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창힐의 한자는 동이족 고한자의 짝퉁이다

 

 

뚱보강사 칼럼

95. 창힐의 한자는 동이족 고한자의 짝퉁이다

 

뚱보강사는 출판사와 대학 현장 실무에서 얻은 한글 활자 지식을 정리하여 5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2000년에 동일출판사에서 <<e-book과 한글 폰트>>를 시작으로 2007년에 <<한글 타이포그래피>>, <<한글 글꼴 및 세라믹 활자>>, 2008년에 <<타이포그래피와 한글디자인>>, 2009년에 <<한글디자인 해례와 폰트디자인>>, 2010년에 <<고딕체 폰트디자인 해례와 한글 자소디자인>> 책을 한국학술정보에서 출판하였다.

 

한글디자인과 역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뚱보강사는 기존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과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가 한글과 한자를 둘 다 사용하는 것처럼 단군조선 시절에도 고한자와 고한글을 둘 다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녹도문자가 발전된 갑골문자가 고한자이고, 가림토문자가 고한글이라는 것. 환국시대(BC 7197~BC 3898)와 배달국시대(BC 3897~BC 2333)에 고한자인 녹도문자를 사용하여 오다가 단군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녹도문자가 더 발전되어 갑골문자로 재탄생한다. 고한자인 갑골문자는 엘리트층에서 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단군조선 초기에 곡물을 측량하는 도량형기를 표준화시키기 위하여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새로운 문자인 가림토문자를 발명한다. 단군조선 3세 가륵단군 때인 경자 2년(BC 2181)에 정음(알파벳)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문자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어려운 고한자(녹도문자/갑골문자)와 쉬운 고한글(정음문자/가림토문자)의 두 종류 문자가 단군조선 시대에 사용된 것이다. 고한자는 뜻글자이고 고한글은 소리글자였을 것이다. 가림토문자의 알파벳은 28개인 훈민정음보다 10개 더 많은 38개이다.

 

고한자인 갑골문자를 우리 동이족이 사용하던 글자이므로 고한글로 부르는 학자도 있지만, 이는 단군시대에 갑골문자만 사용하였다는 가정이 전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자와 가림토문자를 둘 다 사용하는 환경이라면 갑골문자는 고한자로, 가림토문자는 고한글로 구분하여 명명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노중평 칼럼니스트의 <단군세기>에 대한 해설에서 가림토(加臨土)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단군 제2세 부루단군 계묘 3년(BC 2238) 9월에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쌀되(斗)와 저울(衡)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였고, 베와 모시의 시장가격(市價)이 서로 다른 곳이 없으며, 백성들이 모두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했다.”고 하였다.

 

이때는 이미 난전이 서서 백성들의 시장거래가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도량형(度量衡)을 통일하려면 문자가 있어야 하는데, 문자가 조시와 해시가 열리는 곳이 서로 달라서 불편함으로 제3세 가륵단군 때 경자2년(BC 2181)에 정음(正音) 38자를 만들어 가림토라 하고 사용하였다. 가림토란 나라 안에 사는 백성들인 팔가(八加)에서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가림토는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글의 원형문자로 볼 수 있다. 통일된 문자를 쓰고, 도량형이 통일이 되니, 매년 물동량이 늘어서 나루와 포구를 물자의 집산지로 개방하였다. 이런 곳을 진포라 하였는데, 진은 강가의 돛단배가 출입하는 곳이고, 포는 바다로 들어오는 배가 짐을 부리는 곳이다. 조선의 대표적인 교역 장소는 발해만에 있는 동해빈(東海濱)이었다.

