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__미얀마 헝가리 민주화, 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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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__미얀마와헝가리민주화,586 ---15

뚱보강사 이기성

 

 

269__미얀마 헝가리 민주화, 586

 

 

진보가 선거에 참패한 이유라는 주제로 [조선일보]의 곽창렬 기자가 2021417일에 조정훈 시대전환당 의원을 인터뷰했다. 시대전환은 이원재 LAB2050 대표와 조정훈 아주대학교 통일연구소장이 2020223일 창당한 대한민국의 실용주의 정당이다. 박유진 실장, 최병현 연구원, 정대진 교수, 홍석빈 교수, 김중배 기자, 김도훈 대표 등 40여 명의 3040세대 전문가들이 문제해결 정치를 추구하며, 이념대립에서 벗어나 좌와 우를 넘나들며 실용을 추구하는 '생활진보플랫폼'을 지향한다.

 

조정훈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 정당에 참여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가 속한 시대전환'은 원내 1석만 가진 소수 정당이다. 태생이 그러하기에 범여권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에 쓴 소리를 쏟아내 화제가 됐다. 정부가 일자리 대책으로 내놓은 한국판 뉴딜에 대해 쓰레기 일자리라고 했고, 북한의 개성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조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국제개발정책학(석사)을 전공하고, 15년간 세계은행에서 근무했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민주당이 참패하리라는 걸 유세 현장에서 느꼈다고 했다. 그는 참패 원인을 일으킨 민주당 586 세력에 대해 맡겨진 역할을 했으면 퇴장하는 게 역사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참패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겸손과 실력이 부족했다. 범여권이 과반수 180석을 갖고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뜻대로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선 안 되는 게 정치다. 100을 전부라고 봤을 때, 65 정도를 얻었다면 나머지 35는 내줘야 한다. 그런데 다 먹겠다고, 조금도 양보 안 하겠다고 마음대로 했다. 내로남불도 보였다. 그러니 국민이 화가 난 거다. 또 하나는 실력이다. 정치는 의지와 희망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시장을 이기려는 정치인과 세력이 이긴 적이 없다. 자기 집 부엌을 더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일하는 분들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 시장을 막고, 부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했다.”

 

-부동산 시장을 말하는 건가? “부동산으로 절대 돈 벌어선 안 된다는 말은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맞지 않는다. 나는 1992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그때 친구가 얼마나 잘사는지 보려면, ··고 때 이사를 몇 차례 했는지 보면 대충 알 수 있었다. 메뚜기처럼 이사를 많이 다녔다면 부자였다. 아파트 청약을 받고, 또 받으면서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렸기 때문이다. 우리 선배들, 586세대가 그렇다. 주공 아파트를 사들여서, 노동소득(월급)을 자본소득(아파트)으로 이전할 기회를 누리고 살았다. 그래서 지금 현재 비싼 아파트를 보유하게 된 거다. 그 사람들이 지금 와서 후배 세대에게 너희는 평생 일해서 먹고 살아라한다. 자기가 소유한 아파트를 수십억으로 만들어 놓고서, 후배들에게 너희는 임대주택에서 살라고 한다.”

 

-정부의 뉴딜 정책을 쓰레기라고 비판했는데? “취업 준비생이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노량진에서 3~4년 고생하고 공무원 되는 게 제일 나은 사회가 됐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재앙이다. 세금 낸 사람보다, 세금 쓰는 사람들이 더 편하면 어려운 세상이 되고, 세금 낸 사람들이 세금 쓰는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면 올바른 세상이 된다. 작년 말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공무원 사기 진작하겠다며 급여를 0.9% 올린다고 했을 때 정말 화가 났다. 지금 세금 내는 사람들은 파산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인데, 자기 맡은 일을 했다고 월급을 올려준다는 거다. 그것도 기본급을. 기본급을 올리면 나중에 지급해야 할 연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국민이 설득되겠나? 그런데도 정부는 민간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보니 이 산을 저기로 옮기면 돈을 주는 것처럼 군대 사역 같은 일을 공공 일자리로 내놨다. 세계은행에서 공공 일자리(public work program)’ 프로그램 많이 해 봤는데, 이런 정책은 매우 못사는 나라에나 적합한 것이다.”

