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_ 면죄부와 구텐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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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와 구텐베르크


금세공 기술자였던 구텐베르크와 그 조수 페터쉐퍼가 금속활자를 개발하고 운영하던 인쇄소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을 인쇄하여 번 돈이 아니라 교황청에서 주문한 대량의 면죄부 인쇄 덕분이었다. 교황 니콜라오 5세(재위 1447~1455) 때인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면죄부 인쇄를 인쇄하게 된 것은 교황청 생각에도 금속활자를 사용하는 인쇄 방법이 잘 팔리는 면죄부를 대량으로 제작하는데 적합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은 ‘갑’의 위치인 대기업답게 ‘을’인 구텐베르크에게 면죄부 인쇄대금 지불을 제 때에 해주지 않아서 구텐베르크는 인쇄공 임금과 종이값을 사채를 빌려 우선 지불했는데, 이 돈을 기일 내에 갚지 못해서 유태인 사채업자 요한 푸스트에게 소송을 당한 재판 기록이 남아 있다.

 

50여년 뒤 교황 율리오 2세(재위 1503~1513) 때에도 미켈란젤로에게 교황청에서 작업 비용을 약속한 기일에 지급해주지 않아서 같이 작업한 화가들의 임금이 체불되고 천정화 그리는 작업이 일시 중단된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천지창조’ 그림이 포함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는 1508년에 시작해서 1512년에 완성되었다. 로마 안의 바티칸 시국에 위치한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식스토 4세를 위해 1473년 건설을 시작해서 1484년에 완공되었다.


면죄부(Indulgence)는 로마 교황이 교회의 건립 비용과 교회의 부족한 재정을 해결하고자 금전이나 재물을 봉헌한 사람들에게 죄를 면해준다는 뜻으로 교부한 증서로 800년경 교황 레오 3세 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하나, 본격적인 면죄부 발행의 시초는 제1차 십자군 운동시 교황 우루바노 2세(Urbon Ⅱ) 때이다. 우루바노 2세가 “십자군에 참여자는 대 사면을 베푼다”고 한데서부터 실제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제1차 십자군은 1095년 예루살렘으로 보내진 최초의 십자군이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1099년 십자군은 4년 만에 예루살렘 정복에 성공하였으나 성 안으로 난입한 십자군은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제1차 십자군 출정으로부터 900여년 뒤 2001년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십자군이 예루살렘에서 행한 약탈과 살인 방화 등의 만행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면죄부 판매가 종교 개혁으로 확대된 계기는 독일의 한 신학 교수가 제기한 교회에 대한 개혁 요구가 시초였다. 그러나 1414년부터 1418년까지(그레고리오 12세 교황 ~ 마르티노 5세 교황)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러한 개혁 요구는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는 유럽의 기독교 세계를 재통합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교황청의 압력이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독일에서 유독 불만이 많았던 것은 독일 지역은 14세기 이후 중앙 권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청의 비용을 대는 호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교황의 사치스러운 생활, 대규모 건설과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오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선제후들이 211대 교황 갈리토스 3세에게 이러한 교황청의 행태에 대해 독일 민중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음을 경고한 사건도 발생했다(1456).


1506년 율리오 2세(Julius Ⅱ)가 ‘일괄 면죄부’를 발행하고 조작가 미켈란젤로에게 성당의 천정화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당시에는 로마 교황청뿐 아니라 각 교구의 교회들도 가능한 한 많은 월급(성직록)을 줄 돈과 최대한 많은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교황청에서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 교구 신부들 역시 생계 보조 수단으로 여러 형태의 성물을 판매하였다. 그중 라이프치히 출신의 도미니크 회 소속 수도사인 테첼(1465~1519)이 특히 악명 높았다. 돈만 내면 미래의 죄까지도 사면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테첼은 실제로 “일정한 금액을 주고 면죄부를 구입하면 지금까지 지은 죄와 함께 미래의 죄까지도 사면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1504년부터 면죄부를 판매하던 테첼에게 1514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새로운 면죄부의 판매 사명이 떨어졌다.


