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이 되고픈 중국.------------열린뜻 8월호시론
- 화동
- 2016.08.0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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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이 되고픈 중국.------------김평일
중국 대륙은 대국 병을 부른다. 중국의 핵심지역 양자강 황하 주변 광막한 대평원인 중원은 대국 병에 걸린 여러 민족의 침략으로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 희생자를 겪은 지역이다. 대국이 되고픈 주변 민족들도 엄청난 피를 흘리며 중국의 심장부 중원을 공격 점령했다. 남북조 전국 시대부터 금왕조 요왕조 원왕조 명왕조 청왕조 외 수많은 외래 민족 침략자의 통치 기간이 중국역사 5000년의 1/4에 해당한 한다.
KBS 방송 “역사 스페시얼”에 의하면 외래 왕조 중 금왕조 청왕조의 조상은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의 후손으로 2개 왕조가 국호부터 전자는 금, 후자는 후금(훗날 청으로 바뀜)으로 모두 김씨의 나라라는 뜻이며, 현재 중국의 모두 김씨는 신라 고려의 후손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조 지리지에 의하면 명태조 주원장의 조상 역시 고려 사람이라는 기록이 있어, 그것이 사실이라면 3개 왕조의 1,000년 역사를 우리나라가 중원을 지배한 셈이다.
근대 이후 중국은 아주 뼈아픈 역사를 경험한다. 영국과 전면 전쟁도 아닌 영국의 1개 상단 함대와 전쟁에 항복한 중국은 죽어가는 사자 주위에 몰려든 하이에나 같은 서양 열강의 먹이 잔치로 만신창이가 되고, 설상가상으로 중원을 점령하려는 일본의 ‘대동아제국“ 꿈은 중일전쟁의 계기가 되어 대륙을 피바다로 만들며, 특히 남경에선 일본군은 무고한 시민 30만을 학살하는 무한 치욕의 역사를 겪는다.
모택동은 중국의 이러한 치욕시대 태어나 대륙을 평정했다. 한국의 한은 가난이어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3차례 15년 하였지만, 중국의 한은 치욕의 역사이어서 역사개발 5개년 계획(역사개발공정)이 무려 10차례로, 모택동 사후까지 시행하니, 1950년부터 시작하여 2003년 제10차 동북공정으로 끝낸다. 이들 50년 역사공정의 결론은 종전의 중국 고유 한(漢)족 중심의 역사를 버리고, 56개 소수민족을 총망라한 “중화족”이라는 새 이름으로 역사를 정리하니 여기서 우리 조선족을 중화족으로 편입시켜 고구려는 중국이 되는 역사 왜곡을 했다.
모택동의 역사공정과 등소평의 실용주의 시장혁명으로 중국은 대국으로 잠에서 깨었다. 그러나 깨어보니 미국과의 힘겨루기가 현실이었다. 1990년대 소련 붕괴이후 냉전시대를 잠재운 미국은 세계 제 1의 대국이 되어 있었고, 미국은 중국이 잠을 깨기 전부터 중국을 포위 견제하고 있었다.
현재 핵 확산 금지 협약이전의 기존 5개 핵보유국, 미,영,불,러,중 이외에 핵보유국은 중국과 국경을 맞댄 인도와 파키스탄 2개국이다. 이중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이 핵을 갖는 것은 미국의 종주국 뻘의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만, 중국견제가 더 우선인 때문에 핵무장을 도왔고, 이슬람 국이 아닌 인도와는 핵기술 교환 협정까지 맺었다.
이런 사실은 깨어난 중국에게는 충격이었는데, 최근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은 북한 핵을 견제하는 것보다 중국 핵무기에 대한 과잉 억제로 중국에 대한 포위, 봉쇄 강화로 볼 수 있다. 이 사실은 동서 냉전 시대인 1963년10월 미국은 소련이 미국 코앞인 큐바에 소련 핵기지를 만들려 할 때,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과 전면전을 불사하고, 선전포고 직전으로 몰고가 쏘련의 흐르시쵸프의 핵기지 포기를 받아낸 처지와 유사하다. 그때 큐바 핵 기지는 현재 한국의 사드 기지 입장이 같다. 케네디를 본받아 시진핑도 미국과 전면전을 선포하거나 군사 시위를 할 수 있을 까?
최근 중국 인민일보는 아세안 10국과 한중일 3나라 언론인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미디어 협력 포럼'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인민일보는 “싸드 도입으로 한국은 상응한 보복당할 것이다" 라고 협박하면서 한국은 소국으로 굴종해야 함을 강조했다. 대국은 갑이요 소국은 을인가? 협박으로라도 대국이 되려는가? 성경에 지배하려면 섬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