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 대한국인이다 -

우리는 하나, 대한국인이다 ---- 김평일 ---- 치과임상 11월호 시론

대한국인은 안중근(토마스) 의사께서 휘호(揮毫)에 남기신 가르침이시다. 품위와 애국심 자긍심이 넘치는 존귀한 가르침. 그런데 요즘은 대한국인들이 여럿으로 갈라졌다. 대깨문이 있는가 하면 토착왜구가 있다. 심하게는 개돼지도 있다. 일본인들은 헛뜯고 싸우는 우리 모습에서 조선인 70%가 노예 출신이라서 조선인의 고유 개성, 노예근성이라고 일축한다. 슬픈 일이다. 우리의 자존감을 철저히 짓밟아 온 역사, 특히 조선왕조는 어리석게도 자국민을 노예로 부린 왕조다. 동포를 가축처럼 사고파는 노예로 만드는 나라, 왜 조선왕조는 백성을 노예 만들기로 작정했을까?

조선 왕조의 국조 이자춘 이성계 부자(父子)는 몽고제국 원나라의 식민지 관청인 쌍성총관부 사람들이다 이성계의 손자 세종대왕은 직계 할아버지 여섯의 행적이 모두 하늘의 명을 받들었다는 노래를 지었으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왕권을 확고 하게 만들기 위한 충효지심을 높이 평가해야 하나, 그 배경은 고려 왕조에 대한 역성혁명 전주이씨의 왕조 당위성을 강조하는 노래다. 세종의 여섯 선조는 역시 하늘의 명을 받아, 옛 중국의 요임금이 적인서리에 가샤--” 狄人(적인 북쪽 오랑케) 때문에 기산으로 이사 했듯, “野人(여진족) 서리에 가샤-” 라는 대구(對句)로 자신들이 여진족이 아님을 노래했다.

이성계는 아비 이자춘과 함께 쌍성총관부를 무너뜨려 국권을 회복시켰고, 또한 왜구토벌의 대공을 세워 고려 조정, 중앙 진출 한다. 그러나 고려의 귀족계급과는 철저히 구분되는 고려 당시 국토도 아닌 여진족 땅, 변방인사들로 신분도 혈통도 의문이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개경의 고려왕조 세력을 누르기 위해 용비어천가보다 더 강한 배경, 명나라 황제의 직첩(任命狀), ‘조선왕에 봉한다는 칙서를 받는데, 3년이 걸린다. 그로 인하여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 된다. 조선왕은 명황제의 지방제후가 된 것이다.

근자에 스위스 지인,동포의 전하는 말을 빌리면, 현지 도서관 백과사전에서 찾아본 한국항목에, 1897년 중국에서 독립했다는 기록으로 시작된다고 한다. 1897년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청나라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자신이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청나라와 대등한 제국, 대한제국으로 선포 시킨 것이니, 우리 역사상 최초의 제국 탄생을 축하한다면, 철없는 토착왜구 맞다.

조선왕조는 이렇게 시작하여 고려 백성 죽이기, 우민정책(愚民政策)에 힘써 인격도 없는 노비를 양산했다. 노비는 인격이 없어 병역 납세에서 면제 되었으니, 기근이 오면 다투어 노비가 되려 했다는 것이다. 조선후기에는 노예의 숫자가 인구의 70%나 된다. 실학자 박지원 선생의 연암일기에, 임진 병자의 양대 전란이의 원인을 우리 국방력의 열세에서 원인을 찾았다. 당시 조선은 전국이 600만의 인구 중 양반이 20% 평민이 10% 노비가 70%, 국방의 의무자는 평민 10%가 전부여서 손가락 10개로 싸울 전쟁에서 손가락 한 개로 싸운 형국이라, 노비제도를 없애고 백성 모두에게 병역과 납세를 하도록 개혁을 주장 했다.

이런 시기에 만인평등을 교리로 하는 천주교가 들어오니, 불평등 사회에서 당연한 사학죄인(邪學罪人)의 무리라고 배척 받는다. 병인박해 등 대 박햬로 죽어간 사학죄인이 20,000, 동포 대학살이다. 이어서 동학교도 대학살, 조선왕조는 천별을 벌어 들여 망국의 길을 간다.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일본은 조선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갑오개혁을 부추겨 단행하니 노비계급이 해방된다. 노비는 아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계사회로 노비마다 성을 찾도록 하여, 신분사회는 대혼란이 오고, 왕조와 양반계급은 지배가 불가능, 그 틈새에 득세한 자는 토착왜구라는 말도 합당하다.

우리에겐 대깨문도 토착왜구도 개돼지도 다시없어야 한다. 오직 대한국인(大韓國人)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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