1514년 당시 교황 레오 10세(재위 1513~1521)는 사치스럽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부유한 메디치 가에서 태어나서 14세의 나이에 추기경이 되었다. 38세인 1513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신께서 우리에게 교황직을 주셨으니 즐겨 보도록 하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레오 10세 교황은 나들이를 할 때 표범, 어릿광대, 하마와 흰 코끼리를 행렬의 선두에 서게 하였고, 65가지의 코스로 구성된 저녁 식사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사치스러운 레오 10세는 웅장한 성 베드로 대성당의 신축을 추진하였고, 엄청난 공사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념 면죄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 알브레히트 2세(1490~1545)에게 주었고, 이 임무를 테첼에게 다시 맡겼다. 테첼이 긁어모아온 액수 중 절반을 알브레히트 2세 선제후는 자신이 진 빚을 갚는 데 썼다는 사실은 당시 교회가 얼마나 부패하였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따라서 무리하게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회의 행위에 대한 총체적인 반발이 행동으로 옮겨져 루터와 캘빈이 개혁을 외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표] 구텐베르크 당시 역대 교황

이름

교황

재위기간

161

우르바노 2세

1088~1099

프랑스 출신 교황

클레르몽 회의

1095

교황 우르바노 2세에 의해 클레르몽 회의에서 예루살렘 정벌을 위한 제1차 십자군 전쟁 선언

십자군 전쟁

1095~1291

1270년의 마지막 제8차 십자군이 1291년 패전함으로 십자군 전쟁은 실패로 끝남

162

파스칼 2세

1099~1118

이탈리아 출신 교황

십자군 예루살렘 정복. 살인/방화/약탈 만행

1099

십자군이 예루살렘 정복 성공. 성안으로 난입하여 많은 시민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 저지름. 2001년 교황 바오로 2세가 십자군의 예루살렘 약탈과 살인 방화 등의 만행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함.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공통의 성지임.

그레고리오

12세

1406~1415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

마르티노 5세

1417~1431

이탈리아 로마 출신

210

니콜라오 5세

1447~1455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면죄부 인쇄

구텐베르크

1394(1397)~1468. 1450년경 면죄부와 1455년 성경을 금속활자로 인쇄

211

갈리토스 3세

1455~1458

212

비오 2세

1458~1464

213

바오로 2세

1464~1471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1417~1471)

214

식스토 4세

1471~1484

바티칸에 시스티나 성당 건설

215

인노첸시오 8세

1484∼1492

216

알렉산데르 6세

1492~1503

217

비오 3세

1503(9/22~10/18)

218

율리오

(율리우스) 2세

1503~1513

(1443~1513). 교황 식스토 4세의 조카. 1506년 일괄 면죄부 발행. 1508년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그림을 부탁.

미켈란젤로

1475~1564

219

레오 10세

1513~1521

(1475~1521). 사치스럽기로 유명함. 메디치가 출신. 면죄부 발행권을 선제후 추기경 알브레히트 2세(1490~1545)에게 줌. 알브레히트 2세는 1514년 테첼에게 면죄부 발행권을 다시 넘김(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사명 전달).

테첼

라이프치히 출신 도미니크 회 소속 수도사 테첼(1465~1519)은 ‘일정한 금액을 주고 면죄부를 구입하면 지금까지 지은 죄와 함께 미래의 죄까지도 사면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하였다.

면죄부 반대

1517

마르틴 루터 중심으로 면죄부 판매 반대 항의 집회(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마르틴 루터

1521

루터(1483~1546)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1521년에 파문 처분을 받음. 독일의 종교개혁자이며 신학자

220

하드리아노 6세

1522~1523

네델란드 출신 교황

221

클레멘스 7세

1523~1534

캘빈

초기 종교개혁의 대표자중 하나인 캘빈(1509~1564)은 스위스로 망명하여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및 신정 정치적 개혁을 일으킴

[출처]

독일사, 미래엔(대한교과서), 2005

면죄부,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04467&cid=812&categoryId=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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