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__ ‘문화패권’의 그람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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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913__ ‘문화패권의 그람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작품에 대해 의견들이 많다... 문화예술면에서 진보좌파 쪽이 헤게모니를... 디지털 크리에이터 최서림 님이 [페북]에 글을 올리셨다... 지금 문화예술 면에서, 진보좌파 쪽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도래해도 비판적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까?

 

비판적 기능을 상실해버린 작품을 참다운 의미에서,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무갈등이론만큼 큰 사상적 억압이 또 있을까? 무갈등이론(無葛藤理論) === 소련에서는 1930년대 말부터 스탈린 독재체제가 굳어지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이름 아래, 소련의 부정적인 측면을 묘사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작품에서 참된 극적(劇的) 갈등이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1951년 말에는 소련 사회에서는 판연(判然)한 갈등이, 전형적인 형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무갈등이론인데, 1953년이 되자 이 이론은 리얼리즘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소비에트 예술의 발전을 저지하는 것이라 하여 통렬한 비판을 받았다.

 

신태희 님의 [댓글]... 그날이 오면, 북한처럼 우상화 작업에 필요한 이념시나 소설만 쓰게 되겠지요. 백석(1912~1996, 백기연, 백기행)이 그러했듯이...

 

강석두 교수가 이재호 님의 글을 인용해주셨다... 문학적 글쓰기를 수단으로, “정치문화사상 투쟁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저러나? 4.35.18과 포르노에 주로 글쓰기 관심이 많았을까? 문화전쟁을 통한 진지전 수행은 그람시의 기본 전술이다. 각계각층으로 진출하는 자들의 뇌 속의 의식을 바꾸면, 자연히 공산주의자가 되어 공산혁명이 이뤄진다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문화패권(Egemonia culturale)의 그람시

 

---‘문화패권의 그람시...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정치인인 그람시의 주요개념은 .정치와 헤게모니, .역사적 지배블록, .시민사회와 통합국가(Integral State), .유기적 지식인의 역할, .진지전(war of position)과 기동전(war of maneuver)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람시(Antonio Francesco Gramsci)1891년 이탈리아 왕국 사르데냐에서 출생하여, 46세인 1937년에 사망했다. 그람시는 이론 측면에서, 자본주의 국가를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로 구분하여서, '문화패권'(Egemonia culturale)의 중요성을 역설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설자로서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즘에 대항하였다.

 

후세의 좌파 진영으로부터,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여, 정치학/사회운동론/문화이론 발전의 단초를 놓은 이론가""결과적으로 패배한 혁명가"라는 상당히 상반된 평가를 받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가 파시즘의 희생자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계승자 중 하나로 간주되는데, 특히 경제주의전위주의를 지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공산혁명의 조건으로,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획책을 강조하였다.

 

그람시는 4살 때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으며, 이 때 척추를 다쳐서 키가 150cm 정도에 멈췄다. 22(1913)에 이탈리아 사회당에 입당했다. 입당 후엔 토리노의 노동자들을 이끌어서, 이탈리아 사회당 내 좌파 세력을 결집했다. 대학 중퇴 후, 사회당 기관지인 아반티 토리노 지국에 입사했는데 당시 토리노 지국장은 무솔리니였다. 거기서 내부 갈등을 겪다 나와서, 1919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기관지 신질서를 창간한다.1921년에는 아마데오 보르디가와 함께 마르크스-레닌주의 정당인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한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활발하게 반파시스트 운동을 벌였다.

 

이탈리아 공산당에 질릴 대로 질린, 무솔리니 정부는 결국 파시스트 국민당 외의 모든 당의 정당 활동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공산당의 리더인 그람시를 투옥시켰다’(1926). "우리는 이 자가 20년 동안 두뇌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그람시는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에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벌였는데, 대표작은 옥중수고(Quaderni del carcere)로 총 29, 2848페이지에 달한다. 감옥 내에서도 뼛속까지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그람시는, 애초에 좋지 않았던 건강 상태가 악화된 끝에, 뇌출혈로 1937년에 사망했다.

