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2__ 시건방 떨기. 극좌.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 이혼 연금 반쪽
- 뚱보강사
- 2024.10.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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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912__ 시건방 떨기. 극좌.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 이혼 연금 반쪽
디지털 크리에이터 고재열 교수가 “시건방 떨기① = 내가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라는 글을 올려주셨다... 시사IN에 다닐 때, 근처 식당 중에, 주인 아저씨의 ‘태도’ 때문에, 가기 망설여지던 곳이 두세 곳 있었다. 대구뽈찜, 청국장 등 주인 아주머니의 손맛은 좋았는데, 그 집 아저씨 태도가 좀 걸렸다. 행동 하나하나에 ‘내가 여기서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가 배어 있다. 대체로 아주머니의 손맛에 비해, 손님이 적었다. 식당 아저씨의 ‘내가 여기서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 라고 시건방을 떠는 태도는 모자라는 그의 인품과 그의 가치를 잘 나타내고 있었다... 사람의 태도가 모든 걸 결정한다...
나도, 언론사 기자에서 여행감독으로 전업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이 ‘내가 여기서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라고 하는 태도였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왕후장상의 일이 따로 없다. 여행일이라는 것은 의식주를 함께 하는 일이기에, 어떤 일이든 해야할 수 있다. 그래서 일에 대한 태도에 늘 주의했다. 비위에 거슬리게 잘난 체하며, 지나치게 주제넘은 태도가 바로, 시건방진 것이다.
시건방의 대표적인 ① ‘내가 여기서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닌데...’의 자매품으로는, ②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하는 태도다. 기댈 곳이 뭐라도 있는 사람은, 무의식 중에 이런 태도를 엿보인다. 이건 ‘내가 안 하면,아무도 해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야 극복할 수 있다. 나도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었다. 이곳에선, 고산증 때문에 샤워하면 안 된다고 계속 말리는데, 샤워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여성이 있었다. 겨우 말려서 들여보냈는데, 방심한 틈을 타 여성이 샤워를 강행했는데, 나와서 방으로 가는 몇 미터가 걱정이 되어서, 둘러쌀 모포를 가지고 기다렸다. 나와서 얼른 방으로 들여보냈는데, 뒤에 보니 속옷이 떨어져 있었다. 그걸 주워다 주는데, 그때 그런 생각이 살짝 들었다. 예전에 고산 등정을 했던 분에게, 등정대장에게 “필요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을 했다. “간단하다. 다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여행감독의 일도 그렇다. 다 할 줄 알아야 하고, 다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나에게 기자 생활 20년은, 갑으로 살아온 20년이었다. 비록 가난한 갑이었지만, 마음가짐과 행동거지에 어딘가 기름기가 끼어있게 마련이다. 그걸 빼내려고 신경을 쓴다고 썼지만, 아직도 기름기가 다 안 빠진 것 같다. 친절이라는 습관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주의하는 것 중 하나다.
현지 가이드도 없이, 일본어도 모르는데, 전용 차량을 최소한으로 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오지 트레킹(trekking) 여행’을 마치는 날이다. 대지진 우려 때문에, 취소하는 멤버들이 많아 여행을 취소했어야 맞지만, ‘어른의 여행, 트래블러스랩’의 세시풍속으로 단풍트레킹을 등재하기 위해서, 손해를 감수하고 강행했다. 다행히 너무나 멋진 단풍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여행클럽의 스테디셀러가 될만한 여행이다. 한국에서처럼, 단풍 좋다는 곳에서 인파에 파묻혀서, 옷단풍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고도에 따른 다른 식생대에서 다른 단풍들이 펼쳐져, 멋진 풍광을 볼 수 있었다. 키 큰 자작나무 교목의 은은한 단풍부터 땅에 붙어 사는 작은 나무들의 땅단풍까지, 모든 걸음이 좋았다.
