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권 추구의 중국은 착한이웃이 될 수 있을까 ? 치과임상 8월호 시론

패권 추구의 중국은 착한이웃이 될 수 있을까 ? ------------ 김평일

아편전쟁의 굴욕으로 중국은 열강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혔다. 5000년 역사에 최악의 굴욕시대를 지나 그 울분이 멸만흥한(滅滿興漢-만주족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한족을 세운다)으로 점화, 1905년 도쿄[東京]에서 중국혁명동맹회(中國革命同盟會)를 결성하고, ‘청 타도, 중화회복, 민국건립, 지권(地權)평균을 주장하면서 삼민주의(民族, 民權, 民生)의 국민당이 탄생, 현재의 대만정부다.

한편 1919년의 5·4 신문화운동 후,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널리 전파되었다. 북경대학 도서관 사서였던 모택동은 도서관에서 공산주의 이론과 혁명 투쟁을 철저히 공부하여 사상무장을 완수하고, 광동성 고향으로 내려가 공산당을 조직, 장개석의 국민당과 대립하였는데, 국민당의 장개석 군()의 포위 압력을 견디지 못해, 193410, 10만 공산당 병력을 이끌고, 동남쪽 장시성을 출발 약 1년에 걸쳐 중국 서북부 산시성까지 9,600km(25천리) 피난, 대장정(大長征)을 벌린다. 이 과정에서 지주 유산층을 털어 무산층 이웃에 퍼 날랐다. 반면 장개석은 모택동에 협조한 무산층을 처벌하니 1년 반복 운동에 민심이 장개석에서 모택동으로 바뀐다.

중일전쟁 발발. 일본의 침략으로 소위 국공합작(국민당과 공산당 협력)시대가 잠시 이어졌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국공재대결(國共再對決), 결과 장개석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밀려난다. 대장정에서 얻은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 되었다.

본토 통일 불과 11개월 만에 중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다. 중공군 참전은 쏘련 스탈린의 큰 실수여서 이후 공산권 패권을 중공-쏘련이 나누게 된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스탈린의 죽음은 4개월후 휴전을 부르고, 중공은 UN군과 맞선 조인 당사국이 되어, 전쟁의 공로는 모두 중공이 차지한다. 아편전쟁 굴욕 이래 명예회복이다.

한국전쟁 명예를 쟁취한 모택동은 미,(,)을 따라 잡는다고, 산업화 공업화의 대약진운동을 전개하지만, 과욕의 부작용이 일어 실각의 위기까지 몰리니, 유소기 등소평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자신의 패권을 세우려고 학생을 선동, 홍위병을 만들어 문화혁명을 시작, 기존 중국질서와 문화를 박살내고, 4000만이 죽는 등 중국을 쑥대밭 공황으로 빠트린다. 소련의 흐르시쵸프와 척()을 지면서 공산권 패권에, 핵무장까지- 요즘 북조선 모습이다.

모택동 사후 중국은 홍위병에 배척받던 등소평 등 실용주의자들의 집권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대폭 수정한 수정주의, 실용주의를 채택하여, 한국의 한강기적을 모델로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여기서 박태준 포철 회장이 고문으로 일조하신 일화가 있다.

공산주의자 이었으나 등소평은 매우 합리적 군자 이었다. 그는 천안문 광장에 묘를 민들고 방부처리로 인민의 순례를 받는 모택동과 달리 자신을 화장하여 대만 해협, 금문도 앞바다에 뿌려 달라는 중국의 통일의 유언이다. 등소평은 1인 체제 대신, 차기와 차차기 집권자를 뽑는 과두정치(寡頭政治)를 제도화, 독재 예방에 힘썼으니, 한동안 경제부흥과 평화를 맞았다.

그러나 근자에 시진핑(習近平)집권 이후, 1인 독제 체제를 다시 구축했다. 등소평의 민생경제에서 시진핑은 패권경제로 전환하니 중국의 경제의 세계화를 도모. 북경에서 마드리드까지- 철길 실크로드 사업, 일대일로를 기획한다. 권위와 패권의 존왕양이(尊王攘夷, 왕통을 잇고 오랑캐를 몰아낸다)의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연히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을 촉발 했다. 주변국 침탈도, 오키나와에 다수 중국인을 투자 이민하여, 오키나와 선거직 지방 장관에 화교가 당선 되어 미군주둔을 거부 중이다. 제주도 해안 요지도 모두 사들였다. 요즘 수도권에 중국인 진출 부동산 매입이 증가일로라 한다.

이에 미국의 트럼프는 제재의 칼을 들었다. 관세 무역에서 중국을 억압하고 일대일로의 길목인 시리아, 이란을 압박한다. 천멸중공(天滅中共)을 외치는 홍콩 시민의 한이 대홍수를 부른다. 최근 외교부장 왕이(王毅)는 미국과 선린이기를 소원한다는 말이 애절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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