 

 

미얀마와 헝가리 민주화 요구 시위

 

뚱보강사는 중학생 때 버마의 수도는 랑군으로 배웠다. 현재는 버마의 나라 이름이 미얀마(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로 바뀌고, 수도도 랑군에서 네피도로 이전했다. 랑군의 현재 이름은 양곤으로, 미얀마의 최대 도시이다. 면적은 67km²로 세계 40, 인구는 5470(2021) 명으로 세계 27위이다. 언어는 미얀마어를 쓴다. 종교는 불교 88%, 기독교 6%, 이슬람 4% . 현재 군사 쿠테타 정권에게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미얀마에서는 "민주화를 이룬 한국이 미얀마의 희망이다. 1980년 한국의 5·18 민주화운동은 큰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한국외대 교수 184, 29개 언어로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성명이라고 [경향신문] 임소정 기자가 2021331일에 보도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들이 31미얀마 군사 쿠데타를 규탄하고 미얀마 국민의 민주화 투쟁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성명에는 김인철 총장을 포함한 교수 184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29개 언어로 발표된 이번 성명에서 미얀마 군사정부의 광범위한 인권탄압, 자국민학살 행위의 즉각적인 중단과 민간으로의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UN과 세계 각국 정부가 미얀마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 조치 마련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외대 교수진들은 한국어 성명 원문을 28개 외국어(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힌디어,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아랍어, 불가리아어, 크로아티아어, 네덜란드어, 그리스어, 헝가리어, 이란어, 이탈리아어, 몽골어, 폴란드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세르비아어, 스와힐리어, 스웨덴어, 터키어, 우크라이나어, 우즈베크어)로 번역했다. 터키어·우즈베크어 등 11개 특수어에 관련해서는 특수외국어교육진흥원 소속 학생·교수진도 공공분야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했다. 전종섭 한국외대 교수협의회장은 교수들이 미얀마 군사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를 규탄하는 인도주의적 정신으로 하나가 됐다고 밝혔.



1980년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광주 민중 항쟁)1980518일부터 5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이번에는 지난 1956년 헝가리에서 벌어졌던 시위에 대하여도 살펴보자. 스탈린 사망과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비판 등 민주화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헝가리 국민들은 195610월 소련군 철수, 자유선거, 노동시간 단축등 사회개혁을 위한 10가지 요구조건을 내걸고 시위에 들어갔다. 페친 [전집현] 님이 1956년도 헝가리 민주화 요구 시위를 요약해주었다.

 

헝가리 국민들은 2차대전 후 소련 괴뢰정부의 폭압에 신음했다. 헝가리는 독일 히틀러편에 서서 2차대전에 참전했고 히틀러의 인종청소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전쟁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자 소련군이 헝가리를 접수했다. 소련은 두 차례나 선거를 통해 공산정권을 수립하려 했으나, 인민들은 공산당에 표를 주지 않았다. 이에 소련은 공산당이 아닌 "헝가리노동당"으로 명칭을 바꾸고 온갖 부정투표, 선거조작, 폭력을 통해 1948년에 드디어 공산정권을 집권당으로 만든다. 당수는 라코시 마차시라는 유태인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스탈린주의에 입각한 폭압통치를 펼치며 당내의 반대파 7000명을 숙청하였다. 조금이라도 정부에 도전할 기미가 보이면 보안경찰이 찾아가 잡아갔다. 그리고 산업시설 국유화, 농업집단화를 강제로 추진했으며, 이 과정에서 헝가리는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게 된다.

 

자유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함성. 그럼에도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공포 정치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19561023일 오후 2만 명의 청년학생들이 소련의 괴뢰정권 통치에 저항하는 시위를 벌였다. ‘복수정당제에 의한 총선거, 헝가리 주재 소련군의 철수, 표현과 사상의 자유, 정치범의 석방16개 항목을 요구하였다.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으로 향했고 저녁시간이 되자 많은 시민들이 퇴근 후 시위대에 합류했다. 일부는 공원에 서있던 스탈린 동상의 머리를 때려 부수고 거리에 끌고 다녔다. 시위대의 일부는 라디오 국영방송국으로 진격해 자신들의 정당한 요구를 방송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찰은 사격으로 답했고, 시위대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시위대는 물러서기는커녕 분노에 치밀어 라디오 방송국으로 진격하여 경찰들을 제압했다. 그날 밤 소련과 라코시 마차시정부는 긴급회의를 했다. 다음날 1024일 동이 트자,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 시커먼 소련탱크들이 들어선 모습을 보았다. 시민들은 화염병을 던지고 무기를 탈취하여 시가전을 벌였다. 1025일에 들어서면서 봉기는 헝가리 주요도시로 번지고, 1026일에는 국회의사당이 시민군에 의해 점거되었다. 헝가리노동당 당수 라코시 마차시는 소련으로 도망가고 1024너지 임레를 중심으로 신정부가 들어섰다. 1028너지 임레는 바르샤바조약기구 탈퇴, 일당제 폐지, 소련군 철군 등 일련의 개혁정치를 발표한다. 19561028~ 113일중 소련군이 헝가리에서 철수하고 있다고 믿은 시민들은 전투를 중단하고 환호했다.

