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국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시애틀은 미국의 서북쪽 가장 끝에 위치한 변방이다. 그런데 그곳에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스타벅스, 보잉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세계적 기업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한 여름날 오후에는 하루의 일을 일찌감치 마친 직장인들이 도심의 호수에 쏟아져 나와 요트를 타고 겨울에는 가까운 산에서 스키를 즐기는 곳이 시애틀이다.
‘작은 도시 큰 기업’의 저자 모종린은 이런 도시를 ‘라이프스타일 도시’라고 명명한다. 라이프스타일 도시란 사람 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도시, 나름대로 자기의 매력을 가진 도시에 다름 아니다.
첨단과학으로 경쟁하는 기업일수록 사람이 기업의 최고 재산이다. 시애틀은 미국에서 매년 실시되는 설문조사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좋은 회사들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선호하는 곳이 어딘가 하는 점은 기업들이 사무실의 입지를 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고려 항목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상승 작용을 해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하는 도시에는 미래 인재와 유망 기업들이 몰리게 된다.
제주도는 한때 하와이를 발전 모델로 삼기도 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휴양 인프라 면에서 양쪽은 서로 유사하다. 그러나 많은 호텔과 높은 건물들은 일견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현지 주민들, 특히 근로자들의 삶의 질은 상당히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광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없음이 하와이의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1주년을 맞아 필자가 당시 제주일보에 기고했던 글(2007년 7월 12일)의 일부를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건강하고 건전한 고급 두뇌들이 제주도에서 즐겁게 일하면서 아이들을 좋은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는 가까운 학교에 보내고 이곳 저곳 도보나 차로 이동하는 것이 쾌적하고 안전하며 여가에는 고급 레저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제주특별자치도가 지향하는 목표가 돼야 한다. 사람 살기 좋은 곳을 만들면 기업과 자본이 따라오고 관광도 따라 온다. 그리고 그것이 제주도가 발전해 나가는 바른 순서일 터이다.”
지금의 제주도정은 자연, 사람, 문화를 제주의 라이프스타일로 내걸고 있다. 또한 ‘2030년 탄소 없는 섬’이라는 구체적인 아젠다에는 제주도의 발전 모델이 탈(脫) 물질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이 들어나 있다.
그러한 라이프스타일 도시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제까지 간과되었던 다음 몇 가지가 눈에 들어 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첫째, 제주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인군자일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교통 질서 안 지키는 것이나 백주에 쓰레기를 투기하는 것은 제주인의 문화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규칙은 규제와 다르다. 규칙이 잘 지켜지는 도시에 좋은 기업과 좋은 사람들이 들어 온다.
둘째, 제주도의 오름과 곶자왈은 다른 곳에는 없는 제주도의 핵심적 환경 자산이다.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이런 환경은 매력적이다. 더욱 잘 보전돼야 한다.
셋째, 국제자유도시라는 말은 자칫 미래적인 것에 가려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가벼이 여기도록 만들 위험이 있다. 바람직한 라이프스타일은 기존의 인문적인 요소들과 함께 형성되는 것이어야 한다.
끝으로 앞으로 제주가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주인과 객(客)이 각각 누구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이 땅에서 삶을 이어갈 후세를 생각하는 자는 주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객이다. 주인은 없고 객만 있는 곳은 황폐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