적은 여행 인원이라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단체버스 이용일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런데 내가 일본어를 못해서, 오신 분들에게 ‘내가 이런 것까지 걱정해야 하나?...’하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낯 두꺼운 나는, 걱정해 주시는 그분들을 ‘전걱련(전국 걱정인 연합회)’ 의장과 사무총장으로 임명하며, 걱정을 피해 나갔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여행이 저문다.
극좌, 극좌정치, 좌파의 극좌화
유재일 디지털 크리에이터 님이 2022년 8월 23일 ‘극좌’에 대해 글을 주셨다... 내가 ‘남페미’였다가, 페미에 극렬 반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패미가 ‘극좌’로 갔기 때문이다. 페미가 극좌로 갔다는 건 무엇인가? 남성과의 연대의식을 말살했다는 것이다...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는 페미니즘(Feminism)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호주법에 반대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남성과 동등해야 한다는 원칙이 나에겐 있었다.
처녀막 타령, 동정 타령을 하는 것도 반대했다. 남성의 귀두에는 동정막이 있는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순결에 반대했다... 그러나 여성이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 탈코르셋을 해야 한다. 그리고 화장하는 여성 탈코르셋을 안 하는 여성을 공격하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나는 저들은 극좌라 주장했다. 화장을 하던 말던, 코르셋을 입던 말던, 그것 또한 자체 결정(self-decision)의 영역이다.
나는 자유민주주의자다. 민족자결이건, 국가자결이건, 스스로 결정하는 국가와 개인에 방점을 두는 정치사상을 가지고 있다... 설득을 하려는 것과 폭력을 가하는 건 다른 문제다... 나는 채식주의자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육점에 돌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극좌가 되는 것이다. 원자력에 반대하는 의견은 존중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처럼,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권력을 이용해 탈핵을 강제하면, 그건 폭력이다. 그럼 무책임한 극좌다. 비밀을 품고 사람이 죽는 정치. 그게 극좌정치다.
심상정이 페미들의 폭력성에 우려를 표하기는커녕, 위악이라는 말로 옹호할 때, 나는 자유주의자와 진보의 동행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진보결집인지 뭔지, 개지랄을 떨 때, 김세균(1947~,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2015년 11월~2016년 9월 정의당 공동대표)의 울음을 보며, 그래 저 노인네의 시대도 이렇게 끝나는 거다.
맑시스트들의 시대도 끝이다. 제도권에 들어온 맑시스트들은 자유민주주의 제도하의 대중노선 좌파로 변신을 끝끝내 실패했다. 자, 노조가 시설을 점거한다. 조업을 방해한다. 불법이다. 시너를 반입한다. 당연히 불법이다.
그런데 그들의 폭력을 당연시한다... 그게 극좌다. 공권력과 법과 체제를 부정한다. 그게 극좌다. 미국 문화원에 불을 지른다. 극좌다. 그걸 로망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자신들이 극좌였다는 반성을, 공개적으로 한 적도 없는 자들이 상식 밖의 입법을 한다. 중간에서 한 참 벗어난 극좌다.
극좌가 자유주의 성향의 리버럴들을 축출한 게, 현재의 좌파다... 그런 좌파의 극좌화는 외면한 체, 아직은 온건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한미동맹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절규를, 그 절규를 폭력으로 매도하고, 극우라 말하는 자들은 보수에서 축출되어야 한다. 그딴 머가리(‘대가리’라는 뜻)들로 신냉전의 파고를 넘을 수 없다.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
뚱보강사 칼럼 ‘#269__미얀마 헝가리 민주화, 586’에서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고 말한 바 있다. 캐나다 맥매스터대(McMaster University) 송재윤 역사학 교수가 2021년 4월 19일자 [조선일보]에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고 기고했다. 1960년대 한국서 태어난 건 행운. 중국ㆍ북한은 문화혁명ㆍ김일성 노예. 1987년 이후에 지적 성장 멈추고 음모 정치, 내로남불로. 특권ㆍ특혜 누리는 586 권력에 젊은 세대가 분노하고 규탄... 지는 해처럼 한국의 586 세대가 기울고 있다. 586운동권 정치 집단의 몰락이다. (586은 1960년대생 80년대 학번이 주류를 이룬다.)