 

또한, 길림시 송호상 교수는 <동이민족 논설> 중에서 가림토문자에 대한 증언을 하고 있다. “산동성 환대(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는 옛한글이다.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글자(ㅅ ㅈ x ㅜ) 모양의 가림토문자는 C14 측정결과 385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환단고기의 기록에 가림토문자가 4000년 전에 있었다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뚱보강사도 같은 생각이다. 고한글(가림토문자)이 제작된 것이 4514년 전인 BC 2181이므로 중국 환대시 유물의 글자는 단군시대에 사용하던 고한글인 가림토문자가 맞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5000년 전(BC 2669 경)에 3황5제 시절 가공 인물인 황제의 사관 창힐이 새와 짐승의 발모양을 따서 한자를 창안하였다고 주장한다. 5000년 전에 창힐이 발명한 한자가 3058년 전(BC 1046) 주나라에서 금문(金文)체 한자로 발견되고(주나라 선왕 때 주문/대전 제작) 이것을 발전시켜 2214년 전(BC 202) 한(漢)나라 문자로 사용해서 한자(漢字)라고 주장하고 있고, 우리나라 역사학자도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5910년 전인 BC 3898에 신지혁덕이 사슴 발 모양의 글자인 녹도문자로 천부경을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는 중국의 창힐보다 910년 전에 이미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정도로 우수한 문자인 고한자(녹도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아 창힐이 창조한 것이 아니고 배달국의 녹도문자를 흉내낸 것이 분명하다.

 

환국시대(BC 7197~BC 3898)에 민족의 철학을 기록한 문자인 녹도문자가 다음에 개국한 배달국시대(BC 3897~BC 2333)를 거쳐 단군조선 시대(BC 2333~BC 108)에 들어와서 더 개량되고 발전되어 갑골문자로 탄생한 것이다. 저명한 문자학자인 진태하 교수도 단군조선 동이족이 갑골문자를 발명하였다고 저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갑골문자는 곧 우리의 고한자인 것이다. 한자가 중국 글자니까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한자가 사실은 우리의 글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재고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출처-1] 길림시 송호상 교수, 산동성 환대시 가림토문자

http://blog.naver.com/hwandanstory?Redirect=Log&logNo=50137749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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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 노중평, 단군왕검시대에 무역법을 만들어 시행하였다 , 브레이크뉴스

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92069§ion=s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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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갑녹도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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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newdaily.co.kr/mobile/mnewdaily/newsview.php?id=75706

    “한자(漢字)는 중국 문자가 아니라 우리 조상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우리 글입니다. 중국 학계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데 
    한국만 모릅니다.” 한중(韓中)언어학의 대가 진태하(陳泰夏·73) 교수(인제대)는 만나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올해도 주요 신문에 한자교육을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1998년 전국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를 설립, 이사장을 맡은 
    진교수는 당시부터  매년 몇 차례씩 광고를 냈다며 올해로 14년째라고 한숨을 쉰다.

    총연합회는 지난 15일 주요 일간지들에 낸 [한자교육 축구를 위한 천만인 서명운동] 광고에서 “현정부는 교육부가 지시하여 
    교육평가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89%가 지지하고, 역대 국무총리 21명전원과 교육부장관 13명이 찬성한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즉시 실시하라” 요구했다.
    “우리나라 초대 문교부장관인 안호상(1902~1999) 박사가 장관시절, 중국의 세계적 문호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을 만났을 때 
    여담처럼 말했죠.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서 우리 한국까지 문제가 많다’고요. 그러자 임어당이 놀라면서 ‘그게 무슨 말이오? 
    한자는 당신네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아직 모른단 말입니까?’라는 핀잔을 들었답니다.”
    임어당의 일화를 소개한 진 이사장은 인사를 차릴 틈도 주지 않고 한자의 조기교육을 계속 강조해 나갔다. 
    1967년 대만에 유학, 국립사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국립정치대학에서 1975년까지 교수로 재직. 그의 학위논문 
    [계림유사(鷄林類事)연구]의 ‘계림유사’는 송(宋)나라 학자 손목(孫穆)이 고려에 왔다가 고려언어를 수집 설명한 책으로 
    11세기 한국어 연구에 귀중한 자료의 하나다.
    중국 학자들이 고증
    -한자가 우리 글이라는 근거를 좀 더 듣고 싶은데요.
    “몇몇 한글 전용론자들이 연구 고증도 없이 한자는 중국 한족(漢族)이 만든 것이라고 규정해버렸습니다. 
    우리 말의 뿌리와 기둥은 잘라 버리고 그 발음 표기(한글)만 가지고 표현하자니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된 꼴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고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제정, 발음을 표준화 한 것입니다. 
    한자를 무작정 외국어 취급하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자폭행위가 되는 이유죠.

