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로널드 레이건과 말비나스(포클랜드)

   뚱보강사    88. 로널드 레이건과 말비나스(포클랜드)

 

뚱보강사가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나니 자유 시간이 많아져 친구도 제법 자주 만나게 된다. 지하철 공짜 승차권을 갖은 퇴직자들이 모여 명태니 황태니 북어 타령이 한창이다. 직장에서 밝은 대낮에 쫓겨나면 "명태", 추운 겨울에 쫓겨나면 "동태", 퇴직금도 없이 생으로 쫓겨나면 "생태", 잘못도 없이 황당하게 쫓겨나면 "황태"이고 입사 하자마자 그냥 쫓겨나면 "알탕"이란다.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많은 나이인 70세의 나이로 취임한 대통령이었으며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이혼 경력이 있는 대통령. 2004년 93세로 사망한 레이건 전 대통령은 레이건 라이브러리 옆 동산에 안장됐다. LA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시미 밸리(Simi Valley)에 도서관 겸 박물관인 레이건 대통령 라이브러리(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가 있다. 라이브러리는 총 61만 2087평(500에이커) 대지에 지하와 1층 빌딩으로 꾸며졌으며 기념관, 뮤지엄, 서점 등으로 분리해서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국립 기록 보관국에서 운영한다.

 

로널드 윌슨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1911년~2004년)은 미국의 제 40대 대통령(1981년~1989년)과 33대 캘리포니아 주지사(1967년~1975년)를 지냈다. 일리노이 주 탬피코에서 가난한 구두 판매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레이건은 일리노이 주 딕손에서 자랐으며, 일리노이 주 유레카 대학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으로 문학사를 취득하였다. 졸업 후에 일리노이 주를 떠나 아이오와로 가서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포츠 아나운서로 일했으며, 1937년에는 할리우드에 들어가 1964년까지 《Kings Row》(1942년) 등 약 50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나 평범한 배우로 그쳤다. 1949년에는 부인 제인 와이먼과 이혼하였고 3년 뒤에 낸시 데이비스와 재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공군 기지의 부관으로 종군하였고, 캘리포니아 주의 주지사 시절에 조세감면, 복지제도의 확대, 고등교육정책에 힘을 쏟았고 캘리포니아 주의 재정을 적자에서 흑자로 바꾸었다. 1980년에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어 경제불황으로 인기가 추락했던 당시 민주당의 대통령 지미 카터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보수적이고 강경한 국내외정책을 펼쳐 1984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에게 압승을 거두고 재선되었다. 그러나 조세감면과 사회복지지출을 억제한 ‘레이거노믹스’의 결과 재정 및 무역 적자를 초래하였다.

 대외정책에서 레바논 파병과 리비아 폭격, 냉전체제가 공산권의 사멸로 끝났으니 국방비를 복지비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평을 억누르려는 1983년 서인도제도 남동부 윈드워드 제도에 있는 섬나라인 그레나다 침공, 니카라과 반군지원 등의 정책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게 위협을 주었고 특히, 말비나스(포클랜드) 전쟁에서는 영국을 옹호하고 아르헨티나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아르헨티나의 말비나스(Malvinas) 제도를 1833년 이후 영국 해군이 점령하고 영국 땅이라고 하며 이름도 포클랜드 제도(Falkland Islands)로 바꾸어 부르자, 드디어 1982년 4월 군사력을 키운 아르헨티나가 무력으로 말비나스 제도를 탈환하였다. 이에 영국은 아르헨티나가 침략국이라며 영국 앤드루 왕자(엘리자베스 2세의 둘째 아들이자 현재 요크 공작)가 항공모함을 타고 직접 참전하여 말비나스(포클랜드)를 공격하여 겨우 다시 점령하였다. 당시 미국은 남미 국가들과 정치적 군사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아르헨티나를 배신하고 침략국인 영국편을 들어 도리어 아르헨티나를 테러집단으로 몰았던 것이다.

 

만일에, 일본이 최첨단 이지스 함정을 앞세워 독도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일본식으로 다께시마로 부른다면 우리나라는 어찌해야 할까? 그냥 독도를 빼앗겨야 하나? 당연히 우리도 군대를 키워 독도를 다시 탈환해야 할 것이다. 탈환할 때 우리의 우방국이던 미국이 일본편을 들어 한국 육해공군의 배치를 일본에 알려주고 한국을 테러국가로 규정하여 일본 왕자가 이끄는 일본의 해군이 독도를 점령하고 다시 다께시마 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생각이 들까?