한국의 586은 운이 좋았다. 1960년생은 중국을 피해 한반도에 태어났고,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태어났다. 그들이 한국서 자랄 때, 중국에선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이 발생했다. 중국의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인 ‘문화대혁명’을 피했다. 북한의 인민은 인간의 기본권을 잃고 전체주의 정권의 노예로 전락했다. 중국의 문화혁명 초기 학생들을 중심으로 마오쩌둥의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조직한 준 군사조직인 홍위병 세대와 북한의 김일성 키즈에 비해, 한국의 586 세대는 행운아들이었다. 남한의 586 부모 세대는 빈곤의 늪을 헤치고 나와 독일의 광산과 요양병원에서, 아라비아 열대 사막과 인도차이나의 밀림에서 목숨 걸고, 외화를 벌어 고향에 송금했다.
물론 남한의 586 세대도 역사의 짐을 졌다. 1980년대 그 세대는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웠다. 급기야 1987년 6월 항쟁(“호헌 철폐, 독재 타도”)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고, 민주화의 활로를 열었다. [참고] 1987년 6ㆍ10 국민 대회 선언문(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한 6월 민주 항쟁의 시작).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까지가 586세대의 시대적 소명이었다. 이후 586운동권의 일탈이 시작됐다. 대학가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 관련 서적들이 넘쳐났다... 중국에서 톈안먼 대학살(1989년 6월 4일)이 일어나고, 구소련의 붕괴(1991년 12월 26일)가 임박했지만, 그들은 눈뜬 청맹과니였다. 김일성을 숭배하던 주사(NL)파는 당시 대한민국이 ‘식민지 반(半)봉건사회’라 우겨댔다. 레닌을 흠모하는 민중민주(PD)파는 한국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 외쳐댔다. 자주파가 “반전반핵 양키 고 홈!”을 외치면, 민중파는 “통일 논의 환상 속에 우리 민중 죽어간다!”며 부딪쳤다. 전 세계 공산정권이 줄도산을 할 때도, 그들은 민족해방과 민중혁명을 부르짖고 있었다.
이혼 연금 반쪽
"돈 걱정 없을 줄 알았는데..." 70대 일본 퇴직 공무원의 오산... 이혼한 배우자 연금 수급자 8만 명. 연금 반쪽이 나면 노후에 재앙될 수도...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가 보도했다(2024년 10월 17일).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다 정년 퇴직했으니, (연금이 넉넉해) 돈 걱정은 없겠어요.” 일본 오사카에 살고 있는 77세 카키모토(柿本)씨는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보내기는커녕, 본인 장례 비용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적자 상황이기 때문이다.
30년 넘게 일만 하다가 공직에서 물러난, 그는 은퇴 후에 받을 연금 수령액이 월 28만 엔(약 256만 원)에 달했다. 부부가 연금만 갖고 생활하기에 충분하진 않아도, 적은 액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생기면서 그의 인생 말년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카키모토씨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이후, 말과 거동이 불편해져서 고정 의료비 지출이 커졌고, 타인의 돌봄을 받으며 지내야 한다”면서 “아내의 갑작스런 통보로 황혼이혼하는 바람에, 연금도 절반(28만 엔→14만 엔)으로 줄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중됐다”고 말했다.
--- 이혼한 배우자 연금 수령, 벌써 8만 명... 카키모토씨처럼 황혼이혼 때문에, 연금이 반토막나는 사례는 비단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한국도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이혼한 배우자와 국민연금을 나눠 갖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10월 17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이혼한 배우자와 연금을 나눠서 받는 ‘분할연금’ 수급자는, 지난 6월 기준 8만 2283명으로 집계됐다. 4년 전인 2020년만 해도 4만 명 정도였는데 두 배로 늘어났다.
