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7__ 오줌 눈물. 배급과 배고픔. 박정희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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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강사 이기성

 

 

     597__ 오줌 눈물. 배급과 배고픔. 박정희 연설문

 

오줌 눈물과 오줌 방울... 바지를 올리다가, 웃다가 찔끔요실금 이렇게 관리하세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나이 들면 남자 화장실에 쓰인 이 문구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조선일보] 김철중 기자가 취재했다(20221013). 외출도 망설여지는 요실금허벅지·복부 운동하면 나아져요... 소변 보고, 마무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화장실을 떠나려고 할 때, 오줌 몇 방울이 뚝뚝 떨어져 속옷을 적신다. 배뇨 끝에 나오는 남성의 오줌 눈물, 의도치 않게 소변이 질질 새는 여성의 요실금, 운동과 생활 습관 훈련으로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다.

 

 

    오줌 방울,  나이 들어 오줌 지리는 남성

 

오줌 눈물, 불가항력적으로 나오는 오줌 방울을 의학적으로는 배뇨 후 요점적(postmicturition dribbling, PMD)이라고 한다. 소변 본 후에 나오는 오줌 방울이라는 뜻이다. 일반 요실금이 아니다. 얼핏 방광 요도 괄약근이 열려서 소변이 새는 요실금 같지만, 발생 원인이 다르다. 배뇨로 방광 밖으로 나온 소변이 방광과 음경 사이 회음부 요도에 고여 있다가, 흘러나오는 현상이다. 대개 소변 본 후에 잘 털고, 팬티를 올리다가 발생한다. 여성은 배뇨 후에 변기에서 일어설 때 생긴다. 속옷에 소변이 묻기 때문에 냄새가 나고, 위생적으로도 찜찜하다. 오줌 눈물 걱정으로 외출을 꺼리는 이들도 있다. 배웅진 서울성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환자들은 잔뇨가 있다고 호소하지만, 정작 배뇨 후 잔뇨량을 측정해보면, 방광에 남아 있는 소변은 없다나이 들어 요도 근육이 노화돼짜주는 힘이 떨어져 생기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젊었을 때는 요도 탄성이 좋아, 소변 배출 시 요도가 확장됐다가 배뇨가 끝날 무렵 수축해 원래 굵기로 돌아오면서, 남는 소변은 방광으로 다시 돌아가거나 마저 배출되게 된다. 그런데, 요도 노화로 그러지 못하게 되면, 회음부에 소변이 고이게 되는 것이다. 배웅진 교수는 특히 골반 바닥을 받치는 근육이 약하면, 요도에 비정상적으로 많은 소변이 남아, 배뇨 후 요점적 양이 늘어날 수 있다항문 주변 회음부 근육을 단련시키는 케겔 운동을 하면 이런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변을 보다가 끊는 느낌이나 대변을 참는 느낌으로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똥꼬 조이기훈련이다. 이는 과민성 방광으로 인한 빈뇨, 절박뇨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배뇨 후 손가락으로 회음부를 앞쪽으로 눌러, 잔뇨를 털어내면 요점적은 줄어든다. 배뇨를 마무리할 때, 까치발을 하는 것도 요도 탄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이퍼, 어른 기저귀

 

수명이 늘어나고, 출생률이 떨어지니 유아용 기저귀는 안 팔려도, 성인용 다이퍼(어른 기저귀, cotton diaper)는 호황이다. 웃을 때 소변 찔끔 새는 여성... 요실금으로 바깥 출입을 꺼리는 여성도 상당수 있다. 요실금을 위한 어른 기저귀도 고령사회를 맞아 판매가 늘고 있다. 70세 이상 여성의 약 40%가 크고 작은 요실금을 겪는다. 여성 요실금의 60% 이상이 기침이나 웃을 때, 복압이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복압성 요실금이다. 정도가 심하면 수술을 받아야겠지만, 찔끔 새는 수준에서 불편함을 참고 사는 이들이 상당수가 된다.

 

20181120일에 [동아일보] 김범석 특파원이 쓰레기 30%가 성인 기저귀? 일본의 한숨기사를 송고했다. 초고령사회 일본이 어른용 기저귀 사용량 증가에 따른 사용 후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쓰레기 30%가 성인 기저귀? 일본의 한숨... 4년 전 20181119, 일본위생재료공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내 어른용 기저귀 생산량은 783600만 장으로 10년 전(45억 장)에 비해 약 74% 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은 5명 중 1명이 70세 이상일 정도로 고령자 수가 늘고 있는 가운데, 성인용 기저귀 수요도 함께 증가하는 상황이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어른용 종이 기저귀의 일본 내 시장 규모는 881억 엔(8832억 원)으로, 이미 2012년에 유아용 기저귀 시장을 앞질렀다.

 

근력 운동 서적 <<근육이 연금보다 강하다>>의 저자 김헌경 박사는 요도괄약근도 골격근이기 때문에 팔다리 근육과 마찬가지로, 수축과 이완 운동으로 수축력을 키울 수 있다, “항문에 힘을 준 상태에서 2~3초 혹은 길게 8~10초 정도 수축했다가 이완하는 훈련을 수시로 반복하면 된다고 말했다. ‘똥꼬 조이기운동은 방광이 받는 압력에 견딜 수 있도록 요도괄약근 수축력을 키워준다.