 

자본주의의 붕괴가 임박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여러 형태로 변화되긴 하나, 필연적으로는 붕괴할 것이라고 여긴다. 이에 비해 루카치, 그람시, 프랑크푸르트 학파들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학자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장기간, 자본주의는 안정화되고 내구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에서 왜 자본주의는 안정화되고, 내구성을 지니느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설명하려한 것이다.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정치인인 루카치(Lukács György)의 물화이론도 이런 맥락이며, 그람시는 정치학적 견지에서 자본주의의 지속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학자는 1871년 파리 시민(노동자 계급)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Paris Commune)을 전후한 혁명적 노동운동을 보면서, 그러한 것을 자본주의의 몰락의 징조로 보았으며, 레닌은 제1차 세계 대전을 보면서 자본주의 몰락의 징조를 발견하였음에 반해서, 그람시는 1871년 이후 혼란 속에서 자본주의가 벗어나, 안정화되고 확산되어가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중요성, 특히나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중요성에 주목하였다.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안정화되어가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림시의 이론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또 한 번, 전도시켰다고까지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람시는 국가가 공적 영역의 대표이며, 시민사회는 사적인 영역의 대표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에서 형성된 질서가 국가를 매개로 공식화된다, 즉 시민사회가 국가영역을 지배한다고 보았지만, 그는 국가기능이 점차 확대되면서 시민사회는 국가의 사적 네트워크가 되며, 그 시민사회를 통해 국가는 모든 의식과 조직에 침투할 통로를 확보한다고 한다. 또 그런 속에서 국가는 통합국가일 수밖에 없는데, 강제측면을 담당하는 부분은 정치사회이고, 동의를 창출하는 부분은 시민사회라고 한다. 그람시의 국가는 "정치사회(강제)+시민사회(동의)"이다.

 

그렇다면, 시민사회란 무엇인가? 시민사회는 다양한 사회집단, 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표출하고 조직화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이런 시민사회는 다양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국가는 바로 이런 시민사회 영역에까지 침투, 사회 각계 각층의 동의를 창출하면서 헤게모니적 지배를 구축하며, 이런 의미에서 국가는 통합국가라고 보았다. 통합국가는 시민사회까지 포괄하면서, 독재(강제)와 헤게모니(동의)를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에서는, 루이 알튀세르가 말한 ISA 개념처럼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학교, 교회, 가정, 대중매체)들이 지배 계급의 이익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그람시는 지배 계급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사회적 동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지배를 지속한다고 하였다.

 

그람시는 '상식'을 중요한 개념으로 다룬다. '상식'은 특정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념이나 신념을 의미한다, ‘상식은 지배계급이 만든 것으로,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며, 시대에 따라 가변적이다. 따라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게 되며,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 그람시는 지배 계급이 상식을 통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피지배 계급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듦으로써 헤게모니를 유지한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사회 변혁을 위해서는 단순한 물리적 충돌(기동전)이 아닌, '진지전(war of position)'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진지전은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싸움을 의미하며, 피지배 계급이 지배 계급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다. 이는 단기적인 기동전(war of maneuver)’보다 더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요구한다. 피지배 계급은 교육, 문화, 대중매체 등을 통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기존의 상식을 비판하고 대체함으로써 지배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람시는 특히 세계를 변혁하려는 사람-사회주의자가 이른바 유기적 지식인이 되어, 대중의 '상식'에 익숙해질 것을 주문했다. 그는 상식이 노동계급이 세계를 관망하는 시각을 형성하며, 사회구조는 상식의 변화에 따라 변동한다고 보았다. 사회주의자 지식인이 상식이 형성되는 원인을 냉철히 분석하고,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상식을 노동자 계급의 새로운 질서로 바꿔낼 때, 비로소 사회는 변혁된다는 것이다. 대중의 상식 전반을 바꾼다는 것은 무척이나 길고 지난한 과정이기에, 그람시는 단번에 정부를 때려잡고 모든 것을 갈아엎는 원샷의 기동전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진지를 바탕으로 서서히 사회문화 전반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는, 사상의 참호전을 벌여야 한다고 역설하게 된다.