 

그러나 흐루시초프의 소련탱크는 다시 돌아왔다. 113일 밤 탱크 1000대와 병사 15만 명이 부다페스트 시내로 진입하였다. 날이 밝자, 시위대를 향해서 소련 탱크와 대포에서 포성이 뿜어져 나왔다. 공격 목표는 민가, 상가, 병원, 고아원, 학교를 가리지 않았다. 1956114일에만 1569명이 죽었다. 1111일 소련군은 부다페스트를 완전히 장악했고 2주간의 저항은 막을 내렸다. 19561023~ 1110일까지 17일간 헝가리 민주화 운동은 무자비한 진압에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3000명이 사망, 실종되었으며 부상자는 2만 명에 달했다.

 

혁명이 발발하고 정확히 33년 뒤에야 민주주의가 도입된다. 1956년 시위 후 다시 친소 정권이 세워지고 너지 임레등은 1958년 부다페스트 감옥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30년 이상 공산주의가 계속되었지만 이러한 저항 때문인지 그전보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19561023일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고, 정확히 33년 뒤인 19891023. 헝가리 의회는 공산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이루어낸다. 1989너지 임레는 정식으로 복권되어, 31년 만에 정식으로 장례식이 열리고 안장된다.

 

 

송재윤 교수,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

 

캐나다 맥매스터대(McMaster University) 송재윤 역사학 교수가 2021419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20대가 586 권력을 몰아낸다고 기고했다. 1960년대 한국서 태어난 건 행운. 중국·북한은 문화혁명·김일성 노예. 1987년 이후에 지적 성장 멈추고 음모 정치, 내로남불로. 특권·특혜 누리는 586 권력에 젊은 세대가 분노하고 규탄. 지는 해처럼 한국의 586 세대가 기울고 있다. 586 운동권 정치 집단의 몰락이다. (5861960년대 생 80년대 학번이 주류를 이룬다.)

 

한국의 586은 운이 좋았다. 세상에 나올 때 그들은 전쟁의 참화와 보릿고개를 슬쩍 비켜갔다. 또 중국을 피해 한반도에 태어났고,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서 귀가 빠졌다. 그들이 한국서 자랄 때, 중국에선 인류사 최악의 대기근이 발생했다. 문화혁명 '10년의 대동란'이 뒤따랐다(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 북한의 인민은 인간의 기본권을 잃고 전체주의 정권의 노예로 전락했다. 홍위병(중국의 문화혁명 초기 학생들을 중심으로 마오쩌둥의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조직한 준 군사조직) 세대와 김일성 키즈에 비해 한국의 586 세대는 행운아들이었다. 586의 부모 세대는 빈곤의 늪을 헤치고 나와 독일의 광산과 요양병원에서, 아라비아 열대 사막과 인도차이나의 밀림에서 목숨 걸고 외화를 벌어 고향에 송금했다.

 

물론 586 세대도 역사의 짐을 졌다. 1980년대 그 세대는 군부 독재에 맞서 가열 차게싸웠다. 급기야 19876월 항쟁("호헌 철폐, 독재 타도")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고 민주화의 활로를 열었다. [참고] 19876·10 국민 대회 선언문(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한 6월 민주 항쟁의 시작). 오늘 우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우리를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국가의 미래요 소망인 꽃다운 젊은이를 야만적인 고문으로 죽여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뻔뻔스럽게 국민을 속이려 했던 현 정권에게 국민의 분노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 주고, 국민적 여망인 개헌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4·13 폭거를 철회시키기 위한 민주 장정을 시작한다.