    첫 째, 한자(漢字)라는 호칭은 중국 한족이 만들었대서 붙여진 이름이 아닙니다. 그들은 한자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나라 때에도 ‘한자’라는 명칭은 없었죠. 긴 역사를 논할 시간은 없으니 쉬운 예로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을 보면 
    [한자는 곧 한족인의 문자라는 말인데, 몽고문자와 대칭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원(元)나라때 몽고인들이 중국을 지배하면서 몽고문자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둘째, 한자는 오래전부터 동이족이 사용한 문자가 약 3천400년전 은(殷)나라때 ‘갑골문(甲骨文)’으로 발전된 문자입니다.
    중국의 사학자 왕옥철(王玉哲), 장문(張文),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등의 연구 고증에 따르면 <한자의 연원은 동이족 문화유산으로서 
    ‘중국의 문자는 모두 동이인(東夷人)이 창조’하였으며 공자(孔子)도 동이족 은나라의 후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자는 동이족이 자기 언어를 표기한 문자이며 진짜 우리 말 우리 글입니다."

    -문자(文字)를 ‘글’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민족 뿐이라고 주장하시는데...
    “문(文)은 본래 ‘무늬’의 뜻이고, 자(字)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다’는 뜻으로 만든 겁니다.
    은나라 때 ‘글’의 뜻으로 처음 쓰인 문자는 ‘契’의 형태로 나무 조각에 칼로 글자를 새기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契의 대(大)는 나중에 추가된 것입니다. 契의 현재 발음은 ‘계’ 또는 ‘설’로 쓰이지만 옛 발음은 [글]이죠. 

    예로부터 문자를 ‘글’이라고 칭해 온 민족은 아시아에서도 우리 한민족 뿐입니다.
    ‘글(契)’이란 글자를 만든 은나라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옛조상인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한글도 ‘韓契’로 표기한다면 잃어버린 동이족 한자뿌리를 복원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한자를 배척함은 세계에 자랑스러운 우리 국어문화를 우리 손으로 매장시키는 무지막지한 만행 아닙니까?“

    -그동안 역대 정부에게 한자 병기와 초등학교 의무교육등 건의도 많이 하셨는데 효과는 어떻습니까?
    “김대중 정부에서 반응이 괜찮았어요. 그때 문화부 신락균 장관이 관광지 도로표지판과 안내판에 한자를 병기했었죠, 노무현 정부땐 
    일언반구 회답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건의서를 보냈는데 응답을 안하니까 우리 회원들이 ‘공문서 읽을 실력도 없는 사람들인가 보다’고 
    웃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2년전 교육부에서 여론조사도 했고 공청회도 열었습니다. 
    늘 그랬지만 이번 여론조사 결과도 <초등교육 한자 의무화>에 90% 찬성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총론은 결정되었고 
    각론만 남았다’는 반응을 보이니 두고 봐야겠죠.

    '한자 문맹률' 80% 넘어서
    -회원이 5만명 넘었다는데 앞으로 구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회원은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역대 총리 전원에다 각료들은 물론이고 각계각층 지도자들과 지식층이 다 모여서 이구동성 
    한자 교육을 주창합니다. 국가문화 위기 극복은 물론, 국민정신을 살리는 구국운동으로서 천만인 서명운동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무식한 야만시대로 후퇴합니다. 
    일본이 조작한 우리 조상의 역사

    --일제 강점기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말---
    1945년 우리 일본은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데, 조선 국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 이상의 세월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 일본인 아베는 100년이 걸릴 것이라 했는데, 저는 67년이 지난 지금이 우리의 진짜 역사를 찾는 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4345(2012)년 8월 17일 뚱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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