 

, 문화전쟁을 통한 진지전 수행은 그람시의 기본 전술이다. 각계각층으로 진출하는 자들의 뇌 속의 의식을 바꾸면”, 자연히 공산주의자가 되어, 공산혁명이 이뤄진다는 게 그람시의 생각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문화평론가, 작가인 정지우 변호사가 [페북]에 글을 올려주셨다(2024813)... 인스타그램, 쓰레드, 링크드인, 브런치, 페이스북 등 SNS를 둘러보면서 느끼는 게 있다. 인스타그램은 대도시 같아서, 떴다 사라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장 북적이면서도, 비공개 계정도 많아 익명성도 있다. 우연히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칠 가능성도 높고, 여러모로 각자 관심사에 몰두한 개인 단위의 사람들로 가득한 느낌이다.

 

쓰레드’(Threads, Instagram의 새로운 텍스트 앱)는 광장 같다. 마치 광장에 모인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려, 최선을 다해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는 상인들이 가득한 느낌이다. 저마다 자기 이야기가 제일 흥미롭고, 재밌고, 유의미하다고 소리친다. 사람들은 여기 몰렸다 저기 몰렸다 하고, 어느 한 곳에 진득하게 모이진 않는다.

 

링크드인’(Linked in)은 여의도 같다. 예의 바르고 서로에 대한 거리를 인정하는 직장인들이 너무 사적인 이야기 없이, 각자 커리어 등에 대해 깔끔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필요한 정보들 위주로 효율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게, 전부 양복 입고 투명창 회의실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타자기를 두들기고 있을 것 같다. 여러모로 가장 깔끔한 공간이다.

 

브런치는 절간 같다. 각자 퇴사를 했건, 이혼을 했건, 백수건, 여행을 다녀왔건, 혼자 절간에 앉아서 저마다 내면의 이야기를 파내려가는 느낌을 준다. 왁자지껄함이 별로 없고, 그저 담담히 각자 글을 쓰며,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각자 쓴 자기에게 쓴 편지를 서로 돌려보며 울어주는 명상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여러모로 가장 글다운 글은 많은 공간이다. 이용자는 가입 후 글을 쓸 수 있지만 이용자 자신만 볼 수 있고, 작가로 승인되어야 발행이 가능하다. 20233월에 브런치스토리로 리브랜딩...

 

페이스북은 마을 같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무언가 웅성웅성 하는 느낌이고, 페이스북 바깥에서는 아무도 모르는데, 페이스북 안에서만 도는 소문이나 이슈가 상당히 많다. 그러면 사람들은 또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몰려가서 다들 한 마디씩 얹는다. 대략 남의 집 숟가락 몇 개인지 궁금해하던 시절의 정서가 남아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주제들도 과거 동네 술자리에서 많이 이루어지던 사회 문제, 정치 문제 등이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되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굳이 꼽자면 '페이스북 출신'이다. 애초에 <<분노사회>> 같은 걸 쓴 입장이기도 하고, 페이스북에 쓴 여러 글들로 사회비평서도 제법 출간했다. 그런데 페이스북 마을 내에서 웅성웅성하는 이야기나 사람에는 좀처럼 관심이 많이 가지 않는 걸 보면, 본성은 다른 쪽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쩌다 보니 마을에서 태어났고, 마을이 여전히 가장 편안해서, 그냥 마을 구석에 절간 짓고 혼자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편에 가깝지 않나 싶다. <<분노사회>>(현대사회의 감정에 관한 철학에세이), 저자 정지우, 이경 출판사, 2014년 발행...