 

6월 항쟁이 시작된 1987610일은 전두환의 뒤를 이어 군사 반란의 또 다른 주역인 노태우를 집권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날이었다. 1980년에 고친 헌법에 따라, 체육관 간접 선거로 노태우를 새 대통령으로 뽑으려는 속셈이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 한다는 것은 대다수 국민의 뜻이었다. 헌법 개정을 약속한 야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고, 1986년부터는 야당을 포함한 민주 진영이 대대적으로 개헌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섰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전두환 정권은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민주 인사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강경한 탄압을 일삼았다. 1987년에는 대학생 박종철을 고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공포 분위기 속에서 전두환 정권은 1987413일에 헌법을 바꾸지 않겠다는 이른바 호헌 조치를 발표하였다.(출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2011, 김육훈)

 

그러나, 19876월 항쟁까지가 586 세대의 시대적 소명이었다. 이후 586 운동권의 일탈이 시작됐다. 대학가엔 마르크스,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 관련 서적들이 넘쳐났다. 중국에서 톈안먼 대학살이 일어나고 구소련의 붕괴가 임박했지만, 그들은 눈뜬 청맹과니였다. 김일성을 숭배하던 주사(NL)파는 당시 대한민국이 식민지 반()봉건사회라 우겨댔다. 레닌을 흠모하는 민중민주(PD)파는 한국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 외쳐댔다. 자주파가 반전반핵 양키 고 홈!”을 외치면, 민중파는 통일 논의 환상 속에 우리 민중 죽어간다!”며 부딪쳤다. 전 세계 공산정권이 줄도산을 할 때도 그들은 민족해방과 민중혁명을 부르짖고 있었다.

 

[참고] 주사파 =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으로 내세웠으므로 주사파라고 한다. 북한의 남한혁명노선이라고 하는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론을 추종하여 특히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NL파라고도 부른다.


민중민주파(民衆民主派, People's Democracy; PD) =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철학적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주의계의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 시작된 진보주의 운동의 한 갈래이다. 평등파(平等派)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사회를 신 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사회 변혁 방법으로는 민중 민주주의 혁명론에 따르며, 사상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민족 모순을 대한민국 사회의 주요 모순으로 파악하는 민족 해방 계열(NL)에 반해, 민중 민주 계열(PD)은 이를 민족 모순이 아닌 계급 모순으로 파악한다.(출처: 위키백과).

 

586 운동권의 자유분방한 이념적 일탈은 그 당시 취업률로 쉽게 설명된다. 외국어 실력이 부족해도, 성적표에 쌍권총이 달려 있어도 졸업 후 그들에겐 일자리가 넘쳐났다. 30년간 지속됐던 한국 경제의 고성장 덕택이었다. 그들은 어렵잖게 좋은 직장을 잡았고, 몇 년 아래 후배들과 달리 1997년 경제 위기도 피해가는 행운까지 누렸다. 2000년대 초반, 정치판의 586은 불과 30대에 정권을 창출하는 로또를 맞았다. 이후 그들은 80년대 투쟁 전술로 한국의 정치판을 쥐락펴락했다. 2008미국 소 = 미친 소광우병 선동으로 큰 정치적 재미를 본 후, 그들은 더 노골적으로 정치 공작에 몰두했다. 정책 계발의 고뇌도, 중장기 국가 발전의 계획도 없이 이벤트성 정치 쇼와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져들었다(populism = 본래의 목적을 외면하고 일반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 행태).

 

현재 586 권력 집단은 1987년 이래 성장을 멈춘 듯하다. 자폐적 고립주의, 반인류적 종족주의, 비실용적 독자노선, 감상적 평등주의가 그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닫힌 태도, 뒤떨어진 국제 감각, 운동권의 특권의식이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다. 음모 정치, 선전 선동, ‘내로 남불의 이중 잣대가 그들의 생존 방식이다.

 

202147일 선거를 통해 20대가 큰 정치적 변수로 등장했다. 긴박한 권력 이동의 조짐이다. 지금껏 586 권력 집단은 낡은 사고방식, 진부한 역사관, 구태의연한 정치 공작으로 젊은 세대를 지배하려 했다. 이제 유능하고 영리한 20무능하고 부패한 586 권력 집단을 비판하고 규탄한다. 586이 누려온 시대적 행운과 세대적 특혜와 집단적 특권을 젊은 세대는 꿰뚫어본다. 특히 미래 세대의 곳간을 제멋대로 퍼다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권력 집단의 사리사욕에 20대는 분노하고 있다.

