렸다. 둘째 단계에서 돋움체(고딕체/네모체)와 바탕체(명조체/본문체)의 원도를 디자인한 사람은 연세대의 홍윤표 교수와 계원대의 뚱보강사 이기성 교수, 그리고 세종기념사업회의 박종국 회장의 3명이었다. 셋째 단계에서 2350자와 8822자를 합친 11172개의 아날로그 한글 음절 원도를 디지털 상태인 폰트로 개발하는 것은 이기성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폰트 데이터와 프로그램 작업은 서울시스템에서 마무리를 했다.

 

1991년에 문화체육부에서 임명한 한글 서체 개발 운영위원에는 출판계, 인쇄계, 학계, 관 등 당시, 각 분야의 대표가 망라되어 있었다. 김낙준(당시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김석득(연세대학교 대학원장), 김일근(건국대학교 명예교수), 박병천(인천교육대학 교수), 박용진(교육부 장학편수실장), 박종국(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충일(대한인쇄문화협회 회장), 손보기(단국대학교 초빙교수), 송현(한글기계화추진위원회 회장), 안병희(당시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이기성(당시 신구전문대학 교수), 이상욱(카톨릭의과대학 안과 교수), 정덕용(문화부 어문출판국장), 최정순(한글서체 디자인개발연구원 원장), 허웅(한글학회 이사장), 홍윤표(당시 단국대학교 교수)16명이 운영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폰트 개발 연구진은 이기성과 한국전자출판학회의 손애경 박사를 비롯한 4명이었다. 셋째 단계인 원도를 디지털 폰트 상태로 바꾸는 작업 역시, 이기성 혼자서 자의대로 제작한 것이 아니고, 폰트 검토위원의 검토 결과에 따른 것이다. 폰트 검토위원은 김장실, 최진용(문화체육부 어문과장), 김진평(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박영실(한국 편집아카데미 원장), 박종국(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창수(국정교과서 편집과장), 박충일(한국 인쇄협회 회장), 윤종목(서울시스템 부장), 김상구(서울시스템 실장, 이사), 이기성(당시 신구전문대 출판과 교수), 이승구(대한교과서 전무), 정준섭(교육부 연구관), 최정순(서체개발연구원 원장), 한성동(동아출판사 서체개발실 부장)14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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