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__ 이승만과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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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286__이승만과 신채호

 

 

76살의 [김상구] 페친이 이승만이 대단한 이유를 열거했다. (1) 5천 년 동안 90%가 양반의 노예로 살던 노비들에게, 헌법에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넣고, 모든 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줘서 지도자를 뽑게 한다. (2) 미제의 앞잡이라고 하는데, 6.25전쟁 내내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해 몇 번이나 공작을 하였다’. 미군은 휴전하려는데 이승만은 북진 통일을 외침으로. 사실상 소련, 중국, 북한도 공산화 되어, 공산화 되도 이상할 거 없는 나라에 한미상호 방위조약으로 공산화를 막음. (3) 고작 국민소득 70달러인 나라를 위해 미군 4만 명이 전사. (4) 독재자라고 하지만 이상하게 학교를 많이 지어, 건국 초기 90%이던 문맹률이 1960년에는 10%까지 줄어든다. (5) 10년 넘게 독재자라고 불리었어도... 그에게 남은 재산은 한 푼도 없었다. (6) 이승만을 욕하는 사람도, 이승만이 부패했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에는 반 이승만 쪽에서 반론을 제시한다. 페친 [백호]님이 근대사 민족의 대스승 단재 신채호 선생은 왜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박용만 장군을 추대했을까?” 일제치하 당시 미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 대부분은 이승만을 신지식인 애국지사로 인식한다. 그러나 사실 이승만은 한일병합을 찬양하는 2차 영일동맹을 주도한 영국 외교관 스티븐슨을 암살한 장인환 의사의 변호를 주미조선인들이 청하자, 기독교도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박용만 장군이 미국으로 이승만을 인도해 주었지만, 결국 박용만 장군을 배신하고 대적한다. 그 이유는 조선인들이 모아주는 독립자금 때문이다. 이승만은 총 한 번 들지 않은 외교론자로서, 역모가담으로 감옥살이를 한 이후 일본인들에겐 단 한번도 구속된 적 없다. 박용만 장군은 미국 내에서도 무장투쟁을 주장한 행동하는 독립투사로, 소년병 학교 등 무장투쟁 사관생을 훈련하다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선각자로서 우리의 상고사 보존과 오직 무장투쟁을 주장했다.

 

미국에서 쫒겨난 박용만 장군은 1926년 임시정부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선생이 임시정부를 서간도로 옮겨가고, 이승만이 세운 경무국장 김구와 이승만의 추종자들이 남아 임시정부 역할을 하고 있는 상해임시정부 폐지를 주장하자, 김구는 박용만 장군의 상해 출입금지령을 통보한다. 박용만 장군은 북경에 무장투쟁 군대와 사관학교를 세우며, 친미외교론의 상해임정 해체를 주장하다 결국 암살당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은 해외에서 객관적 국제시각으로 바라보는 의병사 독립운동사로 다시 봐야하는 할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는 정신이라 하셨는데, 친일 친미 부역자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배우는 우리들의 정신은 어떤 상태인가 ?

 

 

단재 신채호

 

신채호(1880~1936) 선생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사학자·언론인이었다. 호는 단재(丹齋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신성우로 부터 한학을 익혔고, 1897년 성균관에 들어가 이남규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나, 그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관직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 낙향하였다. 1905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주필로 활약했으며, 내외의 민족 영웅전과 역사 논문을 발표하여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했다. 순한글 가정잡지를 편집·발행했고, 대한협회보, 기호흥학회보등에 논설을 발표했다.

 

19104월 신민회 동지들과 협의 후 칭다오로 망명, 그곳에서 안창호·이갑 등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다. 그곳 항일단체 권업회에서 발행하는 권업신문에서 주필로 활동하다가, 1914년 이 신문이 강제 폐간되자, 그 해 남북 만주와 백두산 일대 부여, 고구려, 발해 유적지 등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무대를 답사했다. 1915년 상하이로 가서 신한청년회 조직에 참가하고, 박달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에도 힘썼다. 베이징으로 건너가 비밀결사단체인 대한독립청년단을 창단하여 단장이 되었고, 신대한청년동맹 부단주가 되었다.

 

신채호 선생은 1919년 상하이에서 거행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했으며,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나, 한성임정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을 내세워 임시정부 공직을 사퇴하고 주간지 신대한을 창간하여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과 맞서기도 했다. 당시 임시정부는 소수의 의견만으로 소집되어 불완전한 상태이며, 항일운동을 전개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직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승만은 국제연맹에 위임통치를 주장했기에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부적절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1923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서 민중의 폭력혁명으로 독립의 쟁취를 부르짖으며,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자는 창조파의 주동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안창호, 이동휘를 중심으로 하는 임시정부 개조파와 대립하여 임시정부의 존폐문제를 논했으나 논의는 결렬되고 말았다. 신채호는 다시 베이징으로 건너가 항일비밀단체인 다물단을 조직에 가담하여 지도했으며, 본국의 동아일보,조선일보에 논설과 역사논문을 발표했다. 1925년경부터 무정부주의를 신봉하기 시작, 1927년 신간회 발기인, 무정부주의 동방동맹에 가입, 1928년 잡지 탈환을 발간하고 동지들과 합의하여 외국환을 입수, 자금 조달차 타이완으로 가던 중 지룽항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옥사했다.