 

놀란 586 권력 집단이 짐짓 근엄하게 젊은 세대를 꾸짖지만, 종이호랑이의 포효일 뿐이다. 20대의 정치 세력화는 시대의 요청이다. 오늘의 정치적 결정이 그들의 미래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30년 전부터 586은 기성세대를 공격해서 정치권력을 확장해왔다. 이제 그들이 비판의 부메랑을 맞을 차례다. 성경 구절대로 해는 떴다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시대에 역행하는 낡은 세대는 권력의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586 권력집단에 저항하는 미래 세대가 새롭게 떠오르는 새벽의 태양이다.

 

 

[참고]

[조선일보], 곽창렬 기자, 2021.04.17.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04/17/N7GSDGXFZ5FR7KPTZTQR4YUQYY/?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utm_campaign=facebook-post&fbclid=IwAR3PmCQDnurenIqyfUDkRn_-C5SWOxC8ZnDcqYiuSeNbjGWh5h4m5_-TCCM

[참고]

[SBS 뉴스], 김혜영 기자.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298638&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참고]

[경향신문], 임소정 기자, 2021.03.3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311809001&code=940100

[참고]

[전집현], 1956년도 헝가리 민주화 시위

https://www.facebook.com/ilyong.ko.5

https://www.facebook.com/photo?fbid=4261095660570039&set=pcb.4261011330578472

[참고]

[조선일보], 송재윤, 2021.04.19.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1/04/19/NVEDRWYDMJEIZKDMAASLMPTDKM/?fbclid=IwAR0priYcbZzAzsMIUFIfG-f7XIpgCwnd-mvnha_51bf9p8sF5w1lrudg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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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national/people/2021/04/29/IBMG3BST7RHATPIIWJA5CJAJ5Y/?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utm_campaign=facebook-post&fbclid=IwAR0OE_3TQZvmLVilO7g45fuja3vfyatQUE-PnsDskVr4qPEaFEqodNBEno0

    주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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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꾼 된 B급 운동권, 이념 없으니 좌파도 아냐”
    홍진표 前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최연진 기자
    입력 2021.04.29

    “공부는 안 하고 정치권으로 간 ‘B급’ 운동권이 지금 ’586′이 돼서 정권 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어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타락했나 생각하다 보면 ‘아이고, 나쁜 것들’이라고 욕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말 아프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한때는 ‘우리’였으니까요.”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과 목소리 모두에 그늘이 깔렸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 ‘시대정신’의 상임이사인 홍진표(58) 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옛 동지들’에 대한 평가는 냉철했다. 그는 “운동권에서 활동할 당시 공부는 안 하고 ‘공개 활동’에만 집중하던 친구들이 이제는 그냥 ‘정치꾼’이 됐다”며 “586을 종북이니 좌파니 욕해선 안 된다. 이념이란 게 아예 없는데 어떻게 종북이고 좌파일 수 있느냐”고 했다.

    ‘원조 주사파’ ‘전향한 운동권’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서울대 82학번(자퇴 후 정치학과 83학번 입학)으로 총학생회 간부,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조국통일위원회 부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간사 등을 지낸 ‘주사파 코어(core)’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변절자’가 됐다. “지하당에 인생을 전부 걸었어요. 그런데 소련이 붕괴하고,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사람이 죽어나가요. 나의 신념, 철학, 이론으로는 이 현실이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틀렸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왔죠.”

    1998년 ‘시대정신’이라는 시민단체와 동명의 잡지 발간을 주도했다. 새로운 사회운동을 목표로 북한 민주화 운동을 주장했다. 2004년부터는 같은 ‘운동권 출신’들과 힘을 모아 ‘뉴라이트(new right)’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잘못된 정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우파에도 변화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금방 정치집단화(化) 했고, 원래의 목표였던 우파 혁신이라는 건 잊혔다”고 했다. 뉴라이트는 실제 몰락에 가까운 길을 걸었다. “정치 운동에 경도되다 보니 어느 순간엔 뉴라이트라는 말이 욕처럼 돼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격월간지 ‘시대정신’ 편집인을 맡았지만 2016년 대통령 탄핵 사태로 후원이 끊기면서 이듬해 결국 ‘무기한 정간’에 들어갔다. “다시 발간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솔직히 가능성은 작아요. 탄핵 이후 ‘태극기’ ‘대깨문’ 등 양극단으로 시민 후원이 쏠리게 돼 버렸어요. 시대정신같이 ‘진영’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잡지는 후원을 받기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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