 

그런데도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서는 아르헨티나 말비나스 섬을 영국군이 공격해서 점령했다는 보도는 없고, 용감한 영국의 앤드루 왕자가 이끄는 해군이 포클랜드 섬을 테러국에서 탈환했다고 전쟁 소식을 영국 입장에서 보도했다. 기사 제목도 말비나스 전쟁(Malvinas Islands War)이 아닌 포클랜드 전쟁(Falkland Islands War)이었다. 일본이 독도를 점령해도 미국의 신문에서 ‘다께시마를 탈환했다느니’, ‘다께시마 전쟁’의 제목으로 기사를 썼다고 가정해보자.

 

레이건 대통령 이후 남미의 국가들은 미국은 배신자의 나라이며 믿을 수 없는 국가라고 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레이건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1986년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자 레이건은 소비에트 연방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기 시작하였다. 1987년 12월에는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중거리핵전력폐기조약’ (INF Treaty)을 맺어 냉전을 종식시켰다.

 

대통령 시절부터 치매 증상이 있었다는 소문도 있긴 하나, 공식적으로는 대통령 퇴임 후 5년이 지난 1994년 11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고 발표되었다. 10년간 치매와 투병해 온 그는 2004년 6월 5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93세로 타계했다. 레이건 사후 7년 뒤인 2011년, 갤럽(Gallup)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레이건이 19%를 득표하여 1위를 기록하였다. 2위는 링컨 대통령으로 14%를 기록하였다.

 

LA 시미 밸리 언덕 위의 레이건 라이브러리에는 대통령과 주,연방 정부의 역할 그리고 근세 미국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많다. 강한 미국을 구호로 내걸고 대통령에 취임, 세계의 냉전체제 종식을 이룩한 레이건 대통령의 업적 등 그의 모든 것을 만나 볼 수 있다. 미국의 수치인 1981년 3월 레이건 대통령 피격 당시의 암살 시도 사건도 당시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전시되어 있고, 체포 당시 압수한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장난감 같은 권총과 총알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보존되어 있다.

 

[참고] 말비나스(포클랜드) 제도는 1816년 아르헨티나가 에스파냐로부터 독립할 때 당연히 그 영유권도 계승한 것으로 알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1833년 이후 점령하고 있는 영국군을 1982년 4월 2일에 내쫓고 말비나스 제도를 무력으로 탈환하였다. 포클랜드는 에스파냐어로 Malvinas 제도로 불리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흔히 아르헨티나 영토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근해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으며, 또 남극대륙의 전진기지로서 중요한 지역인 말비나스(포클랜드) 방위를 위하여 급거 기동부대를 파견, 1982년 4월 26일에는 말비나스(포클랜드) 제도의 동남쪽 1,500km에 있는 남조지아 섬을 탈환하였다. 1982년 5월 20일 유엔 사무총장의 조정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의 도움을 받은 영국군은 말비나스(포클랜드)에 상륙, 75일간의 격전 끝에 6월 14일 아르헨티나군의 후퇴로 전쟁을 종결시켰다. 이 전쟁은 ‘말비나스(포클랜드) 휴전과 아르헨티나군의 철수에 양측이 합의하였다’고 발표된 아르헨티나측 성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런 진전도 보지 못한 채 원점으로 되돌아갔으며, 다시 유엔으로 넘겨진 말비나스(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의 타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한편, 이 전쟁이 남긴 교훈으로는 첫째, 무기 현대화에 따른 전쟁 비용의 팽창이다. 영국은 사상자 452명과 항공기 25대, 함정 13척을 잃었으며 전쟁 비용으로 15억 달러를 소비하였는데, 국위선양 등 작은 성과에 비하여 커다란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사상자 630명과 항공기 94대, 함정 11척을 잃은 GNP 600억 달러의 아르헨티나는 거의 국력을 총동원하는 모험으로 영국보다 더욱 많은 전비를 염출하여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몰렸다.

 

둘째는 이 전쟁을 통하여 드러난 유엔과 미국의 무능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개전 후에도 협상의 문호를 계속 개방하고 있었으나 유엔과 미국은 교전당사국의 이해 조정에 실패하였으며, 특히 미국은 조급히 영국을 지원하고 나섬으로써 라틴아메리카 제국의 반미감정만 고조시켰을 뿐만 아니라, 문제해결에 전혀 기여하지 못함으로써 대미 신뢰에 커다란 문제점을 남겼다.

 

[출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

http://365hananet.koreadaily.com/place/105

Ronald Reaga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www.reaganlibrary.com

네이버 백과사전, 포클랜드전쟁 [Falkland Islands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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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강님! 글 잘 읽었습니다만...
    그래도 글중 "만일에 독도를 ~" 라는 예문은 좀 부적절하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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