 

적과 타협없이 독립투쟁을 전개하는 동안 독립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 이와 같은 견해가 곧 그의 역사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고조선과 묘청의 난 등에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고 역사라는 것은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라는 명제를 내걸어 민족사관을 수립, 한국 근대사학의 기초를 확립했다. 신채호 선생의 저서에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조선상고문화사(朝鮮上古文化史)》 《조선사연구초(朝鮮史硏究艸)》 《조선사론(朝鮮史論)》 《이탈리아 건국삼걸전(建國三傑傳)》 《을지문덕전(乙支文德傳)》 《이순신전(李舜臣傳)》 《동국거걸최도통전(東國巨傑(崔都統傳)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참고: 두산백과).

 

 

 

틀딱세대 황혼의 반란

 

노인 혐오 사회 위태로운 황혼윤여정에게 꼭 배워야할 것. 늙어도 괜찮을 시대는 오기나 할까? 202159일자 [조선일보]의 최재식 논설위원의 글이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지난 3월 유튜브 방송에서 암스트롱이라는 남성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며 인형의 손으로 신체 주요 부위를 가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가, 성희롱 논란이 일어 해당 코너가 사라졌다. 한때 사회 각 분야에서 여혐논란의 불똥이 튈까 조심하더니 이젠 남혐’(남성혐오)을 경계하는 이슈다. 그런데 혐오라면 역시 노혐’(노인 혐오)이 가장 문제가 아닐까? 노인들에 대한 혐오가 계속되고 있지만, 인형 갖고 장난치는 젠더 이슈만큼도 대중의 관심사항이 되지 않으니 안타깝다. ‘늙어도 괜찮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시대는 오기나 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단편소설 황혼의 반란은 노인 혐오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초고령 사회가 된 프랑스에서 노인 배척운동이 일어난다. 학자들은 TV에 나와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들 때문이라고 외친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노인들을 불사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선언한다. 곧바로 노인들에 대한 약값과 치료비 지급이 제한된다. 노인들을 붙잡아 가두고 독극물 주사를 놓아 죽인다. 그러자 노인들이 들고일어나 생존을 위한 게릴라 투쟁을 시작한다. 체포된 주인공 프레드는 죽기 전에 자신에게 주사를 놓는 자의 눈을 차갑게 쏘아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세대 갈등은 역사를 통틀어 봐도 언제나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의 혐로 표현들은 너무 질이 낮다. 지금 노년층이 젊었을 때는 기껏해야 마음에 좀 안 들면 노인네라고 했고,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을 비하하는 은어로 꼰대정도를 사용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라는 틀딱충’, 연금만 갉아먹는 벌레라는 연금충’,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할머니를 매미에 비유한 할매미라는 저질스러운 표현을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사용해댄다. 노인 너무 혐오하지 마라. 너희들이 갈 길이다.

 

하지만 노인 혐오에도 이유는 있다. 요즘 SNS 상에서 댓글을 달고 다니는 노년들, 어디서 그런 쌍소리를 배웠는지 언행이 흉해 가히 비웃을 만하다.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아무리 무플(댓글이 없는 것)’보다는 악플(악성 댓글)’이 낫다지만, 댓글 폭탄 한 번 맞아보면 피가 거꾸로 돈다. 젊은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까? 현역 세대의 부담은 눈 감고 자기 연금만 욕심내는 것도 맞는 말이고, 말귀 안 통하는 잔소리꾼 할머니들도 많다. 젊은이들의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노인 혐오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은 노인들이다. 노인들이 먼저 고쳐나가야 한다. 어떤 사회에서 이런 노인들을 어른이라 공경하고 대접할까?

 

노인에 대한 공경은 기본적으로 노인의 윤리의식에서 시작된다. 지난 4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74세의 배우 윤여정. 특유의 탈권위적이고 솔직한 말투, 청바지를 즐겨 입고 캐주얼과 클래식을 오가는 그의 젊고 품격 있는 패션 스타일. 화려하진 않지만 열심히 쌓아올린 오랜 연기 경력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을 보고 젊은 MZ세대들은 배우 윤여정에게 빠져들었다. 아하, 이렇게 하면 늙어도 혐로가 아닌 경로의 대상이 되는구나.

 

 

[참고]

김상구

https://www.facebook.com/KimSKdavid

[참고]

백호

https://www.facebook.com/janghalimbaek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신채호 [申采浩] (두산백과)

[참고]

[조선일보], 최재식, 2021.05.09.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1/05/09/KGPAHYQPKBAX3MCQYM42TNTTJI/?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utm_campaign=facebook-post&fbclid=IwAR2xxIQpQNG5psMhLEUHzuodtI6Tw5gGaqtSty5wXLFJYVeVJSxNBcwjx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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