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이 답인데--열린 뜻 3월호
- 화동
- 2012.03.0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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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이 답인데-----------------------김평일
요즘 치과계가 위기다. 1970-80년대의 치과의원 문전성시 시대와 너무나 대조를 이루는 개점휴업 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1조 달러 수출 실적을 올려 사상 최고의 부를 축적 했다는데, 위기는 웬 까닭일까? 바로 99%의 대중이 가난한 까닭이다. 지난해 1조원이상 벌어들인 사람이 16명이나 되고 또한 재벌기업에서는 억대 연봉자들에게 50% 년 말 상여급에 성과급까지 얹어 주는 돈 잔치를 했다는데, 중소기업은 재벌기업 하청자로 수개월짜리 어음을 할인받아 연명하며, 그나마도 없어 3-4개월 임금이 체불되니 1%의 부자와 99%의 빈자로 나뉘는 부익부 빈익빈이 극에 달하는 지옥 상황이 진행 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70 달러라는 최악의 빈곤국이던 우리나라가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한 까닭은 일자리 창출에 있었다. “한강의 기적”은 바로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정책 결과이다. 모든 국민이 일을 할 수 있고 모든 국민이 소득이 있다면 바로 나라가 부유해 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고 박정희 대통령은 “소득증대”라는 표어를 무수히 사용 했다.
1960년대 초는 청년 실업 뿐 아니라 전 국민 실업시대이었다. 대중이 돈을 벌 수 없고 일자리 없는 사회이기에 당연하게 1인 국민소득 70 달러라는 기적(?)적 수치를 보였다. 당시의 어려움은 “1964년 겨울” “잉여 인간” 등 문학 작품 내용이 보여주는 비참 자체였다. 1,2,3차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국민개개인의 “소득증대”가 목표이었다. 그래서 박대통령은 1년 365일 중 현장 집무 평균 280일 이라는 바쁜 행보로 그는 일자리 만들기에 열중했다. 북한 공비들이 기습한 1968년 1월21일은 일요일이다. 박대통령이 주말에만 집에 머물기에 그 시간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노력은 거북이걸음, 그래서 일자리 창출 목표를 국외로 돌렸다. 첫 진출시도는 서독 광부와 간호사 파견이다. 4년제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들이 광부, 간호사로 라인 강의 기적을 이룬 서부 독일로 갔다. 군사 쿠데타 정부라고 냉소적으로 보는 미국 대신에, 서독은 한국에 경제차관까지 보태주었다. 두 번째 해외 일자리 창출은 월남이었다. 냉소적인 미국도 파병에 대하여는 환영을 하였고, 전쟁 지역의 운송 물류 사업으로 막대한 인력이 송출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국내기업은 대거 활성화 되었다. 월남 전쟁이 끝나기 직전 오일 쇼크는 박정희 씨의 눈을 오일달러로 돌려주었다. 오일달러를 위한 중동 인력 수출 외교는 성공하여, “이란 이락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토목건축기업이 괘도에 올랐다. 그리고 이 당시 70달러 소득이 1000달러 소득을 돌파하면서 온 국민은 자신감과 희망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이 희망의 자신감으로 시작 된 것이 새마을 운동이다.
영세했던 농촌은 가을걷이에서 봄에 보리추수까지 길고 긴 겨울을 농한기(농사짓지 않는 기간)로 보냈고, 일없이 노는 한 겨울 때문에 농민은 찌든 가난의 상징이었다.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 운동의 표어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면 된다. 라는 구호와 함께 무수히 자체 소득 증대를 위한 실험과 시도가 전개 되었다. 그 결과 우리농촌을 농한기 없는 부지런한 농촌으로 바꿔 놓았다.
희망에 찼던 그때, 공단의 처녀들에게 추석 때 보너스에 선물까지 챙겨주고 귀성버스로 고향 오갈 때 모셔주고 모셔왔다. 기업주가 착해서가 아니라 귀경길에 다른 회사로 뽑혀 갈 가봐 보인 친절이다. 구인난이 전쟁 같던 이야기지만 현실이었다.
일자리를 위한 정책 배려가 이렇게 전 국민에게 희망을 준다는 점을 나라님께서 아셨으면 좋겠다. 며칠 전 뉴스에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근로자 근무시간을 단축하여 2사람 봉급을 3사람 몫으로 나누어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국민을 조삼모사(朝三暮四)에 웃고 우는 원숭이로 보는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