 

골반 아래에 있는 골반저근은 대장, 방광, 자궁 등을 받쳐준다. 그런데 복부 지방이 많이 쌓이면 장기와 함께 지방도 받쳐야 하기에 골반저근에 큰 부담이 되고, 이는 요실금 유발 요인이 된다. 허벅지 안쪽 근육은 골반저근과 맞물려 방광을 받쳐준다. 따라서 골반저근 강화와 허벅지 내측 근육 운동, 복부 지방 감소 운동을 실시하면 요실금 회복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김헌경 박사는 강조했다. 복근 운동도 골반저근에 자극을 주어 요실금 개선에 좋다.

 

 

    배급과 배고픔

 

체코주재 조선-체코 기술 합영합자회사 사장을 지낸 김태산 님이 인생 초년과 말년에 대한 단상[페북]에 올려주셨다. 다름 아닌, 나의 초년과 말년은 먹을 복이 참으로 없다는 소리다... 1950년대 초에 북한의 산골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나의 어린 시절은 정말 참기 어려운 배고픔의 시절이었다. 어떤 분들은 50~60년대는 북한이 잘 살았다고 하던데... 이분들은 북한을 잘 모르는 소리다. 물론 배급을 주기에, 밥이 아닌 죽을 먹을 망정 일을 못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말을 하면, 매달 배급을 주는데 왜 죽을 쑤어먹는가? 하고 묻는 분들이 꼭 있기에, 좀 길지만 설명을 곁들인다.

 

북한은 노동자에게는 하루에 700g, 중학생 500g, 인민학생 400g, 노인들과 가정주부들에게는 300g... 이렇게 등급을 갈라서 식량을 공급했다. 그러니 일을 하는 어른들이 많은 집은 배급 700g 짜리가 많으니까 좀 괜찮았지만, 늙은 부모들과 어린 자식들이 많은 집은 모두 300-400g 짜리들 뿐 이니까 매달 식량난에 허덕인다. 어린 학생들도 어른과 같은 양의 밥을 먹어대는데, 매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국가가 공급하는 부식물은 소금, 간장, 된장이 전부다. 그마저도 부족하여 간장과 된장을 공급받으면 거기에다가 소금을 더 부어서 짜게 만들어야 한 달 동안 먹을 수 있다. 지금의 한국처럼 채소, 기름, 고기가 많았다면 국가에서 주는 쌀이 아마도 남아돌았을 것이다. 아버지 혼자 일하고, 자식들 6남매는 모두 학생이고, 어머니마저 일을 못하는 우리 집은... 아침엔 밥을 먹고, 저녁엔 죽을 먹어야 하니까 우리 형제들의 배는 항상 고팠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할 때까지, 점심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전복죽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그 곁에도 안 간다.

씁쓸한 도토리를 섞은 밥을 너무 먹어서 지금도 도토리라는 말 자체도 싫다. 북한이라는 사회주의사회에서 보낸 나의 초년은 정말 먹을 복이 없는 눈물겨운 인생이었다. 그러나 중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업 때문이었는지. 먹을 걱정은 없이 살아온 인생이라 할 만하다. 나의 인생 말년은 지금 한국에서 보내고 있다. 먹을 게 넘치는 한국에서 왜 먹을 복이 없는 말년 인생이라고 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옳다... 북한은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인 나라이고, 한국은 먹을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본 남과 북, 두 제도의 큰 차이점이다. 초년은 먹을 것이 없어서 못 먹는 슬픈 인생이었고, 지금은 맛나는 먹거리들이 많지만,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먹고 싶어도 먹어서는 안 되는 행복한 고통을 느끼는 말년 인생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말년에 먹을 복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투정이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 몸무게 100Kg을 넘어서 걸을 수도 없을 것이다.

 

 

    부자가 거지 되는 것은  한 순간

 

내가 북한에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은 나의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먹고 살기위해, 어느 산골에서 도토리를 줍거나 추위에 떨면서 농장 밭에 나가서 이삭이나 시래기를 줍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지금 나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더 비참한 삶을 사는 나라로 전락했다. 북한에 있는 형제들을 생각하면, 나 혼자 누리는 이 행복이 죄스럽기만 하다. 배고픔을 모르고 사는 남한의 어린이들과 노인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남한 사람들은 선배들이 이루어 놓은 이 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땅인지를 잘 모른다. 응당 자기네들이 받을 복을 받은 것처럼 감사함을 전혀 모른다. 그러니까 이 행복과 자유를 지키려는 자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아니 오히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북한을 추앙하는 정치가들과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거지가 부자 되기는 힘들지만, 부자가 거지 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한담이나 하자던 글이,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서 미안 하지만, 두 제도를 살아본 경험자의 호소를 흘려듣지 말고, 대한민국을 친중 종북 역적들로부터 굳건히 지키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마친다.

