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을 어떻게 이해할까 --치과임상 4월호
- 화동
- 2014.03.29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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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을 어떻게 이해할까 -----------------김평일
“박근혜 대통령님 "반갑스무니다" 만면에 마소를 띄고 반가운 인사를 하는 아베의 모습에 우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 왜 이러나? 그러나 그 달콤한 인사말씀을 국가 원수의 입지에서 발설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11시간 반 만에 일본은 역사 교과서 문제로 다시 우리 뒤통수를 때렸다. 3월 26일 오후 2시 일본 중의원 문부과학위원회에서 일본의 교육을 총괄하는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상은 고노 담화(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담화) 그리고 무라야마 담화(패망 50년 후 당시 총리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에 대하여 “두 담화 자체는 현임 각의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기에 검정기준상의 정부의 통일적 견해엔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며 교과서 등재를 거부 했다. 한미일 정상 회담 자리에 나와 만면에 미소를 짓기 위해 "고노 담화 수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사탕발림 사전 발언을 한 것인지 그 미소 뒤 11시간 반 만에 오리발이 나온 것이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서 우리는 우리와 사뭇 다른 일본인을 제대로 알고 대처하여야 한다. 일본인의 우리와 다른 모습을 살펴보자.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후꾸시마 원전 폭발이 발생 했다. 그 엄청난 사태에 대 혼란이 예상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후꾸시마 현지 시민들의 질서정연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을 건네니 일본에서 20년 이상 거주 하면 동경대학에서 수사 과정까지 마친 필자의 친구는 일본인을 잘 알지 못한 해석의 결과라고 했다. 일본인의 질서 의식은 성숙한 시민정신의 발로가 아닌 자유롭지 못한 일본문화의 치부라는 것이다.
일본에서 선생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손들라고 하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 경우 특정인을 지적해서 문제를 풀게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 아는 사람?” 하며 선생이 말하기가 무섭게 자기를 시켜 달라고 “저요.” “저요.”를 연호한다. 이렇게 나서기 좋아하는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은 대열에서, 모임에서 나서기를 매우 꺼린다. 사무라이 문화는 단체에서 표 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목을 베어 왔다. 따라서 대열 이탈이라는 행동을 상상 할 수 없는 일본인들이다. 그러니 질서 의식이 세계 제1일 수 밖에 없다.
후꾸시마 사태 몇 달 전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다. 그 결과 인천시장은 큰 곤욕을 치렀다. 연평도 주민들의 거센 항의로 인천시장은 김포지구에 아파트를 마련해주고 즉각 포격지역 재건에 착수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수고 한 인천시장은 당연히 그리 해야 한다고 우리 모두 동의한다.
일본지하철에 취객이 떨어지면 목숨 걸고 뛰어든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한국 유학생이었다. 구출이라는 절대 선행에서 조차 일본인은 나서지 않는다. 반면 가미가제 자살 비행에서는 단한명의 조종사도 예외 없이 같이 죽어 준다. 우리는 그들을 알 수 없고 그들은 우리를 알 수 없다. 불공대천의 원수지간에도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간드러진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일본인이다. 반면 보기 싫은 원수는 눈 깔고 외면하는 것이 우리 정서다. 아베의 간드러진 인사에 외면하는 우리 대통령의 모습이 각각의 나라 정서를 잘 보여준다. 만약 우리 대통령이 일본어로 간드러지게 인사를 했다면 온 국민은 배신감에 떨며 탄핵을 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어느 누구도 아베의 간드러진 한국어 인사를 탓하지 않았다. 이구동성으로 일단 만남이 이루어 졌으니 진일보의 성과라고 논평하고 있다.
간드러진 한국어 인사 후 뒤통수를 치는 것은 일본인에겐 자연스럽지만, 한국인에겐 역겨움이다. 오로지 차가운 머리로 사는 일본인과 따스한 가슴으로도 사는 한국인과는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