분할연금(혼인 5년 이상 유지)
분할연금은 아이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전업주부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 주기 위해 지난 1999년에 도입됐다. 지난 6월 기준, 20년 이상 국민연금을 납입한 사람의 월 평균 연금 수령액은 100만 원이다. 만약 황혼이혼으로 남편 연금을 5대5로 나눈다면, 아내는 본인 명의로 1년에 600만 원(50만 원 X 12개월)을 받을 수 있다.
분할연금은 헤어진 배우자와 혼인을 5년 이상 유지하고, 전 배우자와 본인 모두 노령연금 수급 연령(61~65세)을 갖추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신청할 수 있다. 부부는 경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혼인 기간에 해당하는 연금액은 균등하게 나누는 것이다. 남편이 국민연금에 20년간 불입했고, 부부가 함께 산 기간도 20년인 사례를 살펴보자. 남편의 예상 연금액이 100만 원이라면, 아내는 100만 원의 절반인 50만 원을, 연금공단에 청구해서 받을 수 있다. 재혼한 경우엔, 남편과 같이 산 기간만큼, 전·현 부인이 연금을 나눠 가진다.
분할연금 최고 수령액은 지난 6월 기준 월 213만원이었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부부가 서로 협의하거나 혹은 법원 재판 등을 통해 연금 분할 비율을 따로 정할 수 있다”면서 “맞벌이 부부는 서로 청구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황혼이혼은 노후의 재앙... 노후 준비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인 자금 마련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화목한 부부 관계다. 아내가 ‘아이들이 클 때까지 기다렸는데, 더 늦기 전에 새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면서 이혼장을 내밀면, 장밋빛으로 기대했던 노후는 잿빛이 된다. 노년기에 배우자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재정적인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이 두 가정으로 쪼개지면 비용이 중복되고, 생활 수준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년기에 건강이 악화되면, 배우자의 도움이 절실한데, 이혼 후에는 혼자서 간병이나 돌봄을 해결해야 하므로, 비용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부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시라사와다쿠지(白澤卓二, 1958~) 의학박사는 부부가 따로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개인적 공간과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잉꼬부부라도, 항상 함께 있으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 따로 취미나 관심사를 즐기며 휴식을 취해야, 다시 만났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를 교환할 수 있다.
시라사와 박사는 이어 “말에는 힘(言霊)이 있어서, 말한 대로 현실이 이루어지는 만큼, 부부 사이가 가까울수록 ‘고마워...’나 ‘수고했어...’ 같은 긍정적인 단어를 자주 써야 한다”면서, “아내가 ‘당신은 칠칠치 못해...’라고 말하면 남편은 실제로 그렇게 변하고, ‘당신은 정말 꼼꼼해...’라고 계속 말하면 남편이 꼼꼼한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 강화’의 일종으로, 칭찬과 격려를 통해 부부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다.
배우자와 대화하기 전에, 미소를 짓는 노력을 해보는 것도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좋은 방법이다. 시라사와 박사는 “뇌는 본 것을 모방하는 특성이 있어서, 아내가 웃으면, 남편도 따라 웃게 되어 적대감이 사라진다”고 설명한다. 작은 행동이 부부 간의 대화를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다. 부부가 서로 관심을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화제를 고르는 것도 중요하다. 퇴직 후 부부 간에 대화가 없으면, 노후 생활이 외롭고, 힘들어진다. 대화가 단절되어, 부부가 서로 얼굴만 찡그리고 침묵이 지속된다면, 치매에 걸릴 위험도 높아진다.
[참고] 고재열 , 원광디지털대 웰니스문화관광학과 외래교수(여행인문학), 디지털 크리에이터
https://www.facebook.com/dogsuldotcom
[참고] 유재일, 디지털 크리에이터, 2022년 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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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269__미얀마 헝가리 민주화, 586’, 뚱보강사, 2021.04.28., 조회 455. https://kg60.kr/cmnt/2342/boardInfo.do?bidx=767289
[참고] [조선일보] 이경은 기자, 2024.10.17.
https://www.chosun.com/economy/money/2024/10/17/AFVUGKQP5ZEVLJTWSLUXVR2YZ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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