 

 

    박정희 대통령 연설

 

국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군대의 무력을 이용하여 정권을 빼앗으려고 일으키는 정변인, 군사 쿠데타(coup d’État)로 정권을 탈취한 원죄가 있는 박정희이고, 독재자 소리를 듣지만,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킨 공적은 별도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516 군사 쿠테타는 1961년 당시 소장이었던 박정희 소장은 김종필 예비역 중령 등과 함께 5.16 군사정변을 주도하여, 2공화국을 전복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수립하였다. 7월에 의장에 취임했고, 1962년에 윤보선이 사임하자 대통령 권한대행도 겸했다. 같은 해 5차 개헌을 성사시켰고, 5대 대통령 선거에 민주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민정당 윤보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어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신민당 윤보선 후보를 다시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 1978년 제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19791026일 서울 궁정동 만찬 석상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권총에 피격당해, 향년 61세로 사망하였다.

 

특전사 출신 [페친] 이종헌님이 윤석열 대통령께 소개드리는 글을 올렸다. 윤 대통령께 소개드립니다... “53년 전인 1969년에, 박정희 대통령(재임 1963~1979)이 발표한 연설 내용입니다”... 내가(박정희가) 해 온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까지 야당은 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나는 진정 오늘까지, 야당으로부터 한마디의 지지나 격려도 받아보지 못한 채, 오로지 극한적 반대 속에서 막중한 국정을 이끌어왔습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한다고 하여, 나는 야당으로부터 매국노라는 욕을 들었으며, 월남에 국군을 파병한다고 하여, "젊은이의 피를 판다"고 악담을 하였습니다. 없는 나라에서 남의 돈이라도 빌려 와서 경제건설을 서둘러 보겠다는 나의 노력에 대하여, 야당은 "차관 망국"이라고 비난하였으며, 향토예비군을 창설한다고 하여, 그들은 국토방위를 "정치적 이용을 꾀한다"고 모함하고, 국토의 대동맥을 뚫는 고속도로 건설을 그들은 "국토의 해체"라고 하였습니다.

 

야당은 대소사를 막론하고 내가(박정희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비방. 중상. 모략. 악담 등을 퍼부어 결사반대만 해왔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때 야당의 반대에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하였더라면, 과연 오늘 대한민국이 설 땅이 어디겠습니까? 내가 해 온 모든 일에 대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야당은 유세에서 나에 대한 온갖 인신공격과 언필칭 나를 독재자라고 비방합니다.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탄 듯" 소신 없는 일만해 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독재자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일해 온 나의 태도를 가리켜 야당 그들은 나를 독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나를 아무리 독재자라고 비난하든, 나는 이 소신과 태도를 고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691010일 대통령 박정희(대국민 담화문 중에서)...

 

[참고] [조선일보] 김철중 기자, 2022.10.13.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21608?cds=news_edit

[참고] [동앙일보] 김범석 특파원, 2018-11-20.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1120/92939727/1

[참고] 김태산, 체코주재 조선-체코 기술 합영합자회사 사장”, 20181017. https://www.facebook.com/rlaxotks

[참고] 이종헌, 특전사 근무.

https://www.facebook.com/cliff.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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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형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형님 어지러운 증세(현기증?)도 빨리 회복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과 형님 가족에게 행운이 항시 함께 하시길 빕니다.
    이기성 올림
    이교수님:
         조금 민감하기는 하나, 매우 중요한 문제에 대해 언급하셨읍니다.  우리같은 노인이 되면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뿐, 오줌에 관한 문제는 누구나 있으리라 봅니다.  즉 빈뇨(頻尿), 급뇨(急尿),잔뇨(殘尿)등이 있읍니다.
    이에는 근본적인 질병이 원인이 될 수도 있으나, 대부분 우리몸의 기관이 약해져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노인에게  있는 "서두름"의 반대 개념인 "여유"를 가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 오줌발이 약한데, 서서 오줌을 누게 되면, 바지를 적시기 쉽습니다. 
        따라서 노인이 되면, 서서 보다는 변기에 앉아서 오줌을 누는게 낫    
        습니다. (이렇게 하면 마누라가 좋아합니다)
    2. 오즘이 자주 마린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읍니다. 한약을 계속 먹고 
       있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 빈뇨(頻尿)가 될 수 있읍니다. 
        이때는 참지 말고 자주 오줌을 누어야 합니다.
    3. 누구나 잔뇨가 있으니, 오줌을 누고 난후엔 조금 기다렸다가, 휴지를 
        넉넉히 띁어, 고추앞을 싸서 딲아 줍니다.
    4. 제일 어려운 문제는 급뇨입니다. 젊었을 때와는 달리, 노인이 되면, 나 
        오려는 오줌을 막을 수가 없어, 망신스런 경우가 일어 날 수 있읍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어디 좀 먼 곳을 갈 경우라던지, 남과 긴 시간 
         식사를 할 경우는 "꼭" 먼저 화장실을 다녀 와야 합니다.

     위의 처방은 저의 민망했던 실제 경우에 비추어 드린 말씀이니, 꼭 경청 
     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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