 

요즘은 다른 플랫폼에도 관심을 많이 넓혀가고 있는데, 굳이 꼽자면 인스타그램링크드인에 글쓰는 일도 나쁘지 않게 느낀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확실히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이게 글쓰는 사람에게는 고인물에 갇히지 않고 세계를 확장해가는 감각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주로 혼자 일하는 일이 많다 보니, 링크드인처럼 '사회인들'의 에토스와 한 면 접촉하고 있는 느낌도 좋다. 그래도 아직은 여전히 지인 중에서도, 태초마을 출신 사람들이 제일 많고, 밖에 나갔다가도 편안함과 익숙함을 찾아, 마을에 구석에 지은 나의 절로 돌아오게 되곤 하는 것 같다.

 

 

[참고] 최서림, 디지털 크리에이터.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43238409193

[참고] 강석두, POSTECH / 포항공과대학교 교수.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20661250756

[참고] <<L'egemonia culturale>> (문화패권, Paperback), 안토니오 그람시 저, Historica Edizioni 출판사.

[참고] 그람시 [나무위키]

https://namu.wiki/w/%EC%95%88%ED%86%A0%EB%8B%88%EC%98%A4%20%EA%B7%B8%EB%9E%8C%EC%8B%9C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무갈등 이론. [철학사전] 2009., 임석진, 윤용택, 황태연, 이성백, 이정우, 양운덕, 강영계, 우기동, 임재진, 김용정, 박철주, 김호균, 김영태, 강대석, 장병길, 김택현, 최동희, 김승균, 이을호, 김종규, 조일민, 윤두병.

[참고] 정지우, 문화평론가, 작가 겸 변호사.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이제는 알아야 할 저작권법>> 등 저술.

https://www.facebook.com/writerji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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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배  (박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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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facebook.com/samuel.park.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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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배
     ·  독서광, 작가목사, 교수, 강사, 한국교회 아버지 사무엘 마펫등 20권 저서, 책짓기 코칭 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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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세 부터 30년간 글쓰기를 해서 마침내 54세에 노벨상을 받은 한강작가가 자신의 일상의 습관과 인생의 기쁨에 대한 고백을 했다. 독서, 산책, 글쓰기이다. 30년간 꾸준히 한가지에 집중한 것이 결국은 노벨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독서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아버지 한승원작가의 책들을 읽으면서 였고, 산책은 사색과 건강을 위해서하고, 글쓰기는 인생의 성장을 위해서 한다.

    ■30년간 꾸준히 하는 것이다.
    요즘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에 전 셔계적으로 일어나는 독서 열풍과 책의 힘과 영향력에 대해서 새삼 그 중요성을 알게 된다. 모르면 가장 재미없을 것 같은 독서, 산책, 글쓰기가 한강작가를 최고의 인정을 받는 노벨상을 받게 했듯이, 그 재미를 알면 안수록 인생에서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독서와 사색의 걷기, 그리고 새로운 콘텐츠를 창출하는 글쓰기의 힘이다. 문제는 꾸준히 하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20년간 평론가들로 부터 쓰레기같은 글만 쓴다는 비평을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써서 마침내 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상을 받았다. 헤밍웨이의 비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쓴 끈기의 승리였다. 
    ■내가 노벨상 작가 한강(HAN KANG)에게 배우는 점
    30년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자세이다. 삶의 단순화와 하고자 하는 글쓰기에의 집중이다. 나는 15년간 글을 쓰면서 100여권의 책을 만들어 보았는데, 이제는 한강작가처럼, 30년 내 글쓰기에 집중해서 도전을 계속하려고 한다. 독서와 글쓰기는 꾸준히 할 때, 계속 성장하는 것을알 수 있다. 나는 이번에 한강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독일의 통일 소식 이후 가장 놀랐다. 그리고 나에게 스스로 말한다. '꾸준히 15년